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때를 위한 경고(200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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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말씀 베드로 전서 4:7-11
하나님의 역사, 다시 말해서 이세상의 역사는 끝없는 반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물질세계에 개입하신 창조로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의 재림에 이르러 영원한 심판으로 끝을 맺는 대하 드라마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실 때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었습니다. 이것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향한 구원의 초대이었습니다.
이제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이것은 모든 사람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멧세지 입니다.
-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먼저 마지막 때를 앞 다투어 경고합니다.
온실 까스 현상으로 지구가 온난화 되고, 대기, 환경의 변화로 대 재앙이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땅 속에 얼어있던 탄소, 질소가 방출되고 온갖 미
생물들이 되살아날 경우에 일어날 일들을 이야기 합니다.
-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가 마지막 때인 듯 보입니다. 급변하는 세태를 볼 때
-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지막 때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손 치더라도 최소한 우리가 주님을 만나야할 때를 위한 준비는 해야 하리라고 믿어집니다.
본문 말씀은 베드로가 사역할 당시에 핍박에서 견디어낸 교회들을 칭찬하고 격려하고 또 새로운 핍박이 닥쳐올 상황에 대처하여 주신 경고입니다.
- 난리와 난리의 소문(국가, 민족 간의 갈등 상황)
이미 인간의 능력으로 제어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 처처에 기근과 지진(피조의 세계 재해)
지난해에 대지진이 났던 중국 사천성에 이번에 또 지진이 났고, Indonesia
에서도 그러합니다. 이곳 california도 언제 올지 모를 대지진이 예고된 상
태입니다.
- 거짓 선지지가 많이 일어남(영적 혼탁)
스스로 그리스도라고 하는 자들이 많이 일어날 뿐 아니라. 신앙의 내용이 변질되고 인본주의화 했습니다. 수년전에 장례식장에서 전혀 믿지 않고 죽은 사람들을 천국에 갔다고 강변하는 것을 듣고 실소를 한 적이 있는데,....
불과 얼마 전 장례식장에서 또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분명히 믿지 않는 사람인데, 매우 좋은 그리스도인이라 하나님 품에 갔다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에 대한 배려인지, 아니면 남은 가족들에 대한 배려인지, 아니면 자기 교인이니까 그렇게 좋게 보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는 거리가 멉니다.
우리도 정직하게 깨어서 자신의 구원을 돌아 보며 믿음을 점검해 봐야하겠습니다. 주일마다 교회에 모이는 수천수만의 사람들, 하늘을 찌를 듯한 교회당 건물들.... 심지어 선교현장에서 만난 어떤 소위 선교사는 우리가 천국 갈지 못갈지는 죽어봐야 안다고 핏대를 올리는 판입니다. 영적으로 매우 혼탁해 있습니다. 말세의 징조입니다.
- 불법이 성행하며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관계성의 단절)
사람들의 관계성은 이미 깨어진지 오래입니다.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극도의 이기주의적인 삶이 판을 칩니다. 교회가 상업화하고 있는 증거들이
쏟아집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흉포화 해 갑니다.
그런가 하면 지금 우리들의 주변에 그리스도신앙의 목을 조이는 조치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California에서는 학교에서 동성애가 죄라고 가르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hate crime(증오범죄)로 처벌 받게 됩니다. 교회에서도 동성애를 죄라고 설교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지금 21세기 대명 천지에 그리스도 신앙이 미국에서 박해를 받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이 때를 위해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야말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운 때에 주님께서 주시는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하겠습니다.
1. 기도하기 위해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라. 입니다.
self-controlled and alert to be able to pray....
정신 차리고 근신하며 기도하라. 정확히 번역하면 기도하기 위해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라 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거룩한 교제이며 교통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와의 교제함에 있어서 우리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 하여, 아바 아버지라 하여 마구 나름대로 교제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 아니면 무지에서 비롯합니다. 하나님은 거룩, 거룩, 거룩 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 정신을 차리고는 지적으로 바른 자세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잘 못된 신앙의 시작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와 나름대로
의 해석으로 비롯됩니다.
예레미야 5:21
너는 이를 야곱 짐에 선포하며 유다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우준하여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이런 백성들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지 않는 게으름과 교만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자기가 필요한 것만 골라 이용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의 경험과 필요을 앞세우는 자세입니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야합니다 .
- 근신하라는 말은 무엇인가에 취하지 않고 온전한 깨어있는 상태를 뜻합니
다. not intoxicated, vigilant...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영육 간에 온갖 시험과 환경의 도전과 여러 가지 유혹에 취할 수 있습니다. 마치 술이나 마약에 취하듯 말입니다.
- 요즈음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에는 특별히 물질문제에 얽매이기 쉽습
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가 방해를 받습니다.
- 회개하지 않은 죄는 우리의 기도를 방해합니다.
- 해결되지 않은 관계성은 또한 우리의 기도를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시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기도하기 위해서 제정신을 가지고 깨어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남용, 소위 기도라는 것으로 인해서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때입니다. 영적으로 혼탁해진 까닭입니다.
2. 무엇보다도 열심히 사랑할지니...
Before all things but among yourselves love fervent......
그런데 이 모든 것보다 더 먼저 우리들 가운데, "among yourselves" 이것을 교회로서 서로에게를 말합니다. 우리는 주안에서 교회로서 한 몸이요 우리 각자는 서로 지체가 되었으므로 먼저 우리가운데, (among yourselves)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어야한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즉 베일로 덮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덮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가 하나님께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나의 기억 속에 우리의 역사 속에서는 우리의 죄가 그대로 있는데,
하나님의 기억, 하나님의 책속에서는 우리의 죄가 지워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때문이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이러한 은혜와 사랑으로 인해서 새롭게 태어 난 바 된 우리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가장 기초입니다.
무엇보다도 열심 으로 사랑할지니 ...
Before all things but among yourselves love fervent...
너희들 가운데, 사랑하되 의도적으로, 온 힘을 다하여 힘써 fervent=exert power and energy.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입니다. 그리고 그 삶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다음과 같습니다.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하고.. 서로, 서로 .....에 주의 하기 바랍니다.
선한청지기로서 서로 봉사하고
말할 때도 하나님께서 주신대로
봉사할 때도 하나님께서 주신대로
범사에, 모든 일에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함이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 영광, 자기 유익, 자기 성취를 위해서 몸부림칠 때, 우리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사는 최선의 길입니다.
에덴 동산의 아담을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창세기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것,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 아담이 가장 행복하고 축복된 삶을 사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자기를 기쁘게 하려고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떠났을 때 그는 멸망을 자초했습니다.
요한복음 8:31-32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말에 거하면 .....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어 있고 근신하고 그렇게 기도하고 사랑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주장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으로 지배 받는 삶을 위하여 자기를 포기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하나님께 영광과 권능이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
우리는 세세토록 그 영광 가운데 살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 다시 말해서 이세상의 역사는 끝없는 반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물질세계에 개입하신 창조로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의 재림에 이르러 영원한 심판으로 끝을 맺는 대하 드라마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실 때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었습니다. 이것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향한 구원의 초대이었습니다.
이제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이것은 모든 사람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멧세지 입니다.
-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먼저 마지막 때를 앞 다투어 경고합니다.
온실 까스 현상으로 지구가 온난화 되고, 대기, 환경의 변화로 대 재앙이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땅 속에 얼어있던 탄소, 질소가 방출되고 온갖 미
생물들이 되살아날 경우에 일어날 일들을 이야기 합니다.
-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가 마지막 때인 듯 보입니다. 급변하는 세태를 볼 때
-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지막 때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손 치더라도 최소한 우리가 주님을 만나야할 때를 위한 준비는 해야 하리라고 믿어집니다.
본문 말씀은 베드로가 사역할 당시에 핍박에서 견디어낸 교회들을 칭찬하고 격려하고 또 새로운 핍박이 닥쳐올 상황에 대처하여 주신 경고입니다.
- 난리와 난리의 소문(국가, 민족 간의 갈등 상황)
이미 인간의 능력으로 제어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 처처에 기근과 지진(피조의 세계 재해)
지난해에 대지진이 났던 중국 사천성에 이번에 또 지진이 났고, Indonesia
에서도 그러합니다. 이곳 california도 언제 올지 모를 대지진이 예고된 상
태입니다.
- 거짓 선지지가 많이 일어남(영적 혼탁)
스스로 그리스도라고 하는 자들이 많이 일어날 뿐 아니라. 신앙의 내용이 변질되고 인본주의화 했습니다. 수년전에 장례식장에서 전혀 믿지 않고 죽은 사람들을 천국에 갔다고 강변하는 것을 듣고 실소를 한 적이 있는데,....
불과 얼마 전 장례식장에서 또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분명히 믿지 않는 사람인데, 매우 좋은 그리스도인이라 하나님 품에 갔다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에 대한 배려인지, 아니면 남은 가족들에 대한 배려인지, 아니면 자기 교인이니까 그렇게 좋게 보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는 거리가 멉니다.
우리도 정직하게 깨어서 자신의 구원을 돌아 보며 믿음을 점검해 봐야하겠습니다. 주일마다 교회에 모이는 수천수만의 사람들, 하늘을 찌를 듯한 교회당 건물들.... 심지어 선교현장에서 만난 어떤 소위 선교사는 우리가 천국 갈지 못갈지는 죽어봐야 안다고 핏대를 올리는 판입니다. 영적으로 매우 혼탁해 있습니다. 말세의 징조입니다.
- 불법이 성행하며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관계성의 단절)
사람들의 관계성은 이미 깨어진지 오래입니다.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극도의 이기주의적인 삶이 판을 칩니다. 교회가 상업화하고 있는 증거들이
쏟아집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흉포화 해 갑니다.
그런가 하면 지금 우리들의 주변에 그리스도신앙의 목을 조이는 조치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California에서는 학교에서 동성애가 죄라고 가르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hate crime(증오범죄)로 처벌 받게 됩니다. 교회에서도 동성애를 죄라고 설교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지금 21세기 대명 천지에 그리스도 신앙이 미국에서 박해를 받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이 때를 위해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야말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운 때에 주님께서 주시는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하겠습니다.
1. 기도하기 위해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라. 입니다.
self-controlled and alert to be able to pray....
정신 차리고 근신하며 기도하라. 정확히 번역하면 기도하기 위해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라 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거룩한 교제이며 교통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와의 교제함에 있어서 우리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 하여, 아바 아버지라 하여 마구 나름대로 교제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 아니면 무지에서 비롯합니다. 하나님은 거룩, 거룩, 거룩 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 정신을 차리고는 지적으로 바른 자세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잘 못된 신앙의 시작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와 나름대로
의 해석으로 비롯됩니다.
예레미야 5:21
너는 이를 야곱 짐에 선포하며 유다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우준하여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이런 백성들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지 않는 게으름과 교만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자기가 필요한 것만 골라 이용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의 경험과 필요을 앞세우는 자세입니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야합니다 .
- 근신하라는 말은 무엇인가에 취하지 않고 온전한 깨어있는 상태를 뜻합니
다. not intoxicated, vigilant...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영육 간에 온갖 시험과 환경의 도전과 여러 가지 유혹에 취할 수 있습니다. 마치 술이나 마약에 취하듯 말입니다.
- 요즈음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에는 특별히 물질문제에 얽매이기 쉽습
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가 방해를 받습니다.
- 회개하지 않은 죄는 우리의 기도를 방해합니다.
- 해결되지 않은 관계성은 또한 우리의 기도를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시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기도하기 위해서 제정신을 가지고 깨어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남용, 소위 기도라는 것으로 인해서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때입니다. 영적으로 혼탁해진 까닭입니다.
2. 무엇보다도 열심히 사랑할지니...
Before all things but among yourselves love fervent......
그런데 이 모든 것보다 더 먼저 우리들 가운데, "among yourselves" 이것을 교회로서 서로에게를 말합니다. 우리는 주안에서 교회로서 한 몸이요 우리 각자는 서로 지체가 되었으므로 먼저 우리가운데, (among yourselves)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어야한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즉 베일로 덮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덮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가 하나님께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나의 기억 속에 우리의 역사 속에서는 우리의 죄가 그대로 있는데,
하나님의 기억, 하나님의 책속에서는 우리의 죄가 지워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때문이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이러한 은혜와 사랑으로 인해서 새롭게 태어 난 바 된 우리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가장 기초입니다.
무엇보다도 열심 으로 사랑할지니 ...
Before all things but among yourselves love fervent...
너희들 가운데, 사랑하되 의도적으로, 온 힘을 다하여 힘써 fervent=exert power and energy.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입니다. 그리고 그 삶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다음과 같습니다.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하고.. 서로, 서로 .....에 주의 하기 바랍니다.
선한청지기로서 서로 봉사하고
말할 때도 하나님께서 주신대로
봉사할 때도 하나님께서 주신대로
범사에, 모든 일에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함이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 영광, 자기 유익, 자기 성취를 위해서 몸부림칠 때, 우리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사는 최선의 길입니다.
에덴 동산의 아담을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창세기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것,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 아담이 가장 행복하고 축복된 삶을 사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자기를 기쁘게 하려고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떠났을 때 그는 멸망을 자초했습니다.
요한복음 8:31-32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말에 거하면 .....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어 있고 근신하고 그렇게 기도하고 사랑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주장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으로 지배 받는 삶을 위하여 자기를 포기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하나님께 영광과 권능이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
우리는 세세토록 그 영광 가운데 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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