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와 살을 가진 인간 예수님” (히브리서 2:14-18) 9/28/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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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녀들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그도 역시 피와 살을 가지셨 습니다. 그것은, 그가 죽음을 겪으시고서, 죽음의 세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멸하시고, 15 또 일생 동안 죽음의 공포 때문에 종노릇하는 사람들을 해방시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16 사실, 주님께서는 천사들을 도와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도와주십니다. 17 그러므로 그는 모든 점에서 형제자매들과 같아지셔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비롭고 성실한 대제사장이 되심으로써, 백성의 죄를 대신 갚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18 그는 몸소 시험을 받아서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시험을 받는 사람들을 도우실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2:14-18, 새번역)
유대교인들은 지금도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그들은 메시야를 정복자로 오실 분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메시야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구원자가 아니라,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한 정복자로서 새하늘과 새땅을 도래시킬 분으로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그런 분으로 생각하고 따랐습니다. 그러니까, 메시야로 알고 있었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린다는 것을 그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과연 메시야인가란 문제가 다시 예수를 믿는 성도들 사이에 대두되기 시작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들은 원래 유대인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예수님을 믿은 이 후 자신들이 당하는 형편이 좋아지기는 커녕 더욱 악화되는 상황 가운데 있었습니다. 오히려 이대로 믿다가는 순교당할지도 모르는 형편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겪는 고난스런 상황가운데서 자신들을 구원해 줄 정복자와 정치적인 해방자와 같은 메시야를 간절히 바랄 수 밖에 없는 상황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께서 왜 정치적인 정복자 혹은 해방자로 오시지 않고 구원자로 오셔야 했는지를 설명해야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1.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적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죽음과 죽음에 대한 공포 문제이다.
2. 인간의 죽음과 죽음의 공포의 문제는 악마가 죽음의 세력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3. 악마가 죽음의 세력을 잡고 있는 것은 인간의 죄 때문이다.
4.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이세상에 오신 것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므로 사탄과 죽음의 문제까지도 해결하기 위해서 오셨다.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리고 마귀의 유혹에 따라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자신의 주권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결국 악마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주권을 악마에게 드린 것이 바로 죄요 그 결과가 죽음인 것입니다. 창세기 전반부에 드러난 우리 인간의 문제는 결국 사탄의 등장, 인간의 죄, 그리고 죽음의 문제인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여인의 후손이 사탄의 머리를 짓밟음으로 해결할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원시복음”
하나님께서 때가 차매 이 여인의 후손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보통 사람들을 남자의 후손이라 부르는데 왜 여인의 후손인가? 성령으로 처녀 마리아에게서 잉태된 분이시기 때문에 그 분은 신성과 인성을 공유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히브리서 1장에서는 예수님의 영원하신 신성, 하나님되심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2장에서는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하면서 왜 그 분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오셨는가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번 째는 죽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사탄을 멸하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 오히려 죽임을 당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지요. 예수님께서 전능자로 오셔서 사탄을 그냥 멸하실 수 없었습니까? 오히려, 예수님이 죽으셔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대답은 사탄이 인간의 죽음의 세력을 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사탄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께서 “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실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는데도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치 않았다는 것은 그 분에게 주권을 드리지 않고 오히려 사탄에게 주권을 드린 것입니다. 그 것이 죄요 그로 인해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했습니다.
사탄은 마치 검사와 같은 자입니다. 하나님께 인간을 고소하는 자입니다. 그는 “범죄하는 영혼은 죽으리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 인간을 고소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간을 고소하는 사탄을 무조건 없이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시지만 그 분 자신의 공의의 법을 취소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죄인들은 죽음으로만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죽음의 형벌에서 구하는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가 그들을 위해서 대신 죽어야 하는데, 모든 사람이 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죄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설상 흠없고 죄없는 어떤 의인이 있다 하더라도, 그 의인은 오직 다른 한 사람을 위해서만 죽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여인의 후손으로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대속죄의 죽음을 믿는 사람들에게 사탄은 더 이상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가 아닙니다. ‘죄의 삯은 죽음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롬 6:23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단지 에덴 동산의 회복을 하신 것이 아니라, 그 보다 더 완전한 낙원을 이루시게 하셨습니다. 에덴은 기가막히게 좋은 곳 이었지만, 아직도 사탄이 존재하고 있었고 이로 인해 죄와 죽음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그런 곳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게서 마귀를 완전히 멸하시므로 완전한 하나님 나라, 새하늘과 새땅을 시작하시게 될 것입니다.
도저히 인간의 능력과 지혜로는 해결될 수 없는 죽음의 문제와 사탄의 문제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해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합니다.
두번 째로, 예수님께서 피와 살을 가지신 육신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죽음을 겪으신 이유는 악마를 멸하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일뿐 아니라, 15절에 보니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습니다:“죽기를 무서워 하므로 한평생 메어 종노릇 하는 자들을 놓아 주려 함이라.(히1;15)
7월 30일 1945년 일본 잠수함공격에 의해서 이차대전의 마지막 침몰한 미국의 전함은 the USS Indianapolis 호입니다. 1200명의 승무원 중에 오직 321명만 생존했든데, 생존자들중 에드가란 분은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물에 빠져 사투 하던 자가운데 아무도 신이 없다거나 신이 필요없다고 말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 죽음에 직면 하게 되면 하나님을 보게된다. 수일간 바닷가에서 너무나도 분명하게 창조주를 인식할 수 있었다.”
(죽음을 두려워했던 WILLIAM RANDOLPH HEARST 의 이야기)
여러분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까? 이 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는데 결국 종교는 사람들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코자 갖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한동안 한번은 산타아나지역에서 가가호호를 다니면서 전도한 적이 있는데 어떤 독실한 카톨릭 신자 연세가 많이 드신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이웃에 있는 성당에 매일 아침마다 미사에 참여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열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구원 받았는지 몰라 두려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불교계의 가장 유명한 승이라고 말할 수 있는 티벳의 달라이 라마 스님의 죽음을 맞이 할 자세 준비를 위해 다음의 세가지를 기억하고 수행하라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죽는 것은 확실하다 -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열심히 수행하라
죽는 때가 정해져 있지 않다 -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지금 당장 수행을 시작하라
죽을 때 수행빼고는 도움이 안된다 - 친구, 부, 몸 다 죽을 때 도움이 안되니까, 이런 것들에 애착을 가지지 않도록 수행하라. 결국 열심히 수행하는 것이 죽음에 대한 준비라고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자신의 노력으로 얻는 구원을 가르키기 때문에 열심으로 노력하고 수행해야 하지만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죽음 후의 구원에 관해서 확신을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 은혜로, 구원을 얻음, 여러분에게 난 것이 아님, 선물임,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님 등 우리의 능력이 우리의 업적을 통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 받을 수 있고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이미 보장돈 것이므로, 구원을 이미 받은 과거형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실지로 그런 확신이 있습니까? 오늘 예수님이 오신다면 여러분들은 천국에 들어갈 자신이 있습니까? 아니면, 단지 구원을 받게되기를 희망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혹시 그런 분이 계시다면 예배모임이 끝난 뒤 제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이유는 “죽기를 무서워 하므로 한평생 메어 종노릇 하는 자들을 놓아 주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가 죽은 후에 천국에서 살도록 오셨지만, 그러나 또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그 때까지 이 세상에 살면서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미래에 있을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고 살기를 원하시는 주님이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토록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을 갖고 살기를 원하시는이유가 무엇일까요?
1. 만약 우리가 구원이란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하나님을 진정으로 찬양하며 감사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2. 또,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으므로, 내게 새로운 생명이 있는 지 모르는 상태에서 신앙 성장은 불가능하며, 자신도 구원에 대해서 모르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전도할 수 없을 것입니다
3. 죽음 후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어떤 심판을 받을지 몰라 불안해하며, 더욱 비참한 삶을 살게될 것입니다.
4.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이 없다면 하나님을 대할 때에 아버지와 같은 분이 아니라, 자신을 시험하는 채점관으로 대하며 거리감을 갖게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버림 안받기 위해서 잘 보이려고 매일 피곤한 삶을 살게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기를 무서워 하므로 한평생 메어 종노릇 하는 자들을 놓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실에 대해서 먼저 감사해야겠지만, 또한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에 죽음과 심판에 대한 두려움없이 살수 있도록 허락하신 은혜를 감사드리며 살아야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은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므로 사탄과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함이란 것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마지막 요점을 살펴봅니다. 오늘 본문 17절과 18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이 되시기 위함이라고 밝힙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의 대제사장이란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히브리서에만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 되심을 10번정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님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17절 “하나님 앞에서 자비롭고 성실한 대제사장이 되심으로써, 백성의 죄를 대신 갚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을 속죄제물로 드린 것입니다:“그리스도께서는…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염소나 송아지의 피로써가 아니라, 자기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히 10:11-12)
완전한 대제사장으로서 완전한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완전한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린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속죄제물로 드리시므로 이미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기 때문에 더 이상 반복해서 다른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서 제사드리는 역할을 다 마치셨음에도, 그 분의 역할은 영원히 지속된다고 기록합니다: (히 7: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는 분이므로, 제사장직을 영구히 간직하십니다”; 히 6:20 예수께서는 ….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대답이 18절에 나와있습니다. “그는 몸소 시험을 받아서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시험을 받는 사람들을 도우실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2:18, 새번역)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 4:15)
그리고 그 분은 고난과 시험을 경험 하신 분일 뿐 아니라, 시험을 이기신 분으로 그 당시 고난 받고 시험받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도 도우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남아 계셨다면 아마 우리가 하나님과 공감대를 못 느낌, 정서적으로 통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혹은 예수님이 천사로 오셨더라도 본인이 인간으로서 받을 수 있는 시험을 경험치 못하였으므로 시험을 받는 자들을 돕는 역할을 못하셨을 것입니다.
질문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단 한번에 자신을 완전한 속죄의 제물을 드리시므로 우리의 죄가 깨끗하게 씼음을 받게 하셨지만, 우리를 도우시며 우리를 위해 중재의 간구를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시요 우리는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은 모두 한 분이신 아버지께 속합니다.” (2:11새번역) 예수님의 역할은 거룩하게 하는 자로서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라고 말씀하신 명령처럼, 하나님을 닮아가도록 돕는 분입니다. 우리는 죄의 용서를 받으므로 법적으로는 거룩하다는 인정을 받았지만 실질적인 거룩에 이른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을 닮는 과정에 있는 자들입니다.
공주던 왕자던 상관없이 첫째가 왕위를 계승하도록 1980년도에 개정된 스웨덴헌범에 의해서 아버지 왕이 죽은 뒤에서 왕위를 계승하게 되어 있는 빅토리아 공주가 2002년에 만난 한 시골출신 청년과 같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진짜 왕자로 만들기’ 프로젝트를 거쳐 8년 만에 2010년에 결혼함 (참고 http://biblenet.co.kr/s01_5.php?bo_table=s01_5&wr_id=1264)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만약 이 시골청년이 ‘진짜 왕자로 만들기’ 프로젝트에 참여 안했다고 생각해봅시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결혼까지 했을지 모르지만 계속 가정적으로 국가적으로 문제점을 일으켰을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친구요 형제로서의 신분을 가졌지만 “진짜 하나님의 자녀되기” “진짜 예수님의 친구요 형제 되기” 프로젝트에 참여해야할 것입니다.
우리의 새로운 신분만 믿고 '진짜거룩하기 프라젝트'애 참여하지 않아서 우리의 옛성품은 그대로 남아있고 세상사람들과 별 차이 없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래서 오히려 세상사람들에게 망신을 받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삶이 바로 그 큰 구원을 소홀히 여기는 삶일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내게 왜 어려운 일과 시험이 계속됩니까?라고 질문할 때가 있습니다. 고난당하고 있던 유대인 히브리서독자들도 아마도 같은 질문했을 것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이렇게 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기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징계하십니다. “ (히 12:10)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께서 어려운 일 시험등을 허락하셔서 억지로라도 "진짜 하나님의 자녀되기"프로그램에 참여시키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얼마나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사느냐에 있지 않고 우리들이 거룩해지는데 관심을 갖고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런 징계를 받지 않는다면 사생아인 줄 알라라고까지 말씀합니다. (히 12:9) 그리고 징계 가운데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지 못할 때 좋은 훈련의 기회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히 12:5)
우리는 단지 죄의 형벌에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구원 받은 것임을 기억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자녀 답도록 ,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 답도록 그리스도를 닮도록 구원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 의로움과 참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엡 4:24 ) “새사람을 입으라” 입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거룩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 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여 주셨습니다.” (엡 1:4) 거룩함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운명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라고 명령합니다. (빌 2:12) 빌립보서 2장 초반의 말씀을 고려해 볼 때 이 명령은 너희도 예수님처럼 되도록 노력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절에 우리 안에 거룩함에 대한 소원과 또한 이룰 능력을 주시는 성령님의 역할을 말씀합니다. (빌 2:13) 결국 예수님과 성령님이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도록 역사하는 분임을 보여줍니다.
이제 종결합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는 죄를 용서함받고 구원받은 자로서 확신을 가지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살도록 하셨습니다. 또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시므로 우리의 사정을 아시며 우리를 위해서 변호해주시고 중보기도하시는 주님으로 인해서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며 거룩한 삶을 살도록 섭리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진짜 하나님의 자녀되기”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 큰 구원에 합당한 성품과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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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피와 살을 가진 인간 예수님”
“이 자녀들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그도 역시 피와 살을 가지셨 습니다. 그것은, 그가 죽음을 겪으시고서, 죽음의 세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멸하시고, 15 또 일생 동안 죽음의 공포 때문에 종노릇하는 사람들 을 해방시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16사실, 주님께서는 천사들을 도와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도와주십니다. 17그러므로 그는 모든 점에서 형제자매들과 같아지셔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비롭고 성실한 대제사장이 되심으로써, 백성의 죄를 대신 갚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18그는 몸소 시험을 받아서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시험을 받는 사람들을 도우실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2:14-18, 새번역)
I.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악마를 멸하시기 위해서: 우리가 구원을 얻도록
“이 자녀들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그도 역시 피와 살을 가지셨 습니다. 그것은, 그가 죽음을 겪으시고서, 죽음의 세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멸하시고” (히1:14)
‘죄의 삯은 죽음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롬 6:23
II.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시므로 죽음의 공포 때문에 종노릇 하는 사람을 해방시키시기 위해서: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갖도록
“또 일생 동안 죽음의 공포 때문에 종노릇하는 사람들 을 해방시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히 1:15)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 (엡 2:8,9)
III.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기 위해서: ”그는 모든 점에서 형제자매들과 같아지셔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비롭고 성실한 대제사장이 되심으로써” (히 1:17)
A.대제사장으로 자기 자신을 속죄제물로 드리기 위해서: 구원받도록 “백성의 죄를 대신 갚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염소나 송아지의 피로써가 아니라, 자기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히 10:11-12)
B.대제사장으로 시험받는 사람을 돕도록: 구원받은 자로서의 삶을 살도록 (거룩한 삶을 살도록) “그는 몸소 시험을 받아서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시험을 받는 사람들을 도우실 수 있습니다” (히 1:18)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기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징계하십니다. “ (히 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