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기억하라” 고린도전서 11:23-26 2/15/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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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준 것은 주님으로부터 전해 받은 것입니다. 곧 주 예수 께서 잡히시던 밤에, 빵을 들어서 24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떼시고 말씀하셨 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25 식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시고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 너희가 마실 때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26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입니다.
27그러므로 누구든지, 합당하지 않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28그러니 각 사람은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셔야 합니다. 29 몸을 분별함이 없이 먹고 마시는 사람은, 자기에게 내릴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고전 11:23-29)
우리는 지난 6주에 걸쳐서 복음 세미나를 통해서 복음에 대해서 여러가지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는 귀한 축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장사 한지 사흘만에 부활하셨다가 복음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은 조금이라도 변개될 수 없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복음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이 복음이 왜 절대적인 복음, 절대적으로 복된 소식인가? “(왜냐하면) 복음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길을 보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17 공동번역) This Good News tells us how God makes us right in his sight. This is accomplished from start to finish by faith. As the Scriptures say, "It is through faith that a righteous person has life." (NLT)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죄의 용서와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할 때 성령님을 받기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것도 하늘나라의 시민이 되는 것도.”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할 때 되는 것입니다. 영생을 얻는 것도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으므로 영생을 얻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도 복음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있고 - 복음을 모르면 어떤 기적적인 역사를 체험했어도 그 어떤 지혜와 철학적 지식을 갖고 있더라도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복음을 통해서만 예수님을 믿을 수있고- 복음 외에 다른 것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잘못되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 것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것들입니다. 이 가장 중요하고 영원한 복들은 이 세상의 그 어떤 다른 것으로도 얻을 수 없고 복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입니다. 일반적인 복음이 아니라 유일한 복음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받아들이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들 복음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한 자들보다 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세요? 복음이 이토록 중요한 진리임에도 우리가 항상 잊는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항상 주님을 의식하면서 살겠다고 결심하면서도 곧 잊어버립니다. 제가 그런데 직장생활하며 부딪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하겠습니까? 우리가 모든 면에서 잊는 경향이 있지만 하나님에 대해서 (영원한 것, 진짜 중요한 것에 대해서…) 특별히 더.그런 경향.
“어거스틴은 하나님께 나아감이란 책 (access to God) 에서 에덴동산에서의 인간의 타락 이후 일시적인 것에 대한(무한한 그리고 끊임없는) 욕망이 하나님에 대한 열망을 대체해버렸고 이로인해 하나님에 대해서 잊게한다.라고 말합니다. (1600년전에 이런 통찰력을 가졌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잊게 되니까 세상이 더 커 보이고 세상이 더 중요해 보이고 멋있게 보이고 능력있게 보이는 것입니다. . (그리고 내 믿음도 무능력해 보이고 초라해 보이는 것입니다.)
항상 잊는 것을 아셔서 명령: “나를 기억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좀 더 잘 기억하라고 먹으며서 마시면서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함께 기억하라고): "주님께서 주신 몸, 흘리신 피를 기억하라” 복음을 기억하라.주님의 만찬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복음을 함께 기억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때에는 모일 때마다 주님의 만찬시간을 가졌습니다. 큰 회중이 모일 때뿐 아니라 가정에서 모일 때도 - 다시 복음을 기억하곤 했습니다. 종교개혁시대는 그 이 후에도 매 주 그리고 주중에도 주님의 만찬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 복음 외에는 다른 것은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왜 이렇게 복음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까?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사냐에 따라서 한 인생이 좌우됩니다.
불효자식과 효자의 차이 그리고 원망하는 사람 감사하는 사람의 차이는 같은 부모 같은 환경에 자랐으면서도 과거에 자신이 경험한 것에 대해서 무엇을 기억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대게 부정적이고 불행한 경험들만을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심리학자는 말합니다. (Depressed person tends to recall mostly the negative, unhappy experiences.) 일반사람들도 행복할 때는 행복한 것을 기억하고 슬플 때는 슬픈 것만을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고Norman Rosenthal란 정신과의사는 설명합니다.
불행히도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일반 사람들보다 더 비참하게 사는 분들도 많습니다. 항상 불만에 차있고 항상 감사하지 않고 원망하는 사람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놀라운 축복을 가져다 주었고 현재적으로 가져다주는 복음을 기억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엇을 기억하며 사느냐가 이토록 중요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기억하고 사느냐에 따라 자신만이 아니고 남들도 행복하게 돕거나 불행하게 만든다.
제가 만날 때마자 감사를 나누자는 이유가 있습니다. 옛날에 기도하러 모일 때에 기도제목만 나눌 때 항상 하나님이 해결해야될 문제점만을 나누다 보니까 우리에게 허락하신 수많은 감사을 잊고 문제점에 촛점을 맞추게되는 경향을 발견했기때문입니다.
이번에 복음시리즈를 배우는데 부제가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세요? “복음"은 개인과 교회문제의 “해결책”입니다. 여러분은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인생의 문제들을 복음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습니까? 실지로 해결치 못하는 이유는 - 잊고 살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후 4:8-9 “우리는 사방으로 죄어들어도 움츠러들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으며, 9박해를 당해도 버림받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고후 4:3"우리의 복음이 가려 있다면, 그것은 멸망하는 자들에게 가려 있는 것입니다.
4 그들의 경우를 두고 말하면,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서,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하는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5.... 어둠 속에 빛이 비쳐라" 하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을 비추셔서, [예수]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7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8우리는 사방으로 죄어들어도 움츠러들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으며, 9박해를 당해도 버림받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최목사님과 사모님 몽고 사역지에서 감당키 너무 힘든 어려운 일을 당했음에도 극복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이 복음의 힘 때문이었음을 의심치 않습니다.
“나를 기억하라” 우리가 모든것을 다 잊더라도 기억해야할 것이 있다면 단지 과거에 대한 기억 뿐 아니라 현재적으로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책임져 주시는 분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롬 5:8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가 아니라 현재형 확증하시니라입니다.)
내가 귀중하게 여기는 잃었을 때, 나의 건강과 재산과 직장등 그리고 심지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라도 주안에서 감사를 잃지 않을 수 있고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음으로 승리 할 수 있습니까?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므로 인생의 영원한 문제를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를 주님 안에서 해결받은 자임을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승리의 비결은 복음을 기억하라입니다. (새언약을 기억하라)예수님 자신의 명령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란 사실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사랑, 죄사함, 구원,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심, 영생, 거듭남, 하나님의 백성이란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롬 16:25 “하나님께서는 내가 전하는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선포로 여러분을 능히 튼튼히 세워주십니다.” (새번역)
2. 복음을 선포하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입니다.” 고전 11:26
복음을 기억하는 것은 신앙생활의 핵심이요 승리하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비결이지만 , 주님의 만찬은 주님의 복음을 기억하는 것뿐 아니라 주님의 죽으심, 다시 말하면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과 함께하심과 능력을 기억하는 것뿐 아니라 이 놀라운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만찬을 통해서 복음을 선포한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입니다.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합당하지 않게 그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고전 11:26,27)
27절의 그러므로란 접속사가 26절의 ‘선포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주님의 만찬을 통해 복음을 선포하려면 주님의 만찬을 합당하게 먹어야한다는 뜻입니다. 왜 이런 말을 해야하는가? 이 고린도 교회가 주님의 만찬을 합당하게 먹지 않으므로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은 주님의 만찬을 합당하게 먹지 않던 고린도 교회를 이렇게 책망합니다.
17 여러분이 모여서 하는 일이 이로움을 주지 못하고, 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20여러분이 한 자리에 모여서 먹어도, 그것은 주님의 만찬을 먹는 것이 아닙니다.
22 여러분이 하나님의 교회를 멸시합니다.
29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중요성을 모른다고 책망합니다.
교회내의 분열이 있고 가난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기 때문에 주님의 만찬을 들지만 실지로 주님의 만찬도 아니고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고 있지 못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것이 고린도 교회만의 문제이겠습니까?
주님의 만찬 자리가 서로 차별하고 분열되 있고 서로 사랑치 못한다면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고 우리가 외치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란 이야기 아닙니까? 우리가 믿는 복음이 우리로 하여금 서로 용서하게 하고 받아들이게 하고 사랑케 하지 못한다면 그 것은 복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 교회들의 복음 증거가 약화된 이유는 교회에 속해서 신앙생활하는 하는 사람들의 관계성이나 세상사람들의 관계서이 별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최목사님의 복음 세미나 강의중 기억남는 사실 중에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을 우상으로 섬길 수 있다란 사실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거하시던 법궤와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우상으로 섬겼듯이 오늘날도 주님의 만찬이 우상으로 섬겨질 수 있습니다. 카톨릭교회에서는 주님의 만찬때 사용하는 떡과 포도주가 실지로 예수님의 육체적인 몸이요 피라고 가르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성만찬이란 표현보다는 성서에서 표현한대로 주님의 만찬이라고 부릅니다. 자칫 성만찬이라고 부르면서 떡 자체와 포도주자체가 신성한 것처럼 여기는 것은 잘못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마셨던 떡과 포도주가 그들을 변화시켰습니까? 죄를 회개치 않고 관계성을 해결하려는 의도조차 없이 우리가 떡과 포도주를 들면서 자신이 변화되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주님의 만찬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의 만찬이란 말은 영어로 Lord’s Supper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communion이라고 부릅니다. Communion이란 말은 우리의 관계성 속에서 마음 깊은 곳의 생각과 감정을 서로 나누는 깊은 교제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죽음으로 하나님과 인간간의 장벽을 허물었을 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간의 장벽을 허무셨기 때문에 우리는 Communion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복음입니다. 복음이 절대적으로 복된 소식인 것은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과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남 하나님의 백성이 됨 등의 축복을 주었지만, 또한 다른 믿음의 형제들과 지체로서 한몸된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축복하셨기 떄문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말세에는 고통하는 때가 이른다. 자기를 사랑하며...진정한 친구를 갖지 못해 삶을 나눌 사람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고민하며 괴로워 하는 사람들로 그득찬 세상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자살까지 하지 않습니까? 진정한 친구가 없는 세상가운데 살면서 사람들은 신음하고 있고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진정한 친구가 되기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주셨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 15:13-14
진정한 친구가 되시기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신 주님. 나의 죄뿐 아니라,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기 때문에, 그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여 다른 형제들을 더 이상 세상의 안목으로 바라보지 않는 삶을 살며, 또 우리 가운데 성령님을 보내시므로 진정한 사랑을 나누게 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 15:10-12 사랑하는 것이 주님의 기쁨이요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는 것입니다. 이 것이 복음에 합당한 삶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산다는 것은 빌 1:27 여러분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십시오. 그리하여 내가 가서, 여러분을 만나든지, 떠나 있든지, 여러분이 한 정신으로 굳게 서서, 한 마음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함께 싸우며, 28 또한 어떤 일에서도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나에게 들려오기를 바랍니다.
엡 4:1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 갇힌 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깍듯이 대하십시오. 오래 참음으로써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십시오. 3 성령이 여러분을 평화의 띠로 묶어서, 하나가 되게 해 주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 4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그 부르심의 목표인 소망도 하나였습니다.
오랫만에 교역자 모임에 갔었는데 다시 한번 어중간한 관계는 많은데 진정한 사귐이라기 보다는 겉도는 피상적인이야기 밖에는 할 수 없는 관계가 아쉬었습니다. 서로 진정한 사귐을 가질 수 있는 관계로 발전되지 못한다면 서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만찬을 나누는 것은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며 우리가 하나되도록피를 흘리신 주님을 기억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형제를 위해서도 죽으셨으므로 그 누구도 세상적인 관점으로 대하지 않겠습니다. 내게 권한이 달려있는 한 그누구도 용서하겠습니다. 우리가 커뮤니언합니다. 서로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겠습니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서로에게 친구가 되는 것이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인 줄 믿습니다
나는 이런 말씀을 하고 명령을 하신 우리 주님을 사랑치 않을 수 없습니다. 안믿을 수가 없습니다.
원래 3월초에 예정이었던 주님의 만찬을 오늘 함께 하고저 하는 것은 이제 몽골로 돌아가시는최목사님가정과 우리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주님 안에서 한 몸이란 사실을 다시 한번 고백하고 확인하는 시간을 갖기 원해서 였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만찬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서로 서로의 관계가 회복되고 사랑을 경험할 때 그리고 사랑에 대한 헌신을 할 때 우리는 주님의 만찬을 통해서 복음을 선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3. 마지막으로 주님의 만찬을 위를 살펴보는 식사입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은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셔야 합니다.” 28 이 것은 마치 식사하기 전에 손을 씻는 것에 비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1800년대 초에 유럽에서는 애기를 난 부인들 중에6명의한명꼴로 산 후열 (병균에 감염) 로 죽었다고합니다. 약 17%의 치사율입니다. 그런데 Dr. Ignaz Semmelweis 가 돌본 부인들은 50명 중에 한명만 죽었다고합니다. (2%) 그 이유는 손을 철저하게 잘씼는데 있었다고합니다. 지금은 상식적인 일이지만... 이 의사가 이런 놀라운 실증을 가지고 의사들에게 말하고 말해도 의사들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부인들이 죽어가도 손을 확실하게 씻는것 이 것을 하지 못하게다고 거부한 것입니다. 그의 말을 아무 다른 의사들이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손을 씻기를 거부했던 의사들, 손을 씻는 것의 결과를 보았으면서도 믿지 않았던 의사들의 고집을 보면서, 주님이 그렇게 말씀했음에도 용서와 화해하기를 거부하는 고집스러운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해봅니다. 이 것이 고린도 교회에 있었던 문제입니다. 이들이 모일 때마다 주님의 만찬을 했으니까 얼마나 많이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전혀 회개하지 않았고 회개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먹어도, 그것은 주님의 만찬을 먹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모임이 오히려 해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욕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멸시하였습니다.
우리들의 영적인 손을 철저히 씻지 않았기때문에, 오늘날 수 많은 그리스도인의 모임이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욕되게하고 멸시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예수님보다 우리가 더 기억해야할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보다 우리가 더 선포해야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죄를 정기적으로 고하므로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다른 성도와의 관계등 인간관계에서 회복되는 역사를 경험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주님의 만찬시간을 갖더라도 예수님을 기억하는 시간도 아니요 복음을 선포하는 시간도 아닐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말한대로 그 것은 주님의 만찬이 아닙니다.
여러분 기억하시지요, 최목사님이 복음의 시리즈 강의 중 베드로 이야기
베드로가 이방인과 식사하다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오니까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습니다.
이를보고 바울이 베드로에게 “복음의 진리를 따라 똑바로 걷지 않는 다고 게바를 많은 사람 앞에서 책망했습니다. (갈 2:11-14)
복음은 인간관계를 규정합니다.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을 세상적인 관점, 가치, 기준으로 보지 않게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용서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적어도 내 쪽에서 내 삶에 용서치 못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였는가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줄압니다.
오늘 주님의 만찬을 들면서
분명 나에게도 주님 앞에 고백해야할 죄가 있을 것입니다.
나는 복음 때문에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복음 때문에 이웃된 다른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는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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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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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기억하라”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준 것은 주님으로부터 전해 받은 것입니다. 곧 주 예수 께서 잡히시던 밤에, 빵을 들어서 24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떼시고 말씀하셨 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25 식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시고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 너희가 마실 때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26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입니다.
27그러므로 누구든지, 합당하지 않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28그러니 각 사람은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셔야 합니다. 29 몸을 분별함이 없이 먹고 마시는 사람은, 자기에게 내릴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고전 11:23-29)
1. 복음을 기억하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24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 너희가 마실 때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25
2. 복음을 선포하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입니다.” 26절
3.복음으로 살피라: “그러니 각 사람은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셔야 합니다.” 2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