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함께 섬깁니다” (쉬운성경 빌 2:1-4) 8/2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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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여러분에게 힘이 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위로를 받고 있습니까? 성령 안에서 서로 교제하며, 친절과 동정을 베풀고 있습니까? 2 그렇다면 서로 한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고, 한 뜻으로 하나가 되십시오. 3 무슨 일을 할 때, 이기적이거나 교만한 마음을 갖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존중해 주십시오. 4 자기 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다른 사람이 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 내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해 주십시오.” (쉬운성경 빌 2:1-4)
우리가 지난 한달 반 동안 공동체를 세우는 삶을 중심으로 나눈 설교말씀을 개요적으로 요약해서 주보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설교 본문은 교회 웹싸이트에 가시면 설교내용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우리가 여러가지 내용을 배웠지만 이 모든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가장 귀중한 것으로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이 세상에 교회들을 세우시는 것은 우리가목적없이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다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나은 세상 좀 더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세상으로 변화시카기 위해서인줄 압니다.
그러므로, 제가 여러번 말씀드렸지만, 이번 공동체를 세우는 삶을 통해서 다른 것은 잊더라도 “사랑하기를 배우고 실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기억하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다 같이 따라서 해보겠습니다.“사랑하기를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 내 인생의 목적이다.” 이 것을 다른말로 예수님을 닮는 삶, 영적 성장의 삶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섬김으로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며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내 생명을 주려고 왔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20:28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섬기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섬기는 삶이 그 분의 인생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도 섬김의 삶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너희가 아는 대로, 이방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27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세상은 위대함을 권력, 소유물, 명성, 지위의 측면에서 정의합니다.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섬김을 요구할 수 있는 입장이 되었다면 인생에서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책방에 가 보아도 리더쉽에 관한 책은 많지만 섬김에 관한 책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위대함을 권력이나, 지위나 신분이 아니라 우리가 다른 사람을 얼마나 섬겼느냐로 결정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서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27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slave 노예가 되어야 한다)
정말 믿기 쉽지 않은 말씀입니다.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너무 쉽게 잊는 말씀입니다. 잠간 잠간 겸손한 행위를 보이는 것 도와주는 것, 시중드는 것이 아니라, 남을 섬기는 종의 정체성을 갖고 사는 것이 위대한 일입니까?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은 Okay이지만, 정말 다른 지체들을 위한 종이 되는 것이 위대한 일입니까?
사도바울과 동역자들의 삶과 고백을 보면 그렇게 믿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4:5).
단지 필요에 따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종으로서의 정체성을 위대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그 비밀이 무엇일까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만 진정으로 서로에게 복종할 수 있듯이 (엡 5:21)”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이고 주님을 경외하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갈5:13). 바울은 갈라디아에 살던 그리스도인들에게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고 말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자유함을 얻은 자들만이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자신의 습관, 상처, 명예에 관한 욕망, 다른 사람들에 대한 쓴뿌리 반감 등에서 자유를 경험한 자들만이 사랑으로 종노릇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을 경험한 자들만이 사랑으로 종노릇할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종노릇 하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한없이 넓고 깊고 높은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충만할 때 (엡3:18,19) 우리는 그 것으로 만족하고 진정으로 겸손해 지고 남을 진심으로 기쁨으로 섬길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의 구원의 경험이 없이도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이 없이도 우리는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심지어 전재산을 팔아서 남을 구제한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목적을 위한 섬김이기 때문입니다: 막연한 의무감에서도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자아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나님을 감동시키기 위해, 구원을 얻기 위해 섬기는 것은 다 잘못된 동기로 섬기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여러분에게 힘이 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위로를 받고 있습니까? 성령 안에서 서로 교제하며(우리에게 진정으로 섬길 수 있는 능력을 주는 요소들), 친절과 동정을 베풀고 있습니까? 2 그렇다면 서로 한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고, 한 뜻으로 하나가 되십시오. (빌 2:2 쉬운성경) 한마음 - 서로 동의; 같은 뜻 (목적)을 품으라
1. 함께 섬기기 위해서는 목적이 같아야 한다.
예를 들어서 섬김의 대표적인 마덜 테레사가 우리 교회에 와서 자신이 섬기는 사업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한다면 우리가 동참할 수 있습니까?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분이 훌륭한 분이요 존경받을 만한 분이란 것은 사실이지만 섬김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믿는 분이므로 우리와 목적 자체가 다릅니다.
만약 섬김 자체가 목적이라면 마덜 테레사던 누구든 함께 섬길 수 있 습니다그러나, 섬김의 행위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섬김의 목적이나 동기입니다. 왜 섬기는가? . 물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섬김의 목적에 대해서 말합니다: “우리에게 이 모든 선물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기도록 준비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서로 섬김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더욱 강하게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4:12 쉬운성경)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오늘날도 우리 가운데 행하시는 그의 교회를 세우고 계십니다. 우리는 섬김으로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며 그분의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섬김의 행위를 행함에 앞서 이 섬김이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데 도움이 되는 가를 물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란 하나님의 집을 세우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친히 기초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건축의 중심과 표준이 되도록 모퉁이돌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이 터 위에 우리의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집이요 성전인 주님의 교회가 세워져 갑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을 재료로 사용하며 어떤 사람들은 나무, 풀, 짚을 재료로 사용하여 집을 세워나간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는 일에 인색한 개인이나 교회는 자기 집을 짓느라고 바빠서, 하나님의 집은 판자집이나 천막집을 짓는 것이고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는데 헌신된 개인이나 교회는 견고하고 아름답고 웅장한 집을 짓게되는 것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피흘려 기초를 놓으셨는데, 혹시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기초 위에 초막집, 판자집이나 천막을 짓는 것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가장 귀한 것을 드려 주님의 교회를 세워나가는지요?
또 하나님의 집인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혼자 짓는 것이 아니라 함께 짓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각 성도들을 하나님의 집을 이루는 살아있는 돌들로 묘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각 각 모난 돌들입니다. 깨어지고 다음어져 각각 그리스도를 닮아갈 때 이 돌들이 서로 맞물려 건물을 짓는데 사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에 각 개인이 영적으로 성장하고 하나님의 집이 지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완성되지 못하고 중도에 세우기를 중단하고 짓다만 교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의 분열로 인해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 붕괴되는 것을 그토록 안타까와 했는데, 오늘날 그러한 일들이 너무 쉽게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그것이 교회의 지체된 우리들이 각각 모난 돌들로서 깨어지고 다듬어지는 변화를 거부하고 남의 모난 것만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섬길 뿐 아니라
2. 함께 섬기기 위해서 자신보다 다른 지체를 더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여러분에게 힘이 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위로를 받고 있습니까? 성령 안에서 서로 교제하며, 친절과 동정을 베풀고 있습니까? 2 그렇다면 서로 한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고, 한 뜻으로 하나가 되십시오. 3 무슨 일을 할 때, 이기적이거나 교만한 마음을 갖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존중해 주십시오. 4 자기 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다른 사람이 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 내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해 주십시오.”
종들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왜 사도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다른 사람을 더 존중하라고 강조해야하는 배경이 무엇입니까? 교회내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교회가운데 가장 열심있다는 지도자격 여인들 가운데 갈등이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교회를 열심히 섬기다가 결국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과 사람을 섬긴다고 하지만, 결국 우리 자신을 섬기는 것이 드러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다른 사람을 섬기되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바라고 인기를 바라는 것이 저와 여러분의 모습은 아닙니까? 결국, 우리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남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까?
주님께 헌신코자 하는 마음으로 오지에까지 갔던 선교사들이 선교사역을 포기하는 가장 흔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선교지 환경도 아니고, 박해도 아니고, 사역의 효율성도 아니고, 다른 동료 때문입니다. 잘 잘못을 떠나서 신앙이 있는 자라 할지라도 우리는 이렇게 쉽게 갈등관계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우리는 거듭났다고 하지만, 아직 자기 중심적인 본능에서 사로잡힌 이기적인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 에 대해서 가장 많이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과대 평과하는 경향때문에 내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남에 대해서는 가혹한 잣대를 드리대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만 빼놓고는)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과 약점은 잘 못보면서 남의 잘못이나 약점은 잘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너무 쉽게 교만에 빠질 수 있습니다. (담임목사)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겸손이나 섬김은 매일 매일, 아니 순간 순간의 싸움을 통해 얻어지는 것입니
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이상 종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대면합니다. 나 자신의 필요를 채우느냐 아니면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우느냐의 선택을 해야하고, 거듭해서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야말로 종이 되기 위한 가장 핵심 요소입니다. 그래서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섬김의 삶을 사신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우리는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지 않으면 안됩니다.
고린도교회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많은 은사를 주신 교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재능과 은사와 지식과 시간과 물질과 경험들은 본인 자신이 아니라다 다른 사람을 섬기도록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은사를 서로 섬기는데 사용하기 보다는 자신들을 섬기고 높이는 도구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들을 신앙적으로 아기같다고 말합니다. 신앙의 성숙도는 얼마나 많은 은사와 지식을 갖고 있느냐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종의 마음을 갖고 얼마나 섬기는가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존중해 주십시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형제 자매를 사랑하듯이 서로 사랑하며, 자신보다 남을 더 존경하십시오.(쉬운성경 롬 12:10)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표준새번역) 함께 섬기려면 의도적으로 의지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더 낫게 여기고 더 존경해야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존경할 수 있을까? 가장 일반적인 것은, 우리들이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설교를 듣는 태도) 대화 – Communication cation-care
일반대화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저에게는 상대방이 말하는 중간에 상대방의 말을 끊고 끼어드는 못된 버릇이 있습니다. 지금은 좀 나아졌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상대방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다 알고 있고 그 결론이 무엇인지 안다는 교만한 생각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연구에 의하면 사람은 일반적으로 1분에 650단어까지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1분동안 말할 수있는 단어는 150단어라고 합니다. 650단어을 이해할 수 있는데 상대방은 150단어 밖에 말을 못하니까, 400단어를 더 들을 수있는 그 공백때문에 따분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 더욱 상대방이 말을 반복해서할 때는 더더욱 지겨움을 느낄 수 있겠지요. 그럴 때 신문이나 다른 책이나 스마트폰을 본다는 것은 존경을 드러내는 태도가 아닙니다...
선입관을 갖고 상대방을 판단하고 그의 말을 끝까지 않 듣는 것도 문제구요: 지난 주에 침례교 교역자 수련회 오신 분 중 이번 세월호가 미 잠수함 종북주의자; 특히 믿음 생활을 오래한 분들이 자기 잣대로 다시 수준에서 판단. 믿음이 약한 사람을 따뜻이 맞아 주고 그의 의견을 함부로 비판하지 마십시오. 롬 14:1 현대인성경 믿음이 강한 사람은 자기 좋을 대로 하지 말고 믿음이 약한 사람의 약점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이웃의 뜻을 존중하고 그의 이익을 도모하여 믿음을 북돋아 주어야 합니다. 롬 15:1,2
열심히 말을 듣고도 약속까지 하고도 전혀 지키지 않는 것도 문제구요.
대화조차 하지 않을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또 한가지는 모임참석에 관한것입니다: 맘에 안들고, 불편하고 귀찮지만 이런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모임에 참여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나의 것 보다 앞세우는 것이요, “나는 당신의 가까운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당신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하라” (롬 12:10) 는 말씀처럼 다른 지체에 대한 존경 표시일 것입니다.
(또 4절에 보면 실제적인 제안이 있습니다. “각 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 아니라 또 한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이 충만케하라” (빌 2:4) 주님은 이제 잡혀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바로 전에 자신의 죽음의 그림자가 온 다락방을 뒤덮고 있는 그 순간에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행동으로 자신의 필요보다 제자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므로 그 분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해야할 일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섬길 시간이 있느냐고 말합니다. 교회 모임이나 장막모임에 참여할 시간이 없다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마디로 내가 아직 나의 주인이고 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종은 자신의 계획을 내려놓고 언제든지 기쁨으로 주님의 계획을 따르는 것입니다.
3. 함께 섬기기 위해서는 적은 일, 하찮은 일에도 동일하게 헌신해야합니다.
평북 정주에 아주 똑똑한 청년이 살았습니다. 그는 비록 집안이 가난해서 머슴살이를 했지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오히려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그는 매일같이 주인의 요강을 깨끗이 닦아놓곤 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이 머슴의 자세를 보고 주인은 이 청년이 머슴살이를 하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해 학자금을 대주며 평양에 있는 숭실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켰습니다.
마침내 그 청년은 숭실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오산학교 선생님이 되었습니다.이 청년이 바로 민족주의자요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조만식 선생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제자들이 인생의 성공 비결을 물을 때마다 “여러분이 사회에 나가거든 요강을 닦는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일러주었다고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충실하고, 지극히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 일에도 불의하다.” (눅 16:10새번역) 그러나, 소위 '위대한'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만, 작은 일을 기꺼이 하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작은 일은 무엇인가?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일입니다. 하구싶지 않거나 책임을 맡으려고 하지 않는 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 인간적으로 보기에 별로 의미가 없는 일, 하찮은 일입니다. 다 작은 일들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눈여겨 보시는 일입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예수님의 전공 분야였습니다: (예수님의 30년 삶) 발 씻기기, 어린아이들 돌보기, 아침 식사 만들기, 문둥병자 돌보기, 사마리아 여인이나 가나안 여인을 만나 준 일, 사케오의 집에 머문일, 세상에서 왕따 당한 자들과 같이 어울리심 등 예수님은 섬기러 오셨기 때문에 당신이 섬기지 못할 일과 섬기지 못할 대상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진정으로 사람들이 피하는 평범한 일, 하찮은 일의 선구자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닮으려면 작은 일들 하찮아 보이는 일들을 평범한 일들에 충실해야합니다. 진정한
종의 마음은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으려는 이런 작은 일을 행하는데 드러난다. 그러나 약 600년 전에
왜 유럽에서 종교개혁이 왜 일어나야만 했습니까? 소위 하나님의 종이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섬기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섬김을 받으려 했기때문에 종교개혁이 일어나게된 것 아닙니까?
안타까운 것은 한국에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특별히 목사들이 섬기는 자라는 인상보다는 섬김을 받는 자란 평판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요?
새벽기도도 다니며 열심인 직장상사가 제일 까다롭고 남들을 괴롭히는 역할을 감당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요?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인들로서 어떤 평판을 받고 있습니까?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교회모임에서든 또 그 외 어디서든지 조그만 일에도 최선을 다하여 섬기는 종으로서의 삶을 살고 계십니까?
성경은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 하듯이 열심히 일하십시오.' (골 3:23) 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일의 규모를 상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큰 일이던 작은 일이던 최선을 다하며 주님을 섬기듯이 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들과 제가 충성되게 감당해야할 작은 일은 무엇입니까? 내가 감당해야할 작은 일들이 무엇인지 주의 깊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작은 일들을 위대한 일들처럼 감당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들과 제가 충성되게 감당해야할 작은 일은 무엇입니까? 지금 저와 여러분들이 소홀히 하고 있는 일들은 다 작은 일들일 것입니다. 그 것을 충실히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마 25;23)란 칭찬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 오늘 설교 내용 중에 Rick Warren 목사님의 책이나 설교 내용에서 인용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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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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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함께 섬깁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여러분에게 힘이 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위로를 받고 있습니까? 성령 안에서 서로 교제하며, 친절과 동정을 베풀고 있습니까? 2 그렇다면 서로 한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고, 한 뜻으로 하나가 되십시오. 3 무슨 일을 할 때, 이기적이거나 교만한 마음을 갖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존중해 주십 시오. 4 자기 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다른 사람이 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 내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해 주십시오.” (쉬운성경 빌 2:1-4)
1. 함께 섬기기 위해서는 목적이 같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서로 한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고, 한 뜻으로 (목적) 하나가 되십시오. (빌 2:2 쉬운성경)
우리에게 이 모든 선물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기도록 준비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서로 섬김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더욱 강하게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4:12 쉬운성경)
2. 함께 섬기기 위해서는 자신보다 다른 지체를 더 생각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할 때, 이기적이거나 교만한 마음을 갖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존중해 주십시오4 자기 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다른 사람이 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 내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해 주십시오” (빌 2:3,4 쉬운성경)
3. 함께 섬기기 위해서는 적은 일, 하찮은 일에도 동일하게 헌신해야 합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충실하고, 지극히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 일에도 불의하다.” (눅 16:10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