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삶의 길: 새로운 특권 – 기도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시십시요” (에베소서 6:18) 5/3/201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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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 (at all times) 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all perseverance) 모든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에베소서 6:18)
동성결혼합법성에 관한 문제. 이북동포들, 탈북자들, 탈북자들을 돕는 분들, 그리고 그들을 돕다가 지금 북한에 억류된 분들. 네팔의 지진 피해를 당하는 분들. 믿음 때문에 박해를 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선교사님들. 미성년자 인신매매 문제등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놓고도 덤덤 해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라면, 이로 인해 금식하며 안타까와 하며 기도하고 이런 상황들을 변화시키려고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소수의 분들이 있습니다.
이들간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여 성령님의 탄식과 아픔을 느끼고 따르는 가 아니면 성령님의 음성에 둔감하거나 불순종 하는가에 있다고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평생 기도한다 할지라도, 성숙치 못한 어린애 처럼 “내 개인적인 소원, 기껏 내가족과 자녀들 내 교회가 잘되기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 외에는 할 수도 없고 할 생각도 못하는 자”로 인생을 끝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기도와 간구는 어떤 종류에 해당합니까? 무당이 굳하면서 귀신들에게 기도하는 것과 얼마나 다릅니까?
물론 신앙을 전적으로 자기 자신만을 위해 섬기는 자들의 신앙과 우리들의 신앙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도 드리고 죄의 고백도 하고 나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기도는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내가 속한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변하시키기에는 턱부족임을 느끼지 않습니까? 서두에 말씀 드린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우리는 무력하고 덤덤하고 무감각한 안타까움 조차 없는 우리들은 아닙니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번에 에베소서를 대충 흩어 보다가 우리들의 기도와 사도바울의 기도의 차원이 너무 다름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한번 에베소서에 기록된 바울의 기도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서 1:15- 19 “그러므로 나도, 여러분이 주 예수를 믿는다는 것과, 여러분이 모든 성도를 사랑한다는 것을 듣고서, 16 여러분을 기억하면서 기도를 올리며, 여러분을 두고 끊임없이 감사를 드립니다.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여러분에게 주셔서, 아버지를 알게 하시고, 18 여러분의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셔서 여러분에게 주신 그 소망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19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사람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그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에베소서 3:14 “그러므로 나는 무릎을 꿇고 아버지께 빕니다. 15 아버지는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분이십니다. 16 그분의 풍성한 영광으로, 그분의 성령을 시켜, 여러분의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주시고,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 속에 머물러 계시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이 사랑 속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아서, 18 모든 성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을 수 있게 되고, 19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으로 여러분이 충만해지기를 바랍니다.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을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넘치게 주실 수 있는 분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영원무궁 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여러분 이런 기도를 읽을 때 이 것이 어떻게 바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성령님께서 만이 주실 수 있는 기도란 생각이 안듭니까?
엡 6:19-20 “나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내가 입을 열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셔서 담대하게 복음의 비밀을 알릴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십시오. 20 나는 사슬에 매여 있으나, 이 복음을 전하는 사신입니다. 이런 형편에서도,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말을 담대하게 말할 수 있게 기도하여 주십시오.”
사도바울의 기도요청입니다. 우리같으면 어떻게 바울을 위해 기도했을까요? 사도바울의 건강과 안전 그리고 감금생활에서 빨리 풀려나오도록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사도바울이 무슨 기도를 요청합니까? 본인이 기도할 때 뿐 니라, 기도요청을 할 때에도 성령님의 인도함에 따라 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우리도 단지 우리 생각이나 마음에서 나오는 기도가 아니라 성령님 안에서 기도를 할 수 있을까? 제가 이번에 잠간 에베소서를 대충 흩어보면서 느낀 것은 바울의 기도문 뿐 아니라, 에베소서 내용 전체가 실상 바울의 성도들을 위한 기도문이란 것을 깨닫을 수 있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바울이라는 한 사람의 기도라기 보다는, 성령님의 성도들을 향한 그리고 그들을 위한 기도문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실 사도바울 자신도 이렇게 고백합니다:“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 2:13
바울은 성령님의 지배를 받아 기도하고 편지 내용을 썼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모든 교회가
바울서신이 하나님의 감동(숨결)에 의해서 성령님에 의해 기록된 것이라고 인정하고 성경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닙니까?
바울은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한다”라고 선포합니다. (디모데후서 3:16-17)
성경말씀은 성령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지혜 가운데 성경이 우리 삶에 필요한 모든 지침이 되게 하시고 이로 인해 그리스도인들로 유능하게 하고 온갖 선한 일을 하게하는 책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제대로 모르거나 성경말씀으로 우리의 심령이 충만치 않으면 아무리 지혜로운 자라도 인간의 뜻대로 밖에는 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려면 성경을 통해서 계속 주님의 뜻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할 때 성령님 안에서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기도를 드리되 무시로 (항상) 드리라고 말합니다. / 그러기 위해서 모든 인내로 깨어있어 구하라고 말씀합니다.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라는 사도바울의 권고는 영적싸움에 승리하기 위한 방법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와 권세자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로 하는 것입니다.“ 엡 6:12
그런데 이 영적싸움은 권투시합처럼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 싸움이 아닙니다. 주님이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까지 지속되는 싸움입니다: 벧전 5:7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다니며 삼킬자를 찾나니” 지금 이 설교시간 에도 그 싸움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여러가지 온갖 종류의 유혹, 염려, 명예, 돈, 쾌락, 음란, 스포츠, 차, 집, 의복, 직업, 권력, 자존심, 살림살이, 자식염려등 등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수 많은 것들로 계속 영향받고 유혹받고 도전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골 4: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라로 말씀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빠지게 되고 영적으로 잠자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세상에 양보하고 세상과 타협하며 우선권이 분명치 않은 삶을 살게됩니다. 영적인 민감성이 둔해져 불의를 보고도 분개할 줄 모르고, 영적축복보다는 세상적 축복을, 하나님의 평가보다는 사람들의 평가에, 자녀들의 영혼의 문제보다는 학벌, 직장등 현세적인 문제에 더욱 신경쓰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염려하고 계획하는 모든 것들이 영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세상적인 것들에 관한 것임을 발견하게됩니다.
그러나, 항상 깨어 있어 기도하는 성도는 온갖 상황을 영적으로 판단하는 안목이 생깁니다. 이런 사람은 의를 위해서라면 핍박을 감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에게 베풀고 배려하며 원수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고 원수를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백성들의 삶의 지침으로 가르치신 산상수훈의 삶을 살게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꼭 영적으로 깨어있는 삶을 살아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를 당신의 걸작품으로 만드시고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강렬한 소원때문에 그렇습니다. 아까 읽어드린 사도바울의 기도를 다시 한번 보세요.
엡 3:16 그분의 풍성한 영광으로, 그분의 성령을 시켜, 여러분의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주시고,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 속에 머물러 계시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이 사랑 속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아서, 18 모든 성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을 수 있게 되고, 19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으로 여러분이 충만해지기를 바랍니다
이 기도가 성령님께서 우리를 향해 갖고 계신 강렬한 기대와 소원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1:18 여러분의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셔서 여러분에게 주신 그 소망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19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사람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그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이 성도들의 마음의 눈을 밝혀지도록 간구합니다.
“어떤 분이 꿩사육장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꿩은 닭과는 달리 잘 날라다닐 수 있으니까, 꿩 사육장이 상당히 높고 크리라 생각 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까, 꿩사육장이 닭사육장처럼 의외로 낮고 좁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니까, 그 꿩들이 다들 꿩머리에 맞는 모자를 쓰고 있는데 이 모자를 쓰면 하늘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눈을 가린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꿩이 눈이 가려서 하늘을 못보니까 하늘이 있다는 것을 생각조차 안하고, 그저 땅에 떨어진 먹이에만 관심을 갖고 있고 날 생각을 안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육장이 크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충분히 날 수 있는 날개와 힘이 있음에도 눈이 가려서 하늘을 날 생각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문제도 시야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심을 받았으니,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2 여러분은 땅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지 말고,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십시오” (골로새서 3:1,2). 우 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모자를 쓴 꿩처럼 하늘을 보지 못하고 땅의 것만 보게되고 날개가 있고 날 힘이 있음에도 하늘을 훨 훨 날라 다니지 못하고 땅의 사람처럼 결국 살게되는 것입니다. 혹시 이 것이 우리들의 영적 모습은 아닌지요?
(여러분 목사인 제가 먼저 위에 것들을 분명히 볼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볼 수 있도록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위에 속한 것들을 분명히 전하고 말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기대를 깨닫지 못하고 이 땅에 것만 보고 산다면 문제는 우리 자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본인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자녀들이나 식구들이나 가까운 이웃이나 친구가 멸망의 길로 가더라도 우리는 무감각해지고 무기력해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친히 항상 기도하되 낙심치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살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지속적으로 간구하는 자들이 드물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의 테스트는 모든 인내로 끝까지 구하는 삶을 사는가에 있습니다. 저는 제 자신과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도전하고 싶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어 기도합시다”
3.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되 우리는 모든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라
성령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되게 하는 영이십니다. 성령님의 열매를 보십시요: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 23 온유와 절제. 사랑의 열매입니다. 성령님은 사랑의 영이기 때문에 성령님의 인도함 가운데 기도하는 자들은 다른 형제 자매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성령님의 인도함 가운데 기도하는 가를 보려면 형제자매를 위한 나의 기도가 있는지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시카고 대학에서 미래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목사님)이 한국교회의 미래를 예견하면서 2030년도에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300만 정도로 줄어들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정말 충격적인 이야기입니다. 그 요인이 여러가지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그 중 가장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가 우리 성도들이 서로 서로를 위해 기도하지 않고, 교회들끼리 서로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데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 모든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바울의 권고는 우리 모든 성도가 함께 영적인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함께 공동의 적인 사탄과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교회들도 함께 공동의 적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공동의식, 아군의식이 없습니다. 다 개인주의적이요 개교회주의적입니다.
영적지도자인 저부터 다른 교회들을 위해서 다른 교회목사님들을 위해서 특별한 문제가 있거나 부탁을 받을 때 외에는 기도를 안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다른 교회 다른 교회식구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별도로 하고, 여러분들의 배우자나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십니까? 그들의 영적성장을 위해서 그리고 자녀들이 믿음의 친구들을 만나도록, 악한 자들에게서 보호해달라고 기도하십니까? 그리고 여러분들은 교회 식구들을 위해서 기도하십니까? 여러분의 목사와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십니까?
사도바울의 특별한 삶과 사역의 비밀은 다른 성도들을 위한 꾸준한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롬 1: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골 1:9)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엡 1:15
그의 다른 성도를 위한 사랑이 그로 기도하게 하였고, 그의 기도때문에 다른 성도들을 사랑하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도 제 인생을 돌이켜 보며 저를 끊임없이 격려한 기도의 사람들 몇분이 있습니다. 비록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분들이지만 그들로 인해 나의 삶이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저는 이아브라함 목사님께서 저와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매일 기도하신다고 믿습니다. 저도 21세기 침례교회 목회자로서 제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여러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격려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제가 예수님을 영접한지가 40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지난 40년동안 특별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경험이 3번 있습니다. 그 세번 중에서도 가장 분명하게 들은 음성은 “네가 나의 팔이 되어주어라”란 주님의 음성입니다. 나의 손이 되어주어라 하셨으면, 손으로 할 일이 많으니까 이해가 되었을텐데, 또 입이나 귀나 눈이라도 좀 더 이해가 됬을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팔은 별로 할 일이 벗는 것 같아 의문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팔이 할일은 허그해 주는 것 밖에는 없지만 그 것이 주님의 부르심이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품어주고 안아주는 격려자로 부르신 것임을 다시 한번 생각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부담을 주시고 관심을 주셔서 위로의 아들이란 뜻의 ‘바나바’란 이름을 나의 이름으로 부른지 거의 30년이 되온다. 진정으로 모든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므로 격려하는 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격려는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심정에서 시작됩니다. 위로자이신 성령님으로부터 날마다 공급받는 격려로만 다른 성도들을 격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에서 감금되어 있는 상황에서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게 보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나도 여러분의 형편을 알고 격려를 받으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얼마나 염려하며 사랑하는 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아니라 디모데를 그들에게 보내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20 나에게는, 그와 같은 마음으로 여러분의 형편을 진심으로 염려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21 모두 다 자기의 일에만 관심이 있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빌 2:20-21)
예수님의 일이 무엇입니까? 성도들의 형편을 진심으로 염려해 주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묻습니다. 예수님의 일이 무엇입니까? 성도들의 형편을 진심으로 염려해 주는 것입니다.
지금 사도바울은 저와 여러분에게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명하므로 진정으로 성도들의 형편을 염려해 주는 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격려자가 되고 친구가 되어주라고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것이 그리스도의 일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자신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어 줄 자를 목말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또 교회의 지체로서 서로 서로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어줄 의무가 있습니다.
성도들 뿐 아니라, 모든 분 가족들과 친족들은 물론, 믿음이 아직 없는 분들도 자신을 진정으로 염려해 줄 자를 찾고 있습니다. 이 것은 의무이기 이전에 귀한 특권인 줄 압니다 진정으로 염려해주는 진실된 친구가 되어준다는 것은 기도로 시작합니다. 성령님 안에서 기도합시다 그리고 항상 무시로 기도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도록 합시다. 언제까지 죽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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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새로운 삶의 길: 기도의 특권”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 (at all times) 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all perseverance) 모든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엡 6:18)
1.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라
(예) 엡 1:15-19; 엡3:14-21;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2:13)
2. 그러기 위해서 모든 인내로 깨어있어 구하라
벧전 5:7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다니며 삼킬자를 찾나니” 골 4: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3. 모든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라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롬 1: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골 1:9)
“나는 주 예수 안에서 디모데를 여러분에게 곧 보내고 싶습니다. 그것은 나도 여러분의 형편을 알고 격려를 받으려는 것입니다. 20 나에게는, 그와 같은 마음으로 여러분의 형편을 진심으로 염려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21 모두 다 자기의 일에만 관심이 있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빌2:19-21)
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모든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라"란 말씀이 내 마음과 생각을 자극한다.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에 성공하는 자가 되고 싶다. 다시 기노노트를 정리한다. 나를 위해 책임있게 성실하게 기도해 주는 사람이 내게 필요하 듯, 나의 기도를 필요로 하는 수 많은 성도님들이 있다. 내게 만남을 허락하신 한 분 한 분을 위해 주님께서 돌아가셨다. 너무나도 귀한 분들이 그들을 주님의 눈길로 대할 수 있도록 신실한 기도자가 되기를 원한다. 주님, 기도를 통해 진정한 섬김과 사랑의 사역을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그 것이 성령님의 방법인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