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이 진정 사랑한 것은 ? (2011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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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열왕기상11:1-13
솔로몬왕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왕국에서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업적을 이루며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 이스라엘의 특권이며 자존심인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위업을 이루었습니다.
- 그 지혜가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어 여러나라에서 그 지혜를 들으려고 몰려옵니다.
- 막강한 군대와 강력한 제국을 이루었습니다.
- 여러 나라가 조공을 바쳐옵니다.
- 수만 달란트의 금덩어리가 몰려오므로 돈이 넘쳐납니다.
솔로몬은 이제 더 바랄 것이 없을 만큼 승승장구합니다. 그가 누린 영광이 얼마나 굉장한 것이었는지 예수님께서도 가장 영광스러운 것을 말씀하실 때 솔로몬을 예로 드실 정도이었습니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느니라. 그러나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꽃 하나님 같지 못하였느니라.(마 6:28-29)
이러한 화려하고 영광스런 삶이 솔로몬왕에게 하나의 시험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시험을 당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시험을 만날 때에 마귀는 그를 통해서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욱 성숙케하시며 도리어 굳게 세워주십니다. 시험이 닥쳐왔을 때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대처해야하는가를 솔로몬을 통해서 배우기를 원합니다.
I. 솔로몬의 문제는 교만이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것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
“쉽게 말하자면 교만하면 망한다.“ 라는 말이지요. 이 말은 솔로몬이 남긴 잠언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자신은 교만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그만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조심해야합니다.
솔로몬이 왜 교만했는가?
(1)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잊었습니다.
왕의 지위도, 지혜도, 기회도, 승리도 ....모두 하나님께서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그 자신이 이룬 것인 줄로 생각하는 순간부터 교만이 싹텄습니다.
(2) 그는 자신의 환경을 바라봤습니다.
만사형통하는 자신의 환경에 심취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하나님에게로부터 눈을 돌려 자신이나 환경을 바라보면 교만하게 되거나 혹은 좌절하여 열등의식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솔로몬왕은 전자에 해당하는 문제에 걸렸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나 풍부하게 순탄하게 잘 돌아가니 그 환경에 취한 나머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잊고 자만에 빠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별로 가진 것도 이룬 것도 없는 처지라서 겸손한 듯해도 실은 자만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내가 이루었다. 내가 열심히 살았다. 내가 대인관계가 좋기 때문이다. 내가 운이 좋았다. 내가, 내가, 내가 말이다. 내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눅가복음 12장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부자에게 하신 것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
그러므로 우리 각자는 서있는 자리에서 날마다 하나님을 바라봐야합니다.
Quiet time, 기도, 말씀공부, 성도의 나눔, 예배, 헌신.....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 우리의 인생의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천지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거기에 초점을 맞추고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이러한 믿음의 본이 잘 나타나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서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11:1-2)
- 믿음의 눈으로 현실을 살아가는가?
- 현실의 눈으로 신앙생활을 하는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교만”이란 한마디로 무엇입니까?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마음가짐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로부터 자신에게로 그 눈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디로부터 온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에덴동산의 아담에게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왕에게 반복적으로 하신 말씀이 곧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곧 죽느냐, 사느냐하는 문제입니다. 여호와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날에는 네가 정녕 죽으리라.” 고 하신 것과 같이 말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네가 이제 이 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나의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더라. (왕상 5:11-13)
그런데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악한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존재와 권위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우상숭배를 하는 순간 우리 하나님은 다른 쓰레기 같은 신들 중 하나로 격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참혹한 모욕입니다.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저에게 진노하시니라.(9)
솔로몬에게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은 마치 아담에게 말씀하셨을 때와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창3:17)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는 아담의 죄, 솔로몬의 죄, 나의 죄, 여러분의 죄가 얼만 악한 것인지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야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권하시는 것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신명기 10:12-13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왕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느냐, 아니면 자기감정을 따르느냐 하는 것을 놓고 자기 자신과 타협을 해 버렸습니다. 인간의 모든 죄가 이와 같습니다. 타협과 합리화는 서로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합리화는 인간의 지혜로 합리적인 이유를 찾으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왜, 하면서 이해하려고, 또 핑계를 찾으려고...하는 자세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이 하나님께 말하기를,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나에게 실과를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럴 듯합니다.
사울왕은 하나님께서 전부 몰살시키라고 명령하신 아말렉 족속의 소와 양과 기타보물들을 챙겨둔 다음에,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려는 좋은 의도에서 그리하였습니다.”고 항변했습니다.
솔로몬도 그럴듯한 할리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 그는 여전히 성전에서 엄청난 제물로 제사를 드림으로 스스로 의로운 자
라는 자부심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 수많은 처첩을 거느리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축복이니 감사함으로 받
아 누려야 한다고 스스로 합리화 했을 것입니다.
- 이방신들을 위해서 수많은 산당들을 지어 놓고 분향하며 섬기게 허락하면
서 이스라엘이 세계적인 나라로 국제화를 이룬다고 스스로 만족했을 것입
니다.
자기 자신과 그 감정과 타협함으로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결과로 나타는 것입니다.
성전을 지은 솔로몬이 이방신들을 위하여 산당을 지었다.(7-8)는 이 사실은 희대의 코메디요, Irony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족 후비들(첩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했다니 산당이 과연 최소한 수십 수백 개나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던 손으로 하나님을 멸시하는 짓을 하다니, 이 무슨 망발이란 말입니까?
결국 솔로몬은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
우리 인간들도 끼리도 서로 배신하기를 밥 먹듯 합니다.
그런 풍조 속에서 낳고 자란 우리들은 배신이 그저 삶의 한 방법이며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요령인양 착각합니다. 그래서 우직스럽게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나 정도를 밟으며 인생길을 가는 사람이 도리어 요령 없는 사람이 아니면 어리석은 사람이나 바보 취급을 받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에게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것을 뜻합니다.
내 신앙 내가 지킨다가 아니라, 내 신앙 자체도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내 신앙도 지켜주셔서 결국은 의의 면류관으로 상을 주신다니 그것이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다 이루시고, 도와주시고, 그리고 상은 나에게 주신다. 이것이 은혜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II. 솔로몬의 문제는 회개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토록 지혜롭던 솔로몬이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을 좇게 한다고 홀랑 넘어가서 우상에게 분향하고 절하고....
어떻게 하면 이렇게 추하게 될 수 있을까?
그 마음입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 4:23)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잠언을 말한 사람이 막상 자신의 마음은 지키지 못하여 멸망의 길로 가고만 사실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의 자세, 주님을 향한 우리의 각도가 어떠한가를 깊이 살펴봐야하겠습니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11)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주의 의로운 규례를 지키기로 맹서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시 119:105-106)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 중심에 모시고 산 다윗은 비록 죄를 짓더라도 즉시 회개하고, 말씀으로 돌아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회복시키시고 새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삶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회개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그러했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러했습니다.
솔로몬의 문제는 철저히 회개하지도 않았으며, 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얻은 아브라함은 자기 가정에서 일어나는 불상사를 보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들 이스마엘을 첩 하갈과 함께 광야로 떠나 보냈습니다.
솔로몬은 회개하고 처첩들을 다 버리고, 자신이 세운 우상의 산당들을 다 헐어버리고 우상숭배를 금지했어야합니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뿐더러 아예 그렇게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때와 철을 따라서 엄청난 제사를 드림으로서 죄의식을 상쇄하려했을 것입니다.
솔로몬이 사랑한 것은, 처첩들, 자기 자신, 부귀영화, 권력, 자기 감정, ....
모두 자기의 것들입니다.
솔로몬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을 향한 솔로몬의 사랑은 변해버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이스라엘에게 권고하셨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4)
솔로몬은 철저히 실패했습니다.
하나님보다 자기목숨을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 22:37-38)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신 주님의 계명입니다.
네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나 자신의 목숨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이런 말씀을 남기시고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죽도록 사랑하면 우리는 죽어도 결국 주님의 부활에 참여할 것입니다. 아니면 솔로몬과 같이 영원히 실패한 인생으로 마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솔로몬을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한번 선택하신 당신의 백성을 끝까지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봅니다.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나의 종 다윗과 나의 뺀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13)
참혹하리만치 불순종한 솔로몬을 위한 실낱같은 희망이 남아있습니다.
당신의 백성을 끝내 버리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심히 부족하기만 한 우리들에게도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는 우리를 향한 그의 소망과 기대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며, 동시에 우리에게 희망입니다.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택함을 받은 주님의 백성들이기에 말입니다.
솔로몬이 진정사랑한 것은 자기 자신과 그 감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실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진정 사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신10:12-13)
솔로몬왕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왕국에서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업적을 이루며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 이스라엘의 특권이며 자존심인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위업을 이루었습니다.
- 그 지혜가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어 여러나라에서 그 지혜를 들으려고 몰려옵니다.
- 막강한 군대와 강력한 제국을 이루었습니다.
- 여러 나라가 조공을 바쳐옵니다.
- 수만 달란트의 금덩어리가 몰려오므로 돈이 넘쳐납니다.
솔로몬은 이제 더 바랄 것이 없을 만큼 승승장구합니다. 그가 누린 영광이 얼마나 굉장한 것이었는지 예수님께서도 가장 영광스러운 것을 말씀하실 때 솔로몬을 예로 드실 정도이었습니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느니라. 그러나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꽃 하나님 같지 못하였느니라.(마 6:28-29)
이러한 화려하고 영광스런 삶이 솔로몬왕에게 하나의 시험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시험을 당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시험을 만날 때에 마귀는 그를 통해서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욱 성숙케하시며 도리어 굳게 세워주십니다. 시험이 닥쳐왔을 때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대처해야하는가를 솔로몬을 통해서 배우기를 원합니다.
I. 솔로몬의 문제는 교만이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것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
“쉽게 말하자면 교만하면 망한다.“ 라는 말이지요. 이 말은 솔로몬이 남긴 잠언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자신은 교만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그만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조심해야합니다.
솔로몬이 왜 교만했는가?
(1)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잊었습니다.
왕의 지위도, 지혜도, 기회도, 승리도 ....모두 하나님께서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그 자신이 이룬 것인 줄로 생각하는 순간부터 교만이 싹텄습니다.
(2) 그는 자신의 환경을 바라봤습니다.
만사형통하는 자신의 환경에 심취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하나님에게로부터 눈을 돌려 자신이나 환경을 바라보면 교만하게 되거나 혹은 좌절하여 열등의식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솔로몬왕은 전자에 해당하는 문제에 걸렸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나 풍부하게 순탄하게 잘 돌아가니 그 환경에 취한 나머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잊고 자만에 빠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별로 가진 것도 이룬 것도 없는 처지라서 겸손한 듯해도 실은 자만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내가 이루었다. 내가 열심히 살았다. 내가 대인관계가 좋기 때문이다. 내가 운이 좋았다. 내가, 내가, 내가 말이다. 내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눅가복음 12장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부자에게 하신 것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
그러므로 우리 각자는 서있는 자리에서 날마다 하나님을 바라봐야합니다.
Quiet time, 기도, 말씀공부, 성도의 나눔, 예배, 헌신.....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 우리의 인생의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천지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거기에 초점을 맞추고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이러한 믿음의 본이 잘 나타나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서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11:1-2)
- 믿음의 눈으로 현실을 살아가는가?
- 현실의 눈으로 신앙생활을 하는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교만”이란 한마디로 무엇입니까?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마음가짐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로부터 자신에게로 그 눈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디로부터 온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에덴동산의 아담에게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왕에게 반복적으로 하신 말씀이 곧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곧 죽느냐, 사느냐하는 문제입니다. 여호와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날에는 네가 정녕 죽으리라.” 고 하신 것과 같이 말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네가 이제 이 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나의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더라. (왕상 5:11-13)
그런데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악한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존재와 권위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우상숭배를 하는 순간 우리 하나님은 다른 쓰레기 같은 신들 중 하나로 격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참혹한 모욕입니다.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저에게 진노하시니라.(9)
솔로몬에게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은 마치 아담에게 말씀하셨을 때와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창3:17)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는 아담의 죄, 솔로몬의 죄, 나의 죄, 여러분의 죄가 얼만 악한 것인지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야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권하시는 것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신명기 10:12-13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왕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느냐, 아니면 자기감정을 따르느냐 하는 것을 놓고 자기 자신과 타협을 해 버렸습니다. 인간의 모든 죄가 이와 같습니다. 타협과 합리화는 서로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합리화는 인간의 지혜로 합리적인 이유를 찾으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왜, 하면서 이해하려고, 또 핑계를 찾으려고...하는 자세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이 하나님께 말하기를,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나에게 실과를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럴 듯합니다.
사울왕은 하나님께서 전부 몰살시키라고 명령하신 아말렉 족속의 소와 양과 기타보물들을 챙겨둔 다음에,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려는 좋은 의도에서 그리하였습니다.”고 항변했습니다.
솔로몬도 그럴듯한 할리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 그는 여전히 성전에서 엄청난 제물로 제사를 드림으로 스스로 의로운 자
라는 자부심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 수많은 처첩을 거느리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축복이니 감사함으로 받
아 누려야 한다고 스스로 합리화 했을 것입니다.
- 이방신들을 위해서 수많은 산당들을 지어 놓고 분향하며 섬기게 허락하면
서 이스라엘이 세계적인 나라로 국제화를 이룬다고 스스로 만족했을 것입
니다.
자기 자신과 그 감정과 타협함으로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결과로 나타는 것입니다.
성전을 지은 솔로몬이 이방신들을 위하여 산당을 지었다.(7-8)는 이 사실은 희대의 코메디요, Irony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족 후비들(첩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했다니 산당이 과연 최소한 수십 수백 개나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던 손으로 하나님을 멸시하는 짓을 하다니, 이 무슨 망발이란 말입니까?
결국 솔로몬은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
우리 인간들도 끼리도 서로 배신하기를 밥 먹듯 합니다.
그런 풍조 속에서 낳고 자란 우리들은 배신이 그저 삶의 한 방법이며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요령인양 착각합니다. 그래서 우직스럽게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나 정도를 밟으며 인생길을 가는 사람이 도리어 요령 없는 사람이 아니면 어리석은 사람이나 바보 취급을 받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에게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것을 뜻합니다.
내 신앙 내가 지킨다가 아니라, 내 신앙 자체도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내 신앙도 지켜주셔서 결국은 의의 면류관으로 상을 주신다니 그것이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다 이루시고, 도와주시고, 그리고 상은 나에게 주신다. 이것이 은혜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II. 솔로몬의 문제는 회개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토록 지혜롭던 솔로몬이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을 좇게 한다고 홀랑 넘어가서 우상에게 분향하고 절하고....
어떻게 하면 이렇게 추하게 될 수 있을까?
그 마음입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 4:23)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잠언을 말한 사람이 막상 자신의 마음은 지키지 못하여 멸망의 길로 가고만 사실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의 자세, 주님을 향한 우리의 각도가 어떠한가를 깊이 살펴봐야하겠습니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11)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주의 의로운 규례를 지키기로 맹서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시 119:105-106)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 중심에 모시고 산 다윗은 비록 죄를 짓더라도 즉시 회개하고, 말씀으로 돌아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회복시키시고 새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삶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회개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그러했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러했습니다.
솔로몬의 문제는 철저히 회개하지도 않았으며, 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얻은 아브라함은 자기 가정에서 일어나는 불상사를 보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들 이스마엘을 첩 하갈과 함께 광야로 떠나 보냈습니다.
솔로몬은 회개하고 처첩들을 다 버리고, 자신이 세운 우상의 산당들을 다 헐어버리고 우상숭배를 금지했어야합니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뿐더러 아예 그렇게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때와 철을 따라서 엄청난 제사를 드림으로서 죄의식을 상쇄하려했을 것입니다.
솔로몬이 사랑한 것은, 처첩들, 자기 자신, 부귀영화, 권력, 자기 감정, ....
모두 자기의 것들입니다.
솔로몬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을 향한 솔로몬의 사랑은 변해버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이스라엘에게 권고하셨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4)
솔로몬은 철저히 실패했습니다.
하나님보다 자기목숨을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 22:37-38)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신 주님의 계명입니다.
네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나 자신의 목숨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이런 말씀을 남기시고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죽도록 사랑하면 우리는 죽어도 결국 주님의 부활에 참여할 것입니다. 아니면 솔로몬과 같이 영원히 실패한 인생으로 마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솔로몬을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한번 선택하신 당신의 백성을 끝까지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봅니다.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나의 종 다윗과 나의 뺀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13)
참혹하리만치 불순종한 솔로몬을 위한 실낱같은 희망이 남아있습니다.
당신의 백성을 끝내 버리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심히 부족하기만 한 우리들에게도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는 우리를 향한 그의 소망과 기대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며, 동시에 우리에게 희망입니다.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택함을 받은 주님의 백성들이기에 말입니다.
솔로몬이 진정사랑한 것은 자기 자신과 그 감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실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진정 사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신10: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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