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실천해야할 3가지 기도의 습관” 고린도전서 1:9 1/12/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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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실천해야할 3가지 기도의 습관”
1.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기도)
2. 원수를 위한 기도
3. 불신자를 위한 기도
(오늘 원래는요한복음 12장을 중심으로 말씀을 전해야하지만, 지난 번에 이목사님께서 지난 12월 29일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란 제목으로 이미 말씀을 증거하셨고 또 오늘 우리가 새 해를 시작하면서 다 함께 은혜 기도원에 올라가서 기도하는시간을 갖기 때문에, 저는 오늘 “반드시 실천해야할 3가지 기도의 습관”이란 주제로 기도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니까, 고전 1:9 “여러분을 불러 그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 즉” 롬 5:10;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요일 3:3
이 말씀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도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목적도 교제를 위해서 부르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목적도/우리를 부르신 목적도 우리와 교제하기 위함이시요, 또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교제키를 원하신다는 말씀인 것이 자명합니다.
그리고 결국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교제키를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기도가 주님과 우리 사이의 인격적인 교제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실 말씀이 더 많을까요 아니면 우리가 하나님께 해야 할 말이 더 많을까요?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알리고저 하는 소원이 더 간절할까요, 아니면 우리들이 우리의 뜻을 하나님께 알리고저 하는 소원이 더 간절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아들까지 아끼시지 않고 우리에게 보내주신 분입니다. 우리를 향한 간절한 소원을 갖고 계신 분입니다. 성경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하실 말씀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교제에 초청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 했고, 그 분과 교제하도록 우리를 먼저 초청하셨습니다.
얼마나 교제를 갖고 싶으면 그 분은 24시간 우리들의 마음 문을 두두리고 계신 분이십니다: “눅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 또,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살전 5:18) 우리가 기도로 그 분을 깨우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은 이미 항상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한다하면 가만히 계시는 분을 깨우므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
그리고 대개의 경우 하나님께 우리들의 소원만 언급하고 기도를 끝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시간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셨지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어릴때 는 아빠가 무슨 말씀을 해도 못 알아 듣고 자기 이야기만 합니다. 그러나 성숙 할수록 아빠와 대화 하고 아빠의 의견을 듣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믿음에 성숙한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소원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다같이,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시간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를 할 것인가?
우리는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에 많이 접해야합니다. 신령한 젖이요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마시고 먹으므로 성숙해지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 들을 수 있기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평소에 성경을 읽는다든지, 설교를 듣는 다든지, 성경공부를 한다든지.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습관을 가져야할 것입니다.
또, 기도중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우리는 이미 배운 말씀 이나 평소에 들은 말씀과 약속의 말씀을 근거로을 근거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붙잡고 하나님께 간구하며 그 의미를 더욱 깨닫고 적용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말씀 속에서 감사, 찬양, 고백, 결단, 간구할 내용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를 할 때, 주님께 질문을 많이 하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는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롬 8:26)
사실 그렇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자기가 무엇이 필요한지 조차 스스로 모를 때가 많은 것처럼, 우리도 우리에게 영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조차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기도중 주님께 묻는 자세를 유지해야할 것입니다: 주님, 제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제가 깨달아야할 것이 무엇입니까? 저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주님이 보시기에 저는 어떻습니까? 제가 감사해야할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제게 주시고저하는 말씀 혹은 해답은 무엇입니까? 제가 깨닫지 못한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주시기를 원하시는 복은 무엇입니까?
또,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항상 적을 준비를 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경청은 물론 순종까지 의미하는 것입니다.
작년 한 해동안 여러분들이 하루에 한번씩 잠간이라도 기도하셨을 텐데,
하나님께서 기도중 성령님을 통해 들은 내용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부탁한 내용은 얼마나 기억하고 순종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결단한 내용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얼마나 기억하고 감사하고 있는가?
(다른 사람하고 한 대화나 약속을 이토록 기억 못한다면 자기를 무시한다고 그 사람과 벌써 원수된지가 오래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과의 대화의 내용을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기록하는 습관을 가져야겠습니다.
성공적인 기도는 내가 하나님께서 얼마만큼 많은 이야기를 했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만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따랐느냐에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성공한 인생을 사는 비결입니다.
두번째로 우리가 반드시 실천해야할 기도의 습관은 원수를 위한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만남을 허락하신 이웃가운데는 맘에 드는 사람 사랑하고픈 사람도 있지만, 그저 그런 사람도 있고 얄미운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심지어 원수같은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 밖에서 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대하게됩니다.
심지어는 가장 가까워야할 사이도 원수같은 사이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부처럼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이 헤어지기도하고, 설교에 은혜를 받았다는 사람이 어떤날 설교한편 잘못듣고 목사와 원수가 되어 교회를 떠나는 경우, 운명공동체라고 믿고 끝까지 관계성을 함께 할 것 같았던 사이가 쉽게 갈라지는 것도 여러번 보았습니다.
우리는 다 자기중심적인 죄성으로 인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도 쉽고 받기도 쉬운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원래 이웃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미워하는 사람, 관심이 안가는 사람,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같이 한 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마태복음 5:44,55)
이 명령은 아무에게나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만,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만 감당할 수 있는 명령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로만 하나님의 사랑을 맛본 자들만 감당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니까)
원수를 위해 사랑하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원수를 위해서 뿐 아니라, 아직 원수는 아니 지만 원수가 되어나가고 있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 , 내게 상처준 사람, 미운사람, 나를 삐지게 만드는 사람들, 앙심을 품고있는 자들 등 등 원수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도 사랑하고 위해서 기도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합니까? 기도하지 않고 우리의 정상적인 생각으로는 원수를 용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판단력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없지만, 기도하게 되면 그리스도의 사랑의 눈으로 상대방을 보게 하십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과 관점을 변화시키십니다. 또 내 자신을 보게 해줍니다. ex) 나사로의 예 - 제가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면서 상대방에게 얼마나 잘못했었나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원수를 위해 기도하고 용서하지 않으면 신앙 생활을 제 대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아는 데살로니가 전서 5:16-18절 말씀 -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말씀 전에 무슨 말씀이 있는 줄 아십니까?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살전 5:15) 악을 악으로 갚으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기쁨과 기도와 감사의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 원수를 위해 기도해야합니까? 우리가 개인으로서 교회로서 성공한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을 원수로서 여기면서, 우리는 인생에 성공할 수 없습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렸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인생의 성공여부는 세상기준과 다릅니다. 우리에게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성공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는 원수를 용서못하겠다는 그리스도인들로 그득차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함께 예배드리고 심지어 예배를 인도하고 기도하고 남을 가르키기도 하고 모든 신앙행위를 합니다. 오늘 날 교회를 무력하게 만들고 교회를 파괴시키고 타락시키는 암적 요소입니다.
이렇게 원수를 용서치 않으면 우리는 영적인 싸움에서 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의 모범에 의하면,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이 악에게 지는 것입니다. (롬 12:17, 21)
왜 원수를 위해서 기도해야합니까? 원수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 몸을 아끼지 않으신 주님을 닮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을 용서하지 못하면서 주님과 교제를 나눌 수 없습니다. (막 11:25) 주님은 이들을 사랑하여 이들을 위해서도 십자가에 달리실 정도로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죄는 주님으로부터 용서 받았지만, 남들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은, 나는 용서받을 만한 죄를 졌고 상대방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 것은 자신의 죄에 대해서 과소평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나 나나 할 것없이 모두,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므로만 용서받을 수 있는 그런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란 것을 항상 기억해야할줄압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돌아가셔야할 정도로 자신이 심각한 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아는 자들은 남을 용서치 않을 수 없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데 실패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데 실패하는 것이요 결국 교회로서도 실패하고 인생에도 실패하는 자가될 것입니다. (저는 아주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
원수를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로 교회가 그득할 때 교회에는 사랑과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원수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평소에 서로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할 줄 압니다. 우리의 목표는 미워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특별한 문제가 없더라도 서로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 관계는 피상적이고 얄팍한 관계에 불과한 것을 경험합니다. 또, 우리가 아직 우리의 관계가 문제가 없을 때 서로를 위해서 의도적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사랑의 관계도 서먹서먹 하게 만들고 오히려 적대적 관계로까지 변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서로 서로를 위해 기도하지 않다보니까, 교회들이 협동하기 보다는 경쟁대상으로 서로를 보게되었습니다. 사역자들이 서로를 위해 기도하지 않다 보니까, 사역자들이 서로 협동하기 보다는 경쟁상대가 되었습니다. 교회의 모습들과 각 성도의 모습들을 점 점 추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잡히시기 전날 성경에 언급된 가장 긴 기도문을 남기셨습니다. (요한 17) 그를 따르는 제자들과 그를 앞으로 믿게될 사람들에 관한 것입니다. 그의 백성들이 하나되어 세상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내신 것을 믿게해 달라는 내용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된 모습을 볼 때 세상사람들이 하나님 사랑을 믿게됩니다.
주님의 소원과 기도를 따라, 교회가 서로 서로를 위해 기도하면, 또 원수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사랑하는 사랑의 공동체가되어 세상의 희망을 주는 모임이 되어야겠습니다.
또 마지막으로 실천해야할 기도의 습관은 불신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구원얻도록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얻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기 위해서입니다.
오해하지 말고 들으세요. 21세기침례교회는 “새로 교회에 방문하는 사람이 있어도 전혀관심을 안가진다”란 불평을 종 종 듣습니다. 지난 수년간 주일학교 출석부에 전도대상자를 매주 조사합니다. 그러나, 전도대상자를 파악하는데 관심을 갖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야할 자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불신자들이 항상 눈 앞에서 왔다 갔다 해도 복음이 필요한 자로 생각치 않고, 복음을 나눌 준비도 안하고, 전도할 기회가 와도 깨닫지 못하고 놓치고맙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사람들이 전도대상입니다 – 전도대상자들에 대한 기도의 끈을 놓지않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전도를 위한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전도할 기회가 생기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항상 전도하기 위해 깨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자기를 감시하던 간수를 전도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교회에서 지난 14년간 학생들을 포함해서 약 150명 정도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현재 출석하고 있는 학생들 뿐 아니라, 우리 교회를 거쳐간 거의 100%의 학생들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 이유는 누군가가 그들을 위해 기도했고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정을 가질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할 기회를 주시도록, 담대한 마음을 달라고, 그리고 불신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달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전도하는 교회가 기도하는 교회, 기도하는 교회가 전도하는 교회란 사실을 잊지마시기 바랍니다.
성도간의 사랑도, 원수를 용서함도 기도로 시작하는 것처럼, 전도도 아직 예수를 믿지 않는 분들을 위한 기도로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도의 삶을 통해서 우리 모두의 삶의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예수님의 최고의 사명과 위대한 사명을 수행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바쁘고 피곤한 줄 알면서도 올 해부터 수요모임을 시작하였습니다. 계속 배우고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하는 영역이 너무 많습니다. 소수의 사람들만 그 모임에 나오게될 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도에 우리의 운명이 달려있다면 우리의 존재목적의 성취여부가 달려있다면, 기도를 그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운명이 거기에 달려있는 것처럼 기도해야합니다. 기도에 시간을 소요한다는 것은 가장 보람있는 투자인 것을 보장합니다. 이 것이 우리가 싸워야할 선한 싸움인 줄 압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 원수를 위한 기도, 불신자를 위한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최고의 명령과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 각자와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1.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기도)
2. 원수를 위한 기도
3. 불신자를 위한 기도
(오늘 원래는요한복음 12장을 중심으로 말씀을 전해야하지만, 지난 번에 이목사님께서 지난 12월 29일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란 제목으로 이미 말씀을 증거하셨고 또 오늘 우리가 새 해를 시작하면서 다 함께 은혜 기도원에 올라가서 기도하는시간을 갖기 때문에, 저는 오늘 “반드시 실천해야할 3가지 기도의 습관”이란 주제로 기도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니까, 고전 1:9 “여러분을 불러 그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 즉” 롬 5:10;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요일 3:3
이 말씀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도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목적도 교제를 위해서 부르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목적도/우리를 부르신 목적도 우리와 교제하기 위함이시요, 또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교제키를 원하신다는 말씀인 것이 자명합니다.
그리고 결국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교제키를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기도가 주님과 우리 사이의 인격적인 교제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실 말씀이 더 많을까요 아니면 우리가 하나님께 해야 할 말이 더 많을까요?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알리고저 하는 소원이 더 간절할까요, 아니면 우리들이 우리의 뜻을 하나님께 알리고저 하는 소원이 더 간절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아들까지 아끼시지 않고 우리에게 보내주신 분입니다. 우리를 향한 간절한 소원을 갖고 계신 분입니다. 성경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하실 말씀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교제에 초청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 했고, 그 분과 교제하도록 우리를 먼저 초청하셨습니다.
얼마나 교제를 갖고 싶으면 그 분은 24시간 우리들의 마음 문을 두두리고 계신 분이십니다: “눅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 또,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살전 5:18) 우리가 기도로 그 분을 깨우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은 이미 항상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한다하면 가만히 계시는 분을 깨우므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
그리고 대개의 경우 하나님께 우리들의 소원만 언급하고 기도를 끝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시간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셨지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어릴때 는 아빠가 무슨 말씀을 해도 못 알아 듣고 자기 이야기만 합니다. 그러나 성숙 할수록 아빠와 대화 하고 아빠의 의견을 듣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믿음에 성숙한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소원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다같이,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시간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를 할 것인가?
우리는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에 많이 접해야합니다. 신령한 젖이요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마시고 먹으므로 성숙해지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 들을 수 있기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평소에 성경을 읽는다든지, 설교를 듣는 다든지, 성경공부를 한다든지.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습관을 가져야할 것입니다.
또, 기도중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우리는 이미 배운 말씀 이나 평소에 들은 말씀과 약속의 말씀을 근거로을 근거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붙잡고 하나님께 간구하며 그 의미를 더욱 깨닫고 적용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말씀 속에서 감사, 찬양, 고백, 결단, 간구할 내용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를 할 때, 주님께 질문을 많이 하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는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롬 8:26)
사실 그렇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자기가 무엇이 필요한지 조차 스스로 모를 때가 많은 것처럼, 우리도 우리에게 영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조차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기도중 주님께 묻는 자세를 유지해야할 것입니다: 주님, 제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제가 깨달아야할 것이 무엇입니까? 저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주님이 보시기에 저는 어떻습니까? 제가 감사해야할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제게 주시고저하는 말씀 혹은 해답은 무엇입니까? 제가 깨닫지 못한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주시기를 원하시는 복은 무엇입니까?
또,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항상 적을 준비를 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경청은 물론 순종까지 의미하는 것입니다.
작년 한 해동안 여러분들이 하루에 한번씩 잠간이라도 기도하셨을 텐데,
하나님께서 기도중 성령님을 통해 들은 내용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부탁한 내용은 얼마나 기억하고 순종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결단한 내용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얼마나 기억하고 감사하고 있는가?
(다른 사람하고 한 대화나 약속을 이토록 기억 못한다면 자기를 무시한다고 그 사람과 벌써 원수된지가 오래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과의 대화의 내용을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기록하는 습관을 가져야겠습니다.
성공적인 기도는 내가 하나님께서 얼마만큼 많은 이야기를 했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만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따랐느냐에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성공한 인생을 사는 비결입니다.
두번째로 우리가 반드시 실천해야할 기도의 습관은 원수를 위한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만남을 허락하신 이웃가운데는 맘에 드는 사람 사랑하고픈 사람도 있지만, 그저 그런 사람도 있고 얄미운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심지어 원수같은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 밖에서 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대하게됩니다.
심지어는 가장 가까워야할 사이도 원수같은 사이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부처럼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이 헤어지기도하고, 설교에 은혜를 받았다는 사람이 어떤날 설교한편 잘못듣고 목사와 원수가 되어 교회를 떠나는 경우, 운명공동체라고 믿고 끝까지 관계성을 함께 할 것 같았던 사이가 쉽게 갈라지는 것도 여러번 보았습니다.
우리는 다 자기중심적인 죄성으로 인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도 쉽고 받기도 쉬운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원래 이웃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미워하는 사람, 관심이 안가는 사람,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같이 한 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마태복음 5:44,55)
이 명령은 아무에게나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만,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만 감당할 수 있는 명령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로만 하나님의 사랑을 맛본 자들만 감당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니까)
원수를 위해 사랑하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원수를 위해서 뿐 아니라, 아직 원수는 아니 지만 원수가 되어나가고 있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 , 내게 상처준 사람, 미운사람, 나를 삐지게 만드는 사람들, 앙심을 품고있는 자들 등 등 원수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도 사랑하고 위해서 기도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합니까? 기도하지 않고 우리의 정상적인 생각으로는 원수를 용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판단력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없지만, 기도하게 되면 그리스도의 사랑의 눈으로 상대방을 보게 하십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과 관점을 변화시키십니다. 또 내 자신을 보게 해줍니다. ex) 나사로의 예 - 제가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면서 상대방에게 얼마나 잘못했었나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원수를 위해 기도하고 용서하지 않으면 신앙 생활을 제 대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아는 데살로니가 전서 5:16-18절 말씀 -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말씀 전에 무슨 말씀이 있는 줄 아십니까?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살전 5:15) 악을 악으로 갚으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기쁨과 기도와 감사의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 원수를 위해 기도해야합니까? 우리가 개인으로서 교회로서 성공한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을 원수로서 여기면서, 우리는 인생에 성공할 수 없습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렸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인생의 성공여부는 세상기준과 다릅니다. 우리에게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성공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는 원수를 용서못하겠다는 그리스도인들로 그득차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함께 예배드리고 심지어 예배를 인도하고 기도하고 남을 가르키기도 하고 모든 신앙행위를 합니다. 오늘 날 교회를 무력하게 만들고 교회를 파괴시키고 타락시키는 암적 요소입니다.
이렇게 원수를 용서치 않으면 우리는 영적인 싸움에서 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의 모범에 의하면,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이 악에게 지는 것입니다. (롬 12:17, 21)
왜 원수를 위해서 기도해야합니까? 원수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 몸을 아끼지 않으신 주님을 닮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을 용서하지 못하면서 주님과 교제를 나눌 수 없습니다. (막 11:25) 주님은 이들을 사랑하여 이들을 위해서도 십자가에 달리실 정도로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죄는 주님으로부터 용서 받았지만, 남들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은, 나는 용서받을 만한 죄를 졌고 상대방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 것은 자신의 죄에 대해서 과소평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나 나나 할 것없이 모두,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므로만 용서받을 수 있는 그런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란 것을 항상 기억해야할줄압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돌아가셔야할 정도로 자신이 심각한 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아는 자들은 남을 용서치 않을 수 없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데 실패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데 실패하는 것이요 결국 교회로서도 실패하고 인생에도 실패하는 자가될 것입니다. (저는 아주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
원수를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로 교회가 그득할 때 교회에는 사랑과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원수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평소에 서로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할 줄 압니다. 우리의 목표는 미워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특별한 문제가 없더라도 서로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 관계는 피상적이고 얄팍한 관계에 불과한 것을 경험합니다. 또, 우리가 아직 우리의 관계가 문제가 없을 때 서로를 위해서 의도적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사랑의 관계도 서먹서먹 하게 만들고 오히려 적대적 관계로까지 변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서로 서로를 위해 기도하지 않다보니까, 교회들이 협동하기 보다는 경쟁대상으로 서로를 보게되었습니다. 사역자들이 서로를 위해 기도하지 않다 보니까, 사역자들이 서로 협동하기 보다는 경쟁상대가 되었습니다. 교회의 모습들과 각 성도의 모습들을 점 점 추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잡히시기 전날 성경에 언급된 가장 긴 기도문을 남기셨습니다. (요한 17) 그를 따르는 제자들과 그를 앞으로 믿게될 사람들에 관한 것입니다. 그의 백성들이 하나되어 세상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내신 것을 믿게해 달라는 내용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된 모습을 볼 때 세상사람들이 하나님 사랑을 믿게됩니다.
주님의 소원과 기도를 따라, 교회가 서로 서로를 위해 기도하면, 또 원수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사랑하는 사랑의 공동체가되어 세상의 희망을 주는 모임이 되어야겠습니다.
또 마지막으로 실천해야할 기도의 습관은 불신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구원얻도록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얻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기 위해서입니다.
오해하지 말고 들으세요. 21세기침례교회는 “새로 교회에 방문하는 사람이 있어도 전혀관심을 안가진다”란 불평을 종 종 듣습니다. 지난 수년간 주일학교 출석부에 전도대상자를 매주 조사합니다. 그러나, 전도대상자를 파악하는데 관심을 갖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야할 자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불신자들이 항상 눈 앞에서 왔다 갔다 해도 복음이 필요한 자로 생각치 않고, 복음을 나눌 준비도 안하고, 전도할 기회가 와도 깨닫지 못하고 놓치고맙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사람들이 전도대상입니다 – 전도대상자들에 대한 기도의 끈을 놓지않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전도를 위한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전도할 기회가 생기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항상 전도하기 위해 깨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자기를 감시하던 간수를 전도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교회에서 지난 14년간 학생들을 포함해서 약 150명 정도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현재 출석하고 있는 학생들 뿐 아니라, 우리 교회를 거쳐간 거의 100%의 학생들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 이유는 누군가가 그들을 위해 기도했고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정을 가질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할 기회를 주시도록, 담대한 마음을 달라고, 그리고 불신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달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전도하는 교회가 기도하는 교회, 기도하는 교회가 전도하는 교회란 사실을 잊지마시기 바랍니다.
성도간의 사랑도, 원수를 용서함도 기도로 시작하는 것처럼, 전도도 아직 예수를 믿지 않는 분들을 위한 기도로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도의 삶을 통해서 우리 모두의 삶의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예수님의 최고의 사명과 위대한 사명을 수행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바쁘고 피곤한 줄 알면서도 올 해부터 수요모임을 시작하였습니다. 계속 배우고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하는 영역이 너무 많습니다. 소수의 사람들만 그 모임에 나오게될 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도에 우리의 운명이 달려있다면 우리의 존재목적의 성취여부가 달려있다면, 기도를 그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운명이 거기에 달려있는 것처럼 기도해야합니다. 기도에 시간을 소요한다는 것은 가장 보람있는 투자인 것을 보장합니다. 이 것이 우리가 싸워야할 선한 싸움인 줄 압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 원수를 위한 기도, 불신자를 위한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최고의 명령과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 각자와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댓글목록
박천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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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실천해야할 3가지 기도의 습관”
1.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기도)
“여러분을 불러 그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고전 1:9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 즉” 롬 5:10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요일 3:3
2. 원수를 위한 기도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라고 명령 하십니다. 이같이 한 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마태복음 5:44-55
3. 불신자를 위한 기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딤전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