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2010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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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마태복음 7:13-29
지난 주간에 법정이란 승려(중)가 세상을 떠났다는 보도가 있었지요. 그런데 그의 죽음보다 더 떠들썩한 이야기는 그가 생전 “무소유”로 살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빈손으로 살았다는 것이지요. 그 사람 자신의 말을 빌리면 “무 소유란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필요 없는 것을 가지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비교적 청렴한 삶을 살다가 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가 한말은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않되는 것 같기도 하고.... 좀 아리송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가 하면 작년에는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이 죽었는데, 그의 죽음과 더불어 많은 사람이 감동하는 것은 그가 일생동안 집 한 채도 소유하지도 않고, 자기 명의의 통장하나도 갖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이분들은 특별한 삶을 살다가 간 것처럼 보이고 또 어떤 면에서는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삶의 열매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사람들은 부양할 가족도 없는 독신들입니다. 자기들이 믿는 신앙을 출발할 때 속세와의 인연을 끊은 사람들이니만큼 그렇게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사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밥 먹여 주고, 재워주고, 입혀주고, 필요하면 돈도 주고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는 사람들인데 그들이 무엇인가를 소유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지요? 다시 말하면 무소유가 너무나 당연한데, 무슨 큰일이나 한 것처럼 칭송을 하는 세태를 보면서 이 세상의 판단이라는 것이 매우 편파적이고 감정적이라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이런 것이 무에 그리 대단하다고 매스컴이 떠드는지 조금 한심한 생각이 들기 까지 하였습니다.
이상에 언급한 사람들은 절대진리도 아닌 다만 인본주의 적인 자신의 신념을 따라서 고행을 하거나 무엇인가 투자를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비하여 절대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과연 어떤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별 문제의식 없이 너무나 편한 길을 제멋대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니지요?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몇 가지 내용을 비교하여 말씀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하는 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 첫째가 좁은 문과 넓은 문,
- 둘째는 좋은 열매 맺는 나무와 나쁜 열매 맺는 나무,
- 셋째는 말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
- 넷째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와 모래위에 짓는 자의 이야기입니다.
이 네 가지 비교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언뜻 보기에 이것이나 저것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 좁은 문이나 넓은 문이나 문으로 들어가기는 마찬가지이지요.
- 열매를 맺기까지는 그 나무가 무엇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가시나무와 포도나무는 잘 구분이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무화과 나
무와 엉겅퀴역시 열매를 맺기 까지는 거의 비슷한 모양이라고 합니다.
- 주여, 주여 하는 자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잘 구분이 안 됩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있듯이 도리어 가짜가 더 진짜같이 보일 수
도 있습니다.
-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와 모래위에 잊을 지은 자 또한 홍수가 나기까지
는 그 차이를 잘 알 수 없다는 것이지요.
요사이 짝퉁이란 것이 많이 돌아다닌다고 하는데, 이는 명품을 감쪽같이 닮은 가짜라는 것입니다. 전문가 외에는 우리의 눈에는 전혀 식별이 되지 않는 다지요. 그런데 여자용 명품가방의 진위를 구별하는 방법이 있답니다. 즉 비가 올 때 자기 머리가 젖지 않으려고 가방을 머리 위에 가리면 가짜이고, 가방을 비맞지 않께 자기 품속에 넣으면 진짜라는 것입니다.
우리 영적 삶에 있어서도 평소에는 가짜와 진짜의 구별이 결코 쉽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 시간이 지나봐야 안다.
- 결과를 보고 알 수 있다.
- 위기에 대처하는 것을 보고 알 수 있다.
오늘 주로 나누고자 하는 말씀은 좁은 문과 넓은 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거기가 곧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인데 그 가는 길이 협착하여 찾는 사람이 적다고 하셨습니다.
넓은 문으로 가는 길을 넓고 편해(easy)보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갑니다.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의 법을 따라서 사는 세상 사람들의 삶입니다.
그러나 좁은 문으로 가는 길은 생명길인데 그 가는 길이 협착(hard)하여 가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모본을 따라가는 그리스도인의 길을 이와 같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좁은 문을 향해 가는가? 아닌가를 알 수 있는 것은 어느 길로 가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지요. 험한 길입니다. 고난과 핍박이 따르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생명으로 인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좁은 문은 무엇이며 넓은 문은 무엇일까?
- 좁은 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고,
- 넓은 문은 세상 사람들이 나름대로 사는 삶을 뜻합니다. .
어느 문으로 들어가느냐? 하는 것은 곧 그 가는 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길을 잘 못 들어서면 엉뚱한 곳으로 가고, 문을 잘못 들어가면 또 전혀 딴 곳에 가서 헤메이게 마련입니다. 예수님께서 들어가라고 하시는 문, 따라가라고 하시는 길로 가야합니다. 아니면 멸망입니다.
내가 지금 어느 길에 있는가를 보면 그 끝에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이 있는지 아니면 멸망으로 향하는 넓은 문이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지금 어느 길에 들어서 있는가?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삶과 그 결과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노아의 삶을 보십시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다 가는 길을 버리고 홀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고독한 신앙의 투쟁을 하였습니다. 방주를 만드는 일은 실로 그 인생을 거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철저하게 순종했습니다.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따랐습니다. 그 결과 그는 당시 모든 세상 사람들이 비참하게 멸망할 때 홀로 구원 받았습니다. 그는 좁고 협착한 길로 갔습니다. 그 길은 생명 길이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삶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방랑자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살았지만 그들의 삶과 전혀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좁고 협착한 길로 간 사람들입니다.
광야를 가는 이스라엘은 어떻습니까?
광야 길에는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아니 순간순간마다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이 문제가 되는 험한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그 가신 길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이 죄악의 땅에 죄인의 모습으로 오셔서 좁은 길로 가셨습니다.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혼자 가셨습니다. 결국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그러기 위해서는 길이 험한 곳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어느 길입니까? 곧 누가복음 9:32에서 말씀하신 십자가의 길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좁은 문입니다. 십자가 밑으로 난 길을 따라가야만 도달할 수 있는 문 말입니다.
지난 주간에 우연찮게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를 tv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인즉 이 세상에 왜 많은 사람들이 목사가 되려고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 이었습니다. 한국에도 신학교가 넘쳐나고 신학생과 목사가 봇물을 이루고, 미국 신학교는 한국 학생이 아니면 유지가 안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는가?
우리나라 기독교 신앙초기에는 목사님들이 고생, 고난, 핍박이 너무나 견디기 힘들어서 굶기를 밥 먹 듯 매를 맞고 쫓겨나고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는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목회자 되기를 꺼려했는데, 지금은 왜 이런가?
저간의 목회자들이 너무 fancy하게, 호화롭고, easy하게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하고 스스로 반성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로마가 멸망하기 직전에 로마의 많은 청년들이 수도원으로 들어가서 사제가 되었답니다. 티벳이 망하기 전에 많은 티벳의 청년들이 중이 되었답니다. 쉽고 편해서입니다.
그들은 모두 넓은 길로 갔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11-12)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환난과 핍박을 받는 삶은 스스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삶이요, 하늘에서 상받는 길이요, 진짜를 걸러내는 훈련입니다.
동유럽이 공산치하에 있을 때 어느 지하교회에 비밀경찰이 들이닥쳐 총을 들이대고 말했답니다.
“너희들 중에 예수를 진짜로 믿지 않는 사람들은 다 나가도 좋다.” 하자,
여러 사람이 우루루 나갔답니다. 결국 몇 사람만 남아서 체포될 각오를 하고 비밀경찰에게 “우리를 잡아가시오. 우리는 그리스도인 입니다.“고 했더니, 그 비밀경찰들이 말하기를 “우리도 그리스도인이입니다. 가짜를 속아내려고 연극을 했습니다.” 고 했다지요.
예수님을 위해서 당하는 환난과 핍박과 고난은 우리의 신앙이 진짜인가 아닌가를 판별하는 잣대가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넓고 편한 길은 많은 사람들이 가지만 좁고 협착한 길은 가는 사람이 적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신앙생활을 쉽게, 쉽게 자기 편한 대로 하는 넓은 문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안이한 자세를 버리고 성경말씀대로 순종하는 십자가의 삶즉 좁은 문이 있습니다. 나와 여러분은 지금 이 시점에 어느 문으로 들어가고 있습니까? 우리 21세기 교회는 어떻습니까?
그렇다면,
좁은 문을 향하여 좁고 험한 길을 가는 것은 고생스러운 일이 아닐까?
결코 아닙니다. 그 길은 사실 가기가 더욱 쉬운 길입니다. 다만 악한 영이 우리를 겁주고 유혹하기 위해서 어렵고, 힘들고, 손해보고, 불가능하게 보이게 할 뿐입니다.
믿음으로 가면 십자가의 길은 사실 더욱 쉬운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가나안 땅으로 간 여호수아와 갈렙의 삶과 같이 말입니다.
1. 좁은 문으로 가는 길은 예수님께서 이미 닦아 놓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순종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우리는 다만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이 길이야말로 탄탄대로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장하시는 생명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넓은 길은 언뜻 보기에 쉽고 좋은 것 같지만 거기에는 보장이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 헤쳐가야 합니다. 그래서 실은 넓은 길은 가면 갈수록 더욱 힘들어지고 더욱 어렵습니다.
2. 좁은 문으로 가는 길은 예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쉽습니다.
시편 23편의 다윗의 고백을 보십시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그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은 성령님을 우리 가운데 보내셨던 것입니다.
나는 지금 좁은 문을 향하여 좁은 길로 가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 사람들이 가는 넓은 길로 가고 있는가?
지난 주간에 법정이란 승려(중)가 세상을 떠났다는 보도가 있었지요. 그런데 그의 죽음보다 더 떠들썩한 이야기는 그가 생전 “무소유”로 살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빈손으로 살았다는 것이지요. 그 사람 자신의 말을 빌리면 “무 소유란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필요 없는 것을 가지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비교적 청렴한 삶을 살다가 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가 한말은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않되는 것 같기도 하고.... 좀 아리송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가 하면 작년에는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이 죽었는데, 그의 죽음과 더불어 많은 사람이 감동하는 것은 그가 일생동안 집 한 채도 소유하지도 않고, 자기 명의의 통장하나도 갖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이분들은 특별한 삶을 살다가 간 것처럼 보이고 또 어떤 면에서는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삶의 열매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사람들은 부양할 가족도 없는 독신들입니다. 자기들이 믿는 신앙을 출발할 때 속세와의 인연을 끊은 사람들이니만큼 그렇게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사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밥 먹여 주고, 재워주고, 입혀주고, 필요하면 돈도 주고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는 사람들인데 그들이 무엇인가를 소유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지요? 다시 말하면 무소유가 너무나 당연한데, 무슨 큰일이나 한 것처럼 칭송을 하는 세태를 보면서 이 세상의 판단이라는 것이 매우 편파적이고 감정적이라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이런 것이 무에 그리 대단하다고 매스컴이 떠드는지 조금 한심한 생각이 들기 까지 하였습니다.
이상에 언급한 사람들은 절대진리도 아닌 다만 인본주의 적인 자신의 신념을 따라서 고행을 하거나 무엇인가 투자를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비하여 절대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과연 어떤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별 문제의식 없이 너무나 편한 길을 제멋대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니지요?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몇 가지 내용을 비교하여 말씀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하는 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 첫째가 좁은 문과 넓은 문,
- 둘째는 좋은 열매 맺는 나무와 나쁜 열매 맺는 나무,
- 셋째는 말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
- 넷째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와 모래위에 짓는 자의 이야기입니다.
이 네 가지 비교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언뜻 보기에 이것이나 저것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 좁은 문이나 넓은 문이나 문으로 들어가기는 마찬가지이지요.
- 열매를 맺기까지는 그 나무가 무엇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가시나무와 포도나무는 잘 구분이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무화과 나
무와 엉겅퀴역시 열매를 맺기 까지는 거의 비슷한 모양이라고 합니다.
- 주여, 주여 하는 자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잘 구분이 안 됩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있듯이 도리어 가짜가 더 진짜같이 보일 수
도 있습니다.
-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와 모래위에 잊을 지은 자 또한 홍수가 나기까지
는 그 차이를 잘 알 수 없다는 것이지요.
요사이 짝퉁이란 것이 많이 돌아다닌다고 하는데, 이는 명품을 감쪽같이 닮은 가짜라는 것입니다. 전문가 외에는 우리의 눈에는 전혀 식별이 되지 않는 다지요. 그런데 여자용 명품가방의 진위를 구별하는 방법이 있답니다. 즉 비가 올 때 자기 머리가 젖지 않으려고 가방을 머리 위에 가리면 가짜이고, 가방을 비맞지 않께 자기 품속에 넣으면 진짜라는 것입니다.
우리 영적 삶에 있어서도 평소에는 가짜와 진짜의 구별이 결코 쉽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 시간이 지나봐야 안다.
- 결과를 보고 알 수 있다.
- 위기에 대처하는 것을 보고 알 수 있다.
오늘 주로 나누고자 하는 말씀은 좁은 문과 넓은 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거기가 곧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인데 그 가는 길이 협착하여 찾는 사람이 적다고 하셨습니다.
넓은 문으로 가는 길을 넓고 편해(easy)보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갑니다.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의 법을 따라서 사는 세상 사람들의 삶입니다.
그러나 좁은 문으로 가는 길은 생명길인데 그 가는 길이 협착(hard)하여 가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모본을 따라가는 그리스도인의 길을 이와 같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좁은 문을 향해 가는가? 아닌가를 알 수 있는 것은 어느 길로 가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지요. 험한 길입니다. 고난과 핍박이 따르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생명으로 인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좁은 문은 무엇이며 넓은 문은 무엇일까?
- 좁은 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고,
- 넓은 문은 세상 사람들이 나름대로 사는 삶을 뜻합니다. .
어느 문으로 들어가느냐? 하는 것은 곧 그 가는 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길을 잘 못 들어서면 엉뚱한 곳으로 가고, 문을 잘못 들어가면 또 전혀 딴 곳에 가서 헤메이게 마련입니다. 예수님께서 들어가라고 하시는 문, 따라가라고 하시는 길로 가야합니다. 아니면 멸망입니다.
내가 지금 어느 길에 있는가를 보면 그 끝에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이 있는지 아니면 멸망으로 향하는 넓은 문이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지금 어느 길에 들어서 있는가?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삶과 그 결과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노아의 삶을 보십시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다 가는 길을 버리고 홀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고독한 신앙의 투쟁을 하였습니다. 방주를 만드는 일은 실로 그 인생을 거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철저하게 순종했습니다.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따랐습니다. 그 결과 그는 당시 모든 세상 사람들이 비참하게 멸망할 때 홀로 구원 받았습니다. 그는 좁고 협착한 길로 갔습니다. 그 길은 생명 길이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삶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방랑자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살았지만 그들의 삶과 전혀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좁고 협착한 길로 간 사람들입니다.
광야를 가는 이스라엘은 어떻습니까?
광야 길에는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아니 순간순간마다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이 문제가 되는 험한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그 가신 길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이 죄악의 땅에 죄인의 모습으로 오셔서 좁은 길로 가셨습니다.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혼자 가셨습니다. 결국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그러기 위해서는 길이 험한 곳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어느 길입니까? 곧 누가복음 9:32에서 말씀하신 십자가의 길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좁은 문입니다. 십자가 밑으로 난 길을 따라가야만 도달할 수 있는 문 말입니다.
지난 주간에 우연찮게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를 tv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인즉 이 세상에 왜 많은 사람들이 목사가 되려고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 이었습니다. 한국에도 신학교가 넘쳐나고 신학생과 목사가 봇물을 이루고, 미국 신학교는 한국 학생이 아니면 유지가 안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는가?
우리나라 기독교 신앙초기에는 목사님들이 고생, 고난, 핍박이 너무나 견디기 힘들어서 굶기를 밥 먹 듯 매를 맞고 쫓겨나고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는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목회자 되기를 꺼려했는데, 지금은 왜 이런가?
저간의 목회자들이 너무 fancy하게, 호화롭고, easy하게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하고 스스로 반성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로마가 멸망하기 직전에 로마의 많은 청년들이 수도원으로 들어가서 사제가 되었답니다. 티벳이 망하기 전에 많은 티벳의 청년들이 중이 되었답니다. 쉽고 편해서입니다.
그들은 모두 넓은 길로 갔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11-12)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환난과 핍박을 받는 삶은 스스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삶이요, 하늘에서 상받는 길이요, 진짜를 걸러내는 훈련입니다.
동유럽이 공산치하에 있을 때 어느 지하교회에 비밀경찰이 들이닥쳐 총을 들이대고 말했답니다.
“너희들 중에 예수를 진짜로 믿지 않는 사람들은 다 나가도 좋다.” 하자,
여러 사람이 우루루 나갔답니다. 결국 몇 사람만 남아서 체포될 각오를 하고 비밀경찰에게 “우리를 잡아가시오. 우리는 그리스도인 입니다.“고 했더니, 그 비밀경찰들이 말하기를 “우리도 그리스도인이입니다. 가짜를 속아내려고 연극을 했습니다.” 고 했다지요.
예수님을 위해서 당하는 환난과 핍박과 고난은 우리의 신앙이 진짜인가 아닌가를 판별하는 잣대가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넓고 편한 길은 많은 사람들이 가지만 좁고 협착한 길은 가는 사람이 적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신앙생활을 쉽게, 쉽게 자기 편한 대로 하는 넓은 문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안이한 자세를 버리고 성경말씀대로 순종하는 십자가의 삶즉 좁은 문이 있습니다. 나와 여러분은 지금 이 시점에 어느 문으로 들어가고 있습니까? 우리 21세기 교회는 어떻습니까?
그렇다면,
좁은 문을 향하여 좁고 험한 길을 가는 것은 고생스러운 일이 아닐까?
결코 아닙니다. 그 길은 사실 가기가 더욱 쉬운 길입니다. 다만 악한 영이 우리를 겁주고 유혹하기 위해서 어렵고, 힘들고, 손해보고, 불가능하게 보이게 할 뿐입니다.
믿음으로 가면 십자가의 길은 사실 더욱 쉬운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가나안 땅으로 간 여호수아와 갈렙의 삶과 같이 말입니다.
1. 좁은 문으로 가는 길은 예수님께서 이미 닦아 놓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순종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우리는 다만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이 길이야말로 탄탄대로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장하시는 생명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넓은 길은 언뜻 보기에 쉽고 좋은 것 같지만 거기에는 보장이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 헤쳐가야 합니다. 그래서 실은 넓은 길은 가면 갈수록 더욱 힘들어지고 더욱 어렵습니다.
2. 좁은 문으로 가는 길은 예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쉽습니다.
시편 23편의 다윗의 고백을 보십시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그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은 성령님을 우리 가운데 보내셨던 것입니다.
나는 지금 좁은 문을 향하여 좁은 길로 가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 사람들이 가는 넓은 길로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