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구원주” 히브리서 7:25 11/2/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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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히 7:25
여러분 히브리서를 잘 이해하고 있습니까? 히브리서는 어렵기 때문에 그 내용을 이해하려면 좀 더 신경을 써서 공부해야합니다. 또 이해했다 하더라도 다시 잊기 쉽기때문에 반복적으로 복습해야지만 나의 것이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번 히브리서 6장을 중심으로 좀 더 성숙한 경지로 나아가자란 제목으로 3가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영적성숙을 지향하는 자들은, 영적으로 가치관이 혼동된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적용하는 훈련을 통해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아는 판단력을 키워가는 사람들입니다 (무엇이 우선권인지 깨닫는); 영적성숙을 지향하는 자들은, 듣고 배우는 하나님의 말씀을 흘려 보내지 않고 최고의 신경을 기울여 굳게 잡고 적용하여 삶의 변화와 열매를 맺는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영적성숙을 지향하는자들은 부지런하며 믿음과 오래참음으로 죽을 때까지 성도를 사랑하겠다는 결단으로 사는 성도들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히브리서 7장은 예수님의 대제사장되심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4장 부터 8장까지 예수님의 대제사장되심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왜 이토록 예수님의 대제사장되심에 대해서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이스라엘백성들 사이의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하는 종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들만이 1년에 한번 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 온 이스라엘백성 들을 위한 속죄의식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모세 시대 첫대제사장 아론 이후 예수님때까지 약 87 (83)명의 대제사장들이 있었다고합니다. 특별히 예수님 당시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따로 없었으므로 대제사장이 정치적인 수장역할도 하였으므로 대제사장은 종교지도자로서 또 정치지도자의 역할도 감당한 아주중요한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대교도 출신이었던 그리스도인들이 당연히 중보자로 오신 예수님과 대제사장을 비교적으로 생각하며 그 차이점을 알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7장은 예수님이 어떻게 다른 대제사장들과 다른가 하는 것을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은 아론의 후손이 아니라,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 항상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있는 멜기세덱의 반열을 따른 제사장으로서 의와 평화의 왕이십니다. (1)
2. 구약의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맹세 없이 아론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실 하나로 제사장이 된 것이요,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맹세로 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7:20,21)
3.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죽을 수 밖에 없어서 그 직무를 계속할 수 없었지만, 예수님은 죽지 않고 영원히 계시는 분으로서 생명의 힘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직을 감당합니다. (7:16, 24, 25) (본인 스스로가 영원하신 생명이실 뿐 아니라, 또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으신 분)
4. 구약의 제사장들은 흠이 있고 순결치 못한 죄인들로서 날마다 먼저 자기 죄를 위하여 희생제물을 드려야하고, 때로는 제사장직을 남용하여 백성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경우도 있지만, 예수께서는 거룩하시고 순박하시고, 순결하시고, 죄인들과 구별되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분으로서 자신의 죄를 위해 희생제물을 드려야할 필요가 없는 분이십니다. (26, 27)
5. 구약의 제사장들은 아론의 후손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로 약점이 있어도, 제사장으로 세움을 받지만, 예수님은 영원히 완전하게 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28)
6. 구약의 제사장들은 백성을 위하여 항상 희생제물을 드리지만, 예수님은 단 한 번에 결정적으로 자기 자신을 완전한 제물로 드리므로 더 이상 희생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으신 분이시다. (27)
이런 모든 사실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아주 간단하고 명료합니다: 25절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7:11“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온전함을 얻게 할 수 없으나, 예수님은 온전히 구원할 수 있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사실, 모든 구약의 제사제도는 불완전하여 그림자나 모형에 불과하고 원형인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하는 제사제도를 가르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이 예수님을 대제사장으로 보내셨습니다. 옛적에는 제사장들을 통하여서는 온전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수 없었던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 분이 최후의 대제사장이시요 완전한 대제사장이십니다.. 그 분은 흠이 없는 분이시요 영원한 분이시요 자기 자신을 가장 온전한 제물로 드리신 분이시요 우리를 동정하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그 분께서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시되 어떻게 온전히 구원하시는가?
다시 본문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히 7:25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기기 때문에” 그의 백성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간구하신다는 것은 한번 간구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간구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우리의 죄를 위한 완전한 제물로 드리셨을 뿐 아니라,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해 현재적으로 항상 간구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만으로는 우리들의 구원이 온전해 질 수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주님의 지속적인 중보기도가 없다면 우리들의 구원은 온전치 못한 것입니까? 대답하기가 쉽지 않지요? 왜냐하면 구원이란 의미자체가 세가지 시제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가지 시제의 구원이라 그러면 무엇을 말합니까?
1. 받은 구원: 과거형, 영의 구원 2:8 여러분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죄의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2. 받는 구원: 현재형, 혼(인격)의 구원 빌 2:12 받는 구원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3. 받을 구원: 미래형, 육의 구원 롬 13: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우리가 이미 받은 구원은 예수님께서 구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며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시므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으므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미래의 구원도 십자가의 사건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미래에 받을 구원은 예수님께서 심판주로 재림하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새하늘과 새땅을 창조하셔야만 이루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현재적으로 받는 구원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의 임재와 계속적인 사역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복음은 예수님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신 사실뿐 아니라, 성경대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또한 강조합니다. 그 분의 죽음으로 구원의 역사를 시작 하셨지만 그 분의 살아계심으로 구원의 역사를 계속 완성하여 나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히브리서는 분명하게 예수님의 사역이 2천년전에 십자가에 달려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므로 끝난 것이 아니라, 오늘도 지금도 항상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해 사역하신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과거의 구원뿐 아니라 현재적인 구원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2천년전 골고다 언덕에서 우리죄를 위해 십가자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의 은혜에 대해서는 자주 이야기 하지만,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살아계셔서 현재적으로 우리를 위해 지속적으로 행하시는 사역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안합니다. 우리들이 부르는 찬양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찬송, 예수님의 보혈에 대한 찬송은 수없이 많지만, 이번에 예수님의 현재적인 사역과 관련된 찬양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나를 위해서 죽으셨을 뿐 아니라, 나를 위해서 살아 계셔셔 계속 사역하시는 분이란 사실입니다. 우리들을 위한 예수님의 수고와 예수님의 은혜는 십자가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됩니다. (저를 따라 하겠습니다. “주님, 저의 죄를 위해 죽으심을 감사드립니다. 또 저의 온전한 구원을 위해 살아계심을 감사드립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으로 언론에 구원파의 문제가 많이 부각되었습니다. 여러분 그들을 위험하고 이단적 집단으로 보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구원받은 날짜를 알아야 구원받은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당신 언제 구원받았느냐고 물어보아서 대답을 못하면 구원을 못받은 자라고 규정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할 때 회개하고 죄사함 받은 사람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까지 용서 받았으므로, 그 이후로 죄를 저질렀더라도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믿음을 주장하기 위해서 잘 인용하는 구절이 바로 히브리서 10장입니다.
히10: 11-2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15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16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17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18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소망을 굳게 잡으라 공로로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12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17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구원파에서 위의 구절들을 인용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들의 죄를 용서한 사실과 온전하게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예수님께서 인간들의 죄사함을 위한 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른 편으로는 오늘 본문 말씀처럼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라고 말씀하므로 온전한 구원이 아직 미래의 것으로 말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죄를 이미 용서받았으므로 더 이상 회개조차 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 것은 너무 잘못된 해석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향하여 “열심을 내어 회개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큰 제사장이 필요하다고 말씀합니다 (7:21) 언제까지 입니까? 예수님께서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입니다. (7:13).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직 예수님의 원수들이 활약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Oscar Culman이란 신학자는 이 상황을 Dday와 Vday란 전쟁용어를 사용하여 설명합니다. 2차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은 놀만디만에 상륙하므로 결정적인 (D- decisión, or decisive) 전쟁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그러나 독일군이 항복하기 (Vday – Victory day)까지는 실지로 11개월의 전투가 지속되었습니다. 영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우리는 Dday 와 Vday사이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보리산 십자가에서 결정적인 전쟁에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전쟁이 어떻게 종결되어질 것인가는 결정되었지만 아직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마귀와 온세상을 심판하시기 까지는 아직도 예수님의 원수들이 활약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분상으로는 구원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죄를 용서 받은 의인이요 거룩한 백성들이지만, 우리의 수준은 세상사람들과 별다름 없이 세상에서 유혹을 받고 넘어지기도 하고 죄를 짓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한 제물이 되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지금도 변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쓰는 것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누가 죄를 짓더라도, 아버지 앞에서 변호해 주시는 분이 우리에게 계시는데,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시니, 우리 죄만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것입니다.” ” 요일 2:1,2
우리의 약점과 죄성에도 불구하고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단지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을 뿐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이라고 히브리기자는 말합니다 (히4:15-16)
살아계신 예수님의 우리를 위한 현재적인 변호하심과 간구때문에 우리는 담대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도 있고 온전한 구원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의 우리를 위해 지금도 변호하시고 간구하신 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마치 우리들의 힘으로만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것처럼 패배감과 좌절과 한숨으로 겨우 겨우 이어가는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분은 안계십니까? 지금 이 시간에도 살아계셔서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도우시는 예수님의 간구를 통해 승리하는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요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온전한 구원을 주시는 것이나 우리를 위해 간구하는 것은 다 예수님의 몫이란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당해야할 한가지 몫이 있습니다. 우리가 온전한 구원을 경험하려면 감당해야할 중요한 몫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히 7:25
예수님의 온전한 구원과 지속적인 간구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에게 주어진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고, 부활승천하셔서 항상 살아계시면서 우리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간구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온전한 구원이 나의 것이 되려면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야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것, 하나님과의 교제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 나의 안에 거하라, 혹은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라, 성령님으로 충만하라, 말씀으로 충만하라 기도하라 등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런 명령들은 다 같은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명령은 아무에게나 한 명령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 하나님과 화해한 관계성 속에 있는 자들이, 다시 말하면 이미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 한 명령입니다. 현재적인 구원의 삶을 살게하기 위한 명령들입니다. 이 것이 온전히 구원을 이루기 위한 명령들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자신을 찾는 자, 예배자를 찾으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사랑을 나누시며 복주시기를 원하시며 온전한 구원을 주시기 원해서 우리를 찾으시며 자신에게 나아오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심정을 우리는 이해 못하고 자기 것을 고집 할 때가 많습니다.
벌 써 약 30년전 일이지만, "켈리포니아에서 어떤 도둑이 복스와겐 차를 훔쳤습니다. 이 도둑을 차주인은 물론 경찰들이 많이 동원되어 차도둑을 찾았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라디오 방송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도둑 맞은 차 앞자리에 차주인이 야생토끼들을 잡으려고 독약을 바른 과자박스를 놓아두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들이 도둑을 찾은 것은 도둑을 잡으려고가 아니라 도둑을 살리기 위해서 였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찾으실 때 우리를 해하려고가 아니라 복주시려고 생명을 주시려고 찾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응답하지 않고 우리 것을 고집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의 온전히 구원하시는 역사를 체험할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을 모욕되게 하는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치루신 댓가가 예수님의 생명, 예수님의 피입니다. 그런 희생의 댓가를 암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거부하는 것이야 말로 불신자와 다름 없을 것입니다.
이런 교회들과 개인들을 향하여 주님께서 열심을 내어 회개하라고 책망하셨습니다. (히10:29-31)
다시 제 자신과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피를 바치므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음에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소홀히 하고 등한히 여기므로, 예수님의 희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의 대제사장인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온전한 구원을 경험하기를 원하시고 또 간구하시지만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때만 가능합니다. 한 번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것은 가장 중요한 의무일 뿐 아니라 가장 놀라운 특권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간구하실 때 무엇을 간구하실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바로 전에 베드로를 위해 한 간구가 있습니다:“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눅 22:31,32 주님께서 베드로가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그리고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간구하였 습니다.
또 제자들을 위한 다음의 기도를 합니다:”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 요 17:11,15
주님은 우리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또 악한 자에게서 구원받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있어 기도하라”고 또한 명령하셨고, 또우리가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악한자로부터의 구원을 위해 위해 간구하실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귀가 우리에게서 원하는 것이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는 것임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도록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분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 아들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게 나아오라 내게 가까이 나아오라 내가 네게 가까이 나가리라.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다면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님의 직책은 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므로 온전한 구원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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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온전한 구원주”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 하심이라” 히브리서 7:25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실 뿐 아니라,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시므로 우리의 온전한 구원주의 역할을 하신다.)
1. 온전한 구원주: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레위계통의 제사장으로는 완전한 것을 이룰 수 없고 오직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르 제사장이 완전한 것을 이룰 수 있다: “레위 계통의 제사직과 관련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으로 지령을 받기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 제사직으로 완전한 것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면, 아론의 계통이 아닌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른 다른 제사장이 생겨날 필요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7:11
2. 온전한 구원주: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성경의 복음: “예수님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성경 대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다.” 고전 14:3, 4
히브리서는 분명하게 예수님의 사역이 2천년전에 십자가에 달려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 므로 끝난 것이 아니라,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께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사역 하신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3. 온전한 구원주: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주님께서 자신의 피를 바치므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음에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소홀히 하므로, 예수님의 희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히 10:29-31)
우리의 대제사장인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온전한 구원을 경험하기를 원하시고 또 도우시지만 우리들의 책임이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한 번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 것은 의무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가 베푸시는 온전한 구원을 경험케 하는 놀라운 특권이다.
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히 7:25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만이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온전한 구원을 경험할 수 있는 삶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특권을 위해 주님께서 치루신 그 희생을 헛되이 여기지 않게 하시며, 그 놀라운 축복을 날마다 순간마다 누리고 감사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나의 매일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되게 하소서. 주님께서 대제사장으로서 저를 위해 하는 간구도 다른 것보다 하나님 앞에 매 순간 나가는 것을 위해 간구하시는 것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이제것 제 낭비한 수 많은 시간들... 주님, 주님께 나가는 것을 우선권을 두는 삶을 살므로 가장 의미있게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