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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십자가를 지고” 마태복음 16:13-26 9/27/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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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십자가를 지고”  마태복음 16:13-26  9/27/2015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  마 16:24

지난 주일 설교 복습
제목: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는데 가장 거침돌이 무엇이라고 그랬습니까? 다른 사람이나 환경이 아니고 나 자신 
주님을 따르는데 내 자신이 가장 거침돌이 되는 이유는?  내가 주인공이 되고 내가 왕이되어 섬김을 받으려는 자기 중심성
나를 부인하기 위해서 제안한 것은? 나로 충만한 삶을 거부하고 성령충만한 삶을 사는 것..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성령 충만한 삶만이 나 중심의 삶에서 주님 중심의 삶, 나를 부인하는 삶, 주님을 따를 수 있는 방법

어떻게 지난 주일동안 “자기를 부인하는 삶 을 조금이라도 실천해 보셨습니까? 막상 나 자신을 부인해야 한다는 사실에 항상 동의를 하더라도 막상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음을 느꼈을 것입니다.  우리는 철저히 자기 중심성에 물들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가운데 있지 않으면 자기 중심성을 감지하는 것 조차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신기할 정도로 다른 사람이 자기 중심적으로 하는 행동은 눈에 잘 뜨입니다.  오직 성령님의 도움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까 주님께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 고 말씀 하십니다. 자기 자신을 거부해야 주님을 따를 수 있듯이, 자기의 십자가를 짊어져야지만 주님을 따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자기를 부인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십자가란 당시 로마제국의 가장 고통스럽고 잔인한 사형도구였습니다. 그래서 자국민인 로마시민들에게는 아무리 흉악범이라도 십자가형으로 처형시키지 않았다고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은  가장 고통스럽고 잔인한 죽음을  각오 하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죄수 중에도 가장 흉악범으로 죽게될 것을 알고 (각오하고) 나를 따르라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하신 의도가 무엇일까? 두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봅니다.

질문:  너는 죽을 죄를 진 흉악범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를 따르려면 자기 십자가형까지 감수하겠다는  각오로 나를 따르라; 너는 십자가를 지어야만 할 흉악한 죄인이므로 나를 따르려면 마땅히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분명히 주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분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분이십니다.  희망이 없는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아직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자, 자기 자신을 그럴듯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자는 주님이 부르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나는 십자가를 져야할 자는 아니지만  억지로 져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주님을 꼭 따를 필요도 없고 따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자신이 예수님의 구원으로만 자신의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흉악한 죄인임을 인정하는 자들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보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되” 매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라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조건이 내 자신이 십자가의 형을 받아  마땅한 죄인이란 것을 매일 자각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구원이 필요한 죄인이란 것을 매일 깨닫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따르지만 정말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흉악한 죄인이라고 생각합니까?  자신을 죄인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정말 내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야할 정도로 그렇게 흉악한 죄인인가에 대해서는 큰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래서 주님을 따른다 하면서도 구원의 감격을 잃기 쉬운 것은, 살다보니까 점 점  자신을 그럴듯하게 생각하게되고 그러다 보니까 죄용서에 대한 감격도 상대적으로 없어지게되고 복음이 정말 복음으로 받아들여지는 감격을 잃게되는 것은 아닙니까?

또,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부인하기 보다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하기 쉬운 이유는  점 점  자신이 그럴듯 하게 생각되어서가 아닙니까?  왜 그렇습니까?
 
만물보다 더 거짓되고 아주 썩은 것은 사람의 마음이니, 누가 그 속을 알 수 있습니까? (렘 17:9)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걸레 같다 (사 64:6)  우리의 양심, 상식, 지식, 판단력만 가지고는 도저히 우리의 죄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났는데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서 자기의 죄가 선포되는 것을 들었다고 합니다: “살인 38,000번 간음 7만 9백번”  이렇게 죄가 언급되는 순간 기절을 해서 깼답니다.  자기가 무슨 살인을 3만번이상이나 하고 간음을 8만번이나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다른 사람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한자요,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은 자는이미 간음한 것이다란 성경말씀을 읽다가 깨달았다고합니다.  (이뿐입니까?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얼마나 정직하지 못한지 얼마나 거짓말 장이인지)

사람들은 말합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뭘 그렇게 큰 죄라고 하느냐?  사실 우리 양심법에 의하면 심각치 않은 죄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고 그들을 위해서 온피조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모든 계획을 저버린 반역죄입니다.  하나님대신에 자신을 섬기겠다는 우상숭배의 죄였습니다.  하나님의 말보다는 사탄의 말을 들은 배역죄였습니다. (이는 마치 바람핀 남편이 자신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아내는 이로 인해 너무나도 고통당하는 상황에 비교될 수 있지 모르겠습니다. )

반면 인간은 선악과의 문제만 경솔한 문제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죄의 문제에 대해서도 심각하지 않습니다. 형제를 비방하거나 판단하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율법의 저자인 하나님을 비방하고 율법의 저자인 하나님을 판단하는 자란 이야기 아닙니까?)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형제를 사랑하라는 율법보다 자기가 한 수 더 위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니까) 12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야고보서 4장    하나님 앞에서의 교만의 극치입니다.

하나님이 첫사람 아담과 이브를 얼마나 사랑했나를 이해하지 못하면 선악과를 따먹은 죄의 심각성을 이해할 수 없듯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못하면  형제를 판단하는 우리의 죄의 심각성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나를 무시하는 자들은 용서해도 내 자식을 무시하는 자는 용서 못하겠다는 부모의 심정때문입니다. 하나님 처럼 죄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분이 없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특별히 주의 해야할 죄성이 있습니다. 자기 의의 최고극치는 종교적인 의입니다. 바리새인의 의입니다. 교회내에서도 흔이 보게되는 것입니다. 나는 너보다 봉사많이 한다.  헌신되어있다.  헌금 잘낸다, 큐티를 열심히 한다. 전도를 잘한다. 기도를 많이 한다. 구제를 많이 한다. 등등.  신앙을 율법적으로 배우다보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기 보다는 종교적행위에 근거를 하여 더욱자기중심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기전 사도바울은 얼마나 자기 의에, 종교적인 의에 사로잡혀 자신을 의인으로 알았던 사도바울이 십자가에 달렸던 그리스도를 만나 자신이 죄인중에 괴수임을 깨닫지 않았습니까?  바울이 예수를 만난 후에 과거에 자신이 그토록 귀하게 여기고 자랑스럽게 여겼던 모든 종교적인 의, 자기 의, 자기 경력, 자기를 높이는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긴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것보다는 배설물처럼 여겨야할 것들, 냄새나는 육에에 속한것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그것을 부러워하기도하고 그 것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자기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그 것을 멋있게 여기고 자랑스럽게 여길 때가 얼마나 많은지

우리 자신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얼마나 철저히 자기 중심적인가를 깨닫지 못하면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로 충만한 내가, 모든 우주의 중심이 되고픈 나 중심성이 십자가에 못박혀야 한다는 자각과 각오가 없다면 나는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다.

2.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는 것은,  이제 자신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자지만, 소망이 없지만  남은 일은 주님만 바라보고 따르는 일 밖에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예수님만이 자기가 가진 희망의 전부이다며 따라가는 것입니다.  마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며 목자를 쫓아가는 양이 목자를 놓치면 나는 죽는다란 각오로 쫓아가는 것을 연상케됩니다.

실지로 주님께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 10:27)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서는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요한복음에서는 “주님의 양들은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따른다고 말씀합니다"

결국 자기를 부인하는 것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은.  얄팍하고 자기 중심적이고 혼동된 내 의견, 내 경험, 내 논리를 버리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주님의 음성을 선택하는 삶을 말합니다

나의 마음과 생각 속에 나를 망하게하는 마음과 생각과 이론등 거짓으로 충만합니다.  거짓의 아버지 사탄이 가져다 준 세상의 사상과 이론과 가치관등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충만합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나를 점 점  나중심적인 생각과 삶으로 유도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베드로 처럼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지만,  예수님의 생각보다는 사탄의 생각을 
예수님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예수님의 걸림돌이 되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키 보다는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경우가 얼마나 허다한지요. 

성경은 분명히 새로운 피조물인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적인 잣대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씀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세상적인 잣대로 사람을 그리고 나를 판단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나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제사장이다하는 당당한 정체성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주눅들어 이 세상을 삽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은 걱정을 하며삽니다.

이 원인이 어디 있는가?  주님을 따른다 하면서도 주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을 아까와 합니다.  (세상의 것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시간을 드리지만,) 막상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시간을 투자하는 것에는 너무나도 인색합니다.  그 결과로 너무나도 내 의견이 살아있고 자기가 살아있습니다. 너무나도 자기 중심적입니다.  조금만 건드리면 세상사람들과 똑같은 반응을 합니다.  (한국의 법조계를 그리스도인들이 먹여살린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려면 무엇보다 먼저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먼저 주님의
말씀의 빛으로 우리 자신의 십자가에 죽어 마땅한 추한 죄인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합니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켜야 합니다. 내 마음 속에 깊이 심겨져있고 새겨져 있는 온갖 거짓과 나를 높여 숭배코저하는 모든 생각과 언어와 이론들을 주님의 말씀과 생각으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주에 자기 자신을 부인하려면 성령으로 충만해야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나로 충만한 나를 부인하고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려면 성령님으로 충만해야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한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주님의 말씀만이 생명의 길 구원의 길이란 소망의 길이요 자유의 길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음 주부터 로마서를 공부하게됩니다.  이번 기회에 우리가 갖고 있는 주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가 바뀌는 계기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안목이 열려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이 차지하느냐  아니면 사탄의 거짓으로  채우느냐의 치열한 싸움이 매 순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영전전쟁에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종결합니다.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간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얼마나 철저히 자기 중심적이며 내가 왕이 되기를 원하는 우주의 중심이 되어 하나님역할을 하려는 그래서 하나님을 반역하는 십자가형에 합당한 흉악한 법죄자 죽을 놈이다란 사실을 시시 때때로 깨닫는 것입니다.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간다는 것은 -  (깨닫는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세상과 내 음성이 아니라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를 지나는 양이 목자의 음성만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인도함받고 충만함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좋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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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십자가를 지고” (마태복음 16:13-26)

13 예수께서 빌립보의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 침례자 요한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예레미야나 예언자들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
1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시몬 바요나야, 너는 복이 있다. 너에게 이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시다. 18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세력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내가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20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엄명하시기를, 자기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21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22 이에 베드로가 예수를 꼭 붙들고 "주님, 안 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하면서, 예수께 항의하였다. 23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셨다. 24  그 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 25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 26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또, 사람이 제 목숨을 되찾는 대가로 무엇을 내놓겠느냐?


1. “자기 십자가를 지고”(자신의 문제점)

만물보다 더 거짓되고 아주 썩은 것은 사람의 마음이니, 누가 그 속을 알 수 있습니까? (렘 17:9)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걸레 같다 (사 64:6)

그리스도를 따라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조건이 내 자신이 십자가의 형을 받아  마땅한 죄인이란 것을 매일 자각하는 것입니다.


2. “자기 십자가를 지고”(문제의 해결점)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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