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예배" 로마서 12:1-5 5/1/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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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초부터 로마서를 중심으로 주일학교를 끝냈는데 여러분들 수고하셨습니다. 여러분들 로마서를 오랫동안 배웠는데 로마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 대답이 로마서 12장1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그러므로란 말로 시작하는 로마서 12장1절의 전반부는 로마서 1장부터 11장까지의 말씀을 그리고 로마서 12장 1절의 후반 부는12장 이후의 말씀을 연결하고 요약한 말씀입니다. 로마서 1장부터 11장까지의 가르침의 요약은 “하나님의 자비" 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란 실지로 복수로서 로마서 1장부터 11장까지 하나님의 자비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 하나님의 사랑, 영생, 은혜, 하나님의 평화, 믿음, 소망, 능력, 의롭다함, 하나님과 화해케됨,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자유, 부활의 약속, 그리스도와 연합,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 하나님의 자녀가 됨. 하나님의 구원 속에 포함된 모든 것들을 말합니다. 이런 모든 자비들이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심으로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은혜라고 말합니다. 또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그리스도인의 예배"인데, 바로 이 복음이 그리스도인들의 예배가 다른 모든 종교의 예배들과의 차이점을 설명합니다. 다른 모든 종교의 예배는 자신이 믿는 신의 자비를 얻기 위한 방법이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하나님의 자비들을 받은 자로서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12장부터 16장까지의 요약은 하나님의 자비들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응답으로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그렇다면, 예배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을 ‘예배’라 부릅니다.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모든 행동이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되 우리들의 영혼을 이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의 몸을 산제사로 드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몸을 드리는 예배는 무엇일까?
알기쉽게 번역한 the Message란 영어성경은 롬 12:1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매일의 일상 생활, 잠자는 것, 먹는 것, 일하러 가는 것 그리고 걸어다니는 것 모두를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라”
결국 우리의 몸으로 드리는 예배란 우리들의 머리, 눈, 코, 입이 하는 일, 손과 발 팔다리리가 하는일, 부부생활,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일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삶의 전 영역을 포함한 것입니다. 우리가 매 주일마다 이 곳에 와서 하나님께 감사, 찬양, 겸손, 회개, 헌금, 기도등으로도 예배하지만, 이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 힘든 사람을 돕는 것 직장생활 사회생활 가정생활등 모든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가보면 믿음 좋은 사람들이 많은데 가정과 사회에 직장에 가보면 믿음이 있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란 말을 드습니다. 이는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만을 예배로 생각하고 가정과 직장과 사회생활은 예배가 아니라고 잘 못 생각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소명받았다 하면 보통 목사나 선교사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원래 직업이란 말 자체 vocation즉 소명이란 뜻입니다. 직업은 단지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명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을 가진 분들은 자녀들의 직업 선택에 대해서 기도하고 조언을 줄 때도 단지 얼마나 돈을 많이 버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명이란 생각으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섬길 수 있는가를 염두에 두고 선택하도록 도왔으면 좋겠습니다.
또 우리 이민 1세들은 자신의 전공과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일보다는 맘에 안드는 직업을 가질 때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면 그런 상황에서라도 어떻게 예배하는 자세를 가질 수 있을까? 성경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고 말씀합니다. 어떤 직장이든 무슨 일을 하든 주님께 하듯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우유 짜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소젖을 짤 수 있다” 라고 말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고전 10:31) 그리고 모든 것을 주님께 하듯행하므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2절을 읽겠습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1절에는 몸으로 예배드리라는 말씀이 있었는데 2절에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서 마음이란 말은 우리들의 심정이란 말보다는 생각에 좀 더 가까운 말입니다. 영어성경에는 다 mind로 번역하였습니다.) 왜 우리의 생각에 대한 말씀을 하는가? 우리들의 몸은 우리의 생각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예배의 삶을 살려면 우리는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먼저 우리의 생각이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합니다. 우리 생각이 변화되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세상적인 사고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목회자로서 교회의 일을 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주님을 섬기기보다는 자기를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이 주님의 생각으로 변화된다면 일반 직업을 가지면서도 오히려 주님을 섬길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자리에 여러분들이 나와 계시지만 여러분들의 생각이 무엇이냐에 따라,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릴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각으로 변화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난 주 수일동안 계속 미주중앙일보와 그리고 미주 한국일보에서 LA 지역의 가장 큰 한인교회의 내분 문제를 보도했습니다. 2013년도 초에 부임한 새 담임목사님 이 오신 후 4천명이던 교인이 지난 3년 사이에 3천명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이 내분의 가장 직접적인 요인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교회 재정도 줄고 교회 사업에도 많은 차질이 있게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외에도 설교가 약하다든지 비젼이 없다든지 그 외에 몇가지 불평이 있습니다. 이를 문제 삼아 목사님과 장노님들 간에 충돌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기사에 대한 댓글을 보니까 여러사람이 “교회가 세상의 일반회사 기업논리가 비슷한 것 같습니다"라는 논조의 댓글을 달았습니다. 문제는 이 교회가 예외적인 교회가 아니라 대부분 이런 모습이 아닌가요? 우리 교회도 예외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제가 왜 교회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느냐? 우리의 삶 전체가 예배요, 우리의 가정생활, 직장생활, 사회생활도 예배라고 말씀드렸지만, 그래도 교회는 하나님께 특별한 공동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정을 직장등 세상에 수많은 기관이 있지만 오직교회만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가정을 직장이나 그 어떤 기관도 하나님의 가정이라고 부르지 않고, 오직 교회만 하나님의 가정이라고 부릅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그룹과 모임과 기관이 있지만 오직 교회만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공동체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에게 아주 특별한 공동체이며 하나님의 가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 인류의 첫 가정을 보시고 심히 기뻐하셨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로 인해 그토록 기뻐하셨던 것은 사람의 숫자가 많아서가 아니라 이들의 하나님 안에서 하나된 가정을 이루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로 타락된 이 가정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고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그토록 기뻐하셨던 가정이 회복된 것을 말합니다.
로마서 12:5 “이와 같이, 우리도 여럿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은 서로 지체입니다.” (서로에게 속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서로에게 속한 가족으로서의 관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이 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예배이며 예배자들의 모습입니다. 이 관계성을 회복시키고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들고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사이의 장벽도 허무셨습니다. 이 것이 회복된 에덴동산의 모습이요 교회의 모습이어야합니다.
숫자도 중요하고 재정도 중요하고 사역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선적인 우리들의 고민은, 이 소수의 사람이라도 서로 한 맘을 품고 진정한 친구가 되어가고 있는가? 우리는 서로를 먼저 존경하는가 세워주는가가 우리의 고민이 되어야할 줄압니다.
사탄의 유혹때문에 아담과 이브가 변질되었던 것처럼, 오늘날 교회가 세상의 풍조를 따라 물량주의 적인 사고로 변질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자들, 말로만 하나님의 가정이 아니라 우리의 삶으로 서로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 줄 수있는 관계성까지 실천할 수 있도록 우선 저부터 그리고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겠습니다.
오늘 주님의 만찬을 듭니다. 주님의 만찬은 교회에게 명하신 의식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몸을 분별함이 없이 (Recognize 주님의 몸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사람은, 자기에게 내릴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고전 11:29)
하나님의 가정으로서의 교회를 소홀히 여기지 말고 귀하게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떡을 들때마다 주님의 피로 하나되게 하신 교회의 중요성을 생각하며,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과 사랑의 가정을 이루도록 우리의 마음을 준비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예배의 공동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3. 좀 전에 한인 대형교회의 내부적 갈등을 말씀드렸지만, 저는 미국 교회교인들은 좀 더 신사적이고 회의도 잘 할 줄 아는 사람들이므로 우리 한국사람들처럼 갈등이 많지 않으리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한 미국 교회지도자를 위한 전문지에 (Leadership) 의하면 현재적으로 25%의 교회들이 갈등을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갈등을 안겪는 교회들도 과거에 다 겪은 경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서도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갈 5:15)란 표현이 있는 것을 보면, 그 때 당시의 그리스도인들도 서로 물고 먹으려는 갈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벧전 3장 8절과 9절 참고)
민족과 문화 시대를 초월해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교회 내에서도 갈등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우리는 아예 갈등자체가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계속 갈등관계는 있게될 것입니다. 좀 더 중요한 것은 갈등이 있을 때 어떻게 해결할 것인입니다. 갈등 가운에 있을 때에라도 서로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코저 하는 마음이 있다면 문제는 극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갈등 가운데 화해코저 하는 마음이 부족할 때 마음이 힘들면 감정에 휩싸여서 극단적인 생각과 결단을 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라고 말씀한 뒤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16 (그러므로)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5-16)
갈등 가운데 있을 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으면 육체의 욕심을 따른 결정, 서로 물고 먹는 결정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따라 행하면, 사랑으로 종노룻 할 수있습니다. 이 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갈 5:13-14) 그래서, 오래 전에 저는 인생의 아주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성령충만할 때 하자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인간관계로 인한 갈등 가운데 있는 분이 있습니까? 상대방을 용서하고 용서를 빌고 화해하십시요. 그렇지 않으면 무슨 결정이든 성령충만할 때까지 기다리십시요. (엡 5:18-21 참고)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나를 앞세우지 않고 상대방에게 복종하는자세로 서로를 먼저 존경하고 앞세우려고 할 때 우리는 여유가 있어집니다. 문제가 내게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진정 행복해 집니다. 상대방에게 쉽게 용서를 빌 수 있습니다. 갈등을 극복할 뿐 아니라, 오히려 갈등이 있기 전보다 더 아름다운 관계로 회복될 수도 있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아 순종할 때, 성령충만해질 수 있습니다)
지금 그리스도인들의 예배를 이야기 하면서 용서와 화목과 악을 오히려 선으로 갚는 이야기, 상대방에게 복종하는 말씀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관계성의 회복이 없이 드리는 예배를 주님이 받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것이 그리스도인의 예배의 특성입니다.
마 5: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24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 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
막 11:25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과 서로 등진 일이 있으면,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실 것이다
인간간의 용서와 화해는 하나님께 받으시는 예배의 조건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인간간의 화해뿐 아니라라 인간과 인간간의 화해를 위해서도 오신 분이십니다. (엡 2:14) 그러므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예배자는 용서하는 사람, 관계성을 회복시키는 사람, 관계성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 화평케 하는 자, 하나님의 화해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제 주님의 만찬을 드는데, “ 자신을 살피고 나서 떡을 먹고 잔을 마시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주님과의 관계,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살펴보며 나는 용서할 필요가 있고 용서받을 필요가 있는 어떻게 화해해야할지를 살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자신을 살피고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교회. 하나님의 가정으로 세우신 주의교회를 귀하게 여기므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우리에게 베푸신 그 크신 자비함들들을 항상 생각케 하시고 감사케 하시고
주님께서 베푸신 그 놀라운 자비함들로 인해 주님을 예배하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삶 전체로 예배하게 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가정인 교회로서 주님을 예배하게 하시고
주님 앞에 화목된 성도들의 관계와 다른 이웃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주님을 예배하게 하옵소서.
이 주간 동안 예배자로서 살다가 그리고 다음 주일에 다시 만날 때에 승리한 예배자들로 만나게 하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하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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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예배” (롬 12:1-5) 5/1/2016
1.몸으로 드리는 예배 (삶의 전 영역에서 드리는)
롬12:1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매일의 일상 생활, 잠자는 것, 먹는 것, 일하러 가는 것 그리고 걸어다니는 것 모두를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라”(롬 12:1 Message).
2. 하나님의 가정으로서 드리는 예배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롬 12:2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3. 다른 성도와의 관계성을 회복하고 드리는 예배 (서로에 대한 순종과 용서로 갈등을 극복하는)
갈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 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16 (그러므로)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벧전 3:8-9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않고 오히려 복을 빌면서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고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마 5: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24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 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 막 11:25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과 서로 등진 일이 있으면,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실 것이다
박천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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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으신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그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이 먼저 우리에게 찾아오셨다.
"하나님의 자비하심들"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찾으신 증거요,
우리로 하나님을 예배케 하는 이유이다.
그 분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으므로 우리가 그 분을 사랑하는 것이다.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께서는 나만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의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신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하나님과의 장벽 뿐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 간 (인간과 인간강)의 장벽도 허무셨다.
그의 사랑에 응답한 자들로 그 분의 교회를 이루시고 하나님의 가정으로 삼으셨다.
에덴동산에서 첫 하나님의 가정을 보시고 심히 기뻐하셨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피로 그 분의 교회를 세우시고 하나님의 가정을 회복하신 것이다.
그의 백성들이 그들의 이웃을 그들의 몸같이 사랑하기를 원하셨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하신것 처럼 내가 형제 자매들을 사랑키를 원하신다.
그런 사랑의 실천을 생각하고 기도하고 설교하고 가르치기를 반복하지만
우선 나의 삶 속에서 실질적인 삶의 적용 없이 관념으로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사랑의 실천을 위해서 내가 희생한 것이 무엇인가? 희생까지 아니더라도 내가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삶으로 옮긴 것이 무엇인가?
내가 행치 못하고 적용치 못하는 것을 그래도 반복적으로 설교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렇지만 절대로 계획을 갖고 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나의 설교가 이 주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한다. 성도들이 지겨워할 수 있고 나 스스로 행치 못하는 주제의 설교를 반복하는 것에 나의 위선을 느꼈을 수 있다. 이 주제의 설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 자신에게도 한심스러움을 느낀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또 하고 또 하고 반복하고 반복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진정, 성령님께서 내게 주신 주제라면 실지로 적용하고 순종하는 삶, 열매로 이어지는 삶을 사는 것으로 증거가 드러나야 할터인데...
기도한다, 이 주제의 설교들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른 것이라면 주께서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할 아이디어도 주시고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삶을 살도록 주님께서 나를 응원해 주시기를 간구한다. 주님, 도와주서서..
박천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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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예배" 로마서 12:1-5 5/1/2016
하나님의 자비하심들 - 하나님의 구원 속에 포함된 모든 것들(롬 1-11장): 하나님의 용서, 하나님의 사랑, 영생, 은혜, 하나님의 평화, 믿음, 소망, 능력, 의롭다함, 하나님과 화해케됨,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자유, 부활의 약속, 그리스도와 연합, 내주하시는 성령님, 하나님의 자녀가 됨.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으신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그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이 먼저 우리에게 찾아오셨다. "하나님의 자비하심들"이 바로 하나님 이 우리를 먼저 찾으신 증거요 우리로 하나님을 예배케 하는 이유이다. 그 분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으므로 우리가 그 분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하심들에 대한 응답으로 몸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라 (롬 12-16장): 예배란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모든 행동이다. 우리의 몸을 산제사로 드리는 예배란, 하나님께 감사, 찬양, 겸손, 회개, 헌금, 기도나 교회생활뿐 아니라, 우리들의 머리, 눈, 코, 입이 하는 일, 손과 발 팔다리가 하는일, 부부생활,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가정생활, 직장생활, 사회생활등 삶의 전 영역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을 말한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하라” (고전 10:31)
하나님의 자비하심들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의 가정으로서 하나님을 예배하라 (롬 12:5 “이와 같이, 우리도 여럿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은 서로 지체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서로 에게 속한 가족으로서의 관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린다.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예배이며 예배자들의 모습입니다. 이 관계성을 회복시키고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사이의 장벽도 허무셨다. 이 것이 하나님과의 회복된 관계성을 살고 누리는 예배자의 모습이다. 이 것이 에덴동산의 모습이요 교회의 모습이어야한다.
몸으로 드리는 예배의 삶이나 하나님의 가정으로서 드리는 예배는 예배자의 생각이 세상의 풍조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을 때만 (하나님의 자비들을 기억하는 마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의 삶을 살 수 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롬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