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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의를 드러냄” 로마서 1:16-17 10/25/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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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의를 드러냄” 로마서 1:16-17  10/25/2015

“(왜냐하면)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복음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17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나 있으며,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표준새번역)

이번 10월에는 좋은 소식, 복된 소식이 많이 있었습니다: 손자, 손녀, 영주권, 치료 받음, 집구함, 라이슨스획득.  우리 인간들끼리 주고 받은 소식도 이렇게 기쁜데, 지금 로마서에서 말하는 복음은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전하는 하나님의 복음인데 얼마나 기쁜 소식이겠습니까? 이 하나님의 복음이 너무 좋고 복되고 귀하고 기쁜 소식이라 이 소식을 전하라고,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부르시고 택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을 자신의 목숨보다 귀히여겼습니다.    사도바울은 또한 이 소식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요 사명이라고 말합니다.

또 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감추고 계시다가 갑자기 선포한 소식이 아니라 태초부터 미리 예비하시고 약속하신 좋은 소식이라고 말합니다.  1:2-3 “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시켜서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으로 3 당신의 아들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좋은 소식이 성경전체의 주제입니다. 천사들도 알고싶어했던 소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소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의 아들까지도 아끼시지 않고 주셨다는 소식입니다.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복음 아닙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이렇게 기쁜 소식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전해야할텐데, 의외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부끄러워합니다.  저는 지난 주일에 그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세상사람들의 귀에는 이 이 복음이 어리석은 메시지로 말도 안되는 소식으로 듣고 조롱하고 우습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저주 받아 범죄자로 죽은 유대나라 시골에서 자란 이 청년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어리석은 자요, 편협한 자요, 독선적인 자들로 여깁니다. 박해까지합니다.

본인은 복음을 진리라고 생각하고 믿지만, 사람들이 다 조롱하고 무시하니까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저는 제 어머니 예를 들었습니 다.  초등학교 다닐때 어머니를 잠간 부끄러워 한적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저희 어머니 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저희 어머니를 무시하고 부끄러워 한다고 하더라도 저는 저의 어머니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저의 어머니의 저를 향한 사랑의 깊이, 그 분의 희생적인 사랑을 알기 때문에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비유를 한 뒤에 계속 의문을 가졌던 것이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에 대해서는 분명히 누가 어떻게 보든 뭐라 그러든 상관 없이 언제 어디서고 누구 앞에서고 저희 어머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떳떳하게 누구에게나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저희 어머니의 사랑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면서도 제 마음 속에 복음에 대해서는 담대하지 못하고 떳떳하지 못할 때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왜 그럴까?

저는 그 대답을 다시 한번 사도바울의 대답에서 찾아봅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이유는 이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라고 선포합니다.

다시 말해서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자에게는 복음이 부끄럽지 않지만,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치 못하는 자는 복음을 부끄러워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저는 지금 아주 중요한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주의해야할 것은 시제입니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복음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믿는 자의 시제가 무엇입니까?  믿은 자들에게가 아니라, 믿는 자들입니다.  구원하신 능력이 아니라, 구원하는 능력입니다.  믿은 자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믿었을 때에 구원을 주셨던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현재형입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할 것은 구원은 과거에 받은 것이지만 구원은 또한 현재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란 사실입니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가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구원이란 현재적으로 지속적으로 받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함이 없이 전하려면, 현재적인 믿음으로  현재적인 구원을 체험하는 경험가운데 살아야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과거의 믿음과 과거에 받은 구원을 기억하며 복음을 증거하려니까
부끄러울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을 나눕니다.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 이 것이 현재적인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복음을 현재적으로 믿으므로 복음을 통한 구원을 현재적으로 경험치 않는다면 우리는 복음의 능력을 경험치 못하고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날마다 현재적으로 복음을 믿고 복음을 통한 현재적인 구원을 경험할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여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대답은 성령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 안에 거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have been poured out) .6 (For 왜냐하면)  우리가 아직 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때를 맞추어서, 경건하지 못한 사람을 위하여 이미 죽으셨습니다.”  (롬 5:5,6 )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많은 인간을 위해서 죽으셨읍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보여 주십니다.  (한글성경이 과거시제로 번역되어 있으나 현재시제이다. “보여주십니다” demonstrates or shows, “확증하셨느니가 아니라, 확증하십니다”) 롬 5:8

하나님의 사랑이란 말씀이 반복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현재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결국 성령님께서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바울이 “내가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 외에는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라고 말한 것처럼 믿음으로 복음을 항상 기억하고 묵상하는 삶을 살고저 할 때 성령님께서  예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며 죄와 사탄과 세상의 세력으로부터 구원을 경험하며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롬 5:82; 갈 2:19)  분명히 복음 안에는 우리 성도들이 매일의 삶 속에서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과 소망과 평안과 기쁨가운데 구원을 경험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성령충만)

복음이 믿는 자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였는데, 어떤 의미에서 믿는 자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이제 다시 본문을 읽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복음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17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나 있으며,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표준새번역)

세계적으로 개신교회들은 매 해 10월 마지막 주일을 종교 개혁주일로 기념합니다.  오늘이 바로
종교개혁주일입니다.  그 이유는 지금부터 498년전 1517년 10월 31일에  마티 루터가 95개조항의 항의문을 비텐베르크 대학 교회당 정문에 붙여 놓고 공개 논의를 할 것을 요청했던 것입니다  이 항의문은 로마캐톨릭교회의 잘못된 점에 대한 항의였으며  이 항의문이 2주내에 독일 전역에 퍼지므로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누군가가 종교개혁의 날을 헬로우인 데이로 정한 것은 사탄의 음모가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종교개혁의 주동자였던 루터가 캐톨릭 신부로 있으면서 캐톨릭에 대해서 반기를 들게된 직접적인 계기는 대학에서 성서를 가르치는 교수로 있으면서 오늘 본문 구절 로마서 1:17절을 통해 구원의 도리를 깨달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루터는 법관이 되기 위해서 대학서 법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같이 있던 친구가 벼락에 맞아 죽는 것을 보고 두려워서 성녀 안나에게 서원을 하고21살에 어거스틴 수도원에 들어갔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와 지옥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 두려워서 자신의 영혼이 구원받기 위해서 수도원에 들어간것입니다.

루터는 수도원 내의 온갖 잡일에 최선을 다했으며 특별히 고백성사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너무나 작은 것까지 일일이 고백하며 몇시간씩 자신의 죄를 고백하니까 그의 고백을 받던 신부가 진짜 고백해야 할 죄가 있을 때까지 다시 찾아오지 말라고 명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 외에도 심한 노동, 명상, 금식, 기도을 최선을 다해 실행했지만, 그 마음에 평화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물론 가장 모범적인 수도사란 평판을 얻게되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가 했던대로 계속해야 했다면 죽었을지 모를 정도로 철저하게 수도사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죄는 분명히 더 적게 짓는데 마음의 가책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루터의 명성때문에, 27세에 그는 로마에서 개최된 교회 건퍼런스의 대표로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기대를 갖고 로마를 방문하였으나, 오히려 그는 로마에서 횡행하던 신부들 간의 타락과 불륜들을 목격하고 오히려 더 혼동되고 낙망된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독일에 돌아온 이후 그는 자신이 겪는 영적 소용돌이를 극복하고저 위텐베르고 대학에 등록하였고, 공부를 잘하여 박사가 되었고 결국 그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습니다.
 
루터는 로마서 강의를 준비하는 중 로마서 1:17절과 직면하게 됩니다.  그러나, 루터는 기쁜소식을 발견하기 보다는 오히려 절망의 깊은 수렁에 바졌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 있다”란 말씀을 읽고 루터는 기쁨을 느끼기 보다는 그 하나님의 의의 수준에 이르지 못할 자신과 인간의 불의한 모습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지옥의 형벌을 보게된 것입니다.

그는 얼마 동안을 이 구절을 놓고 씨름하다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통해서 비로소 복음을 접하게 됩니다.  도저히 인간의 행위로는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한데, 이 구절에 “의인이란” 말을 통해, 죄인이 의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믿음때문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 하나님의 의란 인간 스스로 성취하는 의가 아니라,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의가 인간에게 전가된 것을 말하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롬 3:22)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선물로 주어진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의 나이 32살 때, 루터는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것입니다. 그동안 그의 절망가운데 괴로움을 당했던 영혼이 구원을 받고 해방받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깨달은 진리를 나누다가 결국 개신교의 시조라고 불릴만큼 영향력을 끼치는 사역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나 있으며,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란 뜻 – 복음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의를 드러냅니다)    현재입니다.  복음에는 불의한 인간에게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의가 (현재적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은혜)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죽으셨으므로  죄의 용서와 의로움을 선물로 주신다는 사실이 복음이지만 이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이지요.

그리고 결론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입니다.  어제의 믿음도 중요하지만, 오늘의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음으로 복음 안에 드러난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고 누리는 삶을 말합니다.
(아들도 아끼시지 않고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삶; 하나님께서 너무 비싼 댓가를 치루시고 주신 귀한 선물을 누리는 삶입니다)  한눈 팔지 않고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인정하는 삶을 말합니다.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Since we have now been justified by his blood)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having been reconciled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로마서 5:10-11)
주님의 의로우심을 선물로 받은 자로서 그 믿음으로 매일 사는 것입니다.

복음을 알기전에 마틴루터 처럼 매일 매일 하나님이 진노하시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죄의 용서를 받아야 하고, 또 하나님앞에 의로운 자로 서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했던 삶에서 구원받고,  이미 죄의 용서를 받고 이미 의롭게 된자로서의 삶을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  날마다 주님의 구원하심에 감격하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심판의 보좌 앞에가 아니라)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날마다 나의 문제점과 약함과 불의를 보기 전에 하나님의 은혜를 보는 삶을 말합니다.  날마다 감사함으로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갈 2:19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현재적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신뢰하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가, 복음에 드러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루 하루 살아갈 때, 그리고 복음을 몰라 고통과 절망 가운데 있는 자들을 보게될 때에, 부끄럼 없이 복음을 증거하게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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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no_profile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복음은 하나님의 의를 드러냄”
로마서 1:16-17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복음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 의 능력입니다. 17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나 있으며, 믿음
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표준새번역)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 입니다 (have been poured out).6 (For 왜냐하면) 우리가 아직 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때를 맞추어서, 경건하지 못한 사람을 위하여 이미 죽으셨 습니다.”(롬 5:5,6 )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많은 인간을 위해서 죽으셨읍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보여 주십니다.  (한글성경이 과거시제로 번역되어 있으나 현재시제이다. “보여주십니다”) 롬 5:8

롬 3:22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모든 믿는 사람에게 옵니다.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나 있으며,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란 뜻은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의를 드러냅니다”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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