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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어진 말씀을 받으라” 야고보서 1:18-22 1/11/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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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어진 말씀을 받으라” 야고보서 1:18-22
아버지께서는 뜻을 정하여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아 주셔서, 우리를 피조물의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19 나의 사랑하는 신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 두십시오.  누구든지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노하기도 더디 하십시오. 20 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1  그러므로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모두 버리고, 온유한 마음으로 여러분 속에 심어 주신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능력이 있습니다.  22 여러분은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그저 듣기만 하여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야고보가 보낸 이 편지를 받는 성도들에게 두가지 종류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교회 밖으로부터 오는 시련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교회에 대한 핍박이 있었던 것같습니다. 그래서 3절에 보니까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낸다고 격려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내의 문제가 있었는데, 교회내의 문제점 중 하나가 교인들끼리 싸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교회 밖으로부터의 핍박을 받는 와중에도 서로 싸운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싸움과 다툼이 일어나는 원인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여러분 속에 분쟁을 일으키는 이기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4:1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권고내지 경고를 합니다.’  노를 발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모세도 40년간 그 백성들을 잘 인도하다고 므리바에서 불평하고 말썽피는 백성들에게 노를 발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결국 약속된 땅에도 들어가지 못하게되지 않았습니까?  (제 이야기입니다만) 노를 발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임을 알고 결심을 거듭해도, 좀 지키는 것 같다가 폭발해서 화를 내고 결국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그것은 내 성격이요 내 운명이다라고 포기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노를 발하는 것은 성격이나 운명을 탓할 문제가 아니라 이기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요 결국 영적으로 성숙치 못해기 때문이라고 단언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도 화를 내시지 않으셨느냐?’ ‘채찍질도 하시지 않았느냐?’고 화를 내는 것을 합리화하려는 자들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성전을 시장터로 만드는 사람들에게 진노하셨고 채찍도 드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이기적인 욕망때문에 화를 내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열정때문에,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 대한 열정 때문에 화를 내셨지 자기 자신때문에 화를 내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그들을 위해서도 십자가에 달리신 분입니다.  그 분이야 말로 거룩한 진노를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중에 누구든지 화를 내는 것을 정당화 하는 사람은 먼저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사람이어야합니다.  아무도 그런 자격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20 "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그런데 노한다는 것은 단지 당사자들이 있는 가운데서 언성을 높이는 것뿐 아니라, 당사자들이 없는 가운데 노를 발하는 것을 포함해서입니다.  그것을 불평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원망이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불평과 원망도 분쟁의 원인이요 또 이기적인 욕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선언함과 동시에 또한 모든 일을 원망과 불평없이 하라고 명령합니다.
우리 가운데는 쉽게 노하는 가진 자들도 있고 쉽게 불평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에 의하면 이런 성향들을 반드시 해결할 수 있고 해결되어야함을 제시하기때문에  저와 여러분이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20 "(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1 그러므로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모두 버리고, 온유한 마음으로 여러분 속에 심어 주신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능력이 있습니다.  22 여러분은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그저 듣기만 하여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노하는 사람은 이라는 말 대신에 갈라디아서 5장에 언급된 온갖 종류의 이기적 욕망에서 비롯된 것을 대입해 보시기 바랍니다: “원수 맺는 사람은 분쟁하는 사람은 시기하는 사람은  분냄과 당 짓는 사람은 분열하는 사람은, 질투하는 사람은 ” 21 (그러므로)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모두 버리고, 온유한 마음으로 여러분 속에 심어 주신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노하는 문제를 비롯한 모든 이기적인 욕망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버려야할 것이 있고 받아들여야할 것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먼저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모두 버리라고 말합니다.  버리되 모두 버리라고 말합니다.  노하는 것이나 그 외 원망과 불평은 성격의 문제때문에 평소에 없던 것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더러움과 (넘치는) 악(덕)이 있기 때문에 결국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버릴 것이 있는 반면에 또 받아들여야할 것이 있습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여러분 속에 심어 주신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능력이 있습니다.”  더러움과 악덕을 모두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라고 말씀합니다.  버리는 일과 받는 일은  다른 것임에도 또한 구분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밤에 스위치를 키면  먼저 어두움을 몰아낸 다음에 빛이 나중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지요.  어두움이 없어지고 빛이 들어오는 것이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란 원리와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 속에 심어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18절에  답이 나와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뜻을 정하여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아 주셔서, 우리를 피조물의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마음 속에 심어주신 이 말씀으로 인해 거듭났습니다.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우리가 이미 받아서 마음 속에 심어지므로 거듭났지만 이 말씀을 또 받으라고 말합니다. 이 복음의 말씀은 우리가 거듭나는 데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매일의 삶을 사는데도 필요한 것이기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음이 약속하는 죄의 용서와 공로 없이 의롭게 됨과 복음이 약속하는 영생과 하나님과 회복된 관계를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만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매일 생각하고 묵상하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누려야합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위해서도 복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안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요 8:32)  주님을 영접할 때 그 분의 말씀을 한번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그 분의 말씀 안에 머물러 있어야한다는 말씀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했던 대상인들은 예수님을 믿었었던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참제자냐 아니면 가짜 제자냐가 여기서 드러납니다. 
사도 베드로도 약속이나 한 듯이 야고보선생과 똑같은 말씀을 합니다: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복음으로 거듭났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거듭난 생명이 자라기 위해서: 2:1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사도도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버려야할 것이 있고 취해야할 것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버려야할 것들 -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 은 다 자기중심적 성향들입니다.  이러한 성향들로 우리의 마음이 가득차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증도 느끼지 못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차지할 마음의 공간도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 가운데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자기중심적인 모든 악한 것들을 버리는 습관을 가져야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8-9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회개의 기도를 통해서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해진 우리의 마음을 주님의 말씀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채우기 위해서  “온유한 마음으로 여러분 속에 심어 주신 말씀을 받아들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그 태도가 중요합니다.  온유하게란 말을  공동번역에는 공손하게 라고 번역했습니다.  겸손한 자세를 말합니다. 내 생각과 판단을 주장하기 보다는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듣는가 주의 깊게 살펴보라“ . 누가 8:18 (consider carefully how you listen. ) NIV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나 읽을 때 공부할 때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전에 배우기 전에 겸손하게 주님 앞에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한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역사는 성령님의 능력과 역사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성령님에 의해서 우리가 거듭났다고 말합니다. (요 6:63) 그러나 또한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거듭났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성령님께서 성도 안에 거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성도 안에 거한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성령충만한 역사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충만한 역사를 같은 것으로 표현합니다. 성령님이 성도를 인도하듯,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를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능력이 있다고 말합니다.  베드로도 하나님의 말씀이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한다라고 말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구원이라 그랬는데 무엇으로부터의 구원을 말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버려야할 악한 것으로부터 더러운 것으로부터 우리를 계속 구원한다란 말씀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위한 구원입니다. (신약성경의 서신서의 대부분이 바로 이런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는 과정, 즉 성화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혈기를 부리는 문제 그리고 모든 육체에 속한 이기적 욕망은 우리들의 결단도 중요하지만,  기도와 고백을 통해서 자기중심적인 더러움과 악을 버리고, 다른 한 쪽으로는 겸손하게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해결책임을 배웁니다.
 
야고보가 이 문제를 위해 제시한 또 한가지 당부한 것은 말씀의 실천에 대한 것입니다: 22 여러분은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그저 듣기만 하여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기도를 통한 지속적인 회개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공급받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지만 기도와 말씀이 우리들의 실천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깨닫고 받아들인자 들은 삶의 실천을 통해 증거되어야합니다.  그저 듣기만 하고 실천치 않는다면 이는 우리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요즈음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사람들로부터 예수를 믿는 많은 사람들이 말만 잘하고 실천이 없다는 비난을 많이 듣습니다.  주님이 경고하신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듣는가 자세히 주의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교회에 새로이 부임해서 설교를 하셨는데 그 다음 주에도 또 그 다음 다음 주에도 같은 설교를 하시더랍니다.  성도들이 나중에는 목사님께 따졌다고합니다. 그랬더니 목사님이 성도들이 설교의 내용을 실천할 때까지 다른 설교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랍니다.  용감한 목사입니다. 존경스러운 목사입니다. 
저도 이번 주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그리고 저에게 주님께서 말씀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주님께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많이 말하지 않았느냐”  우리에게 새로운 말씀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미 들은 말씀에 대한 순종,
말씀을 듣는 우리들의 올바른 태도가 필요하다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들은 말씀을 실천치 않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갈 6: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선줄로 생각하는 자들은 넘어질까 조심하라; 라오디게아 교회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다들 본인의 모습에 대해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들이 남의 이야기 하는 것 같습니까?  우리 자신에 대한 말씀으로 들리지는 않습니까?

강단에서 용서하라 사랑하라 모이기에 힘쓰라 주님의 일에 시간과 물질과 재능으로 헌신하라 등등의 말씀을 듣고 실지로 삶에 옮기는 경우가 얼마나 있습니까?  하나님이 무어라 말하시던 나는 내 계획대로 내 판단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것이 나의 자세는 아닙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과 목적을 믿는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고백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치 않는 다면, 나의 삶에 관한  내 계획과 내 지식과 판단이 하나님이 가지신 것보다 좋다라고 실지로는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정을 시작할 때 하나님이 말씀하신 설계도대로 가정을 이루겠다고 작정하지만 결국 자기들의 계획과 방식대로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얼마나 많은 교회가 목사님들이 성도들이 하나님의 설계도대로 주님의 교회를 세워나가기 보다는 자신들의 경험과 계획과 방식을 고집합니까?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을 실천하는 자에게 자유롭게 하는 하나님의 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용서하라는 말씀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전도하라는 말씀이 헌신하라는 말씀이 나를 옭아매기 위한 말씀으로 듣지 않습니까? 아니면 나를 자유롭게 하고 축복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란 것을 믿습니까? 
주님께서도 내 말 안에 거하면 예수님의 참제자일 뿐 아니라 진리를 알게되고 이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면 우리가 속박당하고 자유를 잃게 된다는 착각 속에 살기쉽습니다.  제멋대로 제뜻대로 사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습니까?  우리 집 윗집에 사는 30대의 젊은 청년이 지난 년말에 자살했습니다. 자살하기 전에 Facebook에 광고했음에도 아무도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결국 일주일만에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는 마약에 중독되었었고 동성연애자 였습니다.  자기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되어 나름대로 자유롭게 산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키에골이란 기독교 철학자는 믿지 말아야할 자신을 믿고 믿어야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어리석은 삶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은 결국 자기를 속이는 삶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속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평생 자기를 속이다가 생을 마친다고 주님은 경고하십니다. 
평생 자기 뜻을 고집하면서 살면서도, 자기는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기 때문에 자기는 구원받았다고 착각한 사람이 구원받은 적이 없음을 심판대에서야 알게될 것이라고 주님은 경고하십니다.
평생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있다고 믿다가 주님 앞에 서는 자도 있게될 것입니다.
평생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면서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만 보다가  주님 앞에 서는 자도 있게될 것입니다.
평생 기도하지 않고 자기뜻대로 살면서도 시험에 들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다가 주님 앞에 설자도 있게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절대로 그렇게 인생을 마감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우리가 그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고 끝나도록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말씀을 듣고 삶에 적용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양의 특징은 목자되신 주님의 음성을 들을 뿐 아니라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뿐 아니라, 우리 자녀들에게 자기 멋대로 사는 것이 자유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배우고 그 뜻대로 사는 것이 자유라고  우리의 삶으로 보여주어야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버려야할 악한 것을 버리므로
받아야할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므로
실천해야할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므로 구원받은 자 다운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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