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죄인이란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가? ” 로마서3:9-20 11/15/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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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떻습니까? 우리 유대 사람에게 더 나은 것이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다같이 죄 아래에 있음을 우리가 이미 지적하였습니다. 10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11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12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다. 혀는 사람을 속인다."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 14 "입에는 저주와 독설이 가득 찼다." 15 "발은 피를 흘리는 일에 빠르며, 16그들이 가는 길에는 파멸과 비참이 있다. 17 그들은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한다." 18"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19 우리는, 율법에 있는 모든 말씀이 율법 아래 사는 사람에게 말한 것임을 압니다. 그것은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을 하나님 앞에서 유죄로 드러내시려는 것입니다. 20 그러므로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인식할 뿐입니다.”
지난 금요일 저절로 올 한 해를 돌아보며여러가지 일들로 진정으로 주님께 감사드릴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지난 5월에 기도노트를 정리하고 지난 6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신실하게 기도할 수 있었던 것 감사드리고요. 매일 큐티를 올릴 수 있었던 것 감사했고요. 또 감사한 것은 전도에 관한 것입니다. 오랫동안 제 마음을 가장 무겁게 눌렀던 것은 복음증거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복음증거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올 해 초에, 한해동안 5명을 예수님께 인도하겠다는 결단을 하였는데, 실현 가능성이 없어보여 슬쩍 지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전도에 관한 제 새해결단을 잊지 못하도록 옆에서 방해한 분이 있습니다. 누굴까요? 노요한 목자님
그런데 감사하게 올해 제가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지게 되었고 현재까지 두분이 확실하게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 외 3분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했지만 확실히 예수님을 영접했는지는 좀더 두고봐야합니다. 지난 4월부터 매주 화요일 동네에 있는 클리닉에 가서2시간 혹은 3시간씩 전도하고 있으며 그리고 지난 9월부터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글들을 몇 사람에게 가끔씩 보내고 있습니다. (별것 아니고 아직 많이 전도하지 못하지만, 제가 이 것을 보여드리는 이유는, 여러분들도 직접 말로 못하더라도 문서로라도 증거하는 자들, 복음에 전념하는 자들이 되기를 원해서입니다.) 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축소되고 있는 것 같아 제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계속 VIP들을 위해 기도하다보니까, 복음을 증거하게 되고 전도의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아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요즈음 우리가 공부하는 로마서도 결국은 사도바울이 로마에서도 복음을 증거하고 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한 것임을 배웁니다. 그리고, 로마교인들도 복음을 더욱 분명히 깨닫고 바울과 함께 복음 증거자가 되도록하기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로마서를 잘 배우므로 복음을 좀 더 분명하게 설명하고 나눌 수 있는 전도자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서서문 롬 1:17 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있다라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자세히 설명하기 전에1:18-3:20절까지 복음이 왜 필요한지 하나님의 의가 왜 필요한지를 3가지 사실로 설명합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든 사람이 죄인이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진노하시고 심판하신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인간의 노력과 율법으로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다.
실지로, 복음을 증거하다 보면 자신이 진정으로 죄인이란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의미가 의미가 없기 때문에,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마치 배부른 사람에게 억지로 음식을 먹게 하는 것과 같고 자신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답을 주려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을 죄인이라고 여기지 않는 사람들은 결코 예수님의 필요를 느낄 수 없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누구에게 이 말씀을 하셨는지 기억하세요? 율법을 잘지키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은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뿐만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죄를 진 것은 인정하면서도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할 정도로, 예수님의 구원이 필요할 정도로 사악한 죄인이라고 생각치 않습니다.
그러면, 왜 자신이 진정으로 죄인임을 깨닫기 쉽지 않습니까? 누가복음은 바리새인을 가리켜 "스스로 의롭다고 확신하는"자로 묘사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기도를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눅 18)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욕심이 많거나 부정직하거나 음탕하지 않을뿐더러 세리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이나 금식하고 모든 수입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하고 기도하였다
자기 스스로 정한 의의 잣대를 사용하여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자신을 그럴듯한 의인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합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인간은 하나님의 잣대를 포기하고 자신의 안목을 잣대삼아 사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치우쳤고, 치우친 잣대로 남과 비교하고 자기가 좀 더 올바르게 보이는 것처럼 착각하며 사는 존재들입니다.
한 여인이 간음을 하다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소위 스스로를 의롭다 여기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 여인들을 끌고와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런 여자를 돌로 쳐서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이 일을 놓고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예수께서는 몸을 굽혀서,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다. 7 그들이 다그쳐 물으니, 예수께서 몸을 일으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8 그러고는 다시 몸을 굽혀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다. 9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나이가 많은 이로부터 시작하여 하나하나 돌아가고, 마침내 예수만 남았으며, 그 여자는 그대로 서 있었다."
죄인을 죽이라고 큰 소리질렀던 무리들이 주님의 말씀 앞에 자신들도 죄인인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인간끼리 비교하는 잣대로 멸시를 받는 자도 높임을 받는 자들도 모두 죄인임을 하나님의 말씀은 선포합니다: 인도의 간디, 마덜 테레사, 마티 루터 킹, 오바마대통령 등 소위 노벨 평화상을 받고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이들도 그 내막을 알면 일반 사람과 다를 바 없고 오히려 더 못한면까지 있음을 알게됩니다.
개인적으로뿐 아니라, 민족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선택 받았다는 자부심과 스스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확신을 가진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모든 이방인들과 비교하며 자신들은 의로운 사람들이라고 자부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너희보다 좀 더 낫다란 자만과 교만때문에 자신들의 문제점을 보지 못합니다.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을 그러나 바울사도는 인간은 모두 다 악한 죄인이라고 단언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죄의 용서함을 받은 자들이지만,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순간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으면, 우리도 치우친 자신의 잣대를 가지고 자신과 남을 비교하면서 자기 의에 만족하며 살기 쉽습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용서치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는 용서 받을 만한 죄를 저질렀고 상대방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는 자기 잣대의 논리로 남과 비교하기 때문 아닙니까?
고후 10:12 “우리는, (비교하면서)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들 축에 스스로를 끼어 넣거나, 그들과 견주어보려고(비교)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네가 만든 척도로 자기네 스스로를 재고, 자기네가 세운 표준에다가 자기네 스스로를 견주어 보고 있으니,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잣대로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범죄 이후 이렇게 고백합니다. 51: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잣대로 하나님께 죄를 지었음을 인정하기 전까지는 우리가 죄인임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기 쉽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치 않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한국문화도 구약의 십계명도 그리고 신약성경에도 부모에 대한 공경을 중요시 여기고 명령합니다. 디모데전서 4:8절에는 “자기 친척, 특히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그는 벌써 믿음을 버린 사람이요,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나쁜 자라고(까지) 말씀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4:4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손녀가 있으면, 그들로 하여금 먼저 자기네 가정에서 종교상의 의무를 행하는 것을 배우게 하고, 어버이에게 보답하는 것을 배우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받으시는 일입니다.” 과부된 할머니나 어머니에게 특별한 사랑과 은혜를 받은 자들로서 마땅히 보답하라는 말입니다.
인간적인 은혜도 보답할 줄 모르는 자는 믿지 않는 자보다 더 나쁜 자라고 말합니다.
실지로 이 세상에는 자기 부모나 가족은 돌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는 열심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부모님은 굶는지 마는지 모르면서 자기일만 열심히 하는 것도 homeless들을 돌보는 사역을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알아줄지 모르지만. 하나님앞에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유명한 러시아의 소설가 톨스토이는 사랑의 삶을 살았던 자로 잘 알려져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인은 다음과 같이 톨스토이에 대해서 말합니다:“그에 대한 자서전은 어떻게 그가 노동자들이 물통을 나르는 것을 도와주웠던가를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지난 32년동안 단 한 순간도 그의 아내인 나에게 쉴 수 있는 여유를 준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지난 32년동안 말이죠…. 그는 단 한번도 자신의 아들을 위해서 마실 물을 떠다 주었거나, 내가 하루종일 노동하여 쉼이 필요할 때에라도, 어린 아이들을 잠 재우는 것을 돕기위해 단 5분간이라도 어린 아들의 침대 옆에서 보낸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톨스토이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톨스토이가 남에게는 친절을 베풀었지만, 자신을 가장 사랑했고 또 자신을 위해 가장 희생한 사람을 위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암만 잘해도, 부모님의 은혜를 잊은 자는 불효요; 사랑하는 아내의 은공을 잊은 자는 막나니라고 부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없이 단 1초도 생존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모든 환경, 우리의 신체의 모든 부분, 우리를 생존케하는 모든 관계성 등 삶의 모든 부분 속에 하나님의 사랑과 돌봄의 손길이 닿지 않는 부분은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롬 1:20 이 세상 창조 때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사람이 그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핑계를 댈 수가 없습니다. 21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해드리거나 감사를 드리기는 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망해져서, 그들의 지각없는 마음이 어둠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22 사람들은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어서, 23 썩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을 사람이나 새나 네 발 달린 짐승이나 기어 다니는 동물의 형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마치 부모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부모님을 무시하는 불효자처럼, 인간은 (먼지만도 못한 적은 존재를 목자처럼 이끄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 가운데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거나 감사를 드리기큰 커녕오히려 생각이 허망해져서, 그들의 지각없는 마음이 어둠으로 가득차게 되어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도 않으며, 하나님께 감사치도 않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도 않고 오히려 자기를 섬기며 우상숭배하면서도 큰 죄인임을 깨닫지 못합니까?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 돌보심 가운데 존재하고 살면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지도 못하고 인정치도 않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사악함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깊이를 깨닫지 못하고 인정치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치 않고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 깨들알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지 깨닫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의의 수준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한다.)
사도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던 자"라고 밝힙니다. (빌 3:6) 무슨 말입니까? 만약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될 수 있다면 바로 내가 그 사람이다. 그러했던 그가 오늘 본문을 씁니다, 오늘 이 본문은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자기 자신에 대한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율법을 최선을 다해 지켜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던 자였지만 “깨닫지도 못했고, 하나님을 두려워함도 하나님을 찾음도 없었고 올바른 길도 평강의 길도 알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결론으로 율법을 지킴으로는 하나님앞에 인정받을 수 없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같이 읽음 빌 3)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나에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8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은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오물로 여깁니다. 그것은 내가그리스도를 얻고, 9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인정 받으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에서 오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를 가지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의 참 목적을 발견합니다. 율법은 자기 의, 인간의 의를 이룰진 몰라도,결코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도록 주어진 것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음에도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므로만 이룰 수 있는 하나님의 의를 깨닫고, 율법을 지키므로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잘못되고 교만한 것임을 알게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왜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라고 명령 하신 하나님의 의의 수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6장에 보면 성전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뵈온 이사야가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라고 고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에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죄를 과소평가하며 자신을 그럴듯한 자로 자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을 뵈온 이사야는 우리의 선행조차도 더러운 걸레같다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눈 앞에는 우리가 남을 위해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것도, 자기의 전재산을 팔아 남을 도와주는 것도 더러운 행주와 같은 행위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죄를 절대로 용서치 않고 심판하시는 거룩하신 주님을 대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때문에 나의 죄때문에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시고 죽으셔야만 해결될 수 있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절대적 의를 보게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만 우리의 의의 기준과 잣대를 버리고 겸손하게 죄인이란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 복음이 복음이 되려면, 주님께서 내 죄를 위해서 죽으셔야만 할정도로 나는 죄인이란 것을 받아들이고 나의 의의 기준을 버려야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죄인이란 것을 인정하므로 주님의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죄인이란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까?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치우친 인간적 잣대를 사용해서 내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므로, 자신을 그럴듯한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코 하나님 앞에 소망 없는 죄인이란 것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두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놀랍고 엄청난 사랑과 은혜를 인정차 않고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고 영화롭게도 하지 않으면서,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면서도 자신이 큰 죄인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의의 깊이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의의 수준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의 죄에 대해서 과소평가하고 둔감하여 우리가 흉악한 죄인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 대신 십자가상에서 형벌 받으심으로 만이 만족될 수 있는 하나님의 의의 수준을 받아들일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죄인이란 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주님의 은혜와 공의를 더욱 알아감에 따라 우리 자신의 자기 중심적인 죄성을 더욱 깨닫게될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으로 말미암는 죄로부터의 구원을 날마다 경험하게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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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왜 죄인이란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가? (롬 3:9-20)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11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12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13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14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 하고 15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16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18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1.바리새인처럼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때문에
“우리는, (비교하면서)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들 축에 스스로를 끼어 넣거나, 그들과 견주어보려고(비교)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네가 만든 척도로 자기네 스스로를 재고, 자기네가 세운 표준에다가 자기네 스스로를 견주어 보고 있으니,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고후 10:12)
2.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치 않기 때문에
“이 세상 창조 때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사람이 그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핑계를 댈 수가 없습니다. 21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해드리거나 감사를 드리기는 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망해져서, 그들의 지각없는 마음이 어둠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22 사람들은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어서, 23 썩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을 사람이나 새나 네 발 달린 짐승이나 기어 다니는 동물의 형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롬 1:20-23)
3. 하나님의 의의 수준을 모르기 때문에
“…율법의 의로는 흠 잡힐 데가 없습니다.7그러나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나에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8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은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오물로 여깁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9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인정 받으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에서 오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를 가지려는 것입니다.” (빌 3:6-9)
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복음이 필요한 3가지 이유 (로마서 1:18-3:20)
•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든 사람이 죄인이다
•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진노하시고 심판하신다
•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인간의 노력과 율법으로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길이 없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도 믿을 수 없고 구원의 필요도 깨달을 수 없다. 그러므로 복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을 수 있어야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1. 바리새인처럼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치우친 인간적 잣대를 사용해서 내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므로, 자신을 그럴듯한 존재로 생각하게된다면 결코 하나님 앞에 소망 없는 죄인이란 것을 깨달을 수 없다..
2.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인정치 않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놀랍고 엄청난 사랑과 은혜를 살면서도, 그 것을 깨닫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하거나 감사하지 않는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면서도 자신이 큰 죄인임을 깨닫지 못한다.
3. 하나님의 의의 수준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수준도 모르지만 하나님의 의의 수준도 모른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분을 닮아 거룩하기를 원하시나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기대도 모르거나 인정치 않기 때문에 우리의 죄에 대해서 과소평가하고, 우리의 죄의 심각성에 대해 둔감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실망시키는 죄인임을 깨닫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