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양육하라” 에베소서 6:1-4 2015년 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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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양육하라”
“Bring them up in the discipline and instruction of the Lord.”
에베소서 6:1 -4 “자녀이신 여러분, 주 안에서 여러분의 부모에게 복종하십시오. 이것이 옳은 일입니다. 2 "네 부모를 공경하여라" 한 계명은 약속이 딸려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 3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한 약속입니다. 4 또 아버지이신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
어떤 결혼하지 않은 전도사님이 올바른 자녀를 키우기 위한 10가지 비결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고합니다. 결혼을 하고 첫 애를 낳고 나서 같은 설교의 제목을 자녀양육을 위한 10가지 제안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 로, 두번째 아이를 낳고서는 자녀 양육을 위한 10가지 가능성 그리고
세번째 아이를 낳고서는 부모들을 위한 10가지 기도; 그리고 자녀들이 십대가 되고 나서는 “주여 부모들을 도와주소서”라고 설교제목을 바꾸었다고합니다. 자식을 낳고 키울 수록 점점 자녀 양육에 대한 자신을 잃어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자녀가 없기 때문에, 직접 경험은 못했지만, 자녀를 가진 부모님들을 볼 때, 정말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어렵고 힘들 일인 것을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 저는 특별히 어린 아이들 3,4 살짜리 어린 아이들을 유난히 좋아하는데, 제가 총각 때 고 나이 또래의 조카 둘을 하루반 맡아서 키워보고 애새끼는 날게 못된다고 단단히 결심을 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자녀 양육이 쉽지 않은 것은, 부모님에게서나 학교에서도 어떻게 자녀를 키울 것인가에 대해서 배우는 것도 아니고, 또 자녀를 낳았다고 해서, 병원이나 정부에서 자녀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지침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더 더욱 요즘 자녀들이 학교에서 받는 교육과 사회에서 받는 영향이 같은 방향이 아니라 엇갈려 갑니다. (부모들에게 순종하기를 배우기 보다는 오히려 부모들이여 자녀들에게 순종하고, 어른들이 어린아이들의 말을 잘 들어야한다는 것이 대세가 아닙니까?)
그런데, 말씀을 준비하면서 우리 성도님들 자녀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니까, 정말 다들 훌륭합니다. 여러분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씀이 아니라, 정말 하나같이 부모들에게 순종 잘하는 온순하고 착한 자녀들 같습니다. 맞습니까? 물론 그 것이 애들이 원래 착해서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여러분들이 양육을 잘해서인지는 잘 모르지만, 정말 훌륭한 자녀들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십계명중 인간관계에 관한 첫 계명 5계명으로 주어졌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일에 충성된 자녀들은 모든 인간관계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 본문에 보니까 단순히 부모에 대한 순종으로 끝나는게 아닙니다. 부모에게 순종을 하는데 주 안에서 하라고 말씀합니다. 단순히 부모에 대한 도덕적인 의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영적인 의무를 말하고 있습니다. 부모된 우리들로서는 자녀들이 주 안에서 복종하도록 교육해야한다는 말씀이기도합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이 우리들에게 순종을 잘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분인 주님을 따르는 일에 순종치 않는다면 이는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벌써, 미국에서의 통계지만, 어떤 분이 50년 동안 예수님을 믿게된 청년 크리스찬들의 가정 배경을 연구해 보니까, 대부분 부모님이 헌신된 그리스도인 가정 출신이나 아니면 비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난 자들이었다고 합니다. 놀라운 발견은 대충 대충 이름만 믿는다고 하는 그리스도인 가정보다는 차라리 불신자 가정에 태어난 청년들이 결국 예수님을 믿을 확률이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부모로 부터 어설프게 신앙에 대해서 소개 받으면 오히려 불신자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들 보다 그 신앙을 더 멀리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서, 교회생활을 하되 열심을 내지 않고 매일 교회나 다른 성도들에대한 불평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자녀들은 왜 신앙생활을 해야만 하는지 이해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U.S.A Today 3년전 기사인데요. Wilcox (director of the National Marriage Project at the University of Virginia)란 분이 소위 명목삭의 보수적 개신교인들이 종교와 무관한 사람들에 비해 오히려 이혼률이 20% 높다는 것입니다 (Nominal conservative Protestants were 20% more likely to divorce than the religiously unaffiliated.)
자녀들이 주 안에서 부모를 순종하는 단계까지 나아가는 것은 우리의 능력과 지혜로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인정합니다. 하나님께 그토록 신실했던 다윗이나, 사무엘, 히스기야 같은 신앙의 기라성 같은분들도 결국 그 자녀들은 믿음에 실패한 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만 우리들의 자녀들이 주안에서 부모를 순종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먼저 주님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에게 철저히 순종할 때 우리의 자녀들에게 주 안에서 부모를 순종하는 것을 가르칠 수 있을 것입니다.
2. 또 아버지이신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미국사회에 대한 한 통계에 의하면
over 40% of all children in America live in homes without fathers
90% of all homeless and runaway children are from fatherless homes.
85% of all children that exhibit behavioral disorders (비정상적 행동장애) come from fatherless homes. 85% of all youths sitting in prisons grew up in a fatherless home.
캐나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아빠 없이 자란 아이들의 뇌가 회복될 수 없게 손상되어 분노 가운데 성장하며 마약복용에 빠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Canadian scientists believe Growing up without a father can permanently alter the BRAIN: Fatherless children are more likely to grow up angry and turn to drugs)
자녀들 교육에 있어서 아버지의 역할의 중요성을 실감케 하는 정보입니다. 본문4절에 나와있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란 명령도 특별히 아버지들에게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서를 기록할 당시 로마제국에서는 법적으로 아내와 자녀들은 단지 남편의 재산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편된 자는 아내나 자녀를 버리거나 노예로 팔거나 심지어 원하면 죽일 권리까지도 있었다고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었듯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은 굉장한 변화를 의미합니다.
자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들에게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라고 명령합니다. 이는 자녀들을 재산으로가 아니라 막대하지 말고 인격적으로 대하라는 말씀아닙니까? 자녀들의 인권을 무시하던 이런 시대에도 어린아이를 귀하게 여기셨던 주님의 심정이 이 명령 속에 반영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마18:6)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부모님들의 잘못된 신앙 때문에 자녀들을 실족케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이미 말씀드렸지만 차라리 믿지 않는 집안에 태어나면 믿을 수 있었던 자녀가, 차겁지도 뜨겁지도 않게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은, 많은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자녀들을 실족하게 한다는 사실 아닙니까?
지금 한국에서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아버지가 예수 믿으면 자식에게 신앙 전수율이 50%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정말 도전이 되는 통계입니다. 좀 더 도전이 되는 것은 제가 들은 방송에 의하면 불교는 97%라고합니다. (얼마나 사실인지 의심이 가긴 하지만..) 좀 더 심각한 것은 회교도 신자들입니다. 이슬람 신자들의 신앙 전수율 공식적인 통계는 안갖고 있지만 상당히 높으리라고 집작합니다.
지금 한국의 무슬림 교인들이 20만명이라고 하는데 지난 50년동안 50배가 늘은 숫자라고 합니다. 2014년 3월에 발행된 국민일보 기사에 의하면 한국내 무슬림 5년 사이에 그러니까 2009년 서 2014년 사이에 새 262%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0년내 (2024) 100만명 육박할 듯 예상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는약 13만명 무슬림 국가 출신 사람들이 있는데, 한국인이 무슬림과 결혼 하면 영락없이 무슬림이 된다고 합니다.
우리들 자녀들에게 주님의 사랑의 복음을 전수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러기에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말라란 말씀 또한 너무 중요합니다. 자녀들을 귀하게 여기고 자녀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라는 말씀인데, 우리들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자녀들을 노하게 할 수 있으므로 특별한 주의가 요구됩니다. 다음과 같은 경우가 자녀들을 노하게 한다고합니다.
부모들이 훈계 하면서도 자신들의 말과 행동이 다를 때; 야단만 치고 칭찬하지는 않을 때; 훈계의 내용이 통일된 원칙이 없을 때; 자녀들에게 편애를 보일 때; 약속을 하고 지키지 않을 때; 자녀들에게 중요한 문제점들에 대해서 가볍게 여길 때; 자식간의 편애; 거짓말하게할 때; 약속을 안지킬 때; 감정적으로 심하게 야단치거나 때릴 때; 지나치게 무관심할 때; 지나친 보호; 도저히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다고 생각될 때; 부모와의 관계가 희망이 없다는 생각으로 좌절감을 느낄 때; 대화가 안통할 때
자녀들을 노엽게 만들므로 자녀로부터 존경받지 못한다면, 내가 믿는 그리스도도 존경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말을 안 하더라고 “그러려면 못하러 예수믿어? 못하러 교회에 다녀? 엄마 아빠나 열심히 믿으세요”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자녀들을 인격적으로 귀한 존재로 대하고 대화하되, 나를 통해서 참된 그리스도가 드러나도록. 그리고 정말 자녀들에게 우리의 믿음을 확실하게 그리고 확신있게 소개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겠습니다.
3.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
주님의 훈련과 훈계라 그러면 우리는 기도, 전도, 찬양, 말씀 공부 및 묵상등 주로 영적 신앙생활과 관련된 것에만 국한 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훈계란 모든 선한 일을 위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모든 성경은 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 후 3:16, 17
주님의 훈련과 훈계란 모든 선한 일, 삶의 모든 영역에 속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하는 것에 있어서, 사는 것 (행실)에 있어서 사랑과 믿음과 순결에서, 믿는 이들의 본이 되십시오. “라고 권고했던 것처럼, (딤전 4:12) 주님의 말씀은 교회생활에만 국한 되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영역에 관한 것입니다.
지난 목요일 라팔마에 있는 카이저 병원에 3층에 올라가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꼬마 여자 아이가 제 앞에서 먼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까 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젊은 아빠가 꼬마 여자 아이를 먼저들어가지 말라고 훈계합니다. 휠체어탄 제가 먼저 들어가게 해야한다는 것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이게 훈련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 꼬마아이가 사실은 먼저 들어갈라 그러는 것이 아니었어요. 사실은 제가 들어가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있도록 도우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어린 딸도 젊은 아빠도 귀하게 생각되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다보면 이런 상황들이 많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동양사람 한국사람들은 배려심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면에 있어서 우리 자녀들이 우리 어른들보다 훨씬 낫습니다. 가정에서 못받은 훈련을 학교나 동료나 사회로부터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지로 이런 훈련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니고에 관련이 있다기 보다는 지식과 훈련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적인 문화권에서 자란 서양의 무신론자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한국의 신자보다 더 예의롭고 더 친절하고 더 배려깊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들의 자녀들이 교회모임에 열심히 다니는 우리 아빠보다 무신론자인 내 친구가 내 친구 아빠가 더 예수님을 닮았다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것은 정말 무섭고 심각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하라고 말씀합니다. 아주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자녀를 가르치기 전에, 우리 자신 스스로가 먼저 얼마나 훈련되어 있고 얼마나 주님의 말씀을 얼마나 잘 알고 지키고 있습니까? 과연 우리들의 자녀들을 훈련하고 훈계할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우리는 남들에게 친절하고 배려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그리고 자녀들에게 어떻게 학교생활 사회생활을 해야할지 가르치고 있습니까? 우리가 지금 동성결혼합법화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동서결혼이 성서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의학적으로 문제가 무엇인지 우리는 자녀들에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자녀들에게 기도와 말씀 묵상등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고 훈련시킬 수 있습니까?
기도에 관한 훈련, 전도에 관한 훈련, 말씀에 관한 훈련 등 소위 영적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의 사역을 하기 위한 훈련, 말씀공부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공부요 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어떻게 부부로서 가정생활을 해야하는지,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지, 어떻게 재정을 관리 해야 하는지; 어떻게 직장생활하고 어떻게 사회참여하는지 등 등의 훈련도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훈련이 너무도 많습니다. 이를 위해 지혜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경공부등 훈련을 받음에도 변화되지 않는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인해 실망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소위 제자훈련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사랑의 교회’가 저 모양으로 굴러가는 데 소위 제자훈련이란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란 회의를 갖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분명하게 흔들리지 않고 가져야할 확신이 있습니다. 그 것은.
“성경은 이런 모든 선한 일을 위해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근거한 모든 삶의 영역의 훈련을 받아야겠습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점이 너무 많지만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좀 더 철저하게 매주 성경공부를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순종으로 우리가 좀 더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준비되어 자녀들에게 믿음과 믿음의 삶을 전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시 오늘 말씀을 요약합니다.
1. 우리의 자녀들도 주 안에서 부모를 순종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가장 우선적으로 우리 스스로가 먼저 주님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에게 철저히 순종해야겠습니다.
2.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않으려면, 자녀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며 나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드러나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자녀들에게 우리의 믿음을 확실하게 그리고 확신있게 소개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겠습니다.
3. 자녀들을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양육하려면, 내 스스로 먼저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변화된 삶을 경험해야겠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전장 에베소서 5장에는 성령충만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리고 자녀 양육에 관해 말슴하기 전에 에베소서 5장에서 남편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듯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 남편에게 복종할 것을 당부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후에는 6장 중반부에 영적전쟁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자녀 양육이란 성령충만과 성서적인 부부관계를 전제로 한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것은 또한 영적전쟁의 일부란 것을 우리가 받아들여야할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주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자녀 양육에 성공하는 우리 모든 부모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ring them up in the discipline and instruction of the Lord.”
에베소서 6:1 -4 “자녀이신 여러분, 주 안에서 여러분의 부모에게 복종하십시오. 이것이 옳은 일입니다. 2 "네 부모를 공경하여라" 한 계명은 약속이 딸려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 3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한 약속입니다. 4 또 아버지이신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
어떤 결혼하지 않은 전도사님이 올바른 자녀를 키우기 위한 10가지 비결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고합니다. 결혼을 하고 첫 애를 낳고 나서 같은 설교의 제목을 자녀양육을 위한 10가지 제안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 로, 두번째 아이를 낳고서는 자녀 양육을 위한 10가지 가능성 그리고
세번째 아이를 낳고서는 부모들을 위한 10가지 기도; 그리고 자녀들이 십대가 되고 나서는 “주여 부모들을 도와주소서”라고 설교제목을 바꾸었다고합니다. 자식을 낳고 키울 수록 점점 자녀 양육에 대한 자신을 잃어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자녀가 없기 때문에, 직접 경험은 못했지만, 자녀를 가진 부모님들을 볼 때, 정말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어렵고 힘들 일인 것을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 저는 특별히 어린 아이들 3,4 살짜리 어린 아이들을 유난히 좋아하는데, 제가 총각 때 고 나이 또래의 조카 둘을 하루반 맡아서 키워보고 애새끼는 날게 못된다고 단단히 결심을 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자녀 양육이 쉽지 않은 것은, 부모님에게서나 학교에서도 어떻게 자녀를 키울 것인가에 대해서 배우는 것도 아니고, 또 자녀를 낳았다고 해서, 병원이나 정부에서 자녀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지침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더 더욱 요즘 자녀들이 학교에서 받는 교육과 사회에서 받는 영향이 같은 방향이 아니라 엇갈려 갑니다. (부모들에게 순종하기를 배우기 보다는 오히려 부모들이여 자녀들에게 순종하고, 어른들이 어린아이들의 말을 잘 들어야한다는 것이 대세가 아닙니까?)
그런데, 말씀을 준비하면서 우리 성도님들 자녀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니까, 정말 다들 훌륭합니다. 여러분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씀이 아니라, 정말 하나같이 부모들에게 순종 잘하는 온순하고 착한 자녀들 같습니다. 맞습니까? 물론 그 것이 애들이 원래 착해서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여러분들이 양육을 잘해서인지는 잘 모르지만, 정말 훌륭한 자녀들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십계명중 인간관계에 관한 첫 계명 5계명으로 주어졌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일에 충성된 자녀들은 모든 인간관계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 본문에 보니까 단순히 부모에 대한 순종으로 끝나는게 아닙니다. 부모에게 순종을 하는데 주 안에서 하라고 말씀합니다. 단순히 부모에 대한 도덕적인 의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영적인 의무를 말하고 있습니다. 부모된 우리들로서는 자녀들이 주 안에서 복종하도록 교육해야한다는 말씀이기도합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이 우리들에게 순종을 잘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분인 주님을 따르는 일에 순종치 않는다면 이는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벌써, 미국에서의 통계지만, 어떤 분이 50년 동안 예수님을 믿게된 청년 크리스찬들의 가정 배경을 연구해 보니까, 대부분 부모님이 헌신된 그리스도인 가정 출신이나 아니면 비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난 자들이었다고 합니다. 놀라운 발견은 대충 대충 이름만 믿는다고 하는 그리스도인 가정보다는 차라리 불신자 가정에 태어난 청년들이 결국 예수님을 믿을 확률이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부모로 부터 어설프게 신앙에 대해서 소개 받으면 오히려 불신자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들 보다 그 신앙을 더 멀리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서, 교회생활을 하되 열심을 내지 않고 매일 교회나 다른 성도들에대한 불평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자녀들은 왜 신앙생활을 해야만 하는지 이해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U.S.A Today 3년전 기사인데요. Wilcox (director of the National Marriage Project at the University of Virginia)란 분이 소위 명목삭의 보수적 개신교인들이 종교와 무관한 사람들에 비해 오히려 이혼률이 20% 높다는 것입니다 (Nominal conservative Protestants were 20% more likely to divorce than the religiously unaffiliated.)
자녀들이 주 안에서 부모를 순종하는 단계까지 나아가는 것은 우리의 능력과 지혜로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인정합니다. 하나님께 그토록 신실했던 다윗이나, 사무엘, 히스기야 같은 신앙의 기라성 같은분들도 결국 그 자녀들은 믿음에 실패한 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만 우리들의 자녀들이 주안에서 부모를 순종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먼저 주님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에게 철저히 순종할 때 우리의 자녀들에게 주 안에서 부모를 순종하는 것을 가르칠 수 있을 것입니다.
2. 또 아버지이신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미국사회에 대한 한 통계에 의하면
over 40% of all children in America live in homes without fathers
90% of all homeless and runaway children are from fatherless homes.
85% of all children that exhibit behavioral disorders (비정상적 행동장애) come from fatherless homes. 85% of all youths sitting in prisons grew up in a fatherless home.
캐나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아빠 없이 자란 아이들의 뇌가 회복될 수 없게 손상되어 분노 가운데 성장하며 마약복용에 빠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Canadian scientists believe Growing up without a father can permanently alter the BRAIN: Fatherless children are more likely to grow up angry and turn to drugs)
자녀들 교육에 있어서 아버지의 역할의 중요성을 실감케 하는 정보입니다. 본문4절에 나와있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란 명령도 특별히 아버지들에게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서를 기록할 당시 로마제국에서는 법적으로 아내와 자녀들은 단지 남편의 재산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편된 자는 아내나 자녀를 버리거나 노예로 팔거나 심지어 원하면 죽일 권리까지도 있었다고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었듯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은 굉장한 변화를 의미합니다.
자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들에게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라고 명령합니다. 이는 자녀들을 재산으로가 아니라 막대하지 말고 인격적으로 대하라는 말씀아닙니까? 자녀들의 인권을 무시하던 이런 시대에도 어린아이를 귀하게 여기셨던 주님의 심정이 이 명령 속에 반영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마18:6)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부모님들의 잘못된 신앙 때문에 자녀들을 실족케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이미 말씀드렸지만 차라리 믿지 않는 집안에 태어나면 믿을 수 있었던 자녀가, 차겁지도 뜨겁지도 않게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은, 많은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자녀들을 실족하게 한다는 사실 아닙니까?
지금 한국에서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아버지가 예수 믿으면 자식에게 신앙 전수율이 50%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정말 도전이 되는 통계입니다. 좀 더 도전이 되는 것은 제가 들은 방송에 의하면 불교는 97%라고합니다. (얼마나 사실인지 의심이 가긴 하지만..) 좀 더 심각한 것은 회교도 신자들입니다. 이슬람 신자들의 신앙 전수율 공식적인 통계는 안갖고 있지만 상당히 높으리라고 집작합니다.
지금 한국의 무슬림 교인들이 20만명이라고 하는데 지난 50년동안 50배가 늘은 숫자라고 합니다. 2014년 3월에 발행된 국민일보 기사에 의하면 한국내 무슬림 5년 사이에 그러니까 2009년 서 2014년 사이에 새 262%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0년내 (2024) 100만명 육박할 듯 예상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는약 13만명 무슬림 국가 출신 사람들이 있는데, 한국인이 무슬림과 결혼 하면 영락없이 무슬림이 된다고 합니다.
우리들 자녀들에게 주님의 사랑의 복음을 전수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러기에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말라란 말씀 또한 너무 중요합니다. 자녀들을 귀하게 여기고 자녀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라는 말씀인데, 우리들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자녀들을 노하게 할 수 있으므로 특별한 주의가 요구됩니다. 다음과 같은 경우가 자녀들을 노하게 한다고합니다.
부모들이 훈계 하면서도 자신들의 말과 행동이 다를 때; 야단만 치고 칭찬하지는 않을 때; 훈계의 내용이 통일된 원칙이 없을 때; 자녀들에게 편애를 보일 때; 약속을 하고 지키지 않을 때; 자녀들에게 중요한 문제점들에 대해서 가볍게 여길 때; 자식간의 편애; 거짓말하게할 때; 약속을 안지킬 때; 감정적으로 심하게 야단치거나 때릴 때; 지나치게 무관심할 때; 지나친 보호; 도저히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다고 생각될 때; 부모와의 관계가 희망이 없다는 생각으로 좌절감을 느낄 때; 대화가 안통할 때
자녀들을 노엽게 만들므로 자녀로부터 존경받지 못한다면, 내가 믿는 그리스도도 존경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말을 안 하더라고 “그러려면 못하러 예수믿어? 못하러 교회에 다녀? 엄마 아빠나 열심히 믿으세요”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자녀들을 인격적으로 귀한 존재로 대하고 대화하되, 나를 통해서 참된 그리스도가 드러나도록. 그리고 정말 자녀들에게 우리의 믿음을 확실하게 그리고 확신있게 소개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겠습니다.
3.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
주님의 훈련과 훈계라 그러면 우리는 기도, 전도, 찬양, 말씀 공부 및 묵상등 주로 영적 신앙생활과 관련된 것에만 국한 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훈계란 모든 선한 일을 위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모든 성경은 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 후 3:16, 17
주님의 훈련과 훈계란 모든 선한 일, 삶의 모든 영역에 속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하는 것에 있어서, 사는 것 (행실)에 있어서 사랑과 믿음과 순결에서, 믿는 이들의 본이 되십시오. “라고 권고했던 것처럼, (딤전 4:12) 주님의 말씀은 교회생활에만 국한 되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영역에 관한 것입니다.
지난 목요일 라팔마에 있는 카이저 병원에 3층에 올라가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꼬마 여자 아이가 제 앞에서 먼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까 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젊은 아빠가 꼬마 여자 아이를 먼저들어가지 말라고 훈계합니다. 휠체어탄 제가 먼저 들어가게 해야한다는 것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이게 훈련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 꼬마아이가 사실은 먼저 들어갈라 그러는 것이 아니었어요. 사실은 제가 들어가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있도록 도우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어린 딸도 젊은 아빠도 귀하게 생각되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다보면 이런 상황들이 많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동양사람 한국사람들은 배려심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면에 있어서 우리 자녀들이 우리 어른들보다 훨씬 낫습니다. 가정에서 못받은 훈련을 학교나 동료나 사회로부터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지로 이런 훈련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니고에 관련이 있다기 보다는 지식과 훈련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적인 문화권에서 자란 서양의 무신론자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한국의 신자보다 더 예의롭고 더 친절하고 더 배려깊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들의 자녀들이 교회모임에 열심히 다니는 우리 아빠보다 무신론자인 내 친구가 내 친구 아빠가 더 예수님을 닮았다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것은 정말 무섭고 심각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하라고 말씀합니다. 아주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자녀를 가르치기 전에, 우리 자신 스스로가 먼저 얼마나 훈련되어 있고 얼마나 주님의 말씀을 얼마나 잘 알고 지키고 있습니까? 과연 우리들의 자녀들을 훈련하고 훈계할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우리는 남들에게 친절하고 배려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그리고 자녀들에게 어떻게 학교생활 사회생활을 해야할지 가르치고 있습니까? 우리가 지금 동성결혼합법화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동서결혼이 성서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의학적으로 문제가 무엇인지 우리는 자녀들에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자녀들에게 기도와 말씀 묵상등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고 훈련시킬 수 있습니까?
기도에 관한 훈련, 전도에 관한 훈련, 말씀에 관한 훈련 등 소위 영적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의 사역을 하기 위한 훈련, 말씀공부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공부요 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어떻게 부부로서 가정생활을 해야하는지,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지, 어떻게 재정을 관리 해야 하는지; 어떻게 직장생활하고 어떻게 사회참여하는지 등 등의 훈련도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훈련이 너무도 많습니다. 이를 위해 지혜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경공부등 훈련을 받음에도 변화되지 않는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인해 실망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소위 제자훈련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사랑의 교회’가 저 모양으로 굴러가는 데 소위 제자훈련이란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란 회의를 갖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분명하게 흔들리지 않고 가져야할 확신이 있습니다. 그 것은.
“성경은 이런 모든 선한 일을 위해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근거한 모든 삶의 영역의 훈련을 받아야겠습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점이 너무 많지만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좀 더 철저하게 매주 성경공부를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순종으로 우리가 좀 더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준비되어 자녀들에게 믿음과 믿음의 삶을 전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시 오늘 말씀을 요약합니다.
1. 우리의 자녀들도 주 안에서 부모를 순종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가장 우선적으로 우리 스스로가 먼저 주님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에게 철저히 순종해야겠습니다.
2.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않으려면, 자녀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며 나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드러나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자녀들에게 우리의 믿음을 확실하게 그리고 확신있게 소개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겠습니다.
3. 자녀들을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양육하려면, 내 스스로 먼저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변화된 삶을 경험해야겠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전장 에베소서 5장에는 성령충만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리고 자녀 양육에 관해 말슴하기 전에 에베소서 5장에서 남편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듯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 남편에게 복종할 것을 당부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후에는 6장 중반부에 영적전쟁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자녀 양육이란 성령충만과 성서적인 부부관계를 전제로 한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것은 또한 영적전쟁의 일부란 것을 우리가 받아들여야할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주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자녀 양육에 성공하는 우리 모든 부모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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