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삶(2013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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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베드로 전서 2:18-25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라.
여기에서 사환들이란 노예들(slaves) 혹은 종들(servants) 뜻하는 말입니다.
지금부터 2000년 전에는 종이 되는 것에 몇 가지 조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 나면서부터 종의 자녀로 태어난 경우
- 전쟁에서 포로가 된 경우
- 돈을 갚지 못해서 종으로 팔린 경우
우리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장이나 주인을 위해서 일하며 그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종이나 노예의 신분은 아닐지라도 무엇엔가 매여서 밤을 낮 삼아 노동을 하고 있는 상태는 비슷합니다. 그것이 비록 내가 선택한 길이라 할지라도 일시적으로나마 매어있습니다.
- 돈을 벌기 위해서
- American dream을 이루기 위해서 등등...
- 애들 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 집을 장만 할 때까지만....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 답게 산다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부딛치다보니 충돌하고, 깨어지고, 상처를 주고 받고 하는 여러가지 상황들이 벌어질 수 있기에 늘 긴장하며 피곤하게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세상의 삶이라고 해고 과장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아름답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과연 어떻게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
1.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19절)
- 주인 중에는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those who are good and considerate)
- 까다로운 자들(those who are harsh)도 있다는 것이지요....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
무슨 말입니까?
애매히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자기 잘못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겪어야하는 괴로움입니다.
까다로운 주인의 성격, 그의 문제로 인해서 짜증과 신경질을 해소하는 대상이 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사업이 적자가 난다고, 돈이 잘 안 벌린다고,
- 사장의 가정문제로 인해서, 부인과 싸우고 나와서...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종업원에게 화풀이 하듯 하는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애매히 고난을 받을 때 정말 억울합니다.
자기 잘못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지요.
그러나 애매히 고난을 받고, 구설을 듣고, 설명할 수도 없고, 속을 뒤집어 보일 수도 없고, 따질 수도 없는 아주 난감한 경우를 당할 때마다 속이 상하고 잠이 않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생각하고..... 무슨 말입니까?
- 하나님께서 이 환경을 내게 주셨다.
- 하나님은 나의 형편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외삼촌 라반과 일하면서 온갖 불이익과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런 중에도 그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믿음으로 열심히 살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애매히 고난을 받으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쫓겨 다녔습니다.
그런가하면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쫓기는 신세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는 믿음으로 결국은 승리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본(example)이시다.
천국보좌를 떠나서 이 죄악 세상에 죄인의 몸으로 보내졌습니다.
이 세상에서 애매히 고난을 받으면서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명하신 일을 내가 다 해야 한다."고 선포하시면서, 그리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밖혀 죽으셨습니다.
자기의 죄가 아니라 나와 여러분의 죄를 위해서 정말 애매하게 고난 받으셨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신일이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기에 하나님을 생각하며 승리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지극히 아름다우십니다.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여러분이 남모르게 애쓰고 수고할 때 손해보는 느낌이 들수도 있습니다. 더 피곤하고 억울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슬픔을 참으면 아름답습니다.(commendable before God)
2.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나니...
이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곧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선"이란 곧 하나님의 뜻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으니라.(21절)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친히 나무에 달려...(22-24절)
우리나라 고등학생 10명 중 4명 이상이 ‘10억원이 생긴다면 잘못을 저지르고 1년 정도 감옥에 가도 괜찮다’고 답한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는군요.
한국사람 네명 중에 하나가 소위 그리스도인이라는데 어떻게 이런 통계가 가능할까?를 생각할 때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인구비례로 볼 때 음주운전은 또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고 하구요.
이런 시대상황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고난이고 도전입니다.
예수님 믿고 구원 받으면 만사형통, 내 소원을 이루고, 안전, 평강, 축복이 따라닌다고 일반적으로 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말입니다. 우리의 삶은 결코 그렇지 만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때로 헷갈려하는 사람들을 여럿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내용이 과연 무엇인가를 잘 가르쳐 줍니다.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끼쳐 그 자취를 다라오게 하려하셨느니라."(21) 고 하십니다.
또한 일찌기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좋을 것이니라."(눅 9:23)
그리스도신앙생활은 곧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 십자가의 삶이라는 말입니다.
십자가의 삶이라고 해서 세상사람들이 보기에 고통과 한숨이 나올 것 같지만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고난을 참으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와 행인”(strangers and aliens 이라는 전제하에서 그렇다. 이 세상은 과정이기 때문이다. 결코 영원히 억울함과 고통과 환난이 지속될 것이 아니기에 말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본, example
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우리들입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우리가 애매히 고난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답습니다.
예수님께서 애매히 고난 받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듯이, 오늘날 우리가 애매히 고난당하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구원의 역사를 나타내십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25)
그렇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우리의 생각대로, 우리가 원하는 길로 살았습니다. 그것은 길을 잃은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본을 좇아 가는 진정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 영혼의 목자이며 감독자이십니다.
그가 친히 인도하시고 보호하십니다.
결국은 승리를 주십니다.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라.
여기에서 사환들이란 노예들(slaves) 혹은 종들(servants) 뜻하는 말입니다.
지금부터 2000년 전에는 종이 되는 것에 몇 가지 조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 나면서부터 종의 자녀로 태어난 경우
- 전쟁에서 포로가 된 경우
- 돈을 갚지 못해서 종으로 팔린 경우
우리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장이나 주인을 위해서 일하며 그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종이나 노예의 신분은 아닐지라도 무엇엔가 매여서 밤을 낮 삼아 노동을 하고 있는 상태는 비슷합니다. 그것이 비록 내가 선택한 길이라 할지라도 일시적으로나마 매어있습니다.
- 돈을 벌기 위해서
- American dream을 이루기 위해서 등등...
- 애들 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 집을 장만 할 때까지만....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 답게 산다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부딛치다보니 충돌하고, 깨어지고, 상처를 주고 받고 하는 여러가지 상황들이 벌어질 수 있기에 늘 긴장하며 피곤하게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세상의 삶이라고 해고 과장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아름답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과연 어떻게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
1.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19절)
- 주인 중에는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those who are good and considerate)
- 까다로운 자들(those who are harsh)도 있다는 것이지요....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
무슨 말입니까?
애매히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자기 잘못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겪어야하는 괴로움입니다.
까다로운 주인의 성격, 그의 문제로 인해서 짜증과 신경질을 해소하는 대상이 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사업이 적자가 난다고, 돈이 잘 안 벌린다고,
- 사장의 가정문제로 인해서, 부인과 싸우고 나와서...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종업원에게 화풀이 하듯 하는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애매히 고난을 받을 때 정말 억울합니다.
자기 잘못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지요.
그러나 애매히 고난을 받고, 구설을 듣고, 설명할 수도 없고, 속을 뒤집어 보일 수도 없고, 따질 수도 없는 아주 난감한 경우를 당할 때마다 속이 상하고 잠이 않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생각하고..... 무슨 말입니까?
- 하나님께서 이 환경을 내게 주셨다.
- 하나님은 나의 형편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외삼촌 라반과 일하면서 온갖 불이익과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런 중에도 그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믿음으로 열심히 살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애매히 고난을 받으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쫓겨 다녔습니다.
그런가하면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쫓기는 신세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는 믿음으로 결국은 승리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본(example)이시다.
천국보좌를 떠나서 이 죄악 세상에 죄인의 몸으로 보내졌습니다.
이 세상에서 애매히 고난을 받으면서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명하신 일을 내가 다 해야 한다."고 선포하시면서, 그리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밖혀 죽으셨습니다.
자기의 죄가 아니라 나와 여러분의 죄를 위해서 정말 애매하게 고난 받으셨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신일이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기에 하나님을 생각하며 승리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지극히 아름다우십니다.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여러분이 남모르게 애쓰고 수고할 때 손해보는 느낌이 들수도 있습니다. 더 피곤하고 억울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슬픔을 참으면 아름답습니다.(commendable before God)
2.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나니...
이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곧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선"이란 곧 하나님의 뜻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으니라.(21절)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친히 나무에 달려...(22-24절)
우리나라 고등학생 10명 중 4명 이상이 ‘10억원이 생긴다면 잘못을 저지르고 1년 정도 감옥에 가도 괜찮다’고 답한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는군요.
한국사람 네명 중에 하나가 소위 그리스도인이라는데 어떻게 이런 통계가 가능할까?를 생각할 때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인구비례로 볼 때 음주운전은 또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고 하구요.
이런 시대상황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고난이고 도전입니다.
예수님 믿고 구원 받으면 만사형통, 내 소원을 이루고, 안전, 평강, 축복이 따라닌다고 일반적으로 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말입니다. 우리의 삶은 결코 그렇지 만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때로 헷갈려하는 사람들을 여럿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내용이 과연 무엇인가를 잘 가르쳐 줍니다.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끼쳐 그 자취를 다라오게 하려하셨느니라."(21) 고 하십니다.
또한 일찌기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좋을 것이니라."(눅 9:23)
그리스도신앙생활은 곧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 십자가의 삶이라는 말입니다.
십자가의 삶이라고 해서 세상사람들이 보기에 고통과 한숨이 나올 것 같지만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고난을 참으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와 행인”(strangers and aliens 이라는 전제하에서 그렇다. 이 세상은 과정이기 때문이다. 결코 영원히 억울함과 고통과 환난이 지속될 것이 아니기에 말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본, example
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우리들입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우리가 애매히 고난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답습니다.
예수님께서 애매히 고난 받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듯이, 오늘날 우리가 애매히 고난당하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구원의 역사를 나타내십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25)
그렇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우리의 생각대로, 우리가 원하는 길로 살았습니다. 그것은 길을 잃은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본을 좇아 가는 진정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 영혼의 목자이며 감독자이십니다.
그가 친히 인도하시고 보호하십니다.
결국은 승리를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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