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삶의 길: 새로운 관계 (다른 성도들과 –친교) “서로를 깊이 생각하라” (히브리서 10:24-25) 6/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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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삶의 길: 새로운 관계 (다른 성도들과 –친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 (격려) 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서 10:24-25
약 한달 쯤 전에 여전도회와 남전도회가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대학생들에게 컾 라면과 여러가지 간식등 각 학생들에 선물을 소포를 보냈습니다. 이 학생들이 누군가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구나 격려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제 마음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뻤던지요. 각 학생들에게 보낸 선물은 값은 운송비까지 50불정도 들었지만 그 가치는 영어로 priceless라고 하지요. 값으로는 메길 수 없을 정도로 가치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무슨 말씀인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폴 투르니에 (Paul Tournier)는 “선물을 주는 것은 사실상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베풀고 주는 것은 우리에게 값으로 메길 수 없는 참 기쁨을 선물합니다. 더 더욱 선물을 받은 학생들이 글로 말로 감사하다는 뜻을 전해왔을 때 저의 마음이 더욱 기쁘고 풍성해짐을 느꼈습니다.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대하는 마음도 마찬가지이지요. 자녀들에게 날마다 멕여주고 입혀주고 돌봐주고 사랑을 베풀지만 손해를 봤다거나 희생을 했다고 느끼는 부모는 한 분도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사랑을 베풀면서 더 마음이 기뻐질 줄 압니다. 더 더욱 그 사랑을 받은 자녀들이 부모님에게 감사의 뜻을 전할 때 부모님의 마음이 기쁘고 풍성해지겠습니까? 이 것이 행복한 가정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주면서 베풀면서 희생하면서 복된 것을 느끼는 마음이 어디서 왔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지으실 때, 빛을 만드시고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바다를 만드시고 그 안에 모든 식물과 꽃과 과일나무와 온갖 짐승을 만들 때마다 얼마나 기뻐하셨습니까? 그 기뻐하신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맨 마지막에 만든 인간을 염두에 두고 인간에게 그 모든 것을 선물로 주실 것을 생각하시면서 그렇게 보기 좋다고 기뻐하신 것 아닙니까?
지금 현재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리는 모든 것, 맑은 공기 그리고 그 것을 숨쉴 수 있는 우리 호흡기관, 음식, 친구들, 식구들.. 이 모든 것들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면서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것들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 찬양, 기쁨 고백, 결단을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합니다.
이번에 학생들에게 선물을 보내고 기뻐서 자주 보냈으면 좋겠다고 어떤 분에게 그랬더니 학생들에게도 선물을 너무 자주 보내면 마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감사를 안하게될 것이라는 염려를 하더라고요. 사실입니다. 그래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입니다. 주고 베푸는 것이 주님을 닮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4분만 공기를 안마시면 뇌가 죽어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시는 물, 음식, 그 외 모든 것들 우리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고마움을 잊고 삽니다. 8일전에 오셔서 우리에게 말씀을 전해 주었던 김광선 목사님의 간증을 기억하시지요? 이분이 해병대로서 월남전에 파송되어 당시 청룡부대 해병대가 약 30%가 전사했다고 합니다. 죽음의 위협을 느낄 때마다 생명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강한지 평생 지옥같은 곳에서 바늘 방석에 앉아 살게되더라도 살고싶더란 그 목사님의 이야기를 기억하시지요.
왜 그렇습니까? 막상 죽음을 앞두고 보니까, 매일 아침 일어나면 해가 자동적으로 뜨고 아름다운 날씨와 꽃과 푸른 나무잎과 하늘과 먹을 것과 입을 것 식구들 친구들 다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들이 얼마나 귀한 선물이었다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홍혜정 자매님도 얼굴 오른쪽 신경이 마비되어 고생하고 있습니다. 신경이 작동되어 우리 안면을 맘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중에 누가 감사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설 수 있고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내려오시던 중 10명의 문둥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러나 그 10명중 단 한명만 감사하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다시 왔습니다. 이 것이 우리 감사할지 모르는 인간들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부터 열가지 우리가 감사해야할 것으로 쌓여있는데 우리는 감사치 않습니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다 주신 것인데 다 인간들은 우연이나 자기 노력의 결과로 생각합니다. 오히려 더 좋은 것을 안준다고 불평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라고 말할 때 다른 사람을 속인다거나 미워한다거나 도적질하고 해하는 자를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람을 속이고 도적질하고 해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 가운데 살면서도 전혀 하나님께 감사함을 드리지 못하는 삶, 마치 자기 능력으로 사는 것처럼 자만하고 착각하는 것이 이 것이 하나님 앞에서 큰 죄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사는 자들을 구하시려, 최종적으로 하나님께서 가장 귀중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이란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을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자들에게는 너무 귀한 축복이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큰 만큼 하나님이 베푸신 사랑과 배려가 큰만큼, 이에 대한 감사가 없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죄인인 이유입니다. 반면 이 놀라운 선물로 인해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자는 풍성한 삶을 누릴 것입니다.
제 인생을 돌이켜 볼 때 영적으로 가장 풍성했던 때가 하나님을 가장 많이 찬양했을 때 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약 31년 전에 죽기전에 100만번 주님을 찬양하고 죽어야겠다고 결심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계산해보니까 하루에 100번씩 30년간 주님을 찬양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부지런히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답답할 때나 누가 나를 건드릴 때나 감사할 떄나 할렐루야를 외쳤습니다. 그럴 때에 제가 신학교에서 이아브라함목사님을 만났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이목사님이 그 때 저를 천사 비슷하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 와서 다시 만나서 함께 만나서 동역하면서 좀 더 가까이 보니까 본인이 속았었다는 것을 깨닫게되셨다고 말씀하셨지요. 제가 다시 주님을 그렇게 매일 찬양하면 다시 천사가 되리가 믿습니다. 다시 천사가 되겠습니다.
부모님이나 배우자나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잃게된 자들의 공통적인 후회가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혹은 배우자가 살아있을 동안에 감사하다 사랑한다는 말이나 표현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가장 후회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감사할 내용보다는 원망할 것을 더욱 잘 찾아내고 기억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부모님께 그리고 배우자에게 감사할 내용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목사와 성도들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부족하지만 그래도 서로 감사할 내용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감사할 내용이 떠 오르기 보다는 불평이나 원망할 내용이 더 떠오르기 쉬운 것이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그런데 정말 우리가 주의 해야할 것은 우리가 배우자나 그 누구에게 원망이나 불평을 하게되면 상대방이 실지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어제 텍사스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어떤 남자가 경찰들을 죽이려고 경찰본부에 가서 기관총까지 난사하고 도망가서 경찰들에게 몰려 대치된 상태에서 911에 전화를 해서 자신의 범행동기: 이 사람이 이혼한 남자인데 아이 양육권에 관해서 경찰과 논란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경찰이 그 남자에게 테러리스트라고 욕을 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닌데 자신을 테러리스트라고 몰아부쳤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런데 결국 실지로 테러리스트가 되고 결국 대치하던 경찰의 총에 맞아 결국 사살당한 비극적 사건이 바로 어제 새벽에 벌어졌습니다.
여러분 자녀들에게 원망하고 불평하고 욕해보세요 어쩌면 그들이 분개심을 가지고 그 원망한대로 불평한대로 욕들은 대로 똑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할지 모릅니다. “빌어먹을 놈”하고 “그래 나는 빌어목을 놈이다”라고 결단할지 모릅니다. 무서운일입니다. 배우자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딤후 3:1-3)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비방함, 원통함을 풀지 아니함, 모함, 사납게 대함, 배신, 조급함, 자만 – 이런 것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감사가 없다보니 칭찬도 없고 격려도 없고 베풀거나 이해해 주거나 받아주거나 위해 주는 것이 없습니다. 지옥과 같은 삶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감사하며 서로를 격려하며 서로에게 베풀므로 풍성한 삶을 경험할 수 있을까?
본론: 서로서로를 생각하라: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 (격려) 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오늘 본문 24절 말씀 첫부분을 보니까 “서로 돌아보아”라고 말씀합니다. 서로 서로란 지금 이미 서로에게 알려진 관계를 말합니다 이미 서로 알고 있는 교회식구들을 말합니다. 돌아본다는 뜻이 무엇인가? 히브리서 3:1절에 보면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란 뜻과 똑 같은 원어에서 나온 말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듯 생각을 서로에게 집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서로에게 관심의 초점을 맞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려깊게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연구하듯 상대방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fix your thoughts on Jesus think carefully; keep your focus on; consider; look carefully at Jesus)
우리가 어떻게 서로에 대한 진정한 감사와 사랑의 표현을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서로서로 섬기고 용서하고 짐을 져주고 헌신하고 받아주고 존경하고 격려하라고 말씀했는데 이런 일들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서로 서로를 깊이 생각”하는데 그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깊이 생각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듯, 배우자를 깊이 생각해주고 형제를 깊이 생각해 주는 것입니다. 다른 성도를 깊이 생각해 주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해 주는 것이 사랑이고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는 방법입니다: 지난 주 주일에 여러분들을 깊이 생각을 못해서 제가 한어로 설교를 따로 준비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상대방을 깊이 생각할 수 있을까? 8일전에 김광선 목사님께서 오셔서 상대방을 경청하는 달인이 되겠다는 인생의 목적을 가지고 사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상대방을 깊이 생각하려면 먼저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려면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해야하는 것처럼, 상대방을 깊이 생각하려면 상대방을 경청해야할 것입니다. 경청 해야지만 우리는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매주 예배모임을 가지면 설교를 듣게됩니다. 여러분들이 경청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아주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설교는 일방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서로를 돌아보라 그러고 서로 격려하라고 말씀합니다. 매주 듣는 설교도 아주 중요하지만, 서로 서로 경청하고 서로를 깊이 생각하기 위해서는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소그룹으로 만남을 가져야합니다. (소그룹으로 모이기를 등한히 한다는 것은 서로를 경청하고 서로를 깊이 아는 것을 포기하거나 게을리 하겠다는 이야기요 서로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등한히 하겠다는 결론이 나게됩니다.)
또 서로를 위해 돌아보고 깊이 생각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한가지는 우리 관계 가운데 예수님이 주인이신가 하는 질문입니다.
근세의 유명한 철학자인 마르틴 부버는 (‘나와 너’라는 책을 통해서) 세 가지의 인간관계를 말합니다. 첫째 ‘그것과 그것의 관계’입니다. 서로를 자기에게 필요한 물건으로 여기는 관계, 그러니까 이용 가치가 없으면 버리는 관계입니다. 생명이 없는 무인격 관계입니다.
둘째로는 ‘나와 그것의 관계’입니다. 이 말은 상대방은 나를 물건처럼 이용해도 나는 상대방을 끝까지 인격적으로 대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대하지만 상대방은 나를 이용할 물건처럼 생각하는 관계입니다.
세째는 ‘나와 너’의 관계입니다. 서로 인격과 인격으로 대해 주는 관계라고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관계인 것같지만, 그러나 이런 관계 역시 언젠가는 깨질 수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인격은 자기 중심적인 성향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기때문일 것입니다. 성도간에 교회지도자들 간에 그렇게 가까운 것 같다가도 하루 사이에 서로 남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마티부버는 나와 너 사이를 중매하는 영원자가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나와 너 사이에 영원자인 그리스도가 개입되지 않으면 “나와 너의 관계”가 지속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서로를 깊이 생각하기 전에 먼저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인간이 추구하는 것보다 더 높고 귀한 가치를 보지 못한다면 우리가 서로를 인격적으로 대하더라도 그 관계는 깨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나와 너의 관계 속에 예수님이 중개자로서 역사하시게할 수 있는가?
저는 서로 만났을 때 우리는 각 자가 주님을 예배하는 자로서 만나야만 주님 안에서의 교제가 가능하고 주님께서 우리의 관계를 지켜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성도의 교제는 그러므로 주님을 예배하는 시간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또 한가지 진정으로 서로를 생각하는 자들이 되기 위한 조건은 평소에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가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기도가운데 상대방을 축복합니다. 그들의 가장 선한 모습을 그립니다.
기도를 통해서 상대방을 그리스도의 관점과 심정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위해 기도하면 할 수록 실지로 그리스도의 관점으로 상대방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미워하는자 용서못할 자가 있다면 기도로 시작해 보십시요. 그러면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랑까지 하게될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 진심으로 자신보다 상대방을 귀하게 높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사랑하게됩니다.
마치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주면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사실은 본인에게 유익을 먼저 줍니다. 우리 자신이 먼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상대방에게 진정으로 생각하게 되면 진정한 사람과 진정한 감사를 나누고 풍성한 삶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상대방을 경청하고 소그룹으로 만나 예수님을 중심으로 대화를 나누고 또 떨어져 있을 때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일을 당장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 (격려) 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예수님을 만날 날을 말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미루지 말고 서로를 깊이 생각하는 삶을 당장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진실로 생각한 적이 언제입니까? 진실로 서로 만나서 경청하기에 힘쓴 적이 언제입니까? 소그룹으로 모이기를 힘쓰고 있습니까? 함께 만나되 주님을 예배하는 자로서 만납니까? 서로 떨어져 있을 때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서로 경청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므로 서로를 돌아보는 자 서로를 깊이 생각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서로를 위해 격려하고, 어떻게 사랑과 선행을 행할 수 있을가를 계획하며 베풀고 감사하는 삶을 살므로 풍성한 삶을 누리는 우리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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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서로를 깊이 생각하라”
“새로운 삶의 길: 새로운 관계 (다른 성도들과 –친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 (격려) 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서 10:24 -25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서로 돌아보는 것입니다. 서로 돌아보라는 말씀은 히브리서 3장 1절에 언급된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라고 말씀중 “깊이 생각하라”라는 말씀과 원어적으로 똑 같은 단어입니다. 서로를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서로를 깊이 돌아보기 위해서는
1. 서로에게 경청해야합니다.
서로 경청하는 것은 우리들의 마음의 듣고저 하는자세 뿐 아니라 서로 경청할 수 있는 기회를 위해 소그룹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2. 서로의 관계 속에 예수님이 주인이 되도록 해야합니다.
성도들이 서로를 깊이 생각하는 것은 (돌아보는 것은) 먼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3.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