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사함 받은 확신의 삶을 살라" 히브리서 9:13-14 11/17/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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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9:13-14 “염소나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더러워진 사람들에게 뿌려도, 그 육체가 깨끗하여져서, 그들이 거룩하게 되거든, 14 하물며 영원한 성령을 힘입어 자기 몸을 흠 없는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야말로, 더욱더 우리들의 양심을 깨끗하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죽은 행실에서 떠나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않겠습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pwolH0ejg34k
딸을 넷 다 잃은 스패포드 변호사가 절망 가운데도 주님을 찬양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가 절망 중에 깊이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의 은혜를다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이 가사의 원문은 “나의 모든 죄가 십자가에 밖혔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 죄의 짐을 질 필요가 없습니다. 영광스러운 복된 사실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입니다.(My sin—oh, the bliss of this glorious thought! My sin, not in part but the whole, Is nailed to the cross, and I bear it no more, Praise the Lord, praise the Lord, O my soul!)
모든 죄를 사함 받았다는 확신이 그로 하여금 극한 슬픔 가운데서도 행복함을 느끼며 주님을 찬양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것이 구원의 기쁨입니다. 반면 죄사함을 받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아무리 편하고 좋은 환경 가운데 있더라도 두려움과 수치와 절망을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첫인간 아담과 이브가 죄를 범하고 나서 자신들에 대한 수치심과 함께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부부간에도 수치심을 느꼈고 가장 가까와야 할 하나님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작가 Mark Twain은 “양심의 가책이 없다고 말하는 자는 건망증에 걸렸음이 틀림없다”라고 말했습니다. (“A clear conscience is the sure sign of a bad memory.”) 모든 인간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산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의 심리를 연구했던 Erich Fromm이란 학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런 근본적으로 무종교적인 문화 속에서도 사람들이 이토록 죄의식에 깊이 빠져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라고 관찰했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죄인인 모든 사람들이 심판자 이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아무것도 숨길 수 없고, 모든 것이 그의 눈 앞에 벌거숭이로 드러나며 그의 앞에 “사실대로 고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벧전 4:5) 스스로의 죄를 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의 뇌리 속에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죄에 대해서 다 의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종교인이라 할지라도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죄의식에 깊이 빠져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방법이 단 하나 있다고 말합니다: “피를 흘림이 없이는, 죄를 사함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히 9:22 모든 죄의 댓가는 죽음이요, 피가 바로 생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죄의 댓가인 죽음을 치루고 죄를 속하기 때문입니다. ” 피가 각 세포가 배출하는 찌꺼기를 나르는 역할, 그 외에도 산소와 영양분과 (뇌하수체와 갑상선) 홀몬을 전달하는 역할 그리고 열과 수분을 조정하는 역할, 백혈구는 침투된 병균과 싸우는 역할등을 한다고 합니다. 생물의 생명이 바로 그 피 속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인 피로서 죄에 대한 댓가를 치루므로 죄의 용서를 받고 사는 것입니다. (레 17:11)
Dr. Felix Ruh, a Jewish doctor in Paris, 손녀가 디프테리아로 죽는 모습을 보면서 치료법을 개발하겠다고 결단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만해도 병균과 싸우는 항체란 것은 이론적으로는 거론되었지만 아직 계발된 것이 없는 때였습니다. Dr. Ruh는 자신이 배양한 디프테리아 균을 20마리의 말의 콧구명과, 혀와 목구멍에 발랐습니다. 그 중 19마리는 죽고 딱 한마리가 열이 내려 앉으면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회복 되었습니다. 이 말을 죽여 그 피를 다 뽑아서 격리 수용되어 죽음을 기다리던 약 300명의 어린 아기들에게 주사로 피를 주입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중 3명만 제외 하고 다 살린 것입니다.
마티루터는 예수님의 피 한 방울이 하늘과 땅보다도 더 가치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병과 싸워 이긴 한마리 말의 피로 이토록 많은 어린 생명을 살렸다면 과연 예수님의 피로 어떤 역사를 이루셨겠습니까?
히 9:14 “하물며 영원한 성령을 힘입어 자기 몸을 흠 없는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야말로, 더욱더 우리들의 양심을 깨끗하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죽은 행실에서 떠나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않겠습니까?
히 10:22 그러니 우리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우리는 마음에다가 예수의 피를 뿌려서, 죄책감 (악한 양심)에서 벗어나고, 맑은 물로 몸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과학이나, 의술이나, 기술이나, 돈이나, 권력이나 무력으로도 죄사함을 가져다줄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빌리그래함은 “오늘날 그리스도의 은혜로 정말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을 믿는다면 정신병동에 갇힌 정신병자들의 반은 그 자리에서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의 수 많은 사람들이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을 때, 그리스도인들이 죄책감 (악한 양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스패포드 변호사가 찬송시에서 고백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실 때 일부의 죄를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해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디도서 2:14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모든 불법에서 속량하시고 깨끗하게 하셔서,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당신의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모든 불법에서)
예수님은 어떤 죄는 용서하시고 어떤 죄는 용서치 않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처럼 모르고 지은 죄만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 알고 지은 죄도 용서하십니다. 레위기의 제사를 보면 오직 실수나 모르고 지은 죄 사고로 지은 죄만 제물을 드리고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9:7 그러나 둘째 칸 장막에는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번만 들어가는데, 그 때에는 반드시 자기 스스로를 위하여, 또 백성이 모르고 지은 죄를 사하기 위하여, 바칠 피를 가지고 들어갑니다. ) 알고 지은 죄에 대해서는 아예 제물도 없습니다. 인간이 짓는 대부분의 죄는 알고 짓는 죄인데, 구약의 사람들은 정말 죽을 날말 기다려야 하는 난감함과 절망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용서치 못할 흉악하고 사악한 죄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면, 죄인이었던 자가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 예수님 안에 있게되면, 이전 것은 다 지나갔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자기의 피로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여 주셨습니다.” (계 1:5)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피로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셨습니다.
2. 그런데 질문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런 나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확신과 기쁨과 감격가운데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죄와 불법을 다시 기억치 아니하리란 확신 가운데 죄책감 없이 살고 있습니까?) (히 10:17, 2)
위대한 신앙인 다윗은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라고 한탄했습니다. (시 51:8) 그리고 “주께서 노하시므로, 나의 몸에 성한 곳이 없습니다.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이 몸에 성한 데가 없습니다.” (시 38:3)라고 고백했습니다. 죄의식으로 인한 고통을 “주께서 뼈를 꺽는 아픔으로, 그리고 온몸이 성한 곳이 없는 고통으로 표현했습니다. 사도바울도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원하랴”라고 절규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사람들보다 더 죄책감 때문에 더 괴롭게 살 수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의 용서를 받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 의인이 되었다고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계속 죄를 지면서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자기를 속이는 것이요, 진리가 우리 속에 없는 것입니다. (요일 1:8) 우리가 죄를 지은 일이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합니다. (1:10)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불신자들보다 더욱 죄에 대해서 더욱 민감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죄를 지었거나 죄가운데 있다면 마땅히 죄책감을 가져야합니다. 그리고, 죄가운데 있으면서도 죄의식 없이 사는 것이 더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가 죄책감에서 벗어나서 깨끗한 양심 가운데 살기를 그토록 원하셔서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우리는 마음에다가 예수의 피를 뿌려서, 죄책감 (악한 양심)에서 벗어나고, 맑은 물로 몸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히 10:22)
그렇다면 매일 죄를 짓는 삶을 살면서 어떻게 또한 죄책감으로부터 자유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다시 요한 1서를 보겠습니다: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자기를 속이는 것이요, 진리가 우리 속에 없는 것입니다. 9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 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요일 1:8-9
우리 죄가 떠오를 때마다 죄책감에 사로잡히기 보다 죄를 자백하는 것입니다. 자백한다는 것은 우리 죄에 대해서 하나님과 동의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죄를 자백하는 것 외에도 또 한가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귀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대로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요,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7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과 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사귐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요일 1:6-7)
왜 하나님께서 형제와의 사귐을 죄사함의 조건으로 두셨을까요? 우선은 하나님께서 그 만큼 형제들과의 관계를 그리고 사귐을 중요시 여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통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신 이유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해를 가져 오므로 관계를 회복했다는 사실에 촟점을 많이둡니다. 그러나, 에베소서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를 배우게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려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어떻게) 그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된 것을 없애시고, 15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것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드셔서, 평화를 이루시고, 16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시려는 것입니다.” (엡 2:14-16)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르는 담을 허무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셨다는 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평화를 위해서도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뜻입니다. 이토록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도 중요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과 인간관계 사이에 일어나는 일로 인해도 하나님 앞에 많은 죄를 지고 있고 이로 인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합니다. 하나님께만 지은 죄는 자백으로 용서 받을 수 있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상 지은 죄는 하나님께 자백함으로만 되는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형제에게도 자백해야합니다. 그리고 관계를 회복하는 회개가 따라야할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치 못하는 모든 이유는 우리들의 교만과 무관심과 자기 중심성 때문일 것입니다. 형제와의 관계회복을 원치 않는다면 우리가 어둠 가운데 있다는 분명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귐을 회복하고 사귐을 갖게될 때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깨끗게 하여 준다고 말합니다. 반면 우리가 그 누구와도 서로 소원한 관계에 있다면 우리의 죄를 깨끗게 하시는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뿐아니라 “서로 죄를 고백하며 병을 낫기 위해서 기도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서로 죄를 고백할 정도로 자기를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그런 사귐이 있을 때 우리 죄를 깨끗게 하시고 병까지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형제간에 사귐을 회복하는 문제가 죄를 자백하는 문제에 못지 않게 심각한 문제입니다.
다윗은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 하면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달라고 간구합니다. (시 51:10) 우리도 이런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고 그리고 다른 성도와의 교제를 회복되므로 구원의 즐거움과 죄책감으로부터의 자유를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3. 예수님을 영접할 때 모든 죄의 용서를 받았고 그리고 현재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죄를 고백했고 다른 성도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문제가 없음에도 죄의식 때문에 괴로워하는 분은 없으십니까?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죄때문에 부끄러움과 수치와 죄의식때문에 괴로워 하는 분은 안계십니까? 다른 죄는 몰라도 이 죄만은 용서 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때문에 괴로움을 받는 분은 안계십니까? 기억하십시요. 바로 그 죄를 위해서도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여러분이 괴로워 하는 이 죄를 가장 간절히 용서하고 싶으신 분이 누구실까요? 여러분 자신이 용서받고 싶은 마음보다 훨씬 더 간절하게 하나님은 여러분을 용서하고 싶어하십니다. 탕자를 기다리던 아버지의 마음, 탕자가 오기 전부터 용서하고자 했던 그 마음이 바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가 아직 경건치 않을 때에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에 우리를 용서하시기 원하셔서 그 귀한 아들을 보내셔서 피를 흘리게 하신 하나님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죄인으로서 경건치 않은 자로서 하나님의 원수로서 그 죄를 진 것을 알면서 여러분의 그 죄를 용서키 위해 그의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게 하신 분이십니다.
오죽하면 그 전능하신 분께서 우리의 죄와 불법을 만큼은 기억조차 못하시겠습니까?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히 8:12 “내가 그들(너)의 불의함을 긍휼히 여기겠고, 더 이상 그들의 (너의)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 히 10:17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
여러분 가운데 혹시, 박목사님 이 것 다 아는데요, 아직도 죄의식과 수치심과 두려움을 떨쳐 버릴 수 없네요. 죄를 수십번 고백했음에도 앞으로 잘하겠다는 회개로도 내 마음 한 구석에 죄를 온전히 용서 받지 못했다는 죄의식이 나를 아직도 사로잡고 있습니다.”라고 속으로 고백하는 분이 있습니까?
이 짧은 시간에 죄의식과 죄책감으로 고민하는 모든 내용을 다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을 제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정죄를 받지 않는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여러분 각자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땅에서는 못 걷지만, 수영장 안에 들어가면 수영을 할 수 있습니다. 수영장안에는 새로운 법 부력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 안에서는 다른 법칙이 적용됩니다. 죄와 죽음의 법칙이 아니라 성령님 안에서 생명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님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생명의 법 안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인 것입니다. 나란 존재의 성품과 성격이 달라져서가 아니라 나에게 새로운 법칙, 죄와 죽음의 법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사탄이 여러분의 생각을 괴롭힌다면, 그 괴롭히는 생각을 이제 감사로 바꾸십시요. 여러분의 죄가 떠오르며 괴로울 때마다 이렇게 기도하십시요,
이런 수치심을 갖게 하셔서 다시는 이 죄를 범치 않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런 죄도 용서해 주셨음을 다시 생각하게 하시니 주님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돌로 치려던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들의 죄를 깨달으면서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던 자들이 물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죄를 깨달으므로 겸손케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과거의 죄가 여러분들 괴롭힌다면, 이제 함부로 남을 정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죄에 관용하는 마음을 갖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속적으로 자신의 죄에 대해서 괴로워 한다면, 어쩌면 그 것은 남의 죄를 용서하지 못하기때문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형제들에게 배우자에게 죄와 죽음의 법을 적용하여 그들을 용서 못한다면, 우리들은 우리 자신에게도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님의 법을적용할 수 없습니다. 주님꼐서 “너희가 남을 심판하는 그 심판으로 하나님께서 너희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에게 그리고 상대방에게 생명의 성령의 법을 적용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담녀, 생명의 성령의 법을 따라 죄의 용서 받은 자임을 감사하십시요. 죄의 용서 받음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내 지은 죄 주홍빛 같더라도 주 예수께 다 아뢰면 그 십자가 피로써 다 씻으사 흰눈보다 더 정하겠네.”
우리의 죄를 위한 사역은 2천년 전에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지속됩니다. 그 분은 우리가 죄와 싸와 이기도록 간구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의 사역을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과거사역: 자기를 희생제물로 드려서 죄를 없이 하시기 위하여 시대의 종말에 나타나셨습니다. (9:26)
현재사역: 그리스도께서는 참 성소의 모형에 지나지 않는,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늘 성소 그 자체에 들어가셨습니다. 이제 그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십니다(9;24)
미래사역: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한 번 자기의 몸을 제물로 바치셨고, 두 번째로는 죄와는 상관 없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9:28)
주님께서 여러분이 고민하고 괴로워 하는 그 죄를 위해서 이미 과거에 우리를 위한 제물로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이 죄 많은 세상에서의 온전한 구원을 위해서 그를 기다리는 자들을 위해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를 살면서 현재적으로 죄를 짓고 있는 우리들을 위해 또 죄로 인해 고통가운데 있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나타나셔서 변호해주시고 대제사장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으로 인해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원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시므로 우리가 죄사함의 확신을 갖고 살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을 믿으면서도 죄의식때문에 괴로워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지속적으로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주님 앞에 우리 죄를 자백하므로 모든 불의 에서 깨끗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형제와의 사귐에 있어서 문제점이 있다면 관계를 회복함으로 모든 죄로부터 용서 받으시기 바랍니다. 죄를 자백했음에도 형제와의 교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죄책감에 시달린다면 나를 정죄하시는 아버지가 아니라 탕자를 사랑하시며 기다리시던 그 아버지의 심정을 생각해 보십시요. 그리스도 안에 그 분이 갖고 계신 그 사랑으로 여러분의 심정과 저의 심정을 채우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며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주님, 우리도 언제 스패포드 변호사가 경험했던 그런 환난과 고통의 날을 경험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날에 주님이 주시는 강물같은 평화가 우리의 심령에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어쩌면 우리 가운에 이미 그런 고통을 겪고 있는 자가 있습니까?
혹 해결되지 않은 죄의 문제로 고통가운데 있는 자가 있습니까?
죄를 자백할 것이 있다면 자백하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고
형제 자매와의 배우자 간에 친구 간에 사귑을 회복하게 하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 같은 죄의 문제로 마음이 힘든 자가 있다면, 이 시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소서. 탕자를 먼곳에서 보고 뛰어가 맞이했던 그 아버지의 심정을 깨닫게 하소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내가 용서 받기 원하고 해결받기 원하는 것보다 더욱 간절한 심정으로 안타까와 하시며 용서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믿고 받아들이게 하소서.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의 이런 심정으로 다른 사람을 용서할 줄 아는 것을 배우게 하소서.
그리하여 이 땅에 먼저 내 심령 속에서 우리 가정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그리고 이웃과 친구와의 관계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경험케 하소서.
이런 모든 일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 이 시간에도 우리를 위해 역사하시는 성령님과 우리를 위해 변호하시고 간구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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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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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사함 받은 확신의 삶을 살라”
“염소나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더러워진 사람들에게 뿌려도, 그 육체가 깨끗하여져서, 그들이 거룩하게 되거든, 14 하물며 영원한 성령을 힘입어 자기 몸을 흠 없는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야말로, 더욱더 우리들의 양심을 깨끗하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죽은 행실에서 떠나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않겠습니까?” (히브리서 9:13-14)
1.그리스도를 믿고 죄의 용서를 받으므로 죄사함을 받으라
히9:14 “그리스도의 피야말로, 더욱더 우리들의 양심을 깨끗하게 해서
히 10:22우리는 마음에다가 예수의 피를 뿌려서, 죄책감 (악한 양심) 에서 벗어나고, 맑은 물로 몸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2. 죄를 자백하므로 죄의 용서를 누리라
요일 1:9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요일 1:7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과 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사귐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3.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죄의 용서를 누리라
히 8:12 “내가 그들의 불의함을 긍휼히 여기겠고, 더 이상 그들의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 요일 2:1 “내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쓰는 것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누가 죄를 짓더라도, 아버지 앞에서 변호해 주시는 분이 우리에게 계시는데,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