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문제" (로마서 3:9-20) 11/29/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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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떻습니까? 우리 유대 사람에게 더 나은 것이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다같이 죄 아래에 있음을 우리가 이미 지적하였습니다. 10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11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12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다. 혀는 사람을 속인다."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 14 "입에는 저주와 독설이 가득 찼다." 15 "발은 피를 흘리는 일에 빠르며, 16 그들이 가는 길에는 파멸과 비참이 있다. 17 그들은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한다." 18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19 우리는, 율법에 있는 모든 말씀이 율법 아래 사는 사람에게 말한 것임을 압니다. 그것은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을 하나님 앞에서 유죄로 드러 내시려는 것입니다. 20 그러므로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인식할 뿐입니다.”
지난 수요일 제 친구 중에 직장암 말기로 치료받고 있는 형제를 문병갔습니다. 그 친구의 아들, 이름이 John과 대화를 나누게되었습니다. 역사와 사회학을 전공했는데 친구인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아들 John의 사상이 너무 변해서 대화가 안통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와 대화를 부탁을 합니다. 그날도 이 John은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어보니까, John은 예를 들어 중국이 개방되어서 오히려 공산주의로 있을 때보다 더 살기 더 나빠졌다고 믿습니다. 북한도 살만한 나라라고 말합니다. 쿠바를 가장 이상적인 나라 중에 하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미국이란 나라가 지상에서 가장 악한 나라라고 믿습니다. (물론 그러면서도 미국에서 떠나서 살 생각은 없는 것을 압니다.)
John과 이야기 하면서 아이들 학교 잘못보내면 정말 끝이다 하는 생각까지 하게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어떤 책을 읽게되고 어떤 정보에 접하느냐에 따라 한 아이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 자녀들을 정말 잘 믿음으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제가 John과 대화를 통해 느낀 근본적인 문제는 단지 정치나 사회제도에 대한 견해가 아닙니다. 정치나 사회제도에 대한 이해는 저와 여러분도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차이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였습니다. 물론 John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조차 인정치 않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환경이 어떤가에 따라 변화된다고 믿습니다. 결국 사회의 문제는 인간본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제도와 시스템만 바꾸면 행복하게살 수 있고 가장 좋은 시스템이 사회주의라고 John은 믿습니다.
문제는 John처럼 사고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특별히 젊은 층들에 많다는 사실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인격적인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연히 먼지에서 진화된 존재니까 어떤 본성이 있다기 보다는 환경에 의해 형성되는 존재라고 빋는 것이지요.
물론, John이 말하는 것이 다 틀리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회제도와 시스템이 중요하고 우리들이 사는 환경이 삶의 영향을 많이 끼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지도 않고, 행복을 축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닮도록 부름받은 존재라고 가르칩니다. 또 가장 근본적인 문제도 사회제도나 환경의 문제 이전에, 죄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선언합니다. 의로운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마음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근본문제라고 말합니다. (렘 17:9) 역사상 개인간의 그룹 간의 사회와 국가와 국가간의 모든 문제와 불의와 투쟁과 갈등은 환경이나 제도의 문제에 앞서 죄인인 인간의 본성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인간은 따로 죄짓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다 자기 중심적으로 살게되어있습니다. 마르틴 루터의 말대로 인간은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환경이나 제도 개선 이전에 죄의 문제의 해결입니다. 만약 인간의 본성이 죄인이 아니라 단지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존재라면 죄의 용서도 필요없고, 구원도 필요 없고 하나님의 은혜도 필요 없고 예수님도 필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구원을 위한 복음을 설명하기 전에 인간의 죄와 죄의 문제에 대해서 로마서 1:19절부터 3:20절까지 설명합니다. 저는 2주 전에 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구원의 필요성조차도 못느낀다는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죄에 관한 문제를 다시 강조해서 말씀하기를 원합니다. 단지 아직 죄의 문제와 복음의 문제를 잘 모르는 분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을 잘알고 믿는 자들을 위해서도 함께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일반사람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도 지속적으로 죄의 영향력 가운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쉴때가 많고 감사도 기쁨도 기도도 잊을 때가 많지만 사탄은 쉬지 않고 일합니다. 내 안에 역사하는 자기 중심성도 지속적으로 역사합니다. 이 세상도 계속 우리에게 영향을 줍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이유로 스스로 선줄로 생각하고 쉽게 자만하기 쉽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보다 더 추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반면, 우리가 우리들의 죄성에 더욱 민감하면 민감할 수록 더욱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의존해서 사는 그리스도인의로서의 삶을 살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죄인으로 행하는 일들을 공부하면서 우리들의 죄인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에 더욱민감케 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우리 유대 사람에게 더 나은 것이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다같이 죄 아래에 있음을 우리가 이미 지적하였습니다.10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죄의 형벌로부터는 구원받았지만 아직도 죄의 영향력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주셨지만, 우리의 본성자체가 의로워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이 죄인들의 특성은 무엇입니까?
“깨닫는 자도 없고” 죄인이라 그럴때, 우리는 우선 죄인의 행동을 연상합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죄인의 첫번째 특성을 깨달음으로 말씀합니다. 모든 죄의 근원은 깨달음과 관련이 있기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는 죄가 인간 첫조상의 범죄였습니다. 에덴동산이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축복가운데 살면서도, 막상 뱀이 나타나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치 않는 증거다란 거짓말을 받아들이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 놀라운 여건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깨달음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돌봄가운데 살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깨달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지도 하나님께 감사드릴지도 모릅니다. 마치 불효자식이 부모님의 사랑과 돌봄가운데 살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감사할지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은 없고, 왜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면 악을 허락하냐고 따집니다. , 막상 자기 자신이 악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한명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자신은 항상 의인인것처럼 착각) 평상시 사고가 하나도 안날 땐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다가 사고가 나면 왜 하나님이 이런 사고를 허락하느냐고 불평합니다. 깨달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거역하는 죄 가운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모르고 자기가 왜 죄인인지도 모르는 상태를 말합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소위 하나님의 나라백성이란 자들이 우상숭배 의 죄때문에 바벨론에게 점령 당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면서까지 자신들이 섬기던 우상을 바벨론으로까지 가지고 갔다는 웃지못할 사실을 기억하시나요? (사 46:1-4) 죄와 심판가운데 있으면서도 자신의 모습을 보지못하는 과거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우리 죄인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죄도 깨닫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죄를 짓고난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멀리합니다. 마치 집나간 자식들을 기다리는 부모님처럼..하나님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며 기다리는 줄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은 하나님을 멀리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없습니다. 문 밖에서 두드려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함. 우리는 어떻습니까? 저와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있다는 증거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저와 여러분들이 찾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찾되 우선권으로 찾고 있습니까? (칼바르트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것 같지만 실지로 우상을 찾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부흥을 추구하지만.. 그 것이 진정 하나님을 찾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행복한 교회 분위기를 찾는 것인지, 목회자나 성도들의 인간적 야심을 구하는 것인지 혼동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 보다는 하나님이 주시는 그 무엇을 .. 하나님의 얼굴보다는 하나님의 손을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 없으며” 하나님이 우리가 가기를 원하시는 길이 반드시 있습니다. 간절하게 우리가 그 길로 가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길을 가기 위해서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기 위해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곁길로 가고 있습니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다. 혀는 사람을 속인다."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 14 "입에는 저주와 독설이 가득 찼다." 깨닫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자기 잣대를 가지고 곁길로 가는 자들의 심령에서 나오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주님은 말씀합니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막 7)
15 "발은 피를 흘리는 일에 빠르며, 16 그들이 가는 길에는 파멸과 비참이 있다. 17 그들은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한다." 아담의 범죄 이 후 벌써 가족들 안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것 기억하시죠. 하나님의 길을 버리고 자기 길을 선택한 인류의 역사는 개인간의 그룹 간의 사회와 국가간의 경쟁과 분쟁과 마찰 과 갈등이 끊인적이 없습니다. 이 것은 환경이나 제도의 문제에 앞서 죄인된 인간의 본성때문입니다.
18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예배와 감사는 물론 없거니와)
가끔 그리스도인들과 기독교를 비방하는 댓글들을 읽으면 속이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을 비방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평가 하고 하나님께 따지고 하나님께 충고하고 삿대질하는 것을 보면. 자기가 우주의 주인공입니다. 성경에 이른대로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요, 불손한 자요, 오만한 자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스스로 하나님 처럼 되려는 인간의 교만과 죄성을 말합니다. 결국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기를 섬기겠다는 말씀입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깨닫지 못합니다;(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정) 하나님을 찾지도 않습니다. (의) 그런데 죄의 문제는 우리들의 죄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죄인이더라도 하나님이 심판하시지 않으시면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라 죄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으시고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의 죄란 말은 화살을 쏠 때 과녁에서 벗어난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의도한 목적에 벗어난 상태를 말합니다. 만약의 인간이 진화의 과정을 통해서 우연히 태어난 존재에 불과하다면 인간의 삶은 그냥 존재할 뿐, 특별한 목적이나 지켜야할 선의 기준도 책임도 없고 심판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목적을 가지고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심지어 모든 피조세계를 인간을 위해 만드실정도로. 인간은 하나님 앞에 귀중하고 책임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반드시 그 책임을 물으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일이요 그 후에 심판이 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만 강조하다보니까, 불의를 조금도 용납치 못하시는 주님의 공의를 잊을 때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손자가 암만 못된 짓을 해도 귀엽게 봐주시는 할아버지같은 존재로 연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 모든 사람들의 죄를 무조건 용납하시고 심판하시지 않으시겠냐고 반문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MIROSLAV VOLF란 크로아티아 출신의 신학자가 있습니다. 이 분은 신학자로서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진노하실 수 있는가의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살던 유고슬라비아란 나라에 내전이 일어나면서 내전당시 자기동족인 크로아티아족 20만명이 죽고 국민들이 약탈당하고 여자들은 강간당하고 3백만명이 이주해야만 했던 상황을 겪으면서 그의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하나님이 만약 진노하지 않으시고 심판치 않으신다면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로 의견이 바뀝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것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죄란 하나님의 사랑을 반대하고 역행하고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의 깊이 만큼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반면, 우리 인간은 죄를 보고도 분개할 줄 모릅니다. 그것이 사랑때문에 그렇습니까?
이웃집 어린아이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우리는 조용할 수 있습니다. 가만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아이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피가 꺼구로 솟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철저히 죄에 대해서 진노하시고 철저하게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진정한 사랑이 없으므로 분개해야할 때 분개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을 우리 수준으로 생각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경솔히 여깁니다. 3:18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는 것은 죄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는 뜻이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심판하시되 철저히 심판하십니다. 우리를 심판하시되 진리대로 심판하십니다. 아무도 변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행동 뿐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의 자세와 그 동기까지 그리고 마음의 비밀까지도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2:2, 6,16) 모든 재산을 팔아 구제할지라도 하나님을 높여 드리고, 하나님을 드러나게하기 위함인지, 자신을 위한 것인지 아십니다. 우리가 행한 죄만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치 않은 것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가운데서 살면서도 그 것을 깨닫지도 못하면 하나님을 예배하지도 또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은 죄를 심판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문제는 단지 우리들의 죄인이란 사실뿐 아니라, 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의롭게 살았던 욥에게 재산과 모든 자녀들까지 잃고 지기 몸까지 병든 수난을 당하게됩니다. 친구가 찾아와서 하나님 앞에 의롭기만 하다면 회복될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욥이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주장할 수 있겠느냐? (욥 9:2)
어떻게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있는가란 문제가 타락한 이후 모든 인간들의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한 대답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의 문제에 대해 각자 나름대로 다루고 있습니다.
성철스님 8년 동안 눕지 않고 앉아서 수양한 분, 10년동안 자신이 거하는 암자 주위에 철조망을 치고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던 세계사에 보기힘든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초인적인 극기 수행, 그는 첫딸을 임신하고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출가하였는데 이 아이가13살 때 처음 삼촌과 함께 아버지를 찾아갔을 때 성철스님은 얼굴도 대하지 않고 “가라, 가" 소리지르며 쫓아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17살 때 다시 찾아왔을 때 잠간 대화를 해준 것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이 딸을 생각하며 이분이 죽기 전에 쓴 유언을 여기 싥습니다. 이 내용은 과장된 내용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내 죄는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데 내 어찌 감당하랴
내가 80년 동안 포교한 것은 헛것이로다 우리는 구원이 없다 죄 값을 해결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딸 필히와 54년을 단절하고 살았는데 죽을 임종 시에 찾게 되었다
필히야 내가 잘못했다 내 인생을 잘못 선택했다 나는 지옥에 간다.
성철스님이야말로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 없으며의 예가 아닐까요?”
하나님의 택함받은 유대백성들은 죄의 문제는 율법을 열심히 지키므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19절 “우리는, 율법에 있는 모든 말씀이 율법 아래 사는 사람에게 말한 것임을 압니다. 그것은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을 하나님 앞에서 유죄로 드러내시려는 것입니다. “ 이제것 언급된 죄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율법아래 산다는 유대인들의 문제임을 밝힙니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던 자"라고 밝힙니다. (빌 3:6) 무슨 말입니까? 만약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될 수 있다면 바로 내가 그 사람이다. 그러했던 그가 오늘 본문을 씁니다, 오늘 이 본문은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자기 자신에 대한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율법을 최선을 다해 지켜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던 자였지만 “깨닫지도 못했고, 하나님을 두려워함도 하나님을 찾음도 없었고 올바른 길도 평강의 길도 알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결론으로 본문 20절에 언급된대로 율법을 지킴으로는 하나님앞에 인정받을 수 없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인식할 뿐입니다.”
율법이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의롭게 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라, 율법은 모든 인간을 심판할 하나님의 기준을 제시하고 얼마나 죄인인가를 보여주고 깨닫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인간의 죄의 문제의 해결책이 아닙니다. 거울과도 같습니다. 거울은 우리의 얼굴을 비추어 주고 얼굴의 깨끗지 못한 곳을 보여주지만 우리의 얼굴을 깨끗게 할 수는 없습니다. 율법의 법으로든 양심의 법으로든 그 어떤 인간의 방법이나 종교적인 노력으로도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릴 수 밖에는 없는 절망 가운데 있습니다.
이런 죄의 문제와 하나님의 심판과 자신의 무력을 느끼며
깊은 물에 빠져 스스로 헤어나올 수 없는 상황과 같은 절망.
불길에 휩싸여 빠져 나올 수 없는 상황과 같은 절망을 느낀만큼
우리는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감격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모두) 이런 구원을 경험했지만, 다시 한번 죄의 심각성과 하나님의 심판의 심각성 그리고 자신의 무력함을 돌아보며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감격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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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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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문제 (롬 3:9-20)
“그러면 어떻습니까? 우리 유대 사람에게 더 나은 것이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다같이 죄 아래에 있음을 우리가 이미 지적하였습니다. 10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11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12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다. 혀는 사람을 속인다."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 14 "입에는 저주와 독설이 가득 찼다." 15 "발은 피를 흘리는 일에 빠르며, 16 그들이 가는 길에는 파멸과 비참이 있다. 17 그들은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한다." 18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19 우리는, 율법에 있는 모든 말씀이 율법 아래 사는 사람에게 말한 것임을 압니다. 그것은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을 하나님 앞에서 유죄로 드러 내시려는 것입니다. 20 그러므로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인식할 뿐입니다.”
1. 모든 사람이 죄인이다.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다같이 죄 아래에 있음을 우리가 이미 지적하였습니다. 10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롬 3:9-10)
2.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심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가 한 대로 갚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마음과 자세와 생각과 행동과 마음의 깊은것 까지라도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롬2:6, 16)
3.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인간의 노력과 율법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길이 없다.
“우리는, 율법에 있는 모든 말씀이 율법 아래 사는 사람에게 말한 것임을 압니다. 그것은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을 하나님 앞에서 유죄로 드러 내시려 는 것입니다. 20 그러므로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인식할 뿐입니다.” (롬 3: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