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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를사랑하느냐?” 요한복음 21:1-25 3/23/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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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21:1-25

문맥상으로 요한복음이 20장으로 깔끔하게 종결될 수 있음에도 21장 한 장을 더 기록한 이유는 베드로때문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과 요한복음 네 복음서가 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3번 부인한 사건을  기록합니다.  그만큼 중요한 사건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건 이후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대면한 기록이 없이 종결됩니다.  요한복음21장의 말씀이 없었다면,  예수님이 가장 힘들어 하셨을 때에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가 어떻게  회복될 수 있었는지 사명자로 거듭날 수 있는 있었는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밤새도록 물고기잡이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3년 쯤 전에 어부였던 제자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불렀었는데  이 제자들이 다시 물고기를 잡는 어부로 되 돌아간 것입니다.  이들은 밤새도록 일했지만 물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배 오른 쪽에 그물을 던지라 명하시고 제자들이 순종했을 때 그들은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이 저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신 후 3년이 지난 후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실패자의 모습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도 스스로 죄책감을 느꼈는지  예수님께서 바닷가에서 아침을 준비하시고 먹으라 초청하였을 때에 주님을 알아 보았으면서도 꿀 먹은 벙어리 같은 상태가 됨니다: 12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신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들을 위해 숫불을 피워놓고 빵과 물고기를 구워 식사까지 준비해 주시므로 그들을 야단치고 정죄하기 보다는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신약성경에 숯불이란 말이 딱 두군데 나오는데 지금 이 구절과 18:18절에 나옵니다. “그 때가 추운고로 종과 하속들이 숯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숯불을 쬐고 있다가 예수님을 세번 부인한 상황을 연상케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역시 베드로가 숯불을 쬐며 예수님을 부활했던 그 순간을 기억하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실패한 베드로의 모습을 다시 기억케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I. 네가 이사람들 보다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의 사랑으로 준비한 조반을 제자들이 먹고나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어보십니다.
네가 이사람들 보다 나를 사랑하느냐?  아마도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을 다 예수님을 버릴 찌라도 자신은 버리지 않겠다넌 자신의 고백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번쨰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질문하셨을 때,  베드로는 근심까지하게됩니다.  마음이 덜컹하는 것을 느낀 것입니다. 아마도 베드로가 세번째 예수님을 부인할 때에는 저주하고 맹세하며 예수님을 부인했던 그 사실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실 수 있었던 질문들이 많이 있었을 텐데, 왜 “나를 사랑하느냐”란 질문만을 하셨을까요?
첫번째로 중요한 것도, 두번째도 중요한 것도, 세번째로 중요한 것도 예수님께 중요한 것은 사랑의 관계란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아직도 베드로와의 사랑의 관계가 예수님에게 이토록 중요하다는 것은 베드로를 그만큼 사랑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그만큼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너의 사랑을 원한다란 말씀일 것입니다.
 
첫번째로 중요한 것뿐 아니라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도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란 말은 예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가장 중요할 뿐 아니라,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전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위해 내 목숨을, 나의 모든 것을 줄 정도로 사랑하는데, 너는 나의 사랑이 네게 필요한 전부라고 믿는가란 질문일 것입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목자라면  내게 부족함이 없다. 내게는 예수님 외에 필요한 것이 없다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란 질문입니다.
 
주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주님의 사랑이 내게 가장 귀중한 것이요 그리고 내게 필요한 전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런 고백을 할 수 없다면 우리는 회개해야합니다.  반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다면 베드로처럼 우리의 과거와 상관없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회개란 온갖 우리가 저지른 죄의 항목을 다 기억하고 쏟아내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그 누구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사랑하겠다는 결단이 회개인 줄압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그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주님의 사랑이 내게 필요한 전부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을 때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던 것 처럼 “ 내 양을 치라 내양을 먹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나는 너를 신뢰한다)
 
II.  내 양을 먹이라: 

예수님께서 양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기 위해서 오셨을 정도로, 예수님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이 그 분의 양입니다.  그래서 내 양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양을  베드로에게 부탁하면서 “네가 내 양을 사랑하느냐”라고 묻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왜냐하면, 먼저 예수님에 대한 사랑 없이는  베드로나 그 누구라도 스스로 예수님의 양을 사랑할 수도, 돌볼 수 없기때문입니다.  양들을 향한 사랑이 자신의 사랑이나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은 여지없이 예수님의 제자들의 관계 속에서 드러났었습니다.  3년 동안 저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훈련을 받았음에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던 그 날까지 서로 높임을 받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싸웠던 모습말입니다.

베드로는 양들을 섬기기에는 너무 자부심이 강해던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신뢰했던 사람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자신은 목숨을 걸고 주님을 따르겠다”고 큰 소리 쳤던 사람입니다.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지만 자기가 예수님 다음에 가장 높은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랐지만 예수님만으로는 부족하고 부귀와 명예를 필요로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잡혀서 고문과 심문 받는 동안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번 부인했고 마지막에는 저주하고  맹세하며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마 26:74).  그 때에 닭이 울었습니다.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3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비통해하며 웁니다.  그는 깨진 사람이 된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신뢰를 잃은 것입니다.  베드로는 내 양을 먹이라는 주님의 초청을 듣기 전에 철저히 무너져야했습니다. 주님은 더 이상 자신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철저히 깨달은 자를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주님의 양을 돌볼 수 있느냐?  다윗은 이스라엘을 섬겼던  가장 훌륭한 목자로 양들을 돌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 자신이 가진 것이나 능력 때문에 부족함 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가 자신의 목자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점이 저를 비롯한 많은 사역자들이 오해하고 실수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먼저 우리에게 양을 돌보는 사역으로 부른 것이 아니고, 먼저 주님을 사랑하라고 부르셨음을 잊기 때문입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고전 1:9 
 
제가 목회자로서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목회와 관련된 여러가지 사역에 대한 지식이나 능력보다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게 필요한 전부다라는 고백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고백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게 필요한 전부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날마다 주님 앞에 나와 회개하는 사람, 기도하며 주님을 의존하는 사람,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을 날마다 좇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내게 필요한 전부라는 고백이 나올 정도로 주님을 사랑하는 이런 사역자야 말로 주님의 양을 양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베드로의 양이 아닌 예수님의 양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교회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새로운 창조입니다.  첫창조인 아담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않으므로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짓고 멸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새로운 창조를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이들은 아담과는 달리 주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믿는 자들로 구성되어있는 새로운 공동체입니다.  이것이 에베소서에서 말한 위대한 걸작품인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리고 이 공동체에 합당한 새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새피조물로서의 삶을 살도록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요 또한 21장이 왜 요한복음의 결론이란 사실을 설명합니다.

주님은 이미기존해있는  어떤 공동체나 그룹보다 더 개선된 그룹이나 모임을 만들기 위해서 자신의 피를 흘리신 것이 아니라 그의 절대적인 사랑을 믿고 실천하는 자신의 공동체를  탄생시키기 위해서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요일 3:16; 요 15:12-14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그러나, 우리는 다 양같아서 자기 중심적으로 제 각기 자기 길을 가는 자들이기 때문에 인간을  먼저 바라볼 때는 결코 서로 지속적으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3년 이상 예수님에게 배우며 동거 동락했지만 누가 더 큰가로 다투었던 것 처럼, 우리에게도 서로 서로 너무 감사할지도 모르고, 무시하고, 쉽게 비판하고, 쉽게 실망하고 실망을 주는 자들입니다.  먼저 절대적인 주님의 사랑을 바라보고 의존할 때만이 우리는 지속적으로 양을 사랑할 수 있고 서로 서로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III. 나를 따르라:

 “주님을 따른 다는 것은 -주님에 대한 순종 (주님의 주권); 주님과의 동행 (사랑); 주님을 본받음 (목적)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르는 삶은 주님과 운명을 같이하는 삶이요 또한, 주님이 책임져 주시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 것이 목자와 양의 관계입니다. 

그러나 양들의 문제는 각기 제길로 가는 습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에게서 눈을 고정시키지 않으면 쉽게 다른 것들이 보이고 다른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나를 따르라는 명령을 듣고 베드로는 금방 요한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 물어봅니다.  주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이 말을 쉽게 말하면 “너나 잘해라”일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따르다 보면, 주님만을 보기보다는 주위를 살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보다는 남의눈에 있는 티가 잘보입니다. 섬기기 보다는 섬김받지 못한 것에 더욱 민감합니다. 기껏 봉사하고도  손해감정을 쉽게 가집니다. 모든 일을 남과 비교하여 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의 대답이 무엇일까요?  너는 나를 따르라.
 
여러분 유치원애들 공연하는 것 보신적있지요. 질서가 없지요.  애들이 서로 쿡쿡찌르고 어떤 애들은 공연은 안하고 부모님이 어디있나 살피고 가끔 노래하거나 율동도 하지만 앞에서 인도하는 선생님을 제대로 안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어른들 성가대가 공연을 하는데 서로를 보지 않고 지휘자만 바라봅니다.
 
우리의 신앙이 성숙치 않을 수록 자꾸만  지휘자이신 주님을 바라보기 보다는 주위 환경과 옆에 사람을 바라보고 영향을 받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개인적으로 뿐 아니라, 교회적으로도 서로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큰 교회던 작은 교회던 모든 교회를 향한 똑 같은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뭔지 아세요?  “너는 나를 따르라입니다”
 
우리 각자가 진심으로 고민해야할 것은 비교나 남을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가  내가 주님을 따르고 있는가?란 질문입니다.

우리 각 자가 주님을 따라 갈 때 ,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잘 인도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이 요한복음 말씀을 통해서 물어보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리고 명령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라.”

우리 각 자가 주님을 따라 갈 때,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잘인도하는 사람이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예수님처럼 내게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어볼 사람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예수님처럼 나를 따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란 예수님의 질문과 또 “나를 따르라”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듣고 순종하므로 우리 인생 끝나는 그 날까지 승리하는 우리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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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no_profile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21:1-25

서론:  요한복음 21장의 의미

I.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과의 사랑의관계가 내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인가?  예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내가 필요한 전부인가?










II. “내 양을 먹이라”: 예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사명이 따른다.





 





III. “나를 따르라”: 주님에 대한 순종 (주님의 주권); 주님과의 동행 (사랑); 주님을 본받음 (목적)을 의미한다.

주님을 따르는 삶은 주님과 운명을 같이하는 삶이요 또한, 주님이 책임져 주시는 삶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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