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요한복음 11:25-26 4/20/2014 (부활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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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요한복음 11:25-26
한국에 사는 제 친구의 표현에 의하면 지금 한국은 세월호 참사때문에 초상집 분위기라고 합니다. 미국에 사는 우리들도 많은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번 참사로 자식을 이미 잃거나 실종된 상황가운데 있는 자들은 그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이들이 자식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전재산도 아낌 없이 드렸을 것입니다. 아니 자신의 생명이라도 기꺼이 드렸을 것입니다.
학부형들의 부르짖음을 통해, 자식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사랑보다 더 귀중한 것이 없다.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다는 외침의 소리를 듣습니다. 그런데, 이 가장 귀중한 사랑도 생명도 가차 없이 무자비하게 끊어버리는 것이 죽음입니다. 그래서 죽음이 야비하고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도 이 죽음을 최후로 멸망 받아야할 원수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의 존재하는 대부분의 종교는 죽음 후에도 생명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인간의 염원때문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Dean Charles Brown of Yale University
예일대학의 찰스 브라운 학장은 하나님에 대해서 절대로 믿지 못할 일이 세가지가 있다라고 말합니다.
1. 우리가 살고 있는 이런 (놀라운) 세상을 만드신 분이 이 세상을 만드신 후에 손을 놓으셨을리가 없다.
2. 하나님께서 사람이 잠간 살다가 무덤에서 모든 것이 끝나도록 하셨을리가 없다.
3. 사람에게 영원히 살고픈 간절한 마음만 주시고 이 소원을 이룰 방법을 주시지 않으셨을리가 없다. 이 세상 삶으로 끝나게 하셨을리가 없다.
나도 그렇게 믿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성경은 그 방법이 예수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증거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이 죽으므로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오셨다 ( 히 2:14)
이 지상에서의 삶을 마치고 죽은 후에도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은 물론, 이 지상에 살아있는 동안 영원한 삶에 대한 보장과 믿음을 갖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영생에 대한 확신을 갖고 살도록 예수님께서 지난 금요일날 우리 죄를 위해서오후 3시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오늘 새벽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 증거는 빈무덤입니다. (공자나 석가나 마호멧같은 다른 종교창시자들의 무덤은 지금도 어디 있는지 알지만) 물론 유대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이 시체를 훔쳐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것은 말이 안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이 잡히실 때 다 도망갔습니다. 자기들도 잡혀 죽을 까봐 겁나서 도망간 자들이 시체를 훔쳐간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또 다른 증거나 부활을 경험한 제자들의 변화입니다. 전에 잡힐까 겁에 떨던 이들이 담대하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다고 순교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았는데 제자들이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말을 위해서 죽을 수는 없습니다. (이미 60년대에 바울도 베드로도 로마제국의 수도인 로마에서 순교당합니다. 그만큼 그리스도교가 확장되었던 것입니다. )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그가 먼저 죽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죽음이 이유가 있는 죽음, 우리의 죄를 위한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죄가 죽음의 원인이기 때문에, 인간의 죄의 문제가 해결이 안되면 결국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죽음을 정복하시고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영원히 산다. 부활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믿는 자에게,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영생을 허락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혹시라도 아직까지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주님으로 보시지 않은 분들은 그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인생의 구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배에 갖혀 생사를 알 수 없는 김정민 이란 학생의 아버지의기도입니다
요나가 고기뱃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고 회개하고 나온것처럼 돌아와도 감사하고 그리 아니할지라도 정민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원받은 것에 감사합니다 이번일로 통하여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이 생사화복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항상 고백하고 우리의 생명이 영원하지 않음을 인식하고 잠시 있다 가는 나그네인생 하나님의 계획속에서 말씀과 기도와 현장, 오직 예수그리스도, 오직 복음으로 전도자의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모두들 기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산동부지교회 김정민아버지이신 김영삼장로님이 쓰신글이라고 합니다.
이 장로님처럼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자식을 잃고도 저와 여러분은 감사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세상에 믿던 모든 것이 끊어질 그 날이 올지라도, 내가 의존하던 모든 것을 잃더라도 낙망치 않고 희망 가운데 사실 수 있습니까?
그럴려면 자식보다 배우자보다도 내게 더 귀중하고 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합니다. 그것도 잠간 있다가 없어지는 사람이 아니라, 영원히 함께하는 분이 어야합니다. 그 분이 예수입니다. 나의 죄를 위해 죽으셔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가를 보여주셨습니다. 나를 죽도록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나를 따라오려면 부모나 처자보다 형제자매보다 더 사랑해야한다. 심지어 자기 목숨보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 보다)
더 사랑해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부활하셔서 영원하신 분임을 증명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 예수를 자식보다 더 필요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분으로, 그리고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으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기 자식 이삭을 바치라는 시험을 하셨습니다. 자기의 자식을 더 사랑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지 보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시험을 허락하셨을 까요?
아브라함이 자식에 대해서 갖고 있는 사랑보다 더 깊은 사랑을 원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이런 사랑을 요구하시는것은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진정한 희망을 두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무너질 일을 당하여도 승리하며 살아나갈 수 있습니다.
세상에 믿던 모든 것이 끊어질 그 날이 올지라도, 내가 의존하던 모든 것을 잃고도 계속 낙망치 않고 희망 가운데 살려면 세상사람들이 믿고 의지하는 것 (돈이나 건강이나, 재산이나 명예나 가족이나) 보다 내가 더 의지할 수 있것이 있어야합니다. 그리고 그 것도 잠간이 아니라, 영원토록 의지할 수 있어야합니다.
예수님은 영생을 얻기 원하는 청년에게 전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자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가 가진 전재산 보다 예수님을 더 의지하는 자가 예수님을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세상에 믿던 모든 것이 없어질 그 때에도 그 분을 믿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 한 여인이 평생모은 재산인 향유옥합을 깨드려 예수님의 머리와 발에 부어드렸을 때 기뻐하신 예수님. 전재산을 버리고 자기를 따라오라고 요구하신 예수님)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인 사랑이 아니라, 이런 가장 깊은 사랑을 원하시기에 먼저 자기의 외아들 까지도 아끼시지 않고 우리를 위해 보내신 분입니다. 이런 깊은 사랑을 요구하는 분이 있다는 것이 우리들의 희망입니다. 이런 사랑의 대상이 있다는 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랑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기꺼이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만에 부활하시므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를 원하신 분이십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이 극단적인 말씀으로 들릴 수 있슴니다. 그러나, 이런 사랑을 거부하고 나는 하나님 없더라도 내자식과 내재산과 내 건강과 내가 소유한 것을 의존하면서 살겠다는 것이 죄요 죽음입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적어도 두가지 레슨을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은 귀중하다 그리고 만약의 사태에 준비하자. 저와 여러분이 갖고 있는 소망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우리 모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적인 사랑, 우리의 모든 것을 드리는 사랑 받기 원하는분입니다. 하나님이 전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만 있다면 나는 만족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랑을 원하십니다. 주님은 단지 그가 내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분임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와도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분으로 고백되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 사랑에 응답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에 사는 제 친구의 표현에 의하면 지금 한국은 세월호 참사때문에 초상집 분위기라고 합니다. 미국에 사는 우리들도 많은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번 참사로 자식을 이미 잃거나 실종된 상황가운데 있는 자들은 그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이들이 자식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전재산도 아낌 없이 드렸을 것입니다. 아니 자신의 생명이라도 기꺼이 드렸을 것입니다.
학부형들의 부르짖음을 통해, 자식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사랑보다 더 귀중한 것이 없다.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다는 외침의 소리를 듣습니다. 그런데, 이 가장 귀중한 사랑도 생명도 가차 없이 무자비하게 끊어버리는 것이 죽음입니다. 그래서 죽음이 야비하고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도 이 죽음을 최후로 멸망 받아야할 원수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의 존재하는 대부분의 종교는 죽음 후에도 생명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인간의 염원때문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Dean Charles Brown of Yale University
예일대학의 찰스 브라운 학장은 하나님에 대해서 절대로 믿지 못할 일이 세가지가 있다라고 말합니다.
1. 우리가 살고 있는 이런 (놀라운) 세상을 만드신 분이 이 세상을 만드신 후에 손을 놓으셨을리가 없다.
2. 하나님께서 사람이 잠간 살다가 무덤에서 모든 것이 끝나도록 하셨을리가 없다.
3. 사람에게 영원히 살고픈 간절한 마음만 주시고 이 소원을 이룰 방법을 주시지 않으셨을리가 없다. 이 세상 삶으로 끝나게 하셨을리가 없다.
나도 그렇게 믿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성경은 그 방법이 예수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증거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이 죽으므로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오셨다 ( 히 2:14)
이 지상에서의 삶을 마치고 죽은 후에도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은 물론, 이 지상에 살아있는 동안 영원한 삶에 대한 보장과 믿음을 갖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영생에 대한 확신을 갖고 살도록 예수님께서 지난 금요일날 우리 죄를 위해서오후 3시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오늘 새벽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 증거는 빈무덤입니다. (공자나 석가나 마호멧같은 다른 종교창시자들의 무덤은 지금도 어디 있는지 알지만) 물론 유대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이 시체를 훔쳐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것은 말이 안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이 잡히실 때 다 도망갔습니다. 자기들도 잡혀 죽을 까봐 겁나서 도망간 자들이 시체를 훔쳐간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또 다른 증거나 부활을 경험한 제자들의 변화입니다. 전에 잡힐까 겁에 떨던 이들이 담대하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다고 순교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았는데 제자들이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말을 위해서 죽을 수는 없습니다. (이미 60년대에 바울도 베드로도 로마제국의 수도인 로마에서 순교당합니다. 그만큼 그리스도교가 확장되었던 것입니다. )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그가 먼저 죽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죽음이 이유가 있는 죽음, 우리의 죄를 위한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죄가 죽음의 원인이기 때문에, 인간의 죄의 문제가 해결이 안되면 결국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죽음을 정복하시고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영원히 산다. 부활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믿는 자에게,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영생을 허락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혹시라도 아직까지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주님으로 보시지 않은 분들은 그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인생의 구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배에 갖혀 생사를 알 수 없는 김정민 이란 학생의 아버지의기도입니다
요나가 고기뱃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고 회개하고 나온것처럼 돌아와도 감사하고 그리 아니할지라도 정민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원받은 것에 감사합니다 이번일로 통하여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이 생사화복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항상 고백하고 우리의 생명이 영원하지 않음을 인식하고 잠시 있다 가는 나그네인생 하나님의 계획속에서 말씀과 기도와 현장, 오직 예수그리스도, 오직 복음으로 전도자의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모두들 기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산동부지교회 김정민아버지이신 김영삼장로님이 쓰신글이라고 합니다.
이 장로님처럼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자식을 잃고도 저와 여러분은 감사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세상에 믿던 모든 것이 끊어질 그 날이 올지라도, 내가 의존하던 모든 것을 잃더라도 낙망치 않고 희망 가운데 사실 수 있습니까?
그럴려면 자식보다 배우자보다도 내게 더 귀중하고 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합니다. 그것도 잠간 있다가 없어지는 사람이 아니라, 영원히 함께하는 분이 어야합니다. 그 분이 예수입니다. 나의 죄를 위해 죽으셔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가를 보여주셨습니다. 나를 죽도록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나를 따라오려면 부모나 처자보다 형제자매보다 더 사랑해야한다. 심지어 자기 목숨보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 보다)
더 사랑해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부활하셔서 영원하신 분임을 증명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 예수를 자식보다 더 필요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분으로, 그리고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으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기 자식 이삭을 바치라는 시험을 하셨습니다. 자기의 자식을 더 사랑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지 보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시험을 허락하셨을 까요?
아브라함이 자식에 대해서 갖고 있는 사랑보다 더 깊은 사랑을 원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이런 사랑을 요구하시는것은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진정한 희망을 두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무너질 일을 당하여도 승리하며 살아나갈 수 있습니다.
세상에 믿던 모든 것이 끊어질 그 날이 올지라도, 내가 의존하던 모든 것을 잃고도 계속 낙망치 않고 희망 가운데 살려면 세상사람들이 믿고 의지하는 것 (돈이나 건강이나, 재산이나 명예나 가족이나) 보다 내가 더 의지할 수 있것이 있어야합니다. 그리고 그 것도 잠간이 아니라, 영원토록 의지할 수 있어야합니다.
예수님은 영생을 얻기 원하는 청년에게 전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자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가 가진 전재산 보다 예수님을 더 의지하는 자가 예수님을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세상에 믿던 모든 것이 없어질 그 때에도 그 분을 믿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 한 여인이 평생모은 재산인 향유옥합을 깨드려 예수님의 머리와 발에 부어드렸을 때 기뻐하신 예수님. 전재산을 버리고 자기를 따라오라고 요구하신 예수님)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인 사랑이 아니라, 이런 가장 깊은 사랑을 원하시기에 먼저 자기의 외아들 까지도 아끼시지 않고 우리를 위해 보내신 분입니다. 이런 깊은 사랑을 요구하는 분이 있다는 것이 우리들의 희망입니다. 이런 사랑의 대상이 있다는 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랑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기꺼이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만에 부활하시므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를 원하신 분이십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이 극단적인 말씀으로 들릴 수 있슴니다. 그러나, 이런 사랑을 거부하고 나는 하나님 없더라도 내자식과 내재산과 내 건강과 내가 소유한 것을 의존하면서 살겠다는 것이 죄요 죽음입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적어도 두가지 레슨을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은 귀중하다 그리고 만약의 사태에 준비하자. 저와 여러분이 갖고 있는 소망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우리 모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적인 사랑, 우리의 모든 것을 드리는 사랑 받기 원하는분입니다. 하나님이 전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만 있다면 나는 만족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랑을 원하십니다. 주님은 단지 그가 내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분임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와도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분으로 고백되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 사랑에 응답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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