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 - 예배자로서의 삶 로마서 12:1-3 3/20/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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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이란 곳에는 한국의 가장 어둡고 힘들었던 시기, 한일합병이전과 일제시대에 조선민족과 운명을 같이 했던 외국 선교사들과 그 가족 145명이 묻혀있습니다. 이분들은 교회를 세우고 병원과 학교를 세우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므로 오늘날 한국이 한국이 되게한 위대한 인물들입니다. 이들 중에는 환자를 치료하다 병에 감염되 죽은 의료 선교사, 풍토병과 사고로 목숨을 잃은 선교사, 자녀를 잃은 선교사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 중에 켄드릭이란 25세의 쳐녀 선교사는 “나에게 천의 생명이 주어진다 해도 그 모두를 한국에 바치리라”는 편지를 미국 남 감리회 소속 텍사스 청년연합회 에 보냈습니다. 그녀의 편지를 읽고 대회 참석자 중 20명이 해외선교사로 결단하였다고합니다. 그러나 그 편지가 배달된 다음날 그녀의 별세 소식이 그 연합회에 전해졌다고합니다 ..
한국은 이렇게 많은 선교사들의 목숨을 건 헌신이 있었기에 결국 오늘날 저와 여러분이 복음을 듣게되었습니다. 이제는 수 많은 한국 선교사들이 세계 곳 곳에 파송되어 헌신적으로 복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로마서를 기록한 사도바울도 이런 헌신의 삶을 살았고 결국 이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다가 로마황제 네로에 의해서 목베임을 당하여 순교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헌신은 소수의 선교사들만 하게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헌신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 (때문에)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12:1)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헌신입니다.
사실 헌신은 기독교뿐 아니라 모든 종교들이 헌신을 요구합니다. 차마고도란 KBS타큐필름 중 2편 순례의 길을 보셨습니까? 5식구가 수레를 끌고 중국 쓰촨성에서 티벳까지 7개월 정도 걸리는 2100 Km 죽을 각오를 하고 순례의 길을 갑니다. 석가의 진신사리가 보관되어 있다는 라싸의 조캉사원에 도착해서는 10만배를 올리는데 절을 하는데만 2개월이 걸린다고합니다.
여행을 감당할 수 있는 모든 무슬림은 일생에 한 번 이상 메카 순례를 떠나는 것이 의무이다. 하루에 다섯번씩 메카를 향하여 기도해야합니다. 1년에 27일 라마단 금식을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에 헌신된 삶과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헌신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때문에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 헌신의 동기입니다. “(이미 베푸신 하나님의 자비하심 때문에"입니다. 무엇을 얻고 쟁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것에 대한 응답입니다.
David Platt이란 미국 목사님이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다고 불교사원에 들르게되어 절 밖에 앉아 있다가 그 불교사원이 위치한 동네의 불교 지도자와 회교 (이스람교)지도자와 함께 대화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교 지도자와 회교지도자가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면서 모든 종교가 형식적인면에 서로 다른 주장을 할지 몰라도 결국 본질적인 문제 있어서는 모든 종교가 같다는데 동의하고 있었습니다. http://lifetoday.org/connect/words-of-life/radical-salvation/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그에게 그의 의견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래서 David Platt목사가 대답합니다. “내가 듣기론 여러분 두 분 다 하나님을 (혹은 하나님이든 최종진리든) 산정상에 계신 분이요. 이 길로 오르던 저길로 어르던 결국 그 정상에 이르러서는 우리 모두가 같은 곳에 이를 것이다"라고 말씀하는 것이 아니냐? 그들이 미소를 지으면서 맞습니다. 당신이 우리가 하는 말을 잘 이해했군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제가 한가지 묻겠습니다. 만약 이 산 꼭대기에 계신 하나님이 실질적으로 산에서 내려오셔서 우리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셨다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인간이 정상에 이르는 길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우리에게 오셨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그들이 잠간 생각하더니 그 것 참 좋네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소개했다고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산꼭때기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헌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 산꼭때기에 이를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그 어떤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노력이나 헌신으로 하나님께 이를 자가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갈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이 것이 하나님이 베푸신 자비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때문에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러므로란 말은 앞부분과 뒷부분을 연결하는 접속사인데 12장이전 로마서 1-11장까지가 Mercies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비를 설명한 것입니다.) 로마서 1장부터11장까지 설명한 하나님의 자비들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구원 속에 포함된 모든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용서, 하나님의 사랑, 영생, 은혜, 하나님의 평화, 믿음,소망, 능력, 의롭다함, 하나님과 화해케됨,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자유, 부활의 약속, 그리스도와 연합,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 하나님의 자녀가 됨.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도 아끼시지 않고 주셨습니다. 우리는 놀라운 용서와 사랑을 받은 자들이기에 과거처럼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해 죽은 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게되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자비를 받은 자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므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을 드리라는 것은 우리의 눈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보고, 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듣고, 입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말하고, 우리의 다리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으로 가고 우리의 손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란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고후 5:9)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라고 권고합니다.(엡 5:10). 하나님께 기쁨을 모든 행동이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예배자로서의 삶을 사는가를 알려면,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마음이 내게 있는가? 항상 주님의 뜻을 물어보는 삶을 사는가?를 물어보시면 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 “하나님은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 니다. 예루살렘성전에서만 예배드리는 자가 아니라 예배당에 모였을 때만 예배드리는 자가 아니라, 예배당을 오기 전에도 예배당을 떠나서도 삶으로서 예배드리는 자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삶으로서 드리는 예배,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질 수 있는가?
12:2 너희는 이 세대를(이 세상을 – 공동번역)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 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예배자로서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려면,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하지 말아야할 것은 “이 세상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해야할 것은 우리의 마음 (생각)이 새롭게 되므로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결과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게된다 라고 말합니다. 분별하게된다는 말을 NIV 성경은 Test and approve (하나님의 뜻을 참으로 선한 것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으로 그리고 완전한 것으로 시험할 줄 알고 인정할 줄 아는, 그 가치를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만이 참선이다, 하나님의 뜻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하나님의 뜻만이 완전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묘사)
결국 우리의 마음과 (mind) 생각이 전쟁터입니다. 결국 세상적인 생각을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대로 생각하는가가 내가 보고 듣고 말하고 가고 행하는 것을 결정합니다.
지난 주에 저는 클리닉에 갔다가 한국에서 미국을 잠간 방문중인 어떤 교수님을 만나서 대화할 기회 가 있었는데 이 분에 말에 의하면 지금 한국에는 중고등학생들이 교회에 없다고 합니다. 다들 입시준비때문에. 신앙이 좋다는 부모들도 아이들의 신앙보다는 학교성적을 더 중요시 여긴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지만, 자녀가 좋은 대학만 들어갈 수 있다면 신앙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것이 세상을 본 받는 것입니다.
지금 수 많은 사람이 양식이 없어 굶고 있고, 수많은 여자어린이가 성노예로 팔려가고 있고, 예수님을 몰라 죽어가는 영혼들에 대한 관심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스포츠팀이나 운동선수가 얼마나 잘하나에 더 관심을 갖습니다. 이게 이 세대를 닮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의도적으로 물어보지 않고 생각하고 행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세상을 본받은 생각 이라고 믿으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 하지만 세상사람들처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는 삶을 살기가 너무 쉽습니다. (요일 2:16) 그 이유가 무엇인가? 육적인 건강을 위해서는 식단, 운동, 병원등 많은 과심과 신경을 쓰면서도, 영적건강을 위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은 결과입니다. 연속극이나 잡지 신문 볼 시간은 있어도 성경공부를 하고 기도할 시간은 갖지 못했던 결과입니다
(저는 지난 주 동안 두분에게서 제 자신을 생각케하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첫째 질문은 당신은 일주일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얼마나 어영부영 살고 있는지... 두째 질문은 당신이 21세기침례교회의 담임을 맡은 2년동안 교회가 어떻게 변했는가? Nothing, 나다, 오히려 악화된 것같습니다. 제가 이런식으로 10 년을 사역한다고 교회가 변화된다는 보장이 있는가.
여러분들이 오히려 다른 교회가서 더욱 열심히 주님을 섬기고 따르고 변화될 수 있는데 이 교회에 어쩔 수 없이 남아 있으므로 신앙이 성장하기 보다는 오히려 세상을 더 닮아간다면, 하나님 앞에 그리고 여러분에게 그리고 제 자신도 얼마나 죄악이며 시간낭비입니까? 그렇다고 다른 교회 가지 마세요. 지금 여러분이 이 상태로 가시면 새로간 교회도 망가트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저와 여러분은 변화될 수있고 변화될 것입니다. 기도합니다.
정말, 우리가 이제 것 살았던 인생의 방식대로 우리의 인생을 마칠 수는 없습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말합니다: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온전하고 순수한 헌신에서 떠나 유혹될까 두려워하노라” (고후 11:3) 우리 마음을 살펴볼 때 그리스도를 향한 온전하고 순수한 헌신이 없다면 저와 여러분은 이미 사탄에게 미혹되어 시험에 빠진자들입니다. (주님! 주님을 향한 헌신을 회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들의 마음과 우리들의 생각이 영적 전쟁터입니다. 우리 생각을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로 채우느냐 아니면 세상의 것으로 채우느냐의 전쟁입니다.
제임스 패커라는 신학자는, “만약 자신이 마귀라면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을 공부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성경을 가까이 하지 못하도록 그 주위에 구덩이를 파고, 가시망으로 둘레에 쳐놓고 또 함정을 파놓아 사람들을 접근 못하게 만들겠다.” 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게되면 죄를 멀리하게 되고, 죄를 가까이 하면 성경을 멀리하게 된다”
(인생을 살면서 많은 불만이 있지만, 다른 것에 불만을 가지지 마시고) 변화되지 못한 변화되지 않고 있는 자신에 불만을 느끼며.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 지속적이고 계속적인 생각의 변화를 위해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의 선하심과 온전하심과 그리고 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지 알고 느끼고 체험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아니라 하나님께 생각을 맞춤)
12:3 “나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과대 평가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정도에 따라 분수에 맞는 생각을 하십시오” (공동번역)
우리의 몸을 산제사로 드리는데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세상의 영향 받는 것 외에 또 하나의 문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과대 평가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됩니까? 우리의 몸을 산제사로 드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은 개인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이기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입니다. 진정한 헌신과 예배의 문제는 우선 나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문제이지만 또한 나와 다른 형제와의 관계의 문제입니다.
“아무쪼록 인내와 격려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뜻을 따라 모두 한 마음이 되어 6 다 같이 한 목소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미하도록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받아 들이신 것같이 여러분도 서로 받아 들여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요. “ 롬 15:5-7 (우리가 아무리 개인적으로 헌신되어 있다 하더라도, 한 마음이 되어야지만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고, 우리가 서로 받아들여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자신을 과대평가하면 한 마음이 될 수 없고 서로 받아들일 수 없고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드릴 수도 없습니다. (예배자가 될 수 없습니다) 자신을 과대평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기준을 버리고 세상적 기준으로 평가하고 차별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그리스도가 우리 모두를 위해 죽으셨 으므로 이제는 그 누구도 세상의 기준으로 보지 않는다 – 가치. (고후5:16)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마십시오.약 2:1
지금도 물론 차별이 있지만, 사도바울이나 야고보사도가 이 말씀을 2,000년 전에는 사회의 모든 면에서 공공연한 차별이 있던 시대입니다. 심지어 노예제도까지도 당연한 사회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회 속에 있는 교회는 차별대우하면 안 된다는 말씀을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사회를 선도해가고, 소수의 기독교가 세상에 큰 영향력을 줄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한국교회 초기에 교회가 양반과 상민으로 나뉘어진 신분제도 때문에 교회가 갈라진 경우도 많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양반출신만이 아니라 상민이나 천민 출신도 신학교에 가 목사가 되고, 교회에서 집사등 교회지도자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평등을 실천하므로 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습니다. 유명한 소설가 이광수씨도 한국 기독교의 진보적인 역할을 칭찬했습니다. ( 1917년 11월 ‘청춘’지에 ‘금일 조선 야소교회의 결젼이라는 글을 통해) 그런데 이광수씨가 태도를 바꾸어 한국교회를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교회가 이전의 양반과 상민의 관계는 극복했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목사•장로•교인으로 차별화된 새로운 게급사회 를 이루웠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직분이 섬기는 역할이 아니라 대접받으려는 역할로 변질된 것입니다. 양반 상민의 차별도 없지만 서로 차별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남아있기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도 목사, 목자, 집사란 직분으로 차별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내의 모든 직함과 직분을 없애고 서로 형제 자매라고 부른다 할지라도 우리는 계속 나를 높이고 남을 낮추려는 속성과 매일 싸워야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사회적인 영향력을 잃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나를 높이고 남을 낮추려는 속성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 너무 중요하지만,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면 세상사람들이 내 제자인줄 알리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사람들이 내 제자인줄 알리라”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내 사랑 안에 거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랑을 요구하시는가? 9 사랑에는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악한 것을 미워하고, 선한 것을 굳게 잡으십시오. Don't just pretend to love others. Really love them. 사랑하는 척이 아니라 진짜로 사랑하라.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성도끼리의 관계에서 사랑하는 척하는 것과 진실한 사랑의 차이가 무엇일까? 그 다음절 10절을 읽습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좀더 정확한 번역) “형제로서 사랑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헌신하라. 그리고 서로를 자신 보다 더 존경하라. (강준민목사) “오직 사랑하는 이를 상대로 내 사랑의 종지부를 찍겠다는 헌신이 필요하다.” 상대방에게 자신을 헌신할 정도로 중요한 가치를 느끼는. 그리스도의 생각을 품고 서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길때 가능.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때 이런 헌신과 충성과 진실을 가지고 오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자세 (우리를 자신보다 귀하게 여기신 그런 사랑을 느낄때만 가능) 갈 5:13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습니다) 엡 5: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주님께 헌신된 자는 주님만 섬기는 자가아니라 다른 성도들도 섬기는 자임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로마서 12장은 우리가 어떻게 자비로 다른 성도들을 대할가에 대한 구절로 가득차 있습니다. 왜 그럴까?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비를 다른 형제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을 참으로 예배하는 것이요 또 자비로운 하나님을 세상에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남전도회 헌신예배로 드리면서 헌신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헌신이란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대한 우리의 응답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셨으므로 사랑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요 이것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헌신의 삶, 예배자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세상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생각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어야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헌신의 삶, 예배자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다른 형제, 자매를 자신보다 존경하고 낫게 여기며 섬기고 형제의 사랑으로 서로에게 헌신해야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것이 자기 중심적인 나를 부인하고 주님을 섬기는 길인줄 믿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생각이나 의지로는 못하지만,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소원케 하시고 우리로 삶으로 주님을 예배하는 자가 되게하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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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헌신: 예배자로서의 삶” (로마서 12:1-3)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2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3. 나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과대 평가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정도에 따라 분수에 맞는 생각을 하십시오” 로마서 12:1-3
1. 헌신의 동기와 내용 (12:1)
헌신의 동기: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때문에 권합니다”
헌신의 내용: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고후 5:9);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라고 권고합니다.(엡 5:10). 먹든지 마시든지 주의 영광을 위해서
2. 헌신의 방법 (예배자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서): 12:2
하지 말아야할 것: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해야할 것: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온전하고 순수한 헌신에서 떠나 유혹될까 두려워하노라” (고후 11:3)
3. 헌신의 방법 (예배자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서): 12:3
하지 말아야할 것: “여러분은 자신을 과대 평가하지 말고”
해야할 것: 서로에게 헌신 할 것
“아무쪼록 인내와 격려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뜻을 따라 모두 한 마음이 되어 6 다 같이 한 목소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미하도록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받아 들이신 것같이 여러분도 서로 받아 들여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요. “ (롬 15:5-7)
“사랑에는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척 하지 말고 진정으로 사랑하라) 10 “형제로서 사랑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헌신하라. 그리고 다른 형제를 자신 보다 더 존경하라.” (롬12:9-10 박목사 의역)
서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빌 2:3)
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헌신: 예배자로서의 삶” (로마서 12:1-3) 3/20/2016
1. 헌신의 동기와 내용 (12:1)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때문에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신약성경이 말하는 헌신은 구원을 얻기 위한 의무과정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 께서 베푸신 모든 자비하심이 헌신의 동기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비는 복수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1-11장까지 설명한 모든 하나님께서 베푸신 것들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으므로, 죄사함 을 받기 위해 죽은 제물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이미 죄의 용서를 받은 자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것이 거룩한 산제물이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고후 5:9);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라고 권고합니다.(엡 5:10).
2. 헌신의 방법 - 예배자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서 (12:2)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우리의 몸이 행하는 것은 결국 우리들의 생각에 의해서 좌우됩니다. 세상 의 가치관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따를것인가는 결국 우리
의 생각이 무엇에 의해 영향받고 지배받고 있는 가에 의해 결정됩니다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온전하고 순수한 헌신에서 떠나 유혹될까 두려워하노라” (고후 11:3)
우리의 지혜로는 사탄의 유혹을
3. 헌신의 방법 - 예배자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서 (12:3)
“여러분은 자신을 과대 평가하지 말고”;
“남을 자신보다 높게 여기고 서로에게 헌신 하십시요” (12:10)
예배와 헌신은 개인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공동체로서 드려지며, 하나님 께서는 사랑가운데 마음을 합하여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며 영광 받으십 니다. (롬 15:5-7)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속성을 극복하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가 되려면 진정으로 다른 지체들을 자신 보다 낮게 여기고 다른 지체들에게 자신을 드리는 헌신이 있어야합니다. (be devoted to one another) (롬 12:10; 고후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