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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능력" 고린도전서 1:18 2/1/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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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지금 한국에서는 기독교인들과 교회들이 많이 조롱과 비난을 받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일부 언론단체와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기독교의 흠을 잡아내는데 혈안이 되어 부정적인 것만을 드러내고 보도하고 알리는데 혈안이 되있는 것을 압니다.

2005년 통계청 조사기준으로 불교가 전체인구의 22.8%(1072만여명), 개신교가 18.3%(861만여명), 천주교가 10.9%(514만여명)인데  2013년도에  김홍권 한국종교사회윤리연구소장란 분이  ‘좋은 종교 좋은 사회(예영커뮤니케이션)’라는 책을 통해 한국의 3대 종교가 사회복지와 구제활동에 대한 조사내용을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습니다.

2001-2003 동안
수재의연금 기독교 68.6% 카톨릭 0.5% 불교 15.8% 
대구지하철 모금 기독교 69.7% 카톨릭 7.1% 불교 12.7 %

1996-2002 동안
해외구제 기독교 64.9% 카톨릭 3.4% 불교 1.5%
이외에도 기독교는 대북 인도적 지원에도 앞장섰음을 알 수 있다. 또 기독교운영 장애인·아동·노인복지시설 등사회복지시설의 경우에도 2005년 기준으로 한국전체 906개소 중 약 506개소 규모로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살과 피를 나누는 사랑’에도 각 종교인들을 비교할 때 헌혈과 각막·골수·장기기증, 호스피스 봉사 등에 있어서 기독교가 83.4%, 천주교가 10.0%, 불교가 0.9%

또 말기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호스피스 봉사자는 개신교 단체가 지난 1987년 처음 시작했으며, 그 숫자도 2002년 기준 4천여명으로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왜 기독교가 왜 사람들 한테 가장 따돌림 받고 욕을 많이 먹을까요?  일부 대형교회 목사들의 비리등 교회나 기독교인들에 대한 문제점들은 많이 드러내면서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개인으로 교회로서 행하는 선한 일에 대해서는 세상이 침묵하는 것은 무엇때문 일까요?  이 것은 비단 우리 나아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아닙니다.

소위기독교 국가라고까지도 알려진 미국에서조차도 정치와 종교의 분리 원칙이라는  이름 아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조롱과 차별이 점 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조롱하고 핍박한 것은 오늘날의 이야기 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박해가 심했던 시대도 많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Alexamenos_graffito
1857년에 로마의 한 고대 건물 벽에서 발견된 그림과 낙서입니다.  낙서의 내용은 “자신의 하나님을 예배하는 알렉사메노스”  그림의 내용은  당시의 모욕의 대상인 당나귀의 머리를 한 십자가에 달린 사람을 예배한다고 그리스도인을 모욕하는 그림입니다.  물론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도 당시 사회에서 모욕의 대상임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비하하고 모욕하는 그림과 낙서인 것입니다.  이 낙서는 2-4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므로 이미 그 때부터 기독교인들은 조롱받고 멸시 받았었다는 것을 드러내는 하나의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세상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더라면, 세상이 너희를 자기 사람이라고 하여 사랑했을 것이다.” 요 15:18-19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시대 사람들이 방주를 짓던 노아를 조롱했었듯이 베드로도 주님의 때가 가까와 올 수록 기독교인들이 더욱 조롱받을 것임을 예언했습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벧후 3:3,4

1. 복음은 (십자가의 도)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메시지에 불과하다.
사도바울도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라고 고백합니다.  롬 1:16
사도바울이 이와같이 고백한 것은 그 당시 사회풍조가 복음을 믿는 것을 부끄럽게 만들 정도로 조롱과 멸시가 있기 때문아니겠습니까?  특별히 로마란 제국의 수도에 사는 자들에게는 유대라는 피정복국가출신의 십자가에 달려 죽은 흉악범 청년을 믿으라는 것은 정말 조롱과 망신을 당할만한 일이었을 것이빈다. 

역사적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병원 봉사 자선 구제기관들이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세워졌을 정도로 많은 공헌을 함해도 그리스도인들은 어디가나 조롱당하기 쉽습니다. 왜그럴까요?
결국 오늘이나 옛날이나 그리스도인들이 따돌림을 당하고 조롱과 멸시와 심지어 핍박까지 받는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복음이 어리석어 보이고 말도 안되게 들리니까 그 복음을 빋는 자들도 어리석은 자로 취급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2000년 전에 유대땅에서 십자가에서 죽은 그  갈릴리 청년이 우리의 죄를 위해 죽었다가 부활했다고 선포하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어리석은 것으로 들릴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2000년 전에 유대땅에서 십자가에서 죽은 그  갈릴리 청년이 우리의 죄를 위해 죽었다가 부활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의 죄 가운데 멸망하고 있는 세상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그러나 성경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어리석어 보이는 이 복음의 메시지가  모든 메시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말합니다: 고전 15:1-3절 형제 여러분, 전에 내가 전해 준 복음을 여러분의 마음 속에 되새겨 주려고 합니다. 이 복음은 여러분이 이미 받아 들였고 또 여러분의 믿음의 기초가 되어 있읍니다. 2 그러므로 여러분이 헛되이 믿는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고 내가 전해 준 복음 그대로 굳게 지켜 나간다면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3 나는 내가 전해 받은 가장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읍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성서에 기록된 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것과 4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서에 기록된 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과  (공동번역)

개역성경에는 “내가 전해 받은 중요한 것을”이라고 기록되어있는데,  공동번역에는 ”내가 전해 받은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을” 이라는 단서가 있는 데 이것이 좀 더 정확한 번역입니다.  영어성경에는 as of first importance란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복음의 메시지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이 것은 말기 암환자 치료제를 발견한 것보다 더 중요한 소식입니다)

그리고, 복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소식이기 때문에 바울은 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서라면 자기의 목숨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말했습니다:”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또, 바울은 복음을 항상 생각한다라고 말합니다: “내가 여러분과 함께 지내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 특히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고전 2:2)
왜 복음을 잠시라도 잊지 않기를 원했습니까?  복음으로 충만한 것이 살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것이 바울이 바울된 비결입니다.  복음에 목숨을 걸었기때문입니다.

또 복음은 변개될 수 없는 유일한 복음입니다: ”우리들이나, 또는 하늘에서 온 천사일지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한다면, 마땅히 저주를 받아야 합니다 “ 갈 1:8  여러 종류의 복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절대적인 복음입니다. 조금이라 그 내용이 변개될 수 없는,  그 누구라도 천사들이나 사도들이라도 첨가하거나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종류의 복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유일하고  절대적인 복음입니다.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변개도리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복음이 믿음의 기초라고 말합니다 고전 15:1  그렇기 때문에 복음을 잘못알면 모든 면에서 잘못일 것입니다.  이토록 복음이 이토록 중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2.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  복음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 구원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구원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복음이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란 사실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만이 행하실 수 있는 능력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는 인간의 능력과 노력으로 종교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인간은 자신을 과대 평가하고 하나님을 과소 평가 하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코 인간은 그 누구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의 기준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가?  그 다음 절에 대답이 있습니다.  원문에는 왜냐하면 이라는 접속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길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란 복음 안에서  인간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길을 보여주신 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희생을 치루셨나를 말씀하므로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을 희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나 인간이 그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자임을 보여주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앞에서 죄인이었을 때에, 경건치 않을 때에, 하나님의 원수 되었을 때에 우리 죄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교훈을 주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셨다는 것은 죄의 문제는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는 것이요,  하나님의 해결책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므로 해결되는 것입니다. 

이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죄의 용서를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능력, 하나님으로부터 죄의 용서를 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능력, 하나님으로부터 죄의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는 능력, 하나님으로부터 죄의 용서를 받고 죽었던 생명이 새로운 생명을 받는 능력, 하나님을 알게하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죄의 용서를 받고 성령님을 받게되는 능력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므로  죄의 용서를 받고 구원받고 거듭나고 성령님을 받아서 새로운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3.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또 하나의 하나님의 능력을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구원을 받는 이란 말씀의 시제를 생각해 보십시요 (those who are being saved.)  우리는 과거에 복음을 처음 받아들일 때의 구원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저와 여러분은 지속적으로 현재적으로 구원을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받을 때는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줄 알지만, 일단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면 그 이후로는 자기 힘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하나님의 능력이란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요. 우리들이 죄에서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에 있어서만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매일 현재적으로 구원을 받는 삶을 위해서도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처음 구원 받을 때만 은혜로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구원 받은 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예수 안믿는 분만 복음의 능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복음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바울같은 분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복음 외에는 생각치 않기로 결단했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불행히도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의 감격 첫사랑의 감격을 잃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체로 마치는 신앙생활을 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 교우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라고 당부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드리시는 값비싼 댓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음에도 그 값비싼 은혜를 잊고 낭비하면서 살 수 있으니까 조심하라라는 부탁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사는 삶은 마치 자기 자신이 무엇을 소유했는지도 모르고 핍절하게 사는 삶과 같습니다..

“텍사스 주에 예이츠풀이라는 유명한 유전이 있다. 그 유전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1930년대에 예이츠라는 사람이 목장을 운영하면서 부채에 시달리게 되었고, 급기야 그 빚을 제때 갚지 못해 목장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가족들의 의식주도 해결할 수 없어 정부 보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야 했다. 어느 날 석유 회사에서 나온 지질 관측단이 예이츠의 목장에 석유가 매장되어 있을 것 같다며 시추 작업 허가를 요청했다. 예이츠는 별 기대 없이 계약을 했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석유가 쏟아져 나온 것이다. 하루에 8만 배럴의 석유가 나왔는데 금액으로 환산하면 하루에 250만 달러에 해당하는 돈이다. 석유 회사가 추정하기를 약 30년 동안 계속 석유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예이츠는 어마어마한 갑부가 되었다. 이제껏 그는 석유로 출렁이는 호수 위에 살면서도 가난하게 살았던 것이다. 그의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자기 땅 아래에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지금 내게 필요한 은혜, 회복」/ 김원태

빼앗길 위기에 있던 자신의 농장에서 석유가 쏟아져 나오는 삶은 마치 성령충만한 삶에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런 풍성한 삶을 살라고 성령님을 보내셨건만 예이츠란 사람처럼 쪼달리며 살아가는이유가 무엇입니까?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지만 성령님으로 충만치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심령이 복음으로 충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는 이 복음으로 충만한 삶을 가르켜 성령 충만한 삶이라고 말합니다.  이 것이 은혜의 삶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은 복음에 의존해서 그리고 복음의 맥락에서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성령님을 받습니까? 복음을 받아들일 때 예수님께서 내 심령 속에 들어오시고 성령님을 받습니다. 왜 복음을 받아들일 때 성령님이 우리 심령에 오시는가?  복음을 받아들이므로 죄의 용서를 받아야 거룩한 영이신 성령님이 들어오심. 그리고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에게만 성령님이 역사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역사하실 때는 복음을 재료로 역사하심 - 성령님은 지속적으로 복음을 기억나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었던 나를 당신의 피값으로 사신 주님의 주인되심과 주권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자기 생명을 주고 구원할 정도로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보내서 자기 형상을 닮도록 목적을 가지고 역사하시는 주님을 기억나게 합니다.

주님은 복음을 하나님나라의 복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과 목적을 거부함으로 잃은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케 하는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이를 기억하게 하고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과 목적을 구하는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순간마다 무시로 복음을 생각하고 묵상하며 복음으로 충만하며 복음에 사로잡혀서 단지 천국가기 위해 기다리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과 목적에 따라 매일 매일 은혜의 삶, 풍성한 삶, 승리의 삶, 기쁨과 감사의 삶, 기도의 삶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삶을 살아나가는 그리고 첫사랑을 회복하는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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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1. 복음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고전 1:18a)



2.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 “나는 그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복음은 먼저 유다인들에게, 그리고 이방인들에게까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 주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길을 보여 주십니다. (로마서 1:16, 17)

고전 15:1-3절 “이 복음은 여러분이 이미 받아 들였고 또 여러분의 믿음의 기초가 되어 있읍니다. … 3 나는 내가 전해 받은 가장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읍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성서에 기록된 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것과 4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서에 기록된 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과”  (공동번역)

행 20:24; 고전 2:2; 갈 1:8

(왜냐하면) 복음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길을 보여 주십니다. (롬 1:17)
롬 5:6,8,10 우리가 연약할 때에 (경건치 않을 때에), 죄인되었을 때에, 원수되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심




3.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 “십자가의 도가…구원을 받는 (those who are being saved)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b)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고후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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