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의 문제와 해결" 마태복음 18:1-4 8/2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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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와서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위대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가장 큰 자니라” 마 18:1-4 (공동번역)
이들이 생각하는 우리가 생각하는 죽은 다음에 가게되는 천국을 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왕으로 섬길 나라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장관자리라도 하나하려고 예수님을 따랐으니까, 이들이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느냐”에 관심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생각을 바꾸어 어린 아이처럼 자기를 낮추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린아이는 친구가 되어주고 같이 놀아주는 데 관심은 있지만 사회적인 계급이나 권력 같은 것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한 때는 어린아이였던 이 제자들이 어떻게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데 관심을 갖게되었는가? 그 대답이 20:20-21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예수님의 제자였던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가 치마바람을 일으키며 예수님께 좀 더 장관의 자리, 영의정과 좌의정의 자리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높이고저 하는 것은 결국 어머니를 비롯한 어른들에게서 배우는 것입니다.
(비데오) 물론 많은 아이들은 나쁜 습관뿐 아니라, 부모나 다른 어른으로부터 좋은 습관들도 배웁니다: 남을 배려하는 것, 친절함, 예의등등에 대해서도 배웁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은 모든 인간의 문제는 자기를 낮추지 못하는 교만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친절할 수도 있고 예의를 잘 지킬 수도 있도 아닐 수도 있지만 모든 인간이 그 내면에는 자기 중심적인 속성을 배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친절하고 예의 있는 사람들은 종 종 있지만 진정한 친구를 만나기도 어렵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주는 것도 어려움을 느낍니다. “사람들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나는 내 개를 더 좋아하게 된다.” (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말한대로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11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12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결국 다 자기 중심적이고 교만하기 때문에. 그런데 문제는 교만에 대한 결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교만한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영원한 나라란 의미에서의 천국) 예수님께서 심각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 해결해야할 가장 큰 문제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교만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겸손해질 수 있을까요?
우리가 문제점을 잘 풀려면 문제 자체를 잘 이해햐야합니다. (병이 났을 때 무엇인 문제인지) 제가 23년전일입니다. 뇌종양이 있었는데 저의 문제가 비타민 부족이라고 생각하여. 비타민 주사를 맞고 나니까 증상이 좀 없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나 결국 문제점이 점 점 심각해져서 뇌종양이란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뇌종양이 많이 악화되어 빛을 볼 수 없는 거의 장님수준까지 악화되었을 때였습니다. 결국 종양을 띠어내는 수술을 받고야 문제를 해결할 수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만의 문제를 도덕적인 문제나 인격에 관한 문제로 진단합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끼리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라
교회에서의 장로님 집사님들이 직장과 사회에서의 모습이 너무 다른 이중적인 생활을 하는 것을 본 분이 목사님한테 그런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성경교육 그만하시고 이제부터는 인성교육 시키세요!”
교만은 분명 도덕적인 문제이며 인성교육을 통해서 도덕교육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뇌종양으로 고통당하고 있을 때 비타민결핌의 문제라고 진단하여 비타민 주사를 맞고 일시적으로나마 고통이 멎는 것을 경험했지만 근본적인 치료는 받지 못했던 것처럼, 성경은 교만은 도덕적인 문제나 인격적인 문제이기 전에 가장 근본적으로 영적인 문제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1. 교만의 문제는 영적인 문제이다: 어떤 의미에서 영적인 문제입니까?
교만이란 병은 저와 여러분의 문제일 뿐 아니라 우리의 첫 조상들로부터 시작해서, 앞으로 태어날 모든 후대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인류가 앓고 있는 병입니다. 그리고, 교만은 모든 죄의 뿌리이며, 심판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아름답게 지으셨는데 어떻게 인간이 이 교만의 병을 앓기 시작했습니까? 성경은 사탄마귀의 거짓된 유혹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첫 인간에게 에덴 동산의 모든 실과는 임으로 먹되 동산 중앙에 있는 선과 악을 알게하는 선악과는 따먹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이브에게 반대로 이야기합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오히려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되어진다”라고 유혹한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는 것이 아니라 더 좋아진다)
이 명령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명령하셨다면, 그 과실을 먹고 악만을 알게된다면 먹지 말아야할 것을 알겠는데. 그렇게 명령하시지 않고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명령하셨는데, 선과 악을 아는 것이 나쁜일입니까?
문제는 선과 악을 알되 하나님을 떠나 독립적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결국 선악과란 하나님과는 대립되고 하나님을 제외시키고 하나님과는 독립적인 도덕적인 삶을 의미합니다.
(인간 자신이 선과 악을 정하고 선과 악의 기준이 되겠다는 결단이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자신의 생각대로 결정하고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겠다는 독립선언입니다. 이 것이 교만과 죄의 근원입니다. 다른 인간에 대한 교만과 죄에 앞서) 하나님께 대한 교만이요 죄이기 때문에 교만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인간의 교만의 근원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하나님은 널 사랑치 않는다,”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너는 하나님처럼될 수 있다.” 그러므로 스스로 악과 선을 구별하고 정할 수 있고 네가 네 삶의 주인이다라는 사탄의 메시지를 선택한데서 기원합니다.
오늘날도 가장 도덕적인 사람이, 법이 없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사람이, 가장 선하다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교만할 수 있습니다. 가장 종교적인 사람이 가장 교만한 사람일 수 있고 가장 지식이 많은 사람이 가장 교만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철저히 지켰던 도덕적이요 종교적인 바리새인을 가장 비난한 이유도 그들의 교만때문입니다.)
예수님당시 때 유대에서 가장 종교적이요 가장 도덕적인 사람으로 존경받는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밤에 몰래 찾아왔습니다. 만약, 인간의 죄와 교만의 문제가 단지 도덕적인 문제였다면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좀 더 애쓰고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서 좀 더 완전한 의와 선을 추구하는 삶을 살라”고 말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고 “네가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지 않는한 너는 소망이 없는 존재란, 충격적인 말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위대한 성인이라고 추앙받는 마덜테레사나 간디 같은 분에게도 예수님은 “네가 거듭나지 않으면 너는 소망이 없는 존재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을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그말을 이상하게 여기면서 어떻게 거듭날 수 있냐고 물어봅니다. 예수님은 결국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상한 설명이지요? 내용인즉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부터 탈출하여 광야생활을 하는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평하고 반역하다고 뱀에 물려 죽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뱀에 물려 죽게된 자들이 모세가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단 놋뱀을 보게되면 독사에 물린 자들이 살 수있었습니다. 인자가 들려야 하는 것은 십자가에서 들림을 받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광야에서 모세가 든 뱀을 쳐다봤던 자들처럼, 니고데모를 하나님을 반역하다가 독사에 물린 죽을 병에 걸린 자로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들림을 받고 그 예수를 봐야지만 살 수 있는 자, 예수 없이는 죽을 수 밖에 없는 몸쓸 병에 걸린 자로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십가가에 달리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은 의인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하러 오셨다고 말씀했습니다. 나는 이정도면 의인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죄와 교만의 죽을 병에 걸렸다고 인정하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덕적으로 자신을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자기의에 빠진 사람들은 예수님의 구원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죄와 교만의 문제는 좀 더 애쓰고 좀 더 노력해서 하면 의로워질 수 있는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오히여 자기 자신 철저히 자기 중심적인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바라볼 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2. 교만의 문제가 영적인 문제이므로 문제의 해결점도 영적인 해결책이어야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걸레 같다 (사 64:6)고 말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이 “만물보다 더 거짓되고 아주 썩어서 그 속을 알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교만의 문제는 인간의 노력이나 선행이나 도덕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오직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을 믿고 죄의 용서를 받고 거듭나야지만 해결될 수 있는 영적인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보세요 예수님과 함께 적어도 2년이상 함께 살면서 배우고 훈련 받은 이들이 아직도 누가 더 큰자냐로 비교하고 다투는 이 모습을 보세요. 이들이 예수님과 5년 10년 같이 있으면 변할까요? 만약 그렇다면 예수님은 오래 오래 사시면서 제자들을 비롯한 수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야함을 가르치셨을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가르치기도 하셨지만 가르침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 위해서”;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더 넘치게 얻도록 자기 목숨을 주기 위해서 오신 분”이시라고 선포하십니다. 좀 전에 읽은대로 ‘니고데모에게도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라고 자신이 십자가에 들려야할 것을 가리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셔야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이 위를 위해 죽으셔야할 정도로, 우리의 문제가 너무나도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란 것을 의미합니다. 반드시 해결해야할 이 문제가 무엇입니까? 죄와 교만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인간 스스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니고데모처럼 가장 도덕적인 사람도 가장 종교적인 사람도 스스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
성경은 너무 중요하지만 우리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죽으셨다는 이 사실을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죽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하시기를 원하시는가를 보여주기때문입니다.
우리가 사탄의 거짓을 들으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게되고. 영적인 생명을 잃게되고 하나님과 상관없는 독립적인 삶 교만의 삶이 시작되었던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를 들으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거듭난 생명 영적인생명을 갖게되고 하나님을 주로 인정하는 겸손의 삶이 시작됩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오직 두가지 선택만이 남아있습니다.
예수 없이 자기의를 주장하며 하나님 앞에 교만하게 계속 독립적인 삶을 계속 살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죄와 교만을 인정하며 예수님의 구원을 통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것인지.
이 자리에 와 계신 모든 분들이 한분도 빠집 없이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구원받고 영적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3. 교만과의 싸움 -영적 싸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영적으로 거듭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교만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됩니까? “교회에서 성경교육 그만하시고 이제부터는 인성교육 시키세요!”란 말이 나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라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에서 장로, 권사, 집사의 직분을 받았지만 교회에서의 모습과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서의 모습이 너무 다른 이중적인 생활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두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는 입술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실지로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거듭난 사람은 아니란 사실입니다. 입술만의 그리스도인이지 실지로 그리스도인은 아니란 해석입니다. 두번째는 예수님을 실지로 믿고 거듭났지만 아직 영적인 아기라 세상과 다름이 없이 사는 경우입니다.
거듭났다고 해서 교만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 40년이 넘었지만, 이젠 좀 겸손해 졌겠거니 싶다가 막상 뚜겅을 열면 전혀 변화되지 않은 자신을 발견하곤합니다. 잘 나가다가 한번씩 열을 올리는 경우보면 단지 감추어져 있던 자기중심성이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는 좌절감에 빠지곤 합니다.. (소위 인격적이니 선하다느니 하는 평가는 어떤 의미에서 자기중심을 얼마나 잘 포장하느냐의 기술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정말 변할 가능성이 있는가? 과연 내 안에 성령님이 역사하는가?란 질문을 해야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내게는 이런 자기 중심성을 슬퍼하며 괴로워하며 안타까와 하는 또 다른 내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근본적으로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며 사도바울처럼 “아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절망해 하는 나의 모습을 또한 발견한다.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감지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은 또 하나의 나의 모습이 아닌가? 나를 부인하고싶은 나의 모습이 아닌가? 성령님께서 주시는 마음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할 때 우리의 죄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뿐 아니라, 성령님이 내 안에 거주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구원하는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었으므로, 약속하신 성령의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엡 1:13
성령님께서 복음을 통해서 영적인 싸움에 승리하게 하십니다. 믿음의 방패-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을 말함, 성령의 검 - 하나님의 말씀
우리의 연약함과 실수와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복음을 진정으로 믿음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만 회복될 뿐 아니라, 사람들 간에도 겸손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만 위해서 죽으실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도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은 더이상 세상기준으로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는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섬김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케 하시므로 자기중심적인 속성에서 주님 중심적인 속성으로 살아가도록 날마다 순간마다 나를 인도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 쓰러지고 넘어지면서도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살을 살아가는 특권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 삶을 살도록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령님이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함을 따르므로 날마다 영적전쟁에서 승리하여 겸손으로 주님을 닮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그리하여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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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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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의 문제와 해결”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위대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가장 큰 자니라” 마 18:1-4 (공동번역)
1. 교만의 문제 – 영적인 문제
교만은 다른 인간에 대한 교만이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대한 교만이요 죄이기 때문에 교만은 영적인 문제이다.
2. 교만의 해결 – 영적인 해결
예수님은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와 교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셨다. 우리가 사탄의 거짓을 들으므로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 교만의 삶이 시작되었던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을 듣고 믿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므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겸손의 삶이 시작됩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요 3:6,7
3. 교만과의 싸움 – 영적인 싸움 (교만의 해결은 한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것이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구원하는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었으므로, 약속하신 성령의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엡 1:13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23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금할 법은 없습니다” 갈 5:2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