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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그를 받으라) 로마서 14:1-13 5/22/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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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그를 받으라) 로마서 14:1-13  5/22/2016

1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3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4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 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5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 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정할지니라 6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 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10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 여기느 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 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13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롬 14:1-13)
 
이아브라함 목사님의 아들 Joshua Lee형제가 5월 14일 8일전 토요일에 보스톤에서 결혼식을 했습니다. 신혼살림은 워싱턴에서 살기로 결정되어 결혼식 다음 날 보스톤에서 주일  예배를 드린 뒤에  이사를 가는데 9명의 교회 친구가 자신들의 차를 8시간 운전하며 이사를 도왔다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이런 관계가 부럽지 않으세요? 그런데 이런 관계를 가장 원하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소원이요 명령이란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것이 하나님의 가정인 교회의 모습이어야합니다.  예수님의 삶을 요약하면 사랑이요, 예수님의 명령을 요약하면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저와 여러분들이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줄 정도로 사랑의 전문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의 삶을 사는 것이 주님이 약속하신 풍성한 삶임을 믿습니다.

저는 사실 설교를 준비할 때마다 사랑이 아닌 다른 주제로 말씀드려야껬다는 결심을 여러번 하곤합니다. 암만 설교해도 설교하는 제 자신부터 어떤 사랑의 구체적인 적용이 없이 지키지못할 비현실적 이론만 되풀이 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볼 때마다 사랑이란 단어와 개념을 피해갈 수 없음을 경험합니다.   

지난 주에도 계속 생각한 구절이 있습니다.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다” 11 자기의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어둠 가운데 있고....” 요일 2:10, 11

신앙생활에는 사랑외에도 수 많은 것들이 있는데,  어둠에 있는 것도 빛 가운데 있는 것도 단 한가지 조건을 말합니다.다른 것은 전혀 문제 삼지 않고 마치 다른 형제와의 관계만 유일하게 하나님께 중요한 문제인 것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면, 천사의 말을 하고 하늘의 모든 비밀을 알고 모든 지식과 예언 하는 능력과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고 은사가 많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랑이 전부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랑이 전부인 것처럼 선포하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너희가 나의 계명을 지키면, 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요15:10)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요일 4:7,8)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요일 4:13-14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  (요일 3:24)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요일 4:16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요일 3:16
 
왜 신약성경의 교회들이 만날 때 마자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기 위해서 주님의 만찬을 들면서 자신을 살펴보고 다른 형제 자매들과의 관계를 살펴보았는지 이해가됩니다.  성도간의 사랑이 교회의 존재 목적이요 방향이요 능력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이렇게 귀가 따겁게 사랑에 대해서 설교를 듣고 배우고 하는데도 왜 진정으로 사랑하는 관계를 갖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오늘 본문 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 (생각)을 비판하지 말라” (v.1) 소위 믿음이 좋다는 자들이 연약한 자들에 대해…  의문을 품을 만한 일에, 논란이 될만 한것에 대해 (중요하고 명백한 진리에 관한 것이 아니라)다투지 말고, 논쟁하지 말고, 의견에 대해서 비판하지 말라 

교회내에서의 모든 다툼, 그 것이 개인과 개인간에든 그룹과 그룹 간에든 대부분의 다툼의 원인은 중요한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 항상 사소한 문제거나 논쟁이 될 수 있는 문제때문에 일어납니다.  당시 로마의 시장에서 살 수 있는 고기들은 일단 이방신에게 제사에 사용되었던 고기들이었습니다. 그래서 2절에 보니까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의 문화권 이방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제사에  드려진 고기도 먹었으므로 전혀 문제가 안되었는데, 먹어야할 음식과 먹지 말아야할 음식에 대해서 까답게 자라온 유대인 배경을 가진 성도들은 채소만 먹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 왜냐하면- 그 이유가)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God has accepted them) v.3
 
우리가 그리스도의 교회로 모였기 때문에 반드시 동의해야할 절대적인 진리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애서 죽으셨다. 구원을 얻는 길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다.  그러나, 또한
교회는 다양한 배경과 관점을 가진 분들이 모임이기 때문에 의견충돌도 있을 수 있으며 때로는 갈등과 분쟁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논쟁이 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자기의 생각을 절대화하거나 남에게 강요하려 하지 않도록 서로가 조심해야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믿음과 사고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떤 교인들도 많고 많은 사역을 하는 큰교회에서 실지로 있었던 일입니다. 반주자가 예배시간이 되어도 안 나타났는데, 다행히 교인 중에 반주할 수 있는 분이 있으므로 목사님이 그 분에게 반주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반주자가 교회 시작 10분 후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이 반주자를 중간에 바꾸기아 여의치 않아 예배모임 끝날 때가지 원래 반주가가 아닌 분을 계속 반주케 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교회가 반주자파와 대리 반주자파로 갈려 서로 간에 언성을 높일 정도로 교회에 분란이 생겼습니다.  결국 반정도의 교인들이 교회를 떠났고 목사님은 사임을 했는데 아예 목회사역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확신하는 믿음은 확실히 지키되 중요치 않은 이쓔들에 대한 의견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 관용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행한 악한 일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었고, 마음에서 하나님의 원수로 있을 때에 그리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을 때 그분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습니다. (골 1:21 ; 롬 5:10. 엡 2:3)
하나님께서 원수되었고 진노의 자녀였던 죄인이었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받으셨으므로 의견이 다른 자도 받아들여야한다는 말씀입니다. (14:3)
 
롬 15:7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받아 들이신 것같이 여러분도 서로 받아 들여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십시오.” 마지 못해 받아주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을 대속물로 내어주며 여러분을 받아 들이신 것 같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처럼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떄로는 상대방을 받아주기로 결심하다가도 더 이상 못받겠다고 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받으셨기 때문에 서로 서로 받으라고 말씀하셨는데 (God has accepted them; Accept one another)  하나님이 우리를 받으셨다란 말씀은 과거가 아니고 현재완료입니다. 문법적으로 과거에 행하신 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으신 이 후 계속 받으신 상태를 유지했다는 말씀입니다.  결혼한 부부가 결혼식 때 서로를 받은 것이 죽어서 헤어질 때까지 계속 서로를 받아들이겠다는 서약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계속 죄를 짓는 죄인임에도 하나님께서 나를 받으셨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성과 죄를 너무나도 잘 아시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계속 죄를 짓는데도 용서하시고 받아주신 것처럼 우리도 죽을 때까지 서로 용서하고 받아들이라란 말씀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주인이시니라
4)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5)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4절과 9절 사이에 주혹은 주인이란 말이 10번이나 언급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가 아니고 예수님이 주인이란 사실을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입니다. 네가 다른 성도의 주인인 것처럼 착각하지 말고, 내가 상대하는 성도가 예수님의 종이요 예수님의 하인이란 사실을 기억하란 말씀입니다.  종을 비판할 자격은 주인에게만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게 보통 종이 아닙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 성도들의 주인이 되기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v.9)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으실 정도로 귀한 종들입니다.  고전 7:23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신 몸입니다.  (가장 값비싼 댓가를 치루고…) 고전 6: 여러분은 여러분이 스스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20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사셨습니다.
 
주님의 종이지만 또 하나님의 자녀의 관계입니다.  그가 잘못했다면 그의 주인에게 잘못한 것이요 그의 아버지인 하나님께 잘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많이 신경을 쓰십니다.
 
약 4:11-12 형제자매 여러분, 서로 비방하지 마십시오. 서로를 비방하거나 서로를 심판하는 사람은,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율법을 심판하면, 그는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을 심판하는 사람입니다. 12 율법을 제정하신 분과 심판하시는 분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 그분께서는 구원하실 수도 있고, 멸망시키실 수도 있습니다. 도대체 당신이 누구이기에 이웃을 심판합니까?
 여러분들이 다른 형제 자매을 보면서 “왜 저래. 저렇게 세상적일까. 하나님에 대한 관심은 추호도 없어.. 영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어”라고 말했다고 합시다.  여러분들의 말은 사실일 수 있고 그렇게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율법을 비방했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내용인 형제를 사랑하고 용납하고 용서하라는 율법이 잘못되었다고 따지는 것 아닙니까? 사랑의 마음이 없다면) 형제가 아니라 자기가 마치 주인인 것 처럼 심판관이 되고 사랑치 않는 것이 더 큰 죄란 말씀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다른 사람의 하인에게 이래라 저래라 함부로 간섭할 수 없다면 하물며 하나님의 종에 대해서 누가 감히 비판을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들의 자녀에게 여러분들이 보는 앞에서 부모의 말을 안듣는다고 야단친다면… 여러분은 제가 여러분을 무시당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주인노릇 하지 말고 주인이 하실 것을 믿으란 말씀입니다: "주님이 그를 서있게 하실 것이니 그는 서있게 될것이다."
 
물론, 이 말씀은 우리가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단지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종으로서 같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같은 주인을 섬기기 때문에 그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나의 종이 아니라, 예수님의 종입니다.  우리는 다른 성도들에 대해서 주장하는 자세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에게 복종하는 자세를 가지므로  서로 섬기며 존경하기를 앞세우는 것이 주님이 갖기를 원하는 마음 자세입니다.
 
 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0)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우리가 남을 비판한 일을 포함해서)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는 형제나 자매를 비판합니까?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v.10) 자기를 돌아 보아야한다. 다른 사람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다른 사람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신학교 교수님이 담배를 피니까  얼마나 거슬렸겠어요. 한 용감한 학생이 교수님에게 이 문제를 지적할 때에 그 교수님의 대답은 ”That’s my problem, what is yours?”였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다른 형제의 눈속의 티가 더 잘 보인다.  형제의 눈속의 티를 보기 전에 먼저 내 눈에 있는 들보를 먼저 깨달을 수 있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간음한 여인을 돌로치라고 외쳤던 자들이, 예수님께서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치라 하실 때 다 떠났던 것처럼..  우리들은 다 약점과 비판받아야할 사실을 갖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심판하는 사람은, 그가 누구이든지, 죄가 없다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남을 심판하면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으니, 결국 남을 심판하는 것은 바로 자기 스스로를 정죄하는 것입니다.” 롬 2:1
 
대개 우리들이 다른 사람의 약점이나 죄가 잘 보일 때는 보통 나에게도 비슷한 약점이나  혹은 죄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요?  정치인들이 정치인들 비난 하는 것, 한국 사람들이 한국사람들을 잘 비난 하는 이유가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한국 사람으로서 우리 스스로의 문제를 다른 한국사람에게서 쉽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성도 비난 하는 것...목사가 목사 비난 하는 것도 같은 비유.  우리가 교회를 비판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남을 비판한다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고백일 수 있습니다.
 
"너희가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심판하지 말아라. 2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 (잣대)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 7:1-2)  남을 판단하는 잣대를 버리십시요.  그리고 내가 주님의 잣대를 가지고  주님께서 나의 흠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시듯 내가 먼저 형제를 진정으로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있는지를 점검하여야 하겠습닏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내가 형제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내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이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성공의 기준을 얼마나 형제를 사랑하는 삶을 살았느냐로 보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요일 4:16-17) 다른 성도들을 판단하기 보다는 사랑으로 감싸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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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no_profile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그를 받으라)

1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3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4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 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5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 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정할지니라 6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 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10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 여기느 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 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13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롬 14:1-13)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요일 4:13-14

1.하나님이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God has accepted him)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 하지 말라 이는 (왜냐하면- 그 이유가)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v.3)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받아 들이신 것같이 여러분도 서로 받아 들여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십시오.” (롬15:7)


2.하나님이 그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v.4) “형제자매 여러분, 서로 비방하지 마십시오. 서로를 비방하거 나 서로를 심판하는 사람은,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율법을 심판하면, 그는 율법 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을 심판 하는 사람입니다. 12 율법을 제정 하신 분과 심판하시는 분은 오직 한 분뿐 이십니다. 그분께서는 구원하실 수도 있고, 멸망시키실 수도 있습니다. 도대체 당신이 누구이기에 이웃을 심판합니까?”  (약 4:11-12) 


3.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v.10)  “그러므로 남을 심판하는 사람은, 그가 누구이든지, 죄가 없다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남을 심판하면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으니, 결국 남을 심판하는 것은 바로 자기 스스로를 정죄하는 것입니다.” 롬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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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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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로마서 14:1-13)

예수님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저와 여러분들이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줄 정도로 사랑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 사랑을 명령하셨고 그 사랑대로 살도록 성령님을 보내주시고 또 교회란 하나님의 가정 속에 속하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관계를 갖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쉽게 다른 형제를 비판하기 쉬운 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비판하지 않아야합니다..

1.하나님이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God has accepted him)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 하지 말라 이는 (왜냐하면- 그 이유가)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v.3)  “그리스도
께서 여러분을 받아 들이신 것같이 여러분도 서로 받아 들여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십시오.” (롬15:7)
하나님이 죄인인 우리를 받으셨다란 말씀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고 현재완료입니
다.  과거에 우리를 받으신 이 후 계속 우리를 받으신다는 말씀입니다.  결혼한 부부가 결혼식 때 서로를 받은 것이 죽어서 헤어질 때까지 계속 서로를 받아들이 겠다는 서약처럼 우리도 끝까지 서로 용서하고 받아들이라란 말씀입니다.
 
2.하나님이 그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v.4)  예수님의 종이란 보통 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 성도들의 주인이 되기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v.9)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으실 정도로 귀한 종들입니다. (고전 6:20; 7:23)  종을 비판할 자격은 주인에게만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 형제를 비방하는 것은 율법을 비방하고 심판하는 것이요, 더 나아가서 율법을 제정하신 하나님을 심판하는 것이다 (약 4:11-12) 

3.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v.10)  우리의 본성은 다른 형제의 눈속의 티가 더 잘 보인다.  형제의 눈속의 티를 보기 전에 먼저 내 눈에 있는 들보를 먼저 깨달을 수 있는 은혜가 필요하다.  남을 심판하므로 스스로 심판을 받지 않을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심판대 앞에 설 것이기 때문에 먼저 자기를 돌아 보아야한다. 다른 사람 신경 쓸 때가 아니다..

“그러므로 남을 심판하는 사람은, 그가 누구이든지, 죄가 없다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남을 심판하면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으니, 결국 남을 심판하는 것은 바로 자기 스스로를 정죄하는 것입니다.” 롬 2:1  남을 판단하는 잣대를 버리고,  주님께서 나의 흠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시듯 내가 먼저 형제를 진정으로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있는지를 점검하여야 한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내가 형제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내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이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성공의 기준을 얼마나 형제를 사랑하는 삶을 살았느냐로 보신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요일 4:16-17) 다른 성도들을 판단하기 보다는 사랑으로 감싸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질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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