"주님의 평화를 누리려면" 요한복음 14:27; 골로새서 3:15 1/2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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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4:27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은 것이 아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골로새서 3: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이 평화를 누리게 하시려고, 여러분을 한 몸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바로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나 바울이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골로새 교회에게 보낸 말씀이나 같은 말씀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를 누리게 하시려고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을 부르셨고, 모든 교회들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21세기침례교회로 부르신 목적이 그리스도의 평화를 누리도록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들에게 보낸 신약성경의 거의 모든 서신서가 주님의 은혜와 평안을 비는 인사말로 시작되는데, 주님의 은혜와 평안은 단순한 인삿 말이 아니라, 교회가 누려야할 놀라운 특권이요 축복이요 의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21세기 침례교회와 모든 주님의 교회 위에 주님의 은헤와 평안이 함께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왜 이토록 그리스도의 평화가 중요한가?
성경의 첫페이지인 창세기의 에덴동산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요. 무엇이 연상됩니까? 무엇보다도 평화스러운 모습을 연상케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사람 간에, 사람과 사람 간에, 그리고 사람과 다른 피조물들 간에 있었던 평화와 축복이 연상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평화로왔던 에덴동산이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평화를 잃게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간에, 사람과 사람 간에, 그리고 사람과 다른 피조물들 간에 화평한 관계가 깨지고 말았습니다. 오늘날도 우리 인간과 모든 피조물이 겪는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과 사람 간에, 사람과 사람 간에, 그리고 사람과 다른 피조물들 간에 깨어진 관계입니다. 평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
이젠 성경의 마지막 페이지인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상해 보십시요. 하나님과 사람 간에, 사람과 사람 간에, 그리고 사람과 다른 피조물들 간에 평화를 연상케 되지 않습니까?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로 시작했다고 하나님이 주실 평화로 마치게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두역사의 중간에 살고 있으며, 이 기간은 이 평화를 회복하기 위한 역사요, 이 회복케하는 역사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하시며 마지막 숨을 거두시고 화평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루셔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다, 기쁘게 자기와 화해시키셨습니다.” 골로새서 1:20-22
하나님의 본체시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가 바로 이 평화때문이라면 이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 줄 아시겠지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라던 주님의 말씀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바로 전에 그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제자들, 그리스도의 교회는 분열과 불안과 죄와 죽음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평화가 지배했던 에덴 동산의 모습을 드러내도록, 그리고 앞으로 주님께서 이루실 새하늘과 새땅의 모습을 드러내도록 부름을 받은 공동체입니다.
예수님께서 화평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것을 은혜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은혜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 결과로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교회로서그리스도의 평화가 지배했던 에덴 동산의 모습을 드러내도록, 그리고 앞으로 주님께서 이루실 새하늘과 새땅의 모습을 드러내도록 부름을 받은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교회는 분열과 불안과 죄와 죽음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평화를 누리고 드러내도록 존재합니다. 그러면 이 그리스도의 평화를 우리는 어떻게 누릴 수 있습니까?
1. 먼저 그리스도의 평화를 받아들여라(소유해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이라
그리스도의 평화를 누리고 그리스도의 평화가 내 마음을 다스리게 하려면 먼저 그리스도의 평화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리스도의 평화를 받아들이는가? 우리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그리스도의 생명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 것을 영생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그리스도의 구원도 받아들이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그리스도의 용서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의 은혜도 그리스도의 사랑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그리스도의 평화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평화를 받아들이려면 그리스도를 마음에 받아들여야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평안을 누리라는 말씀은 아무에게나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
그리스도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엇인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요한복음 1:12) 예수님을 믿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신뢰) 그렇다면 예수님의 무엇을 믿느냐?
로마서 4:25 예수는 우리의 범죄 때문에 죽임을 당하시고, 또한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복된 소식이라고 부릅니다. 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그 결과로 죄의 용서함을 받고 의롭다 여김을 받으며 하나님과의 화평된 관계가 설립되고 그리스도의 평안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후 4:4
여러분 마음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없으십니까? 두려워 하십니까? 예수님을 여러분의 인생의 구주로 그리고 주인으로 모시기를 바랍니다. 그 분은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를 누리려면 먼저 그리스도를 믿어야 그리스도의 평화를 소유해야합니다. 두째.
2.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아라: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라.
John 14:27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은 것이 아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할 일도 두려워할 일도 없을 것이다"라고 약속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 제자들이 시련과 핍박을 받을 것이라고 예수님은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 14:1 근심할 만한 환경과 두려워할만한 환경 가운데 살게되겠지만,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 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다른 말로 나를 신뢰하라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를 누리려는 것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고 주님에 대한 신뢰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를 소유하는 것도 그리스도의 평화를 누리는 것도 주님을 믿음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없애주겠다고 약속한 것이 아니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찌라도..주님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평안이 함께할 것임을 약속한 것입니다.
(여러분 진짜 어려운 위기를 당치 않기를 바라지만, 혹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십시요. 오히려 위기 가운데 체험할 수 있음 )
예수 믿으면 건강해지고, 사업이 잘되고, 자식들이 축복받고 행복해 진다는 보장하시지 않으셨 습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인생의 모든 문제점들을 풀어주기 위해서 오신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인생의 수 많은 고난과 문제에도 불구하고 근심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그 근거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은 것이 아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도 있다고 합니다.
지난 주 설교 때 복권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신문에 보니까 2014년도 한 해동안 미국사람들이 복권을 사는데 사용한 비용이 700억불 (스포츠, 책, 게임, 음악, 극장에 사용한 것 다 합친 것 보다 더 많은 액수) 미국인구가 약 3억이니까, 한사람당 230불 정도 복권사는데 사용. 한 가정당 3명이라면 7백불 사용. 수 많은 사람들이 복권을 사는 이유. 돈만 있으면, 자신들이 겪는 수 많은 문제와 걱정거리를 해결할 수 있고 마음의 평안을 주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머니 머니 해도 머니가 최고다. 실지로 돈이 거의 신적인 존재라 할만큼 온갖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까지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몇 억불의 복권을 타면가 맘대로 먹고 살고 즐길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이 바뀌며 인간관계의 문제도 없어집니까? 오히려 친구들 친척들과 진실된 인간 관계를 갖는데 더 문제가 있게 되지 않을까요? 유명인사가 되며 지속적으로 전화가 오고 사생활이 방해, 강도와 사기군과 위협도 더 느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수를 걸어오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만약 예를 들어 병에 걸렸다든지 사고가 났다든지 가정에 문제가 생겼다든지 돈으로도 해결될 수 없는 문제도 많이 있지요. (복권당첨이 불행과 심지어 저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과 행복은 환경적이고. 일시적이고, 조건적이고 상대적인 것입니다.
원래 2주전 주일날 홍다니엘 형제님 손자 알렉스 100일 및 홍자매님 아버님 전장로님 79회 생신잔치를 하는 날이었는데, 홍형제님 어머니께서 갑자기 사경을 헤메시게 되니까 잔치를 취소하지 않았습니까? 그 것이 돈이던 명예던 복권당첨이든 업적이던 사랑하는 식구들이던, 사람이 온 천하를 얻었다 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의지하던 모든 것들이 죽음 앞에 모든 평안과 행복의 조건들이 무릎을 꿇습니다 결국 죽음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반대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사형선고를 받았던 말기 암 환자가 병에서 완전히 났다고 합시다. 사형언도를 받은 사형수가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받아 석방되었다고 합시다. 그가 가진 다른 수 많은 문제가 있다하더라도 죽을 병에서 살아나고, 죽음에서 살아났기 때문에, 아직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생명은 모든 불행의 조건들을 무릎꿇게 할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신 목적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자녀들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그도 역시 피와 살을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죽음을 겪으시고서, 죽음의 세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멸하시고, 15 또 일생 동안 죽음의 공포 때문에 종노릇 하는 사람들을 해방하시려고 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2:14-15 (요 10:10) 예수님은 인생의 가장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문제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자신의 죽음을 앞두시고 제자들에게 왜, 근심치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가? 어제 홍권사님 장례식때 불렀던 찬송 539장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그 날 되어도 구주의 언약 믿사와 내 소망 더욱 크도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그 것이 우리인생의 끝이 아니요 결국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임을 알기때문에 그렇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저는 한국팀이 월드컵 축구 실황중계를 한게임도 처음부터 끝까지 본적은 없습니다.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흥분되서 조마 조마하며 지면 어떨까 하여 차마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미 한국팀이 이미 이긴 경기를 재방영하는 것을 여유있게 본적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겨우 겨우 이긴경기도 걱정안하고 여유있게.볼 수 있습니다. . 인생의 경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쓰러지고 넘어지고, 낙망과 소망, 이기고 지고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도 염려와 두려움이 아니라 평안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은 인생경기의 최종 승리의 결과를 미리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오시진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지나가야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아직 그대로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결국 그 분께서 나를 지팡이와 막대기로 보호하셔서 결국 푸른 풀밭으로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실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은 환경때문이 아니라 그 분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_
3. 마지막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평안을 누리려면, 다른 성도들과 화평된 관계를 누려야합니다.
골로새서 3: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이 평화를 누리게 하시려고, 여러분을 한 몸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이 평화를 누리게 하시려고 여러분을 한 몸으로 부르셨다.” 여기서 한 몸이란 교회를 말합니다. 결국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것은 교회란 공동체로서 체험할 수 있는 주님의 평화가 있기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를 체험하려면 교회의 지체된 우리는 서로 서로를 필요로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속할 교회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은혜와 평안은 각 교회이 성격이요 축복이 되어야합니다.
제가 참 부러워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1980년대 초에 시작된 교회인데 지금 세계 전역에 34개 교회로 불어났습니다. 이 교회의 특징은 교회식구들이 철저히 서로에게 헌신되있습니다. 선교지든 미국내에서든 교회개척을 하면 여러가정이 함께 이사가 교회사역을 시작합니다. (알라스카 10가정)
조지아에 36명의 자녀들과 조지아에 온 선교팀은 전체가 36명(9커플-성인 20명, 자녀 16명)이
몇십만불 의대교수로 채용됐으나 한 달 급여가 380달러 정도라고 한다. (동티모르에 있을 때 선교팀 중에 의사가 3명). 때론 오지에도 함께 가서 공동생활을 하면서 에덴동산을 체험합니다.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체험합니다)
우리교회는 어떻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안을 경험하는 교회입니까?
고후 13:11 서로 격려하십시오.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그러면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우리가 서로 격려하며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느냐만큼, 서로 간에 화평을 경험할 수 있고 또한 평화의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서로 격려하며 서로가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을까? (10년 20년 별 다툼 없이 대화했다고 해서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는가? 교회내에도 겉도는 이야기로 관계성이 끝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어떻게 우리가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까지 내어놓고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을까?)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성령님만이 하나되게할 수 있고 성령님만이 하나된 것을 지킬 수 있도록 도우실 수 있습니다. 저는 제 아내와 함께 마음 속 깊이 있는 기도제목을 내놓고 기도할 때 예배드릴 때 우리들의 마음을 맞추는 순간임을 경험하고는 합니다. 우리의 교제도 자유스럽게 기도로 교제하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장막) 그럴때 우리의 마음을 그리스도에게 맞출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서로를 자신 보다 낫게 여기며, 서로에 대해 끝까지,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을 베풀 수 있습니다.
서로 오래 참고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므로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교회를 지킬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4:2-3
저와 우리 모두가 올해는 깨어진 관계성을 회복하고 소원해진 관계성을 밀접하게 미지근한 관계성은 뜨겁게 얄팍한 관계성은 깊어지는 형식적인 관계성이 진실된 관계성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평안이 지배하여 에덴동산의 모습을 회복하는 교회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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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주님의 평화를 누리려면?”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은 것이 아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요한복음 14:27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이 평화를 누리게 하시려고, 여러분을 한 몸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골로새서 3:15
1.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여야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를 받아들여야합니다 (소유해야합니다)
“예수는 우리의 범죄 때문에 죽임을 당하시고, 또한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로마서 4:25
2.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여야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아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한복음 14:1
3. 다른 성도들과 화평된 관계를 누려야합니다
골로새서 3: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이 평화를 누리게 하시려고, 여러분을 한 몸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고후 13:11 서로 격려하십시오.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그러면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서로 오래 참고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므로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교회를 지킬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4:2-3
박천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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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평화를 누리려면?” 1/24/2016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은 것이 아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요한복음 14:27
1.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여야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를 받아들여야합니다 (소유해야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를 누리고 내 마음을 다스리게 하려면 먼저 그리스도의 평화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그리스도의 구원도, 용서도, 은혜도 그리고 평화도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받아 들인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요1:12) 그렇다면 예수님의 무엇을 믿느냐? 로마서 4:25 “예수는 우리의 범죄 때문에 죽임을 당하시고, 또한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여야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아라”
“ 마음에 근심할 일도 두려워 할 일도 없을 것이다"라고 약속하지 않으
셨다. 오히려 그 제자들이 시련과 핍박을 받을 것이라고 예수님은 경고 했습니다. 근심과 두려워할만한 환경 가운데서도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 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를 누리려는 것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고 주님에 대한 신뢰의 문제라고 말씀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없애주겠다고 약속한 것이 아니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찌라도..주님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평안이 함께할 것임을 약속한 것입니다.
3. 다른 성도들과 화평된 관계를 누려야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이 평화를 누리게 하시려고, 여러분을 한 몸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골로새서 3:15
그리스도의 평화를 누리도록 교회로 불러주셨다. 그리스도의 평화를 체험하려면 교회의 지체된 우리는 서로 서로를 필요로하다는 말씀이다
같은 마음을 품고 화평한 만큼 평화의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 (고후 13:11) 같은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단지 서로 간에 문제없는 상태보다 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자신보다 다른 지체를 귀히여기는 마음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다는것은 성령님의 역사로만 가능하다. 서로 오래 참고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므로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교회를 지킬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