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2012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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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신명기 4:1-9
성경적으로는 인류가 지구에 살아온 것이 약 6천정도 된다고 합니다. 진화론자들은 수만년 혹은 그 이상이 되었다고 주장하지요. 그동안 인류에게는 수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지난 300년 동안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우리가 스스로 경험한 바 지난 50년은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변혁의 시대이었다고 해고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문명의 변화가 가속적으로 현재진행형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요사이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휴대폰을 가지고 있고 또 smart phone을 가지고 국제적으로 카카오톡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원시인처럼 느껴지지만, 지금부터 불과 20여년전 제가 타주에서 목회를 할 때에는 휴대폰을 가진 목사님들이 거의 몇 안 되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또한 이제는 최신형 cell phone이 앞 다투어 개발되기 때문에 아무리 새로운 것이라도 불과 몇 달만 지나면 고물이 되어버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실로 정신차릴 여유도 없이 마구 달리는 시대가 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Alvin Toffler라는 사회비평가가 미래의 충격(Future Shock)이라는 유명한 책을 쓴 것이 1970년대입니다. 변화의 가속화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 정치적, 모든 삶의 영역에서 대책을 세우고 준비해야한다는 것이지요. 제가 처음 그 책을 대할 때가 80년대인데 그 때만해도 변화의 가속화가 오늘날처럼 이렇게 빠르고 전방위적일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현대인은 문명의 가속화와 이에 대처하는 일시성적인 삶의 반전으로 인한 전혀 예상치 못한 사회 변화와 변혁에 정신문화가 미처 따라가지 못함으로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우리가 사는 미국은 물론이고 한국, 중국, 일본 등 거의 온 지구상의 국가와 사회가 변화의 속도에 미처 따라가지 못함으로 발생하는 이상야릇한 일들이 도처에서 들어나고 있으며, 그러한 시시콜콜한 것까지도 우리는 living room 에 앉아서, 아니 이제는 smart phone을 가지고 다니면서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는, 그래서 더욱 어리둥절한 시대 상황 가운데 현대인은 마치 내동댕이쳐진 듯 보이기도 합니다.
금년이 제가 고등학교 졸업한지 꼭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금년 10월 11일(목)에 서울에서 50주년 동창회를 한다는 이 메일을 몇주전에 받았습니다. 1962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18세청년이었는데, 어언 70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네요. 지난 50년 동안 저에게도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결코 예기치 못했던 변화와 변혁들로부터 오는 충격을 받으며 이에 적응하느라 전전긍긍하며 여기까지 이르렀네요.
자, 이제 눈을 돌려 본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애굽의 노예생활, 광야생활 약 40년,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오기 까지, 불과 40여년 만에 일어난 수많은 변화와 극적인 상황 반전에 이들이 어떻게 대쳐해 왔으며 앞으로 또 어떻게 대쳐해야하는가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내용입니다. 특히 약속의 땅 가나안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할까하는 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안인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원리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적용됩니다.
떠돌이 생활 40년을 지나서 앞으로 정착하게 될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전혀 다른 환경입니다. 바야흐로 이스라엘은 갑자기 전혀 예상치 못할 새로운 환경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그들에게는 충격적인 일일 것입니다. 전혀 다른 생활방식과 환경적 도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히 “미래의 충격”에 대해서 경고하시며 대비시키시는 하나님의 작전명령은 무엇일까?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날부터 이스라엘은 더 이상 정처가 없는 삶이 아니라 정착해야합니다. 광야에서 시시 때때로 옮겨 다닐 때는 언제나 임시적인 테트(장막) 생활이었는데 이제 그 삶이 끝났으므로 그들은 더 이상 떠돌이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제는 한 곳에 머물면서 하나님께 대하여, 그 땅에 대하여 책임감을 가지고 계속적으로 삶을 꾸려가야 합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는 이미 다른 족속들이 오랫동안 살고 있으며 동시에 거기에는 많은 이방신과 그 우상들과 전혀 다른 문화와 문명 속으로 들어가서 이 모두를 척결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새로운 문물의 도전, 영적도전, 삶의 도전, 전쟁의 도전 등등 ... 이 모든 것에 적응해 나가야 하는 것이 이제 막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곧 다가올 미래의 충격(future shock)이 아닐는지요.
이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 이스라엘아 .....
이스라엘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을 향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 너희에게 약속의 땅을 줄 것이다.
- 너희에게 규례와 법도 즉 말씀을 주니 그대로 지켜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계를 생각할 때는 제일먼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는 전제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신 4:7)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오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신 4:2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많은 인간들 중에서 특별히 부르셨고, 애굽에서 끌어내셨고, 광야 40년의 고난을 주셨고, 이제도 그 약속대로 가나안 땅으로 인도고 계십니다. 그리고 “내 말을 지켜 행하라.” 고 간곡히 당부하시는 하나님의 역설적인 사랑의 표현을 이해해야 합니다.
- 이스라엘아 내말을 듣고 준행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4:1)
- 바알브올을 좇은 모든 사람을 너희 하나님여호와께서 너의 중에서 소멸하 셨으되...(4:3)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좇느냐? 아니면 바알브올을 좇느냐?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곧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matter of life and death)인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의 아들들과 손자들에게 역시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아“하고 부르시는 말씀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아“라고 들어야합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민이었듯이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선민이기에 말입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이아브라함아", "박천민아", ... 부르시는 사랑의 음성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 때나 지금이나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사는 것은 좋고 나쁘고의 문제, 유익하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야말로 우리가 영원히 죽느냐, 사는 문제이고 우리 아들들과 손자들과 우리 후손들에게까지 미치는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안 믿는 것보다 좋고, 또 주일마다 좋은 말씀 듣고,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착한 일을 하고, .... 우리 하나님을 믿는 것은 이런 정도가 아니라. 영원히 죽느냐, 사느냐?의 중차대한 문제임을 명심해야합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우리 삶을 더 풍요롭고 다양성 있게 보태주는 accessary가 아니라 진정 죽고, 사는 결정적 요소라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바알.브올을 좇은 모든 사람을 다 멸하셨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바알브올은 무엇입니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법에서 떠나게 유혹하는 모든 것들, 우리 눈에 좋아 보이는 것들; 돈을 사랑하는 것, 육신적인 쾌락, 세상의 풍조, 마약, 도박, 영적인 타협, 형식적인 종교생활, 등등... 하나님을 떠나서 사는 모든 세상의 삶이 곧 바알브올을 좇는 것이다. 한마디로 해서 “나는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
누가 이러한 반역을 시작했는가? 그렇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 풍요롭고 아름다운 에덴동산, 하나님의 임재를 마음껏 누리며 영원한 행복을 구가할 수 있는 낙원에서 아담은 하나님께 도전했습니다. “그렇게 살면 멸한다.“ 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인격적으로 분부하시고 명령하시는 그 심정을 생각해 보면 그들이 하나님께 붙어 떠나지 않기를 바라시는(신 4:4)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1 -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
4:2 -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 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4:4 -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
르쳤나니....
4:8 -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요 3:16)
오늘날 이 광야와 같은 시대를 사는 우리들, 알 수 없는 미래의 충격이 기다리고 있는 복잡한 삶 가운데 있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대 전제입니다. 사랑이 메마르고, 가정이 파괴되고, 모든 관계가 피상적(superfucia)인고로 늘 원인을 알 수 없는 분노와 stress에 싸인 현대인의 삶의 와중에서 가장 이기적인듯 하나 한편으로 자기 자신도 사랑하기가 힘든 그런 이율배반적인 삶의 연속에서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심히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당신의 독생자를 내어 주셨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 가운데 시간, 장소, 지위에 상관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그 약속의 말씀을 중심으로 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궁극적으로 승리하였습니다. 대표적으로 창세기의 요셉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기에 매우 좋은 환경에 있으면서도 자기중심적인 삶으로 인하여 마치 바알브올을 좇다가 멸망한 자들처럼 스스로 멸망을 자초한 자들이 있습니다. 아담, 솔로몬, 사울이 그렇습니다.
나름대로, 자기중심대로 살기 시작하자마자 멸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당신의 말씀과 그 역사하심에 대해서 간곡히 당부하셨습니다.
-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신 4:2)
-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신 4:8)
-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신 4:9)
2.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사람은 마음에 무엇이 있는가에 따라서 행동이 나오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지키는 것은 곧 그 인생을 좌우하는 잣대가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그 일들"에 대해서 권면하십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한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경험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애굽으로부터의 해방, 호렙산에서 말씀을 주심, 광야 40년동안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 무엇보다도 말씀대로 순종하면 살고, 말씀을 거역하면 멸망한다는 절대적인 영적원리를 언제나 마음에 두고 근신하는 삶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내 마음을 힘써 지킬 수 있을까?
첫째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신 4:7) 하나님과 간격없는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가장 귀한 특권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로 당신에게 가까이 나아가기를 기대하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기도는 말씀에 근거해야합니다. 아니면 자기 나름대로 중언부언하게 마련입니다.
둘째 말씀(규례와 법도)에 착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그러하셨듯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신 것이 당신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힘써 지키기 위해서는 가감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정진해야합니다. 매일의 큐티, 주일학교 공부, 성경훈련, 성경읽기..... 그러나 이 또한 기도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으면 역시 나름대로 필요한 구절들만 빼어 이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의거한 기도, 기도로 인도하심을 받는 말씀의 은혜와 같이 기도와 말씀은 함께 이루어져야합니다.
셋째 성도의 모임(회중)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날 때에 그 회중에서 이탈하는 자는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중심이 되신 모임 가운데 있는 것은 곧 생명의 나눔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성도의 모임 가운데서 우리 서로에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확인하고 생명의 은혜를 나누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공간의 법칙으로 볼 때 우리가 성도의 모임 가운데 있지 많으면 반드시 다른 공간, 비 신앙적 환경에 던져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예배모임, 장막모임, 기도모임, 성경훈련모임, 친교모임 등등 성도의 모임에 최우선권을 두고 일정을 계획하며 언제나 거기에서 서로 만나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앞으로 닥쳐올 수많은 미래의 도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훈련의 장이며 축복의 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기에 말입니다.
기도, 말씀, 모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의 살길입니다.
-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 예수님만이 해답이십니다.
성경적으로는 인류가 지구에 살아온 것이 약 6천정도 된다고 합니다. 진화론자들은 수만년 혹은 그 이상이 되었다고 주장하지요. 그동안 인류에게는 수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지난 300년 동안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우리가 스스로 경험한 바 지난 50년은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변혁의 시대이었다고 해고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문명의 변화가 가속적으로 현재진행형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요사이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휴대폰을 가지고 있고 또 smart phone을 가지고 국제적으로 카카오톡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원시인처럼 느껴지지만, 지금부터 불과 20여년전 제가 타주에서 목회를 할 때에는 휴대폰을 가진 목사님들이 거의 몇 안 되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또한 이제는 최신형 cell phone이 앞 다투어 개발되기 때문에 아무리 새로운 것이라도 불과 몇 달만 지나면 고물이 되어버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실로 정신차릴 여유도 없이 마구 달리는 시대가 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Alvin Toffler라는 사회비평가가 미래의 충격(Future Shock)이라는 유명한 책을 쓴 것이 1970년대입니다. 변화의 가속화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 정치적, 모든 삶의 영역에서 대책을 세우고 준비해야한다는 것이지요. 제가 처음 그 책을 대할 때가 80년대인데 그 때만해도 변화의 가속화가 오늘날처럼 이렇게 빠르고 전방위적일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현대인은 문명의 가속화와 이에 대처하는 일시성적인 삶의 반전으로 인한 전혀 예상치 못한 사회 변화와 변혁에 정신문화가 미처 따라가지 못함으로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우리가 사는 미국은 물론이고 한국, 중국, 일본 등 거의 온 지구상의 국가와 사회가 변화의 속도에 미처 따라가지 못함으로 발생하는 이상야릇한 일들이 도처에서 들어나고 있으며, 그러한 시시콜콜한 것까지도 우리는 living room 에 앉아서, 아니 이제는 smart phone을 가지고 다니면서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는, 그래서 더욱 어리둥절한 시대 상황 가운데 현대인은 마치 내동댕이쳐진 듯 보이기도 합니다.
금년이 제가 고등학교 졸업한지 꼭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금년 10월 11일(목)에 서울에서 50주년 동창회를 한다는 이 메일을 몇주전에 받았습니다. 1962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18세청년이었는데, 어언 70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네요. 지난 50년 동안 저에게도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결코 예기치 못했던 변화와 변혁들로부터 오는 충격을 받으며 이에 적응하느라 전전긍긍하며 여기까지 이르렀네요.
자, 이제 눈을 돌려 본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애굽의 노예생활, 광야생활 약 40년,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오기 까지, 불과 40여년 만에 일어난 수많은 변화와 극적인 상황 반전에 이들이 어떻게 대쳐해 왔으며 앞으로 또 어떻게 대쳐해야하는가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내용입니다. 특히 약속의 땅 가나안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할까하는 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안인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원리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적용됩니다.
떠돌이 생활 40년을 지나서 앞으로 정착하게 될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전혀 다른 환경입니다. 바야흐로 이스라엘은 갑자기 전혀 예상치 못할 새로운 환경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그들에게는 충격적인 일일 것입니다. 전혀 다른 생활방식과 환경적 도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히 “미래의 충격”에 대해서 경고하시며 대비시키시는 하나님의 작전명령은 무엇일까?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날부터 이스라엘은 더 이상 정처가 없는 삶이 아니라 정착해야합니다. 광야에서 시시 때때로 옮겨 다닐 때는 언제나 임시적인 테트(장막) 생활이었는데 이제 그 삶이 끝났으므로 그들은 더 이상 떠돌이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제는 한 곳에 머물면서 하나님께 대하여, 그 땅에 대하여 책임감을 가지고 계속적으로 삶을 꾸려가야 합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는 이미 다른 족속들이 오랫동안 살고 있으며 동시에 거기에는 많은 이방신과 그 우상들과 전혀 다른 문화와 문명 속으로 들어가서 이 모두를 척결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새로운 문물의 도전, 영적도전, 삶의 도전, 전쟁의 도전 등등 ... 이 모든 것에 적응해 나가야 하는 것이 이제 막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곧 다가올 미래의 충격(future shock)이 아닐는지요.
이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 이스라엘아 .....
이스라엘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을 향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 너희에게 약속의 땅을 줄 것이다.
- 너희에게 규례와 법도 즉 말씀을 주니 그대로 지켜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계를 생각할 때는 제일먼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는 전제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신 4:7)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오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신 4:2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많은 인간들 중에서 특별히 부르셨고, 애굽에서 끌어내셨고, 광야 40년의 고난을 주셨고, 이제도 그 약속대로 가나안 땅으로 인도고 계십니다. 그리고 “내 말을 지켜 행하라.” 고 간곡히 당부하시는 하나님의 역설적인 사랑의 표현을 이해해야 합니다.
- 이스라엘아 내말을 듣고 준행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4:1)
- 바알브올을 좇은 모든 사람을 너희 하나님여호와께서 너의 중에서 소멸하 셨으되...(4:3)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좇느냐? 아니면 바알브올을 좇느냐?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곧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matter of life and death)인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의 아들들과 손자들에게 역시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아“하고 부르시는 말씀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아“라고 들어야합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민이었듯이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선민이기에 말입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이아브라함아", "박천민아", ... 부르시는 사랑의 음성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 때나 지금이나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사는 것은 좋고 나쁘고의 문제, 유익하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야말로 우리가 영원히 죽느냐, 사는 문제이고 우리 아들들과 손자들과 우리 후손들에게까지 미치는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안 믿는 것보다 좋고, 또 주일마다 좋은 말씀 듣고,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착한 일을 하고, .... 우리 하나님을 믿는 것은 이런 정도가 아니라. 영원히 죽느냐, 사느냐?의 중차대한 문제임을 명심해야합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우리 삶을 더 풍요롭고 다양성 있게 보태주는 accessary가 아니라 진정 죽고, 사는 결정적 요소라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바알.브올을 좇은 모든 사람을 다 멸하셨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바알브올은 무엇입니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법에서 떠나게 유혹하는 모든 것들, 우리 눈에 좋아 보이는 것들; 돈을 사랑하는 것, 육신적인 쾌락, 세상의 풍조, 마약, 도박, 영적인 타협, 형식적인 종교생활, 등등... 하나님을 떠나서 사는 모든 세상의 삶이 곧 바알브올을 좇는 것이다. 한마디로 해서 “나는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
누가 이러한 반역을 시작했는가? 그렇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 풍요롭고 아름다운 에덴동산, 하나님의 임재를 마음껏 누리며 영원한 행복을 구가할 수 있는 낙원에서 아담은 하나님께 도전했습니다. “그렇게 살면 멸한다.“ 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인격적으로 분부하시고 명령하시는 그 심정을 생각해 보면 그들이 하나님께 붙어 떠나지 않기를 바라시는(신 4:4)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1 -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
4:2 -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 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4:4 -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
르쳤나니....
4:8 -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요 3:16)
오늘날 이 광야와 같은 시대를 사는 우리들, 알 수 없는 미래의 충격이 기다리고 있는 복잡한 삶 가운데 있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대 전제입니다. 사랑이 메마르고, 가정이 파괴되고, 모든 관계가 피상적(superfucia)인고로 늘 원인을 알 수 없는 분노와 stress에 싸인 현대인의 삶의 와중에서 가장 이기적인듯 하나 한편으로 자기 자신도 사랑하기가 힘든 그런 이율배반적인 삶의 연속에서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심히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당신의 독생자를 내어 주셨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 가운데 시간, 장소, 지위에 상관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그 약속의 말씀을 중심으로 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궁극적으로 승리하였습니다. 대표적으로 창세기의 요셉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기에 매우 좋은 환경에 있으면서도 자기중심적인 삶으로 인하여 마치 바알브올을 좇다가 멸망한 자들처럼 스스로 멸망을 자초한 자들이 있습니다. 아담, 솔로몬, 사울이 그렇습니다.
나름대로, 자기중심대로 살기 시작하자마자 멸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당신의 말씀과 그 역사하심에 대해서 간곡히 당부하셨습니다.
-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신 4:2)
-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신 4:8)
-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신 4:9)
2.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사람은 마음에 무엇이 있는가에 따라서 행동이 나오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지키는 것은 곧 그 인생을 좌우하는 잣대가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그 일들"에 대해서 권면하십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한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경험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애굽으로부터의 해방, 호렙산에서 말씀을 주심, 광야 40년동안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 무엇보다도 말씀대로 순종하면 살고, 말씀을 거역하면 멸망한다는 절대적인 영적원리를 언제나 마음에 두고 근신하는 삶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내 마음을 힘써 지킬 수 있을까?
첫째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신 4:7) 하나님과 간격없는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가장 귀한 특권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로 당신에게 가까이 나아가기를 기대하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기도는 말씀에 근거해야합니다. 아니면 자기 나름대로 중언부언하게 마련입니다.
둘째 말씀(규례와 법도)에 착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그러하셨듯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신 것이 당신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힘써 지키기 위해서는 가감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정진해야합니다. 매일의 큐티, 주일학교 공부, 성경훈련, 성경읽기..... 그러나 이 또한 기도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으면 역시 나름대로 필요한 구절들만 빼어 이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의거한 기도, 기도로 인도하심을 받는 말씀의 은혜와 같이 기도와 말씀은 함께 이루어져야합니다.
셋째 성도의 모임(회중)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날 때에 그 회중에서 이탈하는 자는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중심이 되신 모임 가운데 있는 것은 곧 생명의 나눔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성도의 모임 가운데서 우리 서로에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확인하고 생명의 은혜를 나누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공간의 법칙으로 볼 때 우리가 성도의 모임 가운데 있지 많으면 반드시 다른 공간, 비 신앙적 환경에 던져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예배모임, 장막모임, 기도모임, 성경훈련모임, 친교모임 등등 성도의 모임에 최우선권을 두고 일정을 계획하며 언제나 거기에서 서로 만나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앞으로 닥쳐올 수많은 미래의 도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훈련의 장이며 축복의 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기에 말입니다.
기도, 말씀, 모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의 살길입니다.
-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 예수님만이 해답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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