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를 어지럽히는 사람들..(20091025)
페이지 정보
본문
말씀 : 사도행전17:1-11
제목: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
수백 년 전에 중국사람들이 한국을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그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예의가 땅에 떨어져버린 듯 보여서 너무나 안타갑습니다.
일본사람들을 남을 배려하는 민족이라고 합니다. 일본 현지에 가보면 실지로 그것을 느낍니다. 남이 보기에 더럽다고 할까봐 자기 앉았던 자리나 혹은 자기 집 앞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모습에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식당에서조차도 자기가 앉았던 자리를 깨끗이 정돈하는 모습으로 자녀들에게도 본을 보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개 주위의 눈을 의식하며 살게 마련이지요.
-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할까? 하여 말조심 하거나 말을 가려서 하곤 합니다.
- 혹은 나의 삶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할까? 행동을 삼가고..
- 내가 이런 차를 타고 다니면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에 힘겹게 고급 차를 구입하여 힘겹게 할부금을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 내가 이런 옷을 입으면, 이런 백을 들면,... 그래서 이런, 저런.... 값비싼 명품을 사게 됩니다.
남의 눈을 의식하며 사는 것은 어느 정도 긍정적인 면이 있기는 합니다만 남의 눈에만 너무나 집착하는 것은 또한 부정적인 결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세태는 남의 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채 안하무인격으로 자기를 주장하며 사는 것이 일상화된 듯 보이기도 하여 조금은 걱정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
지금부터 2,000년전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보고 세상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했는가? 그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 그리스도인의 삶을 점검해 보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당시 천하(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17:6)
- These men have caused trouble everywhere!
- Those that have turned the world upside down ..
- have set in confusion
당시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은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이상한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세상사람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믿음생활은 실로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천하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이라고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1.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되, 그 중심이 바로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에게 성경이란 오늘날 우리가 가진 성경과 달리 구약성경을 말합니다. 거기에는 율법이 있습니다. 이런 것은 하고, 저런 것은 하지 말고... 온통 do or do not같은 율법(법률)조항들만 있는 듯 보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이 성경을 가지고 율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는 그리스도다.“ 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 그는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
-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소망이 있다.
- 예수님이 없는 인생은 죽은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율법생활에 익숙해 있던 당시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혼돈스러운 것이었다. 가치관과 신앙생활의 내용을 완전히 뒤엎어버리는 혁명적인 것이었다.
이것을 전하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가 먼저 그 인생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뒤엎어졌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그러합니다. 율법적인 신앙을 인생의 목표로 알고 살던 그에게 그리스도를 만난경험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 인생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히 뒤 엎어져 버렸습니다.
이와 같이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가 그들의 삶의 중심이었던 것을 세상 사람들의 다음과 같은 객관적인 관점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이 보기에 그들은 그리스도로 생각하고, 그리스도로 살고, 그리스도로 죽는 사람들이며 그리스도가 아니면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 이상한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11:25-26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려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입만 열면 그리스도, 돈과 시간과 육체를 사용함에 있어서 그리스도, 그리스도...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저것들은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다.” 라고 비하하는 지칭이었다고 합니다.
주일성수, 온갖 축복, 만사형통, 등등 판에 박은 듯한 종교생활이 기승을 부리는 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예수는 이 세상의 그리스도시며, 그는 나의 인생의 주인이시다. 라는 새로운 가치관에 기초하여 세워진 그리스도중심의 믿음생활에 목숨을 건 당시의 사람들의 신앙의 내용은 큰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라는 가르침 때문입니다.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제국의 통치 아래 살면서 로마황제인 가이사가 그들의 주인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그게 아니고 그리스도가 주인이다. 라고 새로운 가치관을 세운 사람들이다.
지금도 이 시대에도 모든 사람들이 어찌하든지 대통령에게 가까이 줄을 대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것이 출세하는 길이요, 행복을 추구하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지요. 이와 같이 당시에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이사에게 줄을 대려고 총력을 기울였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가이사를 주인으로 모시고 그로부터 자기의 인생을 세워나가는 삶의 질서를 가지고 있었는데, 다시 말하면 그것이 딩시의 최고의 가치인데, 여기에 그런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즉 가이사를 중심으로 사는 그런 삶은 무의미하고 잠간 있다가 없어질 것이고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다. 그를 따르라고 강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당시로서 그것은 실로 목숨을 건 도전이며 새로운 가치체계의 선언이었던 것입니다.
로마서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이런 말씀을 선포하며 시대를 향하여 도전한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사람들에게 과연 어떤게 보였을까요?
- 그리스도인들
당시에도 돈과 권력이 중요했을터이지만, 그들에게는 돈, 권력, 보다도 이 세상이 주는 명예보다도 더 중요한 그리스도가 계셨습니다.
- 염병, 이단의 괴수
이들을 만나면 전염된다. 사람이 변한다.
이 모든 것을 통털어 보면 그들의 삶의 모습을 할 수 있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고통 받는 것이 기쁘고 감사했답니다. 그들은 고난을 받으면 받을 수록 만세를 불렀다지요.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이 하늘에서 상이 큼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삶의 가장 중심에 하늘나라 천국 하나님께서 계신 그곳을 염두에 두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가치관이었던 것이지요.
우리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지난 한 주간동안을 살면서 우리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을 몇 번이나 되 뇌이면서, 전하면서, 선포하면서 지냈나요? 과연 몇 번이나????
사람들이 요사이 그리스도인, 예수쟁이 하는 말은 다른 의미에서 비하하는 말로 들립니다. 한국에 가서 tv를 켜면 소위 기독교 방송, 불교방송, 천주교 방송이 바로 연이어 나옵니다. 불교방송과 천주교방송은 도리어 사회에 봉사하라 인류에게 덕을 끼치라고 말하는데 기독교 방송만은 대개 가정이 축복 받고 교회가 축복 받고, 이렇게 받고 저렇게 받고, 받고, 받고의 연속입니다. 내가 하필 그때에 tv를 켰기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그랬습니다.
무엇인가 가장 근본적인 핵심이 뻐져버린듯, 본말이 뒤바뀐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그 놀라운 뜻과 그의 최대관심사와는 어딘가 동떨어진 허전한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믿지 않는 영혼들이 뒤집어지고, 나아가서는 세상을 어지럽히는 능력의 역사를 주님은 우리들에게서 기대하실텐데 현재 우리의 관심사는 과연 어디에 있는지, 저 자신으로부터 돌아보지 않을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지난번 한국을 들렸을 때 저의 고등학교 동창생이자 50년 친구가 결국은 저를 따라서 교회에 나왔습니다. 뭔지도 모르고 멍하니 설교를 듣고 찬송을 듣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니 얼마나 불쌍하고 마음이 안됐던지.... 눈물이 마구 났습니다. 그래서 그 곳 교회식구들에게 “여러분 내 친구를 부탁합니다. 사랑하는 내 친구를 잘 돌봐주십시오.” 하고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이는 이미 65세를 넘겼구요. 심장에 두 개 세 개 spring과 ballon을 달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무슨 할 일도 소망도 없는 그런 사람이 제 친구 말고도 얼마나 많겠습니까? 여러분....
갈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최대관심사요 또 우리들의 최대의 사명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사함 받고 새 생명을 얻은 그리스도의 시람들이라면 말입니다.
로마황제가 서슬 퍼렇게 살아 통치하는 시대에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영원한 임금이시다"라고 시대를 거슬러 가는, 즉 딴 세상에 사는 것 같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그 반대자들 즉 마귀에게 비친 그리스도인의 또다른 모습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24: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지 유대인을 다 소동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몇 년 전에는 싸스라는 감기 때문에 그러더니, 요사이는 Swine flu 때문에 야단입니다.
위의 구절에서 염병이라는 것은 전염병을 뜻합니다. 곧 그리스도인의 영향력을 말합니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영향을 받아서 변화되고 삶이 달라진다는 말이지요. 그것이 유대인들 곧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에게 큰 문제로 대두되었다니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영향력이 과연 어떠했겠습니까?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과 그 일행이 로마, 고린도, 아덴, 베뢰아, 데살로니가, 빌립보로 전전합니다. 본문에도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서 데살로니가에 이르렀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유대인들의 핍박에 쫓겨서 정처 없는 모습으로 흘러 다니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실은 그러한 핍박이 곧 이들로 하여금 편안하게 안주할 틈이 없이 흘러 다니며 복음을 더욱 더 널리 전하게 하는 하나님의 역사이었던 것입니다.
-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나 다니면서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람들...
- 기존의 질서와 가치관을 뒤엎어버리는 사람들..
오늘날 우리들의 영향력은 어떻습니까?
- 사회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사회에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입니까?
- 여기 우리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인생이 뒤엎어진 사람들입니까?
- 그리고 우리들은 천하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입니까?
세상사람들은 우리들 21세기 교회를 향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주님은 우리들의 삶을 보시고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좋은 신앙생활의 환경을 좇아서 이리저리 찾아 헤메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나를 잘 알아주고 가려운데를 긁어주는데 따라서 일희일비하는 그런 어린애 같은 신앙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바로 배우고 바로 알아 그로 말미암아 새로운 가치관이 형성되면서 인생이 뒤집어지고 생명력을 얻고 또 말씀으로 훈련되어서 결국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그리스도인 다운 그리스도인이며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에 말입니다.
제목: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
수백 년 전에 중국사람들이 한국을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그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예의가 땅에 떨어져버린 듯 보여서 너무나 안타갑습니다.
일본사람들을 남을 배려하는 민족이라고 합니다. 일본 현지에 가보면 실지로 그것을 느낍니다. 남이 보기에 더럽다고 할까봐 자기 앉았던 자리나 혹은 자기 집 앞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모습에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식당에서조차도 자기가 앉았던 자리를 깨끗이 정돈하는 모습으로 자녀들에게도 본을 보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개 주위의 눈을 의식하며 살게 마련이지요.
-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할까? 하여 말조심 하거나 말을 가려서 하곤 합니다.
- 혹은 나의 삶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할까? 행동을 삼가고..
- 내가 이런 차를 타고 다니면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에 힘겹게 고급 차를 구입하여 힘겹게 할부금을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 내가 이런 옷을 입으면, 이런 백을 들면,... 그래서 이런, 저런.... 값비싼 명품을 사게 됩니다.
남의 눈을 의식하며 사는 것은 어느 정도 긍정적인 면이 있기는 합니다만 남의 눈에만 너무나 집착하는 것은 또한 부정적인 결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세태는 남의 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채 안하무인격으로 자기를 주장하며 사는 것이 일상화된 듯 보이기도 하여 조금은 걱정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
지금부터 2,000년전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보고 세상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했는가? 그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 그리스도인의 삶을 점검해 보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당시 천하(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17:6)
- These men have caused trouble everywhere!
- Those that have turned the world upside down ..
- have set in confusion
당시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은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이상한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세상사람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믿음생활은 실로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천하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이라고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1.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되, 그 중심이 바로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에게 성경이란 오늘날 우리가 가진 성경과 달리 구약성경을 말합니다. 거기에는 율법이 있습니다. 이런 것은 하고, 저런 것은 하지 말고... 온통 do or do not같은 율법(법률)조항들만 있는 듯 보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이 성경을 가지고 율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는 그리스도다.“ 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 그는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
-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소망이 있다.
- 예수님이 없는 인생은 죽은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율법생활에 익숙해 있던 당시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혼돈스러운 것이었다. 가치관과 신앙생활의 내용을 완전히 뒤엎어버리는 혁명적인 것이었다.
이것을 전하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가 먼저 그 인생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뒤엎어졌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그러합니다. 율법적인 신앙을 인생의 목표로 알고 살던 그에게 그리스도를 만난경험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 인생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히 뒤 엎어져 버렸습니다.
이와 같이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가 그들의 삶의 중심이었던 것을 세상 사람들의 다음과 같은 객관적인 관점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이 보기에 그들은 그리스도로 생각하고, 그리스도로 살고, 그리스도로 죽는 사람들이며 그리스도가 아니면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 이상한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11:25-26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려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입만 열면 그리스도, 돈과 시간과 육체를 사용함에 있어서 그리스도, 그리스도...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저것들은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다.” 라고 비하하는 지칭이었다고 합니다.
주일성수, 온갖 축복, 만사형통, 등등 판에 박은 듯한 종교생활이 기승을 부리는 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예수는 이 세상의 그리스도시며, 그는 나의 인생의 주인이시다. 라는 새로운 가치관에 기초하여 세워진 그리스도중심의 믿음생활에 목숨을 건 당시의 사람들의 신앙의 내용은 큰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라는 가르침 때문입니다.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제국의 통치 아래 살면서 로마황제인 가이사가 그들의 주인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그게 아니고 그리스도가 주인이다. 라고 새로운 가치관을 세운 사람들이다.
지금도 이 시대에도 모든 사람들이 어찌하든지 대통령에게 가까이 줄을 대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것이 출세하는 길이요, 행복을 추구하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지요. 이와 같이 당시에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이사에게 줄을 대려고 총력을 기울였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가이사를 주인으로 모시고 그로부터 자기의 인생을 세워나가는 삶의 질서를 가지고 있었는데, 다시 말하면 그것이 딩시의 최고의 가치인데, 여기에 그런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즉 가이사를 중심으로 사는 그런 삶은 무의미하고 잠간 있다가 없어질 것이고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다. 그를 따르라고 강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당시로서 그것은 실로 목숨을 건 도전이며 새로운 가치체계의 선언이었던 것입니다.
로마서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이런 말씀을 선포하며 시대를 향하여 도전한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사람들에게 과연 어떤게 보였을까요?
- 그리스도인들
당시에도 돈과 권력이 중요했을터이지만, 그들에게는 돈, 권력, 보다도 이 세상이 주는 명예보다도 더 중요한 그리스도가 계셨습니다.
- 염병, 이단의 괴수
이들을 만나면 전염된다. 사람이 변한다.
이 모든 것을 통털어 보면 그들의 삶의 모습을 할 수 있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고통 받는 것이 기쁘고 감사했답니다. 그들은 고난을 받으면 받을 수록 만세를 불렀다지요.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이 하늘에서 상이 큼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삶의 가장 중심에 하늘나라 천국 하나님께서 계신 그곳을 염두에 두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가치관이었던 것이지요.
우리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지난 한 주간동안을 살면서 우리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을 몇 번이나 되 뇌이면서, 전하면서, 선포하면서 지냈나요? 과연 몇 번이나????
사람들이 요사이 그리스도인, 예수쟁이 하는 말은 다른 의미에서 비하하는 말로 들립니다. 한국에 가서 tv를 켜면 소위 기독교 방송, 불교방송, 천주교 방송이 바로 연이어 나옵니다. 불교방송과 천주교방송은 도리어 사회에 봉사하라 인류에게 덕을 끼치라고 말하는데 기독교 방송만은 대개 가정이 축복 받고 교회가 축복 받고, 이렇게 받고 저렇게 받고, 받고, 받고의 연속입니다. 내가 하필 그때에 tv를 켰기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그랬습니다.
무엇인가 가장 근본적인 핵심이 뻐져버린듯, 본말이 뒤바뀐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그 놀라운 뜻과 그의 최대관심사와는 어딘가 동떨어진 허전한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믿지 않는 영혼들이 뒤집어지고, 나아가서는 세상을 어지럽히는 능력의 역사를 주님은 우리들에게서 기대하실텐데 현재 우리의 관심사는 과연 어디에 있는지, 저 자신으로부터 돌아보지 않을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지난번 한국을 들렸을 때 저의 고등학교 동창생이자 50년 친구가 결국은 저를 따라서 교회에 나왔습니다. 뭔지도 모르고 멍하니 설교를 듣고 찬송을 듣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니 얼마나 불쌍하고 마음이 안됐던지.... 눈물이 마구 났습니다. 그래서 그 곳 교회식구들에게 “여러분 내 친구를 부탁합니다. 사랑하는 내 친구를 잘 돌봐주십시오.” 하고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이는 이미 65세를 넘겼구요. 심장에 두 개 세 개 spring과 ballon을 달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무슨 할 일도 소망도 없는 그런 사람이 제 친구 말고도 얼마나 많겠습니까? 여러분....
갈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최대관심사요 또 우리들의 최대의 사명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사함 받고 새 생명을 얻은 그리스도의 시람들이라면 말입니다.
로마황제가 서슬 퍼렇게 살아 통치하는 시대에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영원한 임금이시다"라고 시대를 거슬러 가는, 즉 딴 세상에 사는 것 같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그 반대자들 즉 마귀에게 비친 그리스도인의 또다른 모습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24: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지 유대인을 다 소동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몇 년 전에는 싸스라는 감기 때문에 그러더니, 요사이는 Swine flu 때문에 야단입니다.
위의 구절에서 염병이라는 것은 전염병을 뜻합니다. 곧 그리스도인의 영향력을 말합니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영향을 받아서 변화되고 삶이 달라진다는 말이지요. 그것이 유대인들 곧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에게 큰 문제로 대두되었다니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영향력이 과연 어떠했겠습니까?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과 그 일행이 로마, 고린도, 아덴, 베뢰아, 데살로니가, 빌립보로 전전합니다. 본문에도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서 데살로니가에 이르렀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유대인들의 핍박에 쫓겨서 정처 없는 모습으로 흘러 다니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실은 그러한 핍박이 곧 이들로 하여금 편안하게 안주할 틈이 없이 흘러 다니며 복음을 더욱 더 널리 전하게 하는 하나님의 역사이었던 것입니다.
-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나 다니면서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람들...
- 기존의 질서와 가치관을 뒤엎어버리는 사람들..
오늘날 우리들의 영향력은 어떻습니까?
- 사회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사회에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입니까?
- 여기 우리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인생이 뒤엎어진 사람들입니까?
- 그리고 우리들은 천하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입니까?
세상사람들은 우리들 21세기 교회를 향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주님은 우리들의 삶을 보시고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좋은 신앙생활의 환경을 좇아서 이리저리 찾아 헤메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나를 잘 알아주고 가려운데를 긁어주는데 따라서 일희일비하는 그런 어린애 같은 신앙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바로 배우고 바로 알아 그로 말미암아 새로운 가치관이 형성되면서 인생이 뒤집어지고 생명력을 얻고 또 말씀으로 훈련되어서 결국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그리스도인 다운 그리스도인이며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에 말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