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명령” 마태복음 22:37-40 1/7/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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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명령” 1/7/201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복음 22:37-40
최고의 명령이란,
·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명령이다
· 모든 성경말씀의 (온 율법과 선지자) 본질이요 요약이다.
· 그러므로, 모든 성도의 삶의 지침이요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 자신이 이런 삶을 가장 충실히 산 삶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닮는 삶의 모습이다)
I. 하나님을 사랑하라
A.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은 가장 중요한 명령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전체의 요약이다. 그러므로 한 개인으로서의 인생과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성공기준은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혹은 아닌가에 달려있다.
예) 하나님 나라로서의 이스라엘은 정치력이나, 군사력이나, 경제력이나 외교력이 약해서 멸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실패했기때문에 멸망하였다.; 21세기 침례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에게 인적으로 물질적으로 그리고 사역적인 면에서의 성장이 있다하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실패하면 우리는 실패한 교회이다. (이것은 마치 요란한 예배를 드리더라도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예배는 꽝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B. 하나님을 사랑하되 “몸과 맘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절대적인 헌신을 요구한다.
· 십계명의 제1계명에서 말씀한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여러 사랑의 대상들 중에 단지 한분으로서가 아니라, 유일하고 절대적인 사랑의 대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명령이므로 의도적이고 의지적인 것이다
· 이 말은 또한 이런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많다는 뜻이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주님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런 조건들은, 하나님 아닌 다른 것으로 우리가 일시적인 목마름을 채울 수 있고, 하나님의 음성 아닌 다른 것들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들이다.
C.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만큼만 가능하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이란 인격적으로 알아가는 사랑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만큼 인격적인 하나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아는만큼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0, 19) 사랑은 우리에게서 먼저 자발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였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알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문제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이 하나님을 그만큼 안다는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
우리는 종교적인 행위에 대한 열심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혼동할 때가 많다: 마치 이스라엘이 초막절, 유월절, 안식일등 종교적 행사로 분주했지만 하나님께는 갈급하지 않았던 것처럼, 성전의 마당 뜰만 밟고 가는 신앙생활을 했던 것처럼.
결국 하나님께서 이들의 종교행위 내지 예배모임을 오히려 역껴워 하시고 페지하기를 원하셨다.
말 1: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사 1: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진정 이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하나님을 알므로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와 교제를 갖는 것이었다.
사 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호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순종하는 것의 중요성을 지켜야겠다.
II. 이웃을 사랑하라 (우리가 각 각 속한 교회의 지체들을 사랑하는)
“둘 째는 이와같으니..”
그러므로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구분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 역시,
·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명령이다
· 모든 성경말씀의 (온 율법과 선지자) 본질이요 요약이다.
· 그러므로, 모든 성도의 삶의 지침이요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 자신이 이런 삶을 가장 충실히 산 삶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닮는 삶의 모습이다)
신앙의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것임
A.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과 함께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은 가장 중요한 명령이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 전체의 요약이다. 그러므로 인생의 성공기준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 달려있다.
예) 하나님 나라로서의 이스라엘의 멸망은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선지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이웃으로서 서로 사랑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B. 하나님께서 우리의 한계를 아시기 때문에 세상사람 모두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시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명하셨다.
이웃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신약성경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은 지역교회에 대해 다룬다. 그러므로 신약에서 말하는 이웃이란 지역교회라고 말할 수 있다. 엡 4:25 교회의 지체된 관계
소속한 교회가 있어야 하며, 소속한 교회에 헌신해야 한다.
C. 사랑의 우선권 (고전 13)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예언하는 능과 모든 비밀과 지식을 알더라도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더라도
(교회 지체들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D. 신앙의 연륜이 사랑의 관계를 보장하지 않는다.
ex) 엔세나다 제일침례교회의 예 - 오랫동안 한교회에서 신앙생활 했음에도 서로에 대한 관심이 없다.
지체관계에 관한 성서적인 이해와 믿음이 있어야 한다. (고전 12:3; 엡 4:3)
의도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사랑하라… 명령)
다른 사역보다도 사랑의 관계에 우선권을 두어야한다.
말씀 안에서의 교제가 가능한 소그룹 성경공부의 중요성
소그룹 성경공부에 참여한 자들은 5년 후 80%가 계속 남아있고, 참여치 않은 자들은 20%만 남아 있었다는 통계가 있다. (장막과 주일학교 모임에 참여)
예수님의 본을 따라 진정한 친구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자: 다른 목사님들과의 관계를 사역적인 동역자에 앞서 진정한 친구 관계를 갖도록 우선권을 두겠다.
III. 또 다른 이웃을 사랑하라 (불신자들 - 넓은 의미에서의 이웃)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성도들을 (교회지체들)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나, 그것이 성도의 삶의 전부라면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더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과 성도에 대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사명이 있는 존재다. 모든 민족을 제자삼는 최고의 사명 (the Great Commission)은 하나님이 정하신 역사의 방향이요 섭리이다 (마 28:19-20; 눅 24:46-49)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허락하신 목적이다.
(누가복음 25:44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우리는 빚진 자다 – 우리는 누군가의 기도 혹은 전도에 의해서 예수님을 알게되고 구원 받았다.
우리의 도움을 통해서 구원받아야할 자들이 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복음 22:37-40
최고의 명령이란,
·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명령이다
· 모든 성경말씀의 (온 율법과 선지자) 본질이요 요약이다.
· 그러므로, 모든 성도의 삶의 지침이요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 자신이 이런 삶을 가장 충실히 산 삶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닮는 삶의 모습이다)
I. 하나님을 사랑하라
A.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은 가장 중요한 명령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전체의 요약이다. 그러므로 한 개인으로서의 인생과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성공기준은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혹은 아닌가에 달려있다.
예) 하나님 나라로서의 이스라엘은 정치력이나, 군사력이나, 경제력이나 외교력이 약해서 멸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실패했기때문에 멸망하였다.; 21세기 침례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에게 인적으로 물질적으로 그리고 사역적인 면에서의 성장이 있다하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실패하면 우리는 실패한 교회이다. (이것은 마치 요란한 예배를 드리더라도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예배는 꽝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B. 하나님을 사랑하되 “몸과 맘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절대적인 헌신을 요구한다.
· 십계명의 제1계명에서 말씀한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여러 사랑의 대상들 중에 단지 한분으로서가 아니라, 유일하고 절대적인 사랑의 대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명령이므로 의도적이고 의지적인 것이다
· 이 말은 또한 이런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많다는 뜻이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주님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런 조건들은, 하나님 아닌 다른 것으로 우리가 일시적인 목마름을 채울 수 있고, 하나님의 음성 아닌 다른 것들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들이다.
C.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만큼만 가능하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이란 인격적으로 알아가는 사랑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만큼 인격적인 하나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아는만큼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0, 19) 사랑은 우리에게서 먼저 자발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였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알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문제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이 하나님을 그만큼 안다는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
우리는 종교적인 행위에 대한 열심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혼동할 때가 많다: 마치 이스라엘이 초막절, 유월절, 안식일등 종교적 행사로 분주했지만 하나님께는 갈급하지 않았던 것처럼, 성전의 마당 뜰만 밟고 가는 신앙생활을 했던 것처럼.
결국 하나님께서 이들의 종교행위 내지 예배모임을 오히려 역껴워 하시고 페지하기를 원하셨다.
말 1: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사 1: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진정 이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하나님을 알므로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와 교제를 갖는 것이었다.
사 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호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순종하는 것의 중요성을 지켜야겠다.
II. 이웃을 사랑하라 (우리가 각 각 속한 교회의 지체들을 사랑하는)
“둘 째는 이와같으니..”
그러므로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구분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 역시,
·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명령이다
· 모든 성경말씀의 (온 율법과 선지자) 본질이요 요약이다.
· 그러므로, 모든 성도의 삶의 지침이요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 자신이 이런 삶을 가장 충실히 산 삶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닮는 삶의 모습이다)
신앙의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것임
A.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과 함께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은 가장 중요한 명령이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 전체의 요약이다. 그러므로 인생의 성공기준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 달려있다.
예) 하나님 나라로서의 이스라엘의 멸망은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선지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이웃으로서 서로 사랑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B. 하나님께서 우리의 한계를 아시기 때문에 세상사람 모두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시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명하셨다.
이웃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신약성경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은 지역교회에 대해 다룬다. 그러므로 신약에서 말하는 이웃이란 지역교회라고 말할 수 있다. 엡 4:25 교회의 지체된 관계
소속한 교회가 있어야 하며, 소속한 교회에 헌신해야 한다.
C. 사랑의 우선권 (고전 13)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예언하는 능과 모든 비밀과 지식을 알더라도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더라도
(교회 지체들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D. 신앙의 연륜이 사랑의 관계를 보장하지 않는다.
ex) 엔세나다 제일침례교회의 예 - 오랫동안 한교회에서 신앙생활 했음에도 서로에 대한 관심이 없다.
지체관계에 관한 성서적인 이해와 믿음이 있어야 한다. (고전 12:3; 엡 4:3)
의도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사랑하라… 명령)
다른 사역보다도 사랑의 관계에 우선권을 두어야한다.
말씀 안에서의 교제가 가능한 소그룹 성경공부의 중요성
소그룹 성경공부에 참여한 자들은 5년 후 80%가 계속 남아있고, 참여치 않은 자들은 20%만 남아 있었다는 통계가 있다. (장막과 주일학교 모임에 참여)
예수님의 본을 따라 진정한 친구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자: 다른 목사님들과의 관계를 사역적인 동역자에 앞서 진정한 친구 관계를 갖도록 우선권을 두겠다.
III. 또 다른 이웃을 사랑하라 (불신자들 - 넓은 의미에서의 이웃)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성도들을 (교회지체들)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나, 그것이 성도의 삶의 전부라면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더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과 성도에 대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사명이 있는 존재다. 모든 민족을 제자삼는 최고의 사명 (the Great Commission)은 하나님이 정하신 역사의 방향이요 섭리이다 (마 28:19-20; 눅 24:46-49)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허락하신 목적이다.
(누가복음 25:44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우리는 빚진 자다 – 우리는 누군가의 기도 혹은 전도에 의해서 예수님을 알게되고 구원 받았다.
우리의 도움을 통해서 구원받아야할 자들이 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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