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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에 대한 사랑" 로마서 9:1-5 4/3/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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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에 대한 사랑"  로마서 9:1-5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4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지구에 살고있는 약 70억의 사람들중에 유대인은 1,700만명 정도 세계인구 0.2%에 불과하지만, .  지금까지 역대 각 분야의 거의 200명이 노벨상을 수상받았습니다.  그러니가 전체 노벨상수상자의 20%이상이 특히 노벨경제학상의 40% 이상을 유대인이 지금껏 받아왔습니다.  유대인들이 특별한 민족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유대인들 진짜로 특별한 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롬 9:4,5)
 
이런 놀라운 특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따르는데 실패하였으며, 이런 특별한 특권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알리며, 하나님의 구원사에 있어서 통로의 역할보다는 우월감에 사로잡혀서 이방인들을 경멸하며 교제를 단절하며 그들을 저주받은 자로, 지옥불의 땔감으로 생각하던 자들입니다.  결정적으로 구원역사의 주인공이신 약속된 메시야가 왔을 때 그를 거부하고 심지어 십자가에서 죽게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고 밝힙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을 거부한 자들입니다. 이런 이유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에 대한 적개감을 가지고 반 유대주의를 표방합니다.  그리고, 역사상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을 많이 핍박했습니다.  이 사실이 유대인들로 예수님을 받아들이는데 장애가 된 것도 사실입니다. 반면 그와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기독교 시온주의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던 아니던 상관없이 하나님의 선택과 구원받은 백성처럼 무조건적으로 유대인들을 선호하는 Pro- Israel사상을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유대인들에게 어떤 입장을 취해야할 것인가?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서 드러난 바울의 자기 동족 유대인들에 대한 자세를 통해서 유대인들뿐 아니라 아직 예수를 구세주로 인정치 않는 분들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할 것인가를 배우기를 원합니다. 1절과 2절을 읽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사도바울은 유대인들을 향한 큰 근심이 있다고 말합니다.  유대인들도 구원받기 위해서 이방인처럼 그리스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39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라고 확신하며 감격하던 바울이  이제 큰 근심이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변덕스러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할 수록, 그 사랑을 꺠닫지 못하고 모르는 자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픔을 갖게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과 근심으로 괴로워한 경험을 언제하였습니까?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아픔과 근심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만큼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을 잃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을 잃게되면 교회의 사명인 영혼구원에 대한 관심을 잃게됩니다.  그 뿐 아니라, 오히려 사소한 것으로 염려하고 근심하고 다투게 될 수 있습니다. 많은 교회에서 다툼이 일어나고 심지어 갈라지기까지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도 영혼에 대한 관심도 잃기떄문입니다.  피아노를 강단 위에 놓느냐 강당 아래에 놓느냐로 갈라진 교회도 있다고합니다.  테네시에 있는 어떤 교회는 세족씩 할 때 어떤 발부터 해야하느냐로 교회가 갈라져서, 갈라져 나간 그룹이 교회를 따로 세웠는데 교회이름을  LEFT FOOT BAPTIST CHURCH 명명하였다고합니다.

우리는 그리고 우리 교회는 과연 무엇을 가지고 염려하고 근심하고 있습니까?
 
오늘날 사도 바울같은 분이 담임목사가 되면 대부분의 교회에서 쫓아날지 모릅니다. 아니면 바울 스스로가 뛰쳐나갈 것입니다.  바울의 생각과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생각, 바울의 근심과 오늘날 우리들의 근심이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적당히 타혐하면서 안정된 생활 잘먹고 잘사는 생활을 추구할지 모르지만, 바울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그리고 말씀을 배우자고 어떻게 전도해야할지를 배우고 실지로 전도하자고 여러분들을 매일 흔들어 댈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이토록 영혼에 대한 관심이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물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빌립보교회에세 써 보낸 편지 1장에 보면 그런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1:8-11) "내가 그리스도 예수의 심정으로 여러분 모두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는, 하나님께서 증언해 주십니다. 9 나는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통찰력으로 더욱더 풍성하게 되어서 (예수의 심정), 10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여러분이 분별할 줄 알게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기에 순결하고 흠이 없이 되며, 11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여러분이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지금 사도바울이 예수님의 심정으로 빌립보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도록 빌립보 교인의 사랑이 지식과  통찰력으로 충성하게 되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지식과 통찰력으로 풍성한 사랑은 예수님의 심정을 말합니다. 목자의 심정입니다.  예수님의 심정 목자의 심정을 가진 자가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분별할 수 있게됩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심정이 없을 때, 목자의 심정이 없을 때 사랑이 부족할 때 가장 좋은 것을 분별하는 능력이 없어진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런 분별하는 능력이 없어지니까, 영혼구원에 대한 관심이 없어지고, 영혼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어지고, 어디다  피아노를 놓을찌가, 세족식 때 어느 발을 먼저 씻어야하는 지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혼구원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심정도 목자의 심정도 없고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판단력도 없다는 것임을 인정해야할 줄 압니다.  사도바울의 기도처럼- 그리스도의 심정 - 목자의 심정을 갖게 해달라고 자신을 위해서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며 그래서 무엇이 가장 좋은 것인지, 중요한 것인지를 분별하게 되고 영혼을 위한 큰 근심을 갖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사도바울은 유대인들을 생각하며 큰 근심뿐 아니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고 표현합니다. 한 순간 가지고 있다가 없어지는 것 고통이 아니라 지속적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죽을 때까지 잃은 영혼에 대한 지속적인 고통을 품고 주님 곁으로 갔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제사장들이라고 표현합입니다. “여러분은 택함을 받은 민족이요, 왕의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국민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그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벧전 2:9)  우리는 하나님의 제사장들로서 하나님과 사람들 중간에 서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소개하고 이끌 사명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명을 가진 자들입니다.  잠간이 아니라, 이 것이 우리들에게 평생 감당해야 할 사명인줄 압니다.
 
지난 수요일 저녁 양목사님 내외분과 저희 부부와 함께 기도모임하면서 학생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금 우리 자녀들은 상상을 못할 정도로 다른 문화 속에서 교육과 영향을 받고 있기때문에 학생들을 교육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개인주의적 영향을 많이 받아서 교회내에서도 서로 가까와 지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서로간에 우정도 갖기 쉽지않고 서로에게 진정한 관심을 가져주기가 더 더욱 힘들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제가 영어부에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올 해 아리조냐 단기선교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격려했으면 좋겠다란 생각을 했습니다.  (복음도 전하고 서로 가까와지며 이타적인 삶을 배우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어른들도 거의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지난 화요일날 매주 방문하는 클리닉에서 한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권사님을 만났습니다.  수십년동안 성가대 지휘를 하던 분입니다. 과거에는 열정적인 신앙이 있던 분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신적 육체적 영적으로 쇠약해서, 힘들고 지친 인생을 사는 분을 만났습니다. 수백명이 다니는 중대형교회에 오랫동안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자신의 사정을 알리고 기도제목을 나눌 자도 없고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주는 자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의 사정을 알리면 염려하고 기도해 주기보다는 나쁜 소문이 날까 두려워하며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분이었습니 다.  영적인 고아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우리의 겉사람은 연약해지더라도,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져서 강건해져야할텐데, 안타깝게 날이갈 수록 속사람까지 병들어가며 힘들게 비참하게 인생의 종점을 달려가는 외로운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교회에 속한 식구들은 나이가 들수록 우리의 속사람이 더욱 새로워지며 강건해 지는 삶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떻게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고 강건해 지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예수님의 심정입니다. 목자의 심정입니다. 그럴려면 눈에 보일때만 잠간 관심을 가져주는 관계가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으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실천하는 공동체 (친구/ 친절한 사람)  끝까지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물론이요 사랑하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랑하는 관계가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 주고,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약 1:27) 참된 신앙의 test는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자들을 돌보아 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영적으로 말한다면, 예수를 모르는 분들은 영적으로 자기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자들입니다. 예수를 모르는 친척, 친구, 이웃들에게는 우리가 그들에게 유일한 소망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을 때까지 우리들은 그들에 대한 관심과 기도와 사랑의 끈을 놓지 않고 돌보고 복음을 증거해야할 것입니다.
 
다시 본문을 읽습니다.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1-3).
 
바울이 동족을 너무 사랑해서 이들을 위해 큰 근심을 갖고 끈임없는 고통을 느낄뿐 아니라 이들이 구원받을 수 있다면 자기의 구원까지도 포기할 수 있다는 고백을 합니다.  동족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희생할 각오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실지로 바울은, 자신 주 예수에게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하기만 한다면,  내 목숨이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라고 고백했고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행 20:22-24

저와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Lifeway 에서 많은 크리스챤을 상대로 조사를 한 결과 80 %가 복음증거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을 느낀다고 표현했다고합니다.  그러나, 이중에 오직 반정도 39%만이 설문조사 날짜를 기준으로 지난 6개월동안 1번이상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지 나누었다고합니다. 이 것도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우리 교회식구들보다는 많이 한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영혼구원을 위해서는 마음의 부담만 가진 것으로 안됩니다.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삶과 희생이 따라야겠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어떻게 복음을 위한 희생의 삶을 살았는가를 묘사합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증거를 위해 모든 권리를 포기했다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고합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그들처럼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그런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흉내내기조차 쉽지 않은 삶을 산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분처럼 살 수 없을지라도 우리가 영혼구원을 위해 꼭 실천했으면 하는 적용을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린 영혼을 위한 근심과 끊임없는 관심과 이들을 위한 희생의 사랑은 결국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마음의 결과입니다.  이 목자의 심정은 성령님이 주시는 마음입니다.  기도하는 자들이 경험하는 마음인 줄 압니다.  그래서, 전도자들의 한가지 공통적인 특성이 있다면 기도하는 사람들이란 사실입니다.  여러분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영혼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매주 장막모임을 가지시고 장막 모임 가운데 꼭 복음이 필요한 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모임 성격상 기도하기가 힘든 상황이라면 라인을 통해서라도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주님,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심정, 목자의 심정을 주옵소서. 영혼들을 위한 근심이 있게 하옵소서 그들을 향한 계속적인 아픔이 있게 하시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 무엇인가 희생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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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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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라고 감격했던 바울이 곧 자신의 큰 근심과 고통을 말합니다.  (롬 8:38-39)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동족에 대한 아픔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만큼이나,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에 대한 근심을 갖게됩니다.  이런 마음을 그리스도의 심정 그리고 목자의 심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심정이 사도바울이 말한 지식과 총명으로 충만한 사랑이요, 이런 사랑가운데 우리는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할 수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빌립보서 1:8-10)

주님의 은혜로 충만하여 목자의 심정을 갖고 구원받지 못한 분들에 진정한 관심과 또 다른 성도들에 대해서도 진실된 사랑을 베푸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동족에 대한 아픔을 고백하면서 “그치지 않는 마음의 고통”이 있다고 표현합니다. 그의 아픔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친절이 아니라 친구이다”란 표현을 기억하시지요? 진정한 사랑은 어떤 사건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 하시므로 우리의 진정한 친구 되시는 것처럼, 그런 사랑이 필요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심정을 가진다는 것은 상대방을 끝까지 사랑  하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 분들에게는 누군가가 그들에게 예수를 알때까지 끝까지 관심을 가져주는 자가 필요합니다.  물론 끝까지의 사랑은 성도들 간의 관계에도 적용 됩니다.  이 세상에는 교회 밖에는 물론 교회 안에도 영적인 고아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심정으로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려는 성도들이 절대 부족합니다.

바울은 예수를 모르는 동족때문에 마음에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뿐
아니라, 동족을 위해서라면 자기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 에게서 끊어질지라도”라고 고백합니다.  실지로 바울은그의 삶 전체가 복음을 증거하려 함에는 자기의 목숨도 아끼지 않은 삶을 살았던 자입니다.

영혼을 향한 목자의 심정은 그들을 향한 근심과 마음의 고통뿐 아니라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희생을 치루는 자리에까지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이런 목자의 심정은 성령님이 주시는 마음입니다.  기도하는 자들이 경험하는 마음인 줄 압니다.  그래서, 전도자들의 한가지 공통적인 특성이 있다면 기도하는 사람들이란 사실입니다.

 여러분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영혼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시
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매주 장막모임 가운데 꼭 복음이 필요한 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모임 성격상 기도하기가 힘든 상황이라면 라인을 통해서라도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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