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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적인 장막의 모습" 사도행전 2:46-47 12/7/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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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적인 장막의 모습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사도행전 2:46-47 개역개정)

오늘은 특별히 바쁜날인 것 같습니다. 아침부터 데절트 스프링에서 열심히 운전하여 이 곳에 도착하여 이제 또 예배모임을 마치면 점심식사을 들고 그 후에는 교회총회를 갖게됩니다.  정기 총회는 1년에 두번 갖게됩니다. 년말인 12월 초에 다음 해의 교회사역을 계획하기 위한 모임을 갖습니다.  그리고 1월 말에 지난 해의 교회사역을 평가하고 결산하기 위한 모임을 갖습니다.

내년 사역을 계획하고 발표하는 오늘 모임을 통해서 교회로서의 우리의 사명을 재확인하고 우리의 마음을 모으고 결단하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내년도 사역을 생각할 때에 지금 제일 흥분되고 기대가 되고 동시에 걱정이 되는 것이 우리 교회의 장막사역입니다.  장막사역은 우리교회가 시작한 이 후로 핵심사역임에도 불구하고 잘 활성화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예루살렘에서 시작했던 첫 교회가 어떤 장막의 모습을 가졌는가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추구해야할 장막의 모습이 어떠해야할지를  분명하게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루살렘의 첫교회에는 크게 두가지 종류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46절에 보니까,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성전에서 모든 교우들이 함께 모이는 모임도 있었고,  또, 소그룹으로 집에서도 모였던 모임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세우신 이 세상에 존재했던 첫 그리스도의 교회, 예루살렘교회의 모습을 통해서  교회가 교회로서 제대로 그 기능과 역할을 감당하려면 이 두가지 종류의 모임이 있어여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전에서 모였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모든 교회식구들이 주일날 다 함께 모이는 모임에 해당되고 집집에서 모였다는 것은 우리가 주 중에 소그룹으로 모이는 장막모임에 해당될 것입니다.  그러면, 신약의 첫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주중에 소그룹으로 모였을 때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세가지 관점에서 살펴보면서 내년에 우리가 장막으로 모일 때에 있기를 원하는 역사를 말씀드리기를 원합니다.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집에서 소그룹으로 모였을 때 이들이 행한 일은 떡을 떼는 일이었습니다: 떡을 뗀다는 것이 무엇인가? 46절 후반부의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라고 언급되어 있으므로, 떡을 뗀다는 것은 일반 식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만찬을 말합니다.

왜 이들은 집에서 주님의 만찬을 들었을까?  주님의 만찬을 드는 이유를 귀가 따갑도록 듣고 배운대로 “이 것을 행함으로 나를 기념하라”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주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신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주님께 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신 것은 우리와 영원토록 교제를 나누시기 위함이십니다. (살전 5:10) 주님의 만찬을 드는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심을 기억하고 주님과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고전 10:16    우리가 축복하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닙니까?  제물을 먹는 것은 제물에 참여하는 것이요 제물에 참여하는 것은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고전 10:20)

그러므로 이들이 소그룹으로 집에서 모인 것은 주님의 대속적인 죽음을 기억하고 주님과 교제하기 위해서 모인 것입니다.  여러분 장막으로 모일 때에 이런 주님과의 교제를 경험하고 계십니까? 주님과의 교제도, 사람과의 교제처럼  좀 더 깊은 교제를 가질 수 있고 겉만 도는교제를 가질 수 있습니다.

반면 주님과의 교제가 사람끼리의 만남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끼리의 만남은 교제의 깊이가 대개의 경우 모든 당사자들에게 그 책임이 있지만, 하나님과의 만남은 교제의 깊이가 언제나 우리 인간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항상 나와 깊은 교제를 원하지만, 나는 항상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신다는 사실에는 전혀 변함이 없는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장막모임에 임하므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경험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여러가지 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요한 사도가 말한 아주 결정적인 방법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형제자매도 사랑해야 합니다.  보이는 자기의 형제나 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내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자니” 무슨 계명입니까,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아닙니까?

보이는 형제 자매를 사랑치 않으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다란 말씀 아닙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 떡을 떼는데 떡을 떼기전에 자기를 살피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형제를 사랑치 않으면서  떡을 드는 것은 주님을 사랑치 않으면서 주님의 떡을 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렇게 드는 주님의 떡은 자기 자신을 단죄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고전 11:29).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합당하지 않게 그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28 그러니 각 사람은 자기를 살피십시오. 그런 다음에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시십시오. 29 주님의 피로 하나된 몸된 관계를 분별함이 없이 먹고 마시는 사람은, 자기에게 내릴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왜 고린도 교회에만 유별나게 주님의 만찬을 들기 전의 마음의 자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까? 교회내에 관계성의 문제가 파벌도 심하고 서로 간에 차별도 가장 심했던 교회기 때문아닙니까?

예루살렘 교회는 2:42잘에 보니까 교회전체로서 모일 때도 주님의 떡을 떼었고 소그룹으로 집에서 모일 때도 주님의 떡을 떼었습니다.  주님과 교제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나,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 주님에게 지은 죄를 회개할 뿐 아니라, 서로의 관계를 점검하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그런 교제를 나누었던 것입니다.

물론 소그룹으로 만날 때에 주님의 만찬을 꼭 가져야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친히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내가 그들 중에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은 주님과 교제하는 모임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만찬을 소그룹에서 갖던 안갖던 예루살렘 교회에서 주님의 만찬을 통해서 누렸던 그런 주님과의 교제를 오늘날 우리 소그룹에서도 경험할 수 있어야겠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그리고 다른 지체들과의 사랑의 관계를 갖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4:12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4:16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우리가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면 주님의 사랑을 느끼는 복된 장막모임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랑치 못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의 겉도는 교제 이상 경험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장막모임으로 모일 때뿐 아니라 평소에도 항상 주님의 떡을 떼는 심정으로 우리 자신을 살펴보면서 서로 깊이 사랑하는 관계를 유지하므로 장막으로 모일 때마다 주님과의 아름다운 교제를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두번째로 보니까, 또 먹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46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는 것은 교제를 의미합니다. 옛날 구약시대 때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민족들과 섞이지 않도록 사용하신 방법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렸을 때부터 가증한 음식이 무엇인지 교육하고 까다로운 식성 때문에 다른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음식을 같이 먹으면 교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자매님들이 인원이 많지 않은데 매주 식사 준비를 하느라 너무 수고가 많은데 이로 인해 우리가 아름다운 교제를 나눌 수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주안에서 행하는 여러분의 수고가 헛된 것이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 음식을 같이 먹긴 먹는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란 부사구가 따릅니다. 이 기쁨은 어떤 기쁨일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의 계명을 지키면, 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나의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러한 말을 한 것은, 나의 기쁨이 너희 안에 있게 하고, 또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12 나의 계명은 이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순전한 마음으로는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된 마음으로, 후한 마음으로, 겸손한 자세로 등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sincere hearts, generous hearts, humble attitude, singleness of heart…”
이 것을 서로의 마음을 내어놓는 관계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장막모임 속에서 이런 기쁨과 이런 열린 마음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http://yosiah.tistory.com/m/post/262  존 포웰(John Powell) 은 그의 명저 「사랑을 머물게 하는 비밀」에서 대화 혹은 관계에는 다섯 가지 단계가 있다고 말한다.

1단계의 인간관계: 상투적인 표현의 단계: 상투적인 표현이란 말이나 몸짓으로 지나가는 인사말 정도를 나누는 단계라고 합니다. 가장 기초적인 단계지만 대개 앞으로의 관계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단계라고 합니다.  교회 처음방문한 사람이 첫 15초의 경험이 교회의 이미지를 결정하고 앞으로 계속 나올가 아닐가를 결정한다”라는 말이 이런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첫번단계의 표현이 긍정적으로 전달되면 발전된 관계를 이루는 계기가 될 수 있고, 부정적으로 전달되면 관계를 회피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불행한 것은 교회 내에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이 1단계의 관계성도 제대로 거부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회개해야합니다)

2단계의 인간관계 : (정보를 주고받는 단계) 정치,사회, 살림, 건강 샤핑등 세상 돌아가는 일, 심지어는 성경지식까지 다양한 정보를 나누지만 대화하는 당사자의들의 관계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정보 교환에 불과한 수준을 말합니다.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의미 있는 나눔을 하지 못하고 허탈하고 외로운 심경으로 자리를 떠야만 하는 관계를 말합니다.  또, 이런 대화는 매 주 만나 10년을 지속했어도 결국 헛도는 인간관계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3단계의 인간관계 : 의견과 판단등 생각을 나누는 단계.  이 단계에서는 객관적인 정보뿐 아니라 자신의 의견이나 판단, 생각, 견해, 입장, 경험 등을 밝히며 자신에 관한 사항을 노출시키는 단계입니다. 우리가 신뢰하는 사람들에게는 좀더 자유롭게 노출하며, 믿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다소 조심스럽게 노출하며 좀 더 깊은 단계로 나아가기를 추구하는 단계입니다.

4단계의 인간관계: 감정을 나누는 단계, 혹은 마음을 나누는 단계) "오늘은 기분이 안 좋아" 또는 "기운이 하나도 없어요" “속상하다” “기쁘다”’힘들다, 기쁘다 등과 같은 말을 거리낌없이 할 수 있는 단계입니. 또한 내 삶의 고민을 말하 수 있는 좀 더 personal 하게 자신의 삶을 나누는 단계라고 할까요?

5단계의 인간관계 : 최상의 진실의 단계 (영적인 대화)
성경적으로 말하면 서로의 죄를 고백할 수 있는 단계이다. 상대방 속에서 발견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말할 수 있는 인정이나 칭찬뿐아니라 상대방을 위해 고쳐야할 점도 충고해 줄 수있는그리고 죄의 고백이나 용서 등을 나눌 수 있는 단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때로는 서로 격려도 하지만 지적도 할 수 있는 투명한 관계성, 자유로운 관계성 말한다. 서로의 성장을 가능케 하는 관계를 말합니다.  이런 영적 인간관계는 우리 모두에게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속했던 장막에서 이 다섯단계 중 어떤 단계까지 경험하고 계십니까?
다른 일반적인 이야기, 그 자리에 없는 제 삼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성서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하지만, 정작.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서로 나눌 수 없는 그런 교제가 아닙니까?  마음 것 농담하고 당시는 재미 있고 즐기는 모임을 가졌지만 결국 허탈함을 느끼는 그런 교제에 불과한 것은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이런 마지막 단계, 영적단계의 교제를 갖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교회역사상 교회전체가 함께 모이는 모임과 집에서 모이는 소그룹 모임을 가장 효과적으로 실행한 분은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웨슬리입니다. 그는 교회모임과 함께 Class란 모임과 band란 모임으로 구성하였는데, band란 모임은“성별, 나이, 결혼 유무별로 약 6명을 기준으로 하여 조를 편성된 모임입니다. “이는 상황이 서로 비슷하고 관심사가 비슷하며 보다 친밀한 교제관계에 있는 사람들끼리 그룹을 형성해 더 긴밀하고 흉금 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소그룹 속에서 조원들은 자신이 미혹 받았던 일들, 승리한 일들, 그리고 마음의 솔직한 상태에 대해 자유롭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격려하는 역사가 일어 났다고합니다.

이러한 세분화된 긴밀한 연합은 조원들에게 18세기의 영국의 산업화로 인해 상실된 시골 마을적인 공동체감과 가족적인 느낌을 갖게 해주었고 그 결과로 평화, 기쁨, 사랑, 그리고 선행에 대한 열심이라는 열매를 맺게 했다고합니다.

웨슬리는 소그룹 모임의 유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고백한 과오들이 치유될 수 있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했으며 그러한 결과를 얻었다. 쇠사슬은 부숴지고, 수갑도 모두 떨어져 나갔으며, 죄가 더 이상 그들을 지배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때까지는 피할 방법을 알지 못했던 그러한 유혹에서 많은 사람들이 해방 되었다. 그들은 최상의 거룩한 믿음 안에 세워지게 되었고, 주님 안에서 보다 풍성한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그들은 사랑으로 강건하여 졌고, 모든 선행에 풍부하도록 보다 효과적으로 일으켜 세워졌다.”  http://sgti.kehc.org/data/person/wesley/park/4-1.htm

이런 역사가 우리 장막모임을 통해서도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감사한 것은 어떤 아주 지혜롭고 통찰력있는 한 자매님의 제안으로 우리도 요한 웨슬리의 방법처럼 장막을 주일학교 반이
구성된 것처럼, 남녀별로 그리고 연령별로 구성합니다. 사실 남녀가 함께 모일 때 드러내어 말할 수 있는 것들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매끼리 형제끼리 따로 모일 때, 심지어 부부간에라도 내 놓을 수 없는 그런 이슈들을 나누는 친밀한 교제가 가능할 것입니다.

물론 남녀별로 연령별로 모였다는 것 자체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를 받고 사랑하려는 결단과 신뢰하는 관계를 세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실질적인 조언으로 웨슬리는 마음을 내 놀 수 있는 질문을 던지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지금 마음 속에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  마음 속 깊이 갖고 있는 질문은 무엇인가? 등 등

영적인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기 위한 모임을 이루기 위해서 제가 꼭 부탁하고 싶은 것 또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기록하는 일기를 쓰라는 것입니다.  일기를 쓰면서 주님께 감사하고 싶은 것, 깨달은 것, 기도제목, 고민하는 것 등을 기록하고 그 것을 장막모임 때 나누는 것입니다.  (이 것 역시 정보만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회개 등 영적인 깨달음 등을 기록)  사람들은 진정한 친구 관계에 목말라 있습니다. 저역시 그렇고 그 것을 설교했고  우리의 가장 진정한 친구인 예수님께서 서로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어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장막 모임을 통해서 진정한 친구로서의 관계를 실천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한마음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진실된 마음으로 함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다. 우리의 인생이 끝나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 분은 우리가 어떤 직업을 가졌고 어떤 취미 생활을 했으며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물어 보지 않고, 내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했으면 내가 얼마나 가족, 친구 교회식구등 이웃을 사랑했는지를 물어 볼 것입니다.

세째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교회의 장막은 백성에게 칭송을 바고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장막이었습니다: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안타깝게 오늘날 우리 교회들 가운데는 오히려 반대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교회들에 대한 평판이 나쁠 뿐 아니라,  불신자들이 구원받는 역사보다는  오히려 기존신자들 조차 교회를 빠져나가는 심각한 상황에 빠져있습니다. 여러분 가나안 성도란 말 들어 본적 있으십니까,  “안나가”를 꺼꾸로 하면 가나안이 되는데 교회모임에 출석하지 않는 성도들을 말합니다. 기성교회에 대한 거부감때문에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은 가지고 있지만 교회에 출석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2004년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로 추정해 본다면, 개신교 신앙을 가지고 있다가 교회를 떠난 사람들의 수가 무려 758만 명에 이르고, 이 중에서 다른 종교로 개종한 198만 명을 제외한 560만 명이 떠돌이 신세인 것입니다.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633

어떤 기독교 기관에서 이들 300여명의 가나안 성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교회 재출석시 희망하는 교회에 대해서 그들은 다음의 세가지 조건을 공통적으로 원했습니다.
올바른 목회자가 있는 교회 (능력있는 이라고 말하지 않고); 공동체성이 강조되는 교회 ;
교회 부정부패 없이 건강한 교회 (교회재정과 직분과 관련된)

올바른 목회자, 교회부정부패 없이 건강한 교회 둘다 담임목사의 책임이 막중함을 느끼게 하는 영역이네요; 또 장막을 통해서 공동체성이 강조되는 교회가 되어야할 필요를 절감하게합니다.

우리처럼 소수가 모이는 한 교회의 영향력으로 말미암아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소수의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요? 만약, 교회에 대한 거부감으로 가득찬 불신자나 가나안 성도들이 교회모임에는 안나오더라도 교회 밖에서 만나는 장막모임을 통해서 섬김과 진정한 사귐을 맛보고 그리스도의 사랑에 접할 수 있다면, 이들이 그리스도에게로 그리고 교회로까지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실지로 교회성장에 관한 전문적인 연구기관에 의하면 교회모임에 참여하게 된 이유의 80% 이상이 가족과 친척, 친구의 권유가 82.5%로 (혹은 90%)가장 많고, 교회학교 4%, 목사와 교역자의 권유 3.5%, 집단 전도 3.5% 순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교회 역사를 살펴볼 때는 거의 100%가 이웃이든 직장동료든 이미 알고 있는 인간관계를 통해서 장막이나 교회모임에 참여하게 되고 또 예수님을 영접하고 침례받고 교회식구까지 되지 않았습니까?

울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또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숫자가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노요한목자님과 유승준형제님 영어학교를 통해 새로운 전도대상자를 만나고 이들을 전도하려는 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우선 저부터 그리고 우리 교회모두가 이 일에 협조하여 동참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저렇게 알게 된 분들을 먼저 장막으로 인도하고, 이 분들이 장막을  통해서 신뢰와 사랑을 통해서 깊은 사귐을 경험하고 주님을 영접하며 주님 안에서 진정한 친구를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면 모든 영혼이 구원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귀한 장막 그리고 교회가 될 것입니다.

내년에는 주님과의 교제가 있고 사랑을 실천하는 장막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내년에는 마음을 내어 놓은 교제가 있는 장막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내년에는 우리가 아는 사람들로 칭송을 받고 사람들을  그리스도와 주님의 교회로 이끄는 장막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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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적인 장막의 모습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  (사도행전 2:46-47 개역개정)


1. 주님과의 교제가 있고 사랑을 실천하는 장막:
“집에서 떡을 떼며”










2. 마음을 내어 놓은 교제가 있는 장막:
“(집에서)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하나님을 찬미하며”









3. 칭송을 받고 전도의 열매가 있는 장막: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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