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판단치 말라” 로마서 2:1-5 11/1/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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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XGzIpaXIUlo
다행이 저 어린 학생은 납치되지 않고 동네 사람에 의해 구출되었습니다. 분노가 솟아 오르지 않습니까? “진짜 찟어 죽이고싶다”라는 댓글.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올바른 것 혹은 의에 대한 감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의로운 기준때문에 분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분이라고 말하지요. (만약 여러분이 저 어린 아이의 부모였다면 그 분노는 더욱 더 말할 수 없겠지요?)
하나님은 이 장면을 보시면서 어떠셨을까요? 우리와는 상상이 안될만큼 의에 민감하시며 높은 의의 기준을 갖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1:18 “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한 행동으로 진리를 가로막는 사람의 온갖 불경건함과 불의함을 겨냥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하나님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번엔 다른 관점에서 한번 생각해 보지요. 만약, 여러분이 저 파렴치한 유괴범의 어머니나 아버지였다면 그 심정이 어땠을까요? 한쪽으로는 분노를 느꼈겠고 다른 한쪽으로는 그래도 안타까움과 사랑을… 이 것이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하나님께서 이런 유괴범에 대해서도 부모같은 심정을 가질까?라고 의심하는 분은 없으십니까?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 죄인되었을 때에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을 때 구원받은 강도를 기억해 보십시요. 그는 단순한 도둑이 아니라 분명히 최악의 사형방법인 십자가에서 죽어야할 살인죄를 저지른 흉악범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아니더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믿고 실천한 손양원 목사님 같은 분도 자기 자식 둘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하고 양아들로 삼지 않았습니까?)
로마서는 하나님의 의에 관한 책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가 복음안에 드러났습니다. 한편으로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드러내므로 하나님의 공의를, 또 다른 한편으로는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시므로 하나님의 의를 드러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죄에 대한 공의의 심판을 인간에게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대신 받게 하시므로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오늘과 다음 주에 공부하게될 로마서 로마서 1:18-3:20절까지는 왜 이 하나님의 의가 필요한가를 배웁니다. 우리는 불의한 존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방금 보여준 동영상의 유괴범처럼 불의한 존재요 하나님의 영원한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때문에 하나님의 의가 필요하고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웁니다.
그런데 왜 바울이 복음을 이미 믿고 받아들인 로마성도들에게 이런 설명이 필요했을까요?
구원에 대한 좀 더 확실한 이해가 필요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목사님에게 가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기 원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때 목사님이 물어보았습니다. 무슨 죄로부터 구원받기 원하는지 아는가? 이 사람이 머뭇거리자, 목사님이 먼저 무슨 죄로 부터 구원받기 원하는지 생각해 보고 오라고 그랬다고 합니다. 무엇을 회개할지 생각해보라는 말씀입니다. 교회모임엔 다니지만 자기 자신의 죄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치 않고 그러니까 회개도 제대로 못하고 자기 멋대로 살다가 죽는 인생이 얼마나 많을지요
처음에 올바르게 믿음 생활을 출발했더라도 첫 사랑을 잃고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사라진 신앙생활을 하기가 쉽습니다. 죄에 대한 개념이 흐려지면서 자신을 그럴듯한 존재로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단지 천국들어가기 위한 수단정도로 이해하며 신앙생활하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만약 암환자가 자기가 암에 걸렸는지 조차 모른다면 암환자를 살리는 획기적인 암치료방법이 감격과 기쁨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암환자가 자기 병의 심각성을 몰라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것입니다. 획기적인 암치료방법이 그렇게 큰 감격과 기쁨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죄의 심각성을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깨닫지 못한다면 복음이 큰 감격과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로마성도들에게 다시 복음을 설명하기 전에 왜 우리가 얼마나 죄인인지 얼마나 절망가운데 있는지 얼마나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는지 얼마나 구원이 필요로 한 자들인지 얼마나 하나님의 선물인 하나님의 의가 필요한지 복음이 필요한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의사가 처방약을 주기 전에 얼마나 심각한 병에 걸렸는지를 설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방인의 병과 유대인의 병이 다릅니다.
1:18-32 이방인들의 죄는 하나님을 인정치 않는 우상숭배의 죄입니다. 이들은 비록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있지 않지만 피조세계를 통해서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양심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줄 알 수 있음에도, 그들은 하나님대신에 피조물을 섬기는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합니다. 우상숭배란 결국 자기 자신을 섬기기 위함이요 자신이 주인이 되어 이기적
이고 자기 중심적인 모든 범죄의 삶을 살게되는 원인입니다.
반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법을 갖고 있다는 유대인들의 죄는 무엇인가? 왜 그들도 구원이 필요한가?를 설명합니다. (2:1-16) 오늘 본문 2:1 절부터 등장하는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이방인들과는 달리 도덕적으로 괜찮은 자들이란 확신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치 않고, 우상을 숭배하며 자신이 죄인인 것을 부끄럼 없이 드러내며 사는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
그럼에도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 유대인들의 고질적인 문제가 무엇입니까? 2:1절을 읽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여기 반복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판단이란 말이 세번이나 언급됩니다. 이들의 문제는 다른 사람을 판단 혹은 정죄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는 특별히 남을 판단하는 죄에 대한 언급이 특별히 많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유대인들뿐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가장 흔하게 저지를 수 있는 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찌하여 너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남에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줄테니 가만히 있거라' 하고 말할 수 있겠느냐?” 마 7;3,4 예수님이 과장하신 것입니까? 아니지요. 실지로 우리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어야합니다. 우리는 내 눈의 들보는 깨닫지 못하고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너무 잘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나는 그렇게 죄인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꽉 차있습니다" “그럴듯한 사람이다"란 생각으로 바울처럼 죄인 중의 괴수다란 생각을 가질 때 하나님의 은혜로 넘침)
구약성경의 대표적인 신앙의 위인 다윗의 이야기를 우리는 다 압니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에게 비유를 들었습니다. 한 성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부(富)한 사람이었고 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부한 사람은 소와 양이 많은 반면 가난한 사람은 암양 새끼 한마리 밖에 없어 그 암양 새끼를 딸처럼 길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한 사람에게 손님이 찾아오자 그는 자기 가축을 잡지 않고 가난한 사람의 암양 새끼를 빼앗아 잡아 대접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다윗은 크게 노하여 그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어야 하고 또 그가 그런 일을 하면서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전혀 없었으니, 그 일을 당한 사람에게는 양 새끼를 4배나 갚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습니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이 것이 다윗만의 이야기입니까? 이 것이 날마다 구원받아야할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우리 자신의 자기 중심적인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이 자기 중심적은 모습은 너무나도 잘 보입니다. 그래서 서로 신뢰하기가 그토록 어렵습니다. (이 사람과는 화해할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이 것이 유대인들의 근본적인 문제였습니다.
성경에는 특별히 남을 판단하는 죄에 대한 언급이 특별히 많이 있는 이유는 그 것이 우리 모두에게 너무 보편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보통의 죄들과는 달리 자신을 하나님의 위치에 두고 숭배하는 좀 더 심각한 죄이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1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 야고보 4:11-12 (형제를 비방하거나 판단하는 자는 자기를 하나님 자리에 둔자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형제를 사랑하라는 율법을 제정한 하나님 보다 높은 자리에 있겠다는 교만한 자세) 하나님 한 분만이 참 입법자시며 재판장이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법을 어겨 남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대권을 빼앗는 것이며,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문제점이 무엇이었습니까? 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사람들은 온갖 불의와 악행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 차 있으며, 시기와 살의와 분쟁과 사기와 적의로 가득 차 있으며, 수군거리는 자요, 30 중상하는 자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요, 불손한 자요, 오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꾸미는 모략꾼이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모든 율법의 조항이 결국 사랑으로 요약되는 것처럼, 위의 모든 조항들은 결국 율법, 즉 사랑의 법을 따르지 않고 사랑치 않음에 다 포함되어 있는 내용이다.)
누가복음 18장 세리와 바리새인의 기도: 판단의 죄는 교만을 말합니다. 우리는 항상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하는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내가 이것 저것했고 또 하고 있기때문에 너보다는 낫다는 자기의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그러나, 자기의에 근거한 마음자세는 우리 그리스도인으로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의는 더러운 걸레와 같다란 말을 항상 기억해야할 줄 압니다. (마덜 테레사, 간디, 마티루터킹) 우리가 의롭다는 것은 우리의 행위나 우리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님을 항상 기억해야합니다.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은 오직 예수의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임을 잊는 순간 우리는 교만해 지며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정말 주의해야할 일입니다.
우리는 자기를 높이고 남을 판단하고 낮추려는 모든 자기중심성의 속성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매일 매순간 구원받을 필요가 있는 존재들입니다.
2. 그렇다면 남에 대한 판단이라면 어떤 것이든 무조건 하지 말라는 뜻인가?
고린도교회내에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12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13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오늘날 교회가 손가락질 당하는 이유가 교회의 문제를 판단하지 않고 덮어주므로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하고 세상적으로 되고… 오히려 사회가 교회를 염려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까지 있지 않습니까? 오늘날은 특별히 우리가 책망과 경고와 경책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예수님은 물론 바울이나 야고보 모든 사도들이 격려도 하였지만 책망도 하였습니다. 성도들의 영적인 상태를 평가하고 판단하였다는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설교 시간에 조는 것은 봐줄 수 있지만, 예를 들어서 신문을 읽는다든지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거나 게임을 한다면 저는 여러분들을 반드시 지적하고 책망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판단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비난이 될 수도 있고 긍정적이고 세워주고 살리기 위한 충고나 경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판단의 동기입니다. 우리의 동기가 무엇인지에 따라서 비난이 되기도 하고 충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사랑하는 자들을 다 책망하고 징계하노니 그런즉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계3:19) 예수님이 위선자들을 위해서도 바리새인들을 위해서도 죽으셨다는 것을 기억
그렇다면 어떻게 사랑의 판단을 할 수 있는가? 자기를 살펴봄 “어찌하여 너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남에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줄테니 가만히 있거라' 하고 말할 수 있겠느냐? 5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그 때에 눈이 잘 보여서, 남의 눈에서 티를 빼 줄 수 있을 것이다.” (내 자신을 살펴서 내 눈속의 들보를 먼저 빼내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내 자신에게 하나님사랑과 이웃 사랑이 있는지 - 상대방을 사랑의 눈으로 볼 수 있는지 - 상대방에 대한 존경과 나자신보다 낫게 여기는 그런 마음이 있는지; 그러나 상배방의 죄와 허물을 볼 때에 상대가 밉고 보기 싫고 용서할 수도 없다면 우리의 판단은 비난과 정죄에 불과할 것입니다. )
갈 6:1교우 여러분, 어떤 사람이 어떤 죄에 빠진 일이 드러나면 성령의 지도를 받아 사는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잡아 주고, 자기 스스로를 살펴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사는지 내 스스로 유혹에 경각심을 갖고 조심을 하고 있는지) 고전 11:31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살피면, 우리는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남을 살피기 전에자기 자신을 살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의 원리를 사용하라) “당사자에게 직접” 현장에 없기 때문에 자신을 변호할 기회가 없는 사람을 대하여 상처를 입히거나 중상하거나, 불명예스럽게 단정해 버리는 말들을 금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판단의 목적은 영혼을 위한 사랑이 동기와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 동기와 출발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은혜인 까닭에 그 결과는 치유와 회복 그리고 교제의 완성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판단은 비난이요 정죄요 용서나 화해를 위해 노력은 없고 결국 바리새인처럼 하나님 자리를 대신하는 교만이요 그러므로 마땅히 하나님의 심판 받아야합니다. 우리의 본성은 항상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에 너무 쉽게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스스로 차지하는 교만의 죄를 범하기 너무 쉽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 마땅할 자리에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항상 먼저 살펴보고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아 사랑과 존경으로 서로 격려하고 충고하여 다른 성도와 교회를 살리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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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남을 판단치 말라”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4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로마서 2:1-5)
1. 인간의 불의(롬 1:18-3:20)-하나님의 의의 필요성 (복음과 구원의 필요성)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한 행동으로 진리를 가로막는 사람의 온갖 불경건함과 불의함을 겨냥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롬 1:18).
2. 유대인들의 문제점: 남을 판단하는 죄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1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 야고보 4:11-12
3. 하여야할 판단과 하지 말아야할 판단
”교우 여러분, 어떤 사람이 어떤 죄에 빠진 일이 드러나면 성령의 지도를 받아 사는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잡아 주고, 자기 스스로를 살펴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갈 6:1)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살피면, 우리는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고전11:2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