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진리 안에 머무십시요” (바울의 마지막 가르침) 디모데후서 3:1-17 1/18/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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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가르침; 마지막 때의 타락상
1 그대는 이것을 알아두십시오. 말세에 어려운 때 (고통하는 때) 가 올 것입니다. 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뽐내며,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며, 부모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감사할 줄 모르며, 불경스러우며, 3 무정하며, 원한을 풀지 아니하며, 비방하며, 절제가 없으며, 난폭하며, 선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무모하며, 자만하며,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며, 5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나, 경건함의 능력은 부인할 것입니다. 그대는 이런 사람들을 멀리하십시오. 6 그들 가운데는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서 어리석은 여자들을 유인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여자들은 여러 가지 정욕에 이끌려 죄에 짓눌려 있고, 7 늘 배우기는 하지만 진리를 깨닫는 데에는 전혀 이를 수 없습니다. 8 또 이 사람들은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배반한 것과 같이 진리를 배반합니다. 그들은 마음이 부패한 사람이요, 믿음에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9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의 어리석음도 그 두 사람의 경우와 같이, 모든 사람 앞에 환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부탁
10 그러나 그대는 나의 가르침과 행동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를 따르며, 11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내가 겪은 박해와 고난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러한 박해를 견디어냈고, 주님께서는 그 모든 박해에서 나를 건져내셨습니다. 1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모두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13 그런데, 악한 자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더 악하여져서, 남을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할 것입니다. 14 그러나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굳게 믿는 그 진리 안에 머무십시오. 그대는 그것을 누구에게서 배웠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15 그대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대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줄 수 있습니다.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17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온전하게 하며),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마지막으로 쓴 편지입니다. 로마 감옥에 갖혀 이제 교수형을 당할 날을 기다리면서 기록한 편지글입니다. 바울이 죽음을 앞두고 기록한 마지막 편지인 만큼 그 내용도 심각하며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개역개정성경을 가지신 분은 오늘 본문성경의 내용을 마지막 가르침이라고 제목을 부쳤는데 실지로 오늘 배울 내용이 바울의 마지막 가르침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기록하면서 먼저 문제점을 제시하고 그리고 그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마지막 가르침으로 제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그 문제점은 ‘말세에 어려운 때 (고통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말한 이 문제점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몇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첫째로는 “말세에 어려운 때 (고통하는 때) 가 올 것입니다”라고 말했는데 말세란 어느 때를 말하는가? 두째로, 어떤 의미에서 바울은 어려운 시대 혹은 고통하는 때라고 했는가?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말세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사이의 시대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초림 이 후에 아무 때나 다시 오실 수 있기 때문에 초림과 재림사이의 시대가 말세인 것입니다. 그러나, 1절에 보면 말세에 어려운 때가 올것이라고 미래의 어떤 시점에 있을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을 보게됩니다. 어쩌면 사도 바울은 말세지말를 의미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모든 시대의 신약의 성도들이 오늘 본문 말씀이 묘사한 어려움을 겪었고 또 현재도 겪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되고 적용 되는 말씀입니다
왜 이런 모습이 어렵고 고통스러운 모습인가? 지금 이 말씀이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고통스럽게하고 어렵게하는 요인들입니다. 뭐 지진이라든지 전쟁, 전염병, 기근이나 배고픔이나 경제적 어려움 혹은 박해 같은 환경적이고 육체적이고 외부에서 오는 어려움을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귀히 여기지 않는 자기 중심적인 인간들의 모습, 경건치 않은 자들의 모습 때문에 어려운 시대라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사랑이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에 고통스럽고 어려운 때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도 말세에 불법이 성해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질문은, 2-4절에 묘사된 자기 중심적인 인간들의 모습이 믿는 자들에 대한 묘사인가 아니면 불신자들을 말하는가?란 질문입니다. 고통하는 때의 현상들은 자기 중심적으로 사는 불신자들의 모습에 가깝지만, 그래도 믿음을 고백하는 자들의 모습이라고 확신합니다. 만약 여기 묘사된 내용이 불신자들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면 구태여 고통하는 때 어려운 때라고 부를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기 묘사된 모습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불신자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경건의 모양은 있다거나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한다는 표현은 그들이 하나님 자신을 부인하는 자는 아니란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들이 적어도 말로는 믿음을 가진자들이라고 보여집니다. 또 바울이 이런 자들을 멀리하라라고 말했는데, 전도대상자인 불신자들에게 이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여러분 여기 묘사된 모습이 오늘날 우리 시대의 성도라고 일컷는 자들의 모습도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yes라고 대답할 수도 있고 No라고 대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날이 갈수록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사람들과 잘 구분이 안되는 세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소원하는지 무엇때문에 고통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염려하고 기도하는지 살펴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사람들과 별 다를 바 없지 않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육적인 건강과 영적인 건강 중 무엇을 위해 더 염려하며 신경 씁니까? 경제적인 성장과 영적인 성장중 어느것을 더 염려하고 신경 쓰고 있습니까? 자녀들의 육적인 건강과 영적인 건강 중 무엇을 위해 더 염려하며 신경 씁니까?
더더욱, 요즈음 인터넷 때문에 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공유되면서 그리스도인들이나 세상사람 들이나 생각도 취미도 점 점 비슷해지고 가치관까지 영향을 받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제 친구중에 가끔 카카오로 여러가지 메시지와 정보를 보내주는 친구가 있습니다. 어떨 때는 아멘이 저절로 나오는 은혜로운 메시지도 보내지만 또 어떨 때는 믿음과는 상관 없는 삶을 살면서도 행복하고 의미있게 살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을 보내옵니다. 꼭 예수님을 믿어야만 하느냐란 메시지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한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질문은 경건에 관한 것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부인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 한글 성경을 보면,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부인한다란 독립적인 표현으로 묘사되지만, 사실은 독립적인 표현이 아니라, 2-4절에 묘사된 모든 모습들을 꾸며주는 형용절로 보여집니다. (현재분사로 표현된)
그러니까, (본문을 좀 더 정확히 번역한다면) 겉으로는 경건해 보이면서,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뽐내며,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며, 부모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감사할 줄 모르며, 불경스러우며, 무정하며, 원한을 풀지 아니하며, 비방하며, 절제가 없으며, 난폭하며, 선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무모하며, 자만하며,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건의 능력을 부인 하는 것입니다.
기도도하고 찬송도하고 성경공부도 하고 예배도 참여하고 경건에 대해서 말하고 심지어 설교도 하지만, 내가 가진 어떤 취미나 습관보다 주님을 더 사랑할 능력도 없고 , 남을 사랑할 능력도 용서할 능력도, 세상의 즐거움을 포기할 능력도, 돈과 명예의 유혹을 거부할 능력도 , 세상적인 가치관을 포기할 능력도 조상들의 망령된 생각과 습관을 포기할 능력도 없는 영적으로 무능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성도들의 모습이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고통스럽게하고 어렵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스스로는 이 정도는 아니다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스스로를 과대 평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문이나 연속극이나 취미 생활을 할 시간은 있어도 하나님 말씀을 볼 시간은 없다면, 이 것이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는 것 아닙니까? 혹시 우리는 기근, 지진, 병, 배고픔, 사고, 경제적인 어려움 등 외적인 요소등을 통해서는 쉽게 고통과 어려움을 느끼면서도, 불순종하므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우리의 모습에 대해서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우리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어려운 때를 극복하며 오히려 날이 갈 수록 주님을 그 무엇보다도 더욱 더 사랑하는 자가 되고 경건의 능력을 소유하고 드러내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대답이 10-17 에 기록된 바울의 마지막 부탁입니다. 이제 우리가 함께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0-14)
마지막 부탁: 10 그러나 그대는 나의 가르침과 행동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를 따르며,
9 절까지 성도의 부정적인 모습을 묘사한 뒤 이제 그러나란 반전하는 접속사로 10절이 시작됩니다. 무슨 뜻입니까? 고통스러운 때, 어려운 때가 이르겠지만 세상사람들은 물론 믿는 다는 자들도 제멋대로 살겠지만, 너는 낙망하지 말고 세상의 풍조가 너를 바꾸게 하지 말라. 대신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을 바꾸어라 란 뜻이 이 그러나란 말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면서 디모데에게 자신이 보여준 가르침과 행동과 목적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를 디모데가 따랐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누구를 따르고 사귀느냐에 따라 변화됩니다. 경건치 않은 사람을 따르면 경건치 않게 되고, 교만한 사람과 사귀게 되면 교만해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을 따르게 되면 예수님을 닮게됩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좋은 믿음의 사람과 만나고 따라야 할 필요를 느끼게 하지만, 또한 우리 스스로 좋은 본이 되어야 할 책임을 느끼게 합니다. 미주에 거하는 많은 한인학생들이 마약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 중 많은 학생들이 반항적으로 변명하는 말은 아빠가 담배 못 끊는 것이나, 내가 마약 못 끊는거나 차이점이 뭡니까?라는 것입니다.
많은 학생들이 대학교에 들어가면 교회생활을 포기한다고 합니다. 학생들을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그들이 영적인 것에 관심이 없거나 학교생활이 바빠서가 아니라, 그들이 고등학생 때와는 달리 참된 것, 실질적인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실질이 없는 형식을 거부합니다. 그들은 경건의 모습도 있고 경건의 능력도 있든지 아니면, 경건의 능력이 없다면, 경건의 모습도 포기하든지 둘중의 하나를 추구합니다. 학교 숙제하기도 바쁜데 종교적인 겉치레하는데 신경쓰고 장난할 시간이 어디 있냐고 말한다고 합니다.
이런 학생들이, 교회생활에서 가정생활에서, 삶과 신앙의 고백이 일치하는 그런 삶을 경헙치 못했다면, 내용이 있는 신앙생활을 경험하지 못했음에도, 그런 신앙생활 교회생활을 지속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제가 실지로 어떤 대학생에게 들었던 말을 다시 되풀이 합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자신의 아버지나 또 다른 한국인 친구 아버지들보다는 믿지 않는 외국친구들이 훨씬 그리스도인 답다. 물론 이 학생이 말했던 아버지들 중엔 목사님도 있고 장로님도 있고 집사님도 있습니다. 이런 모순이 우리 젊은이들이 가정과 교회에서 느끼는 갈등일 수 있습니다. 이 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이 신앙생활 교회생활을 포기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 여러분에게 두가지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신앙적으로 따를 수 있는 모범을 어떻게 찾을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도대체 우리는 자녀들에게 어떻게 하여야 저들이 따를 수 있는 모범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오늘 본문 말씀 3:2-4절로 다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이 구절 속에 묘사된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모습들이, 바로 우리가 어떤 신앙의 본을 따르고 또 보여야할 지를 역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잘못된 신앙생활의 반대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우리가 따르고 본을 보여 야 할 삶의 모습임을 드러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 베풀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감사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거룩하며)
뽐내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며 ,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으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무정하며(사랑) 원한을 풀지 않으며 (화평) 비방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절제가 없으며 (오래 참고) 난폭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선을 좋아하지 않으며 (양선,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충성) 조급하며 (인내, 오래참고) 자만하며(잘난 체하지 않습니다)
반대되는 말들이 어디서 많이 보았던 구절들 같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몇 개를 제외하고 거의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에 언급된 사랑의 특성들 인 것을 보게됩니다. 다른 모든 것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가짜 신앙이라는 말씀은 진실된 믿음의 기준이 사랑인 것을 선포합니다.
결국 우리 모두가 본을 보이거나 추구해야 할 신앙생활의 특징은 한마디로 사랑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우리의 믿음이 진실한 것임을 드러냅니다. 사도요한도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라고 말하므로 사랑이 참 믿음과 거짓 믿음을 가르는 기준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우리가 믿고 있는 믿음이 REAL하다는 것이 먼저 가정에서의 특별히 부부간의 사랑으로 먼저 드러나야 되겠습니다. 남자 분들은 가정에서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5:25,28,33)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골 3: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우리의 조상들은 우리들에게 망령된 전통을 남겼을지라도, 우리는 잘 배워서 가정에서 사랑의 모범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모습을 가정에서 먼저 보이고, 먼저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의 믿음이 진실인 것을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디모데는 이런 사랑을 바울로부터 경험했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 주위에 바울 같은 자가 없더라도 우리는 그가 남긴 글을 통해서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삶과 성령님의 열매 (갈 5장):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 이 말세의 고통하는 때를 이기는 하나님의 방법인 것을 깨닫습니다. 사도바울이 말한 말세의 고통을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그리스도인들이 풍성한 삶을 사시기를 원하시고, 또, 풍성한 삶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사람은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더라도 우리는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므로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3 그런데, 악한 자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더 악하여져서, 남을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할 것입니다.
14 그러나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굳게 믿는 그 진리 안에 머무십시오.그대는 그것을 누구에게서 배웠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15 그대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대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줄 수 있습니다.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17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그러나가 나옵니다. 어려운 때를 극복하는 길은 진리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리란 디모데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배운 성경말씀을 말합니다. 왜 ‘배워서 굳게 믿는 그 진리 안에 머무라’고 말합니까?
그 전 절에 보니까 13 “악한 자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더 악하여져서, 남을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때의 역사는 속고 속이는 역사요 이 것은 사탄의 역사입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거짓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속고 속이는 역사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 안에서 머무는 것입니다. 그 진리에서 떠나면 안됩니다.
디모데는 이 진리를 어렸을 때부터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들도 Youth도 대학생도 우리 어른들도 다 이 진리를 배우고 진리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부부관계도 가정도 교회의 모든 사역도 직장에서도. 이 진리 안에 머물러야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갖게되는 모든 관계성 속에서도 이 진리 안에 머물러야합니다.
성경 말씀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가르치는 책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단지 우리가 어떻게 천국에 들어가는지만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치는 책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람, 경건한 사람으로 살 수 있을지를 알려주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적어도 네 가지 기능을 합니다: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17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온전하게 하며),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교훈한다는 것은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깨닫게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책망한다는 것은 우리의 잘못된 점이 무엇인지 지적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바르게 한다는 것은 우리가 향하고 있었던 잘못된 길에서 바른 길로 돌아서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 의로 교육한다는 것은 의롭게 살 수 있도록 훈련되고 성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부 성경이 아니라 모든 성경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이 문제도 다양하고 사탄의 전략도 다양하기 때문에, 성경을 공부하되 모든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단지 한 두 권의 성경이 아니라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되었고 모든 성경이 필요하다고 오늘 본문은 말씀합니다. 모든 성경을 배워야겠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을 귀하게 여겨야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이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잘못된 길에서 바른길로 돌아설 수 있는지 또 의롭게 살 수 있는지를 배우고 실천하는 것만이 그리스도인을 온전하게 하며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이 성경을 통해서 이 어려운 시대에 온전하게 또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무장시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순종하므로 이 세상 풍조에 빠지지 않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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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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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마지막 가르침: “그 진리 안에 머무십시요”
(디모데후서 3:1-17)
1 그대는 이것을 알아두십시오. 말세에 어려운 때 (고통하는 때)가 올 것입니다. 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뽐내며,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며
부모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감사할 줄 모르며, 불경스러우며, 3 무정하며, 원한을 풀지 아니하며, 비방하며, 절제가 없으며, 난폭하며, 선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무모하며, 자만하며,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며, 5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나, 경건함의 능력은 부인할 것입니다. 그대는 이런 사람들을 멀리하십시오. ….
10 그러나 그대는 나의 가르침과 행동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를 따르며, 11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내가 겪은 박해와 고난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러한 박해를 견디어냈고, 주님께서는 그 모든 박해에서 나를 건져내셨습니다. 1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모두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13 그런데, 악한 자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더 악하여져서, 남을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할 것입니다.
14 그러나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굳게 믿는 그 진리 안에 머무십시오. 그대는 그것을 누구에게서 배웠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15 그대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대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줄 수 있습니다.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17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온전하게 하며),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1. 마지막 때의 타락상 (문제점): “말세에 어려운 때 (고통하는 때)가 올 것입니다.” (1)
2. 본보기가 됨(해결책 1): “그러나 그대는 나의 가르침과 행동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를 따르며..”, (10)
3. 진리 안에 머뭄 (해결책 2): “그대가 배워서 굳게 믿는 그 진리 안에 머무십시오”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