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 언제나 감사하라" 엡 5:20 11/23/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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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교회당으로 오는 길에 yard sale을 하는 분들을 보면서 측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평상시 주일날에도 yard sale을 하는 분들을 쉽게 보지만 추수감사주일에까지 야드세일을 하는 분들을 보면서 그 분들과 하나님을 예배하러 모임에 참여하는 분들과의 차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분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분들이라면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며 살면서 감사할 대상도 없다는 사실이요,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위해 하나님께 의존하며, 또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진정으로 감사할 대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감사해야할 대상과 이유가 있는 자들이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라는 명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은 “감사하는 자”입니다.
Abraham Lincoln 대통령은 약 150년전쯤 추수감사절을 국가적인 공휴일로 제정하여 1년에 한 날을 정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도록 하였지만 우리 하나님은 일년에 하루가 아니라, 매일 매일이 감사의 날이 되기를 원하시는 분이시요 오늘 본문 말씀처럼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리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엡 5:20)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데살로니가 전서 5:16절도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 골로새서 3:17: “그리고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을 하든지 주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면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십시요.”라고 말씀합니다.
단지 감사하라고 명령하지 않고 모든 일에 언제나 그리고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을 하든지 감사를 드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도바울이 에베소서 골로새서를 기록하면서 모든 일에 언제나 감사하라고 말할 때에는 본인 자신이 감옥생활을 하는 가운데 당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편지글을 읽을 각 교회 내에는 분명 병을 앓는 사람도 있고 또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도 있고 직업을 잃은 사람도 있고 특별히 데살로니가 교회같은 경우는 심한 박해를 겪고 있었고 그외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었지만 이들 모두에게 감사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언제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고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는, 사도바울은 이들이 겪는 박해 자체를 감사하라 혹은 이들이 겪는 문제자체를 감사하라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무조건 적인 감사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좋은 것들에 대해서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감사할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 본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법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 병이 낫게 된것, 사업이나 직장의 문제가 해결된 것, 자녀들의 문제가 잘 풀린 것,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게 된 것, 직업을 갖게된 것, 관계성이 회복된 것, 등 등 우리 삶에 일어난 좋은 것을 말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이런 것들로 인해 감사할 수 있고 또 감사해야합니다. 그러나 이런 감사의 조건들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변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건강하던 사람이 건강을 잃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자녀가 말을 잘 들을 수 있지만 내일은 반항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해결된 법적인 문제가 사업의 문제가, 관계성의 문제가 내일 꼬이 거나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갑자기 직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를 드리되 언제든지 감사하려면 감사할 내용이 지속성이 있어야만 합니다.
사실 돈만 있으면 위에 언급한 문제들을 포함해서 삶에서 겪는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어떤면에서 평생 부자로 사는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감사할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부자로 살 수 있다고 해서 과연 행복하고 감사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대답은 No입니다. 돈으로도 해결될 수 없는 문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면, 자식이 말을 안듣는 다면,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 없다면,불치의 병이 들다면 등등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감사하는 삶을 살려면 영원토록 변치 않는 좋은 것이면서도 또한 그 어떤 예측치 못했던 불행이 닥치더라도, 이 세상에 믿던 모든 것이 사라질 그 날에도 신뢰할 수 있고 그런 것들이라도 극복할 수 있는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영원히 변치않고, 그 어떤 것보다도 좋고,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원도 영원히 변치 않고, 그 어떤 것 보다 좋고, 중요한 것입니다. 또, 주 안에서 얻게된 영원한 생명도 영원히 변치않고, 절대적으로 좋고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다 영원히 변하지않고 절대적으로 좋고 귀한 중요한 것들로서,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빼앗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믿던 모든 것이 끊어질 그 날에도 의지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모든 절대적인 감사와 기쁨의 조건들을 이유들을 한꺼번에 소유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고;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죄의 용서를 받고 구원을 얻었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사실을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때문에 오늘 말씀을 보시면 항상 매사에 감사를 드릴 그 조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엡 5:20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또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데살로니가 전서 5:16절은: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일에 감사하기를 원하십니다)
골로새서 3:17: “그리고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을 하든지 주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면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십시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항상 어떤 상황에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 13:8) 그 분은 변치 않으시며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하께 해주실 분이십니다. 그 분은 좋으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시기때문입니다. 목자가 양들보다 양들의 필요를 더 잘 아는 것처럼, 우리들의 필요를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아시며 우리를 선한 길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며 위해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분은 이 세상을 만드신 분이시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좋으신 분이시며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변치 않으시며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중요하신 예수님떄문에 우리는 언제고 어떤 상황에서고 감사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여러분의 주인으로 친구로 구세주로 모셔들이셨습니까?
반면 우리들 가운데 예수님을 주로 친구로 목자로 구세주로 모셨음에도 감사보다는 원망과 불평하는 삶을 살고 계신 분은 안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고 다른 사람이나 환경을 바라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도바울은 감옥에서 빌립보를 쓰면서 우리에게 “주 안에서 기뻐하라” 라고 명령합니다. 바울이 감옥에서도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주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환경가운데서도 불평과 원망이 나오는 환경 가운데서도 주안에 있으므로 승리하며 감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Abraham Lincoln 대통령은 약 150년전쯤 추수감사절을 국가적인 공휴일로 제정하여 1년에 한 날을 정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도록 하였지만 우리 하나님은 일년에 하루가 아니라, 매일 매일이 감사의 날이 되기를 원하시는 분이시요 오늘 본문 말씀처럼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리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엡 5:20)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데살로니가 전서 5:16절도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 골로새서 3:17: “그리고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을 하든지 주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면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십시요.”라고 말씀합니다.
단지 감사하라고 명령하지 않고 모든 일에 언제나 그리고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을 하든지 감사를 드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도바울이 에베소서 골로새서를 기록하면서 모든 일에 언제나 감사하라고 말할 때에는 본인 자신이 감옥생활을 하는 가운데 당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편지글을 읽을 각 교회 내에는 분명 병을 앓는 사람도 있고 또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도 있고 직업을 잃은 사람도 있고 특별히 데살로니가 교회같은 경우는 심한 박해를 겪고 있었고 그외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었지만 이들 모두에게 감사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언제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고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는, 사도바울은 이들이 겪는 박해 자체를 감사하라 혹은 이들이 겪는 문제자체를 감사하라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무조건 적인 감사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좋은 것들에 대해서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감사할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 본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법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 병이 낫게 된것, 사업이나 직장의 문제가 해결된 것, 자녀들의 문제가 잘 풀린 것,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게 된 것, 직업을 갖게된 것, 관계성이 회복된 것, 등 등 우리 삶에 일어난 좋은 것을 말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이런 것들로 인해 감사할 수 있고 또 감사해야합니다. 그러나 이런 감사의 조건들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변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건강하던 사람이 건강을 잃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자녀가 말을 잘 들을 수 있지만 내일은 반항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해결된 법적인 문제가 사업의 문제가, 관계성의 문제가 내일 꼬이 거나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갑자기 직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를 드리되 언제든지 감사하려면 감사할 내용이 지속성이 있어야만 합니다.
사실 돈만 있으면 위에 언급한 문제들을 포함해서 삶에서 겪는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어떤면에서 평생 부자로 사는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감사할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부자로 살 수 있다고 해서 과연 행복하고 감사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대답은 No입니다. 돈으로도 해결될 수 없는 문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면, 자식이 말을 안듣는 다면,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 없다면,불치의 병이 들다면 등등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감사하는 삶을 살려면 영원토록 변치 않는 좋은 것이면서도 또한 그 어떤 예측치 못했던 불행이 닥치더라도, 이 세상에 믿던 모든 것이 사라질 그 날에도 신뢰할 수 있고 그런 것들이라도 극복할 수 있는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영원히 변치않고, 그 어떤 것보다도 좋고,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원도 영원히 변치 않고, 그 어떤 것 보다 좋고, 중요한 것입니다. 또, 주 안에서 얻게된 영원한 생명도 영원히 변치않고, 절대적으로 좋고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다 영원히 변하지않고 절대적으로 좋고 귀한 중요한 것들로서,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빼앗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믿던 모든 것이 끊어질 그 날에도 의지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모든 절대적인 감사와 기쁨의 조건들을 이유들을 한꺼번에 소유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고;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죄의 용서를 받고 구원을 얻었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사실을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때문에 오늘 말씀을 보시면 항상 매사에 감사를 드릴 그 조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엡 5:20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또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데살로니가 전서 5:16절은: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일에 감사하기를 원하십니다)
골로새서 3:17: “그리고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을 하든지 주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면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십시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항상 어떤 상황에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 13:8) 그 분은 변치 않으시며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하께 해주실 분이십니다. 그 분은 좋으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시기때문입니다. 목자가 양들보다 양들의 필요를 더 잘 아는 것처럼, 우리들의 필요를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아시며 우리를 선한 길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며 위해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분은 이 세상을 만드신 분이시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좋으신 분이시며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변치 않으시며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중요하신 예수님떄문에 우리는 언제고 어떤 상황에서고 감사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여러분의 주인으로 친구로 구세주로 모셔들이셨습니까?
반면 우리들 가운데 예수님을 주로 친구로 목자로 구세주로 모셨음에도 감사보다는 원망과 불평하는 삶을 살고 계신 분은 안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고 다른 사람이나 환경을 바라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도바울은 감옥에서 빌립보를 쓰면서 우리에게 “주 안에서 기뻐하라” 라고 명령합니다. 바울이 감옥에서도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주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환경가운데서도 불평과 원망이 나오는 환경 가운데서도 주안에 있으므로 승리하며 감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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