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신랑이로다.(2010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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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마태복음 25:1-13
여러분도 뉴스 보도를 통해서 잘 알고 있겠지만 지금 Haiti는 대지진으로 인하여 큰 괴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인국 900만 중에서 20만명이 죽고 부상자가 몇 십만.. 그 외에 집을 잃은 난민을 합하며 그 피해규모가 전 국민의 1/3 정도라고 합니다. 계속적인 여진의 공포, 굶주림, 약탈, 살인, 강간 등등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우리도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무엇인가 헌신해야하겠습니다.
진도 7.3의 수직 운동으로 약 20초 정도 흔들렸는데 인간이 세워 놓았던 모든 것이 다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대통령궁, 의사당, 기타 권력기관의 건물들을 비롯하여 땅위에 있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런 지경에서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계획과 꿈과 울고 웃는 인간사가 모두 허무할 뿐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을 지나는 San Andreas 단층이 현재 매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답니다. 그래서 30년 내에 7도 이상의 지진이 올 확률이 거의 100%라고 하지요? 우리는 지진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 마지막 때 즉 말세에 일어날 일을 말씀하신 것인데, 제자들이 잘 깨닫지 못하니까 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해 주신 여러 가지 예화 중 하나입니다. 성경에는 주님의 재림과 천국에 대해서 혼인잔치에 대한 비유가 여러 번 나옵니다. 당시 사회에서 가장 기쁘고 복된 일이 혼인잔치이었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에 유행하던 joke가 있습니다.
교회 예배 중에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물었답니다.
“천국가고 싶은 사람 손드십시오.” 모든 교인들이 다 손을 들었답니다.
“그러면 지금 당장 가고 싶은 분 손 드십시오.” 했더니 아무도 없더랍니다.
여러분들도 다 아시는 이야기이지요.
최근의 joke는 조금 다릅니다. 시대와 문화의 변화를 말해주는 듯합니다.
교회예배 중에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물었답니다.
“천국 가고 싶은 사람 손드십시오.” 그랬더니 대부분의 남편들이 아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다가 아내들이 손을 들자 남편들이 다 따라 들더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다시 물었답니다.
“그러면 지금 당장 천국가고 싶은 분 손드십시오.” 했더니 대부분의 부인들이 자기들은 손을 들지 않으면서 남편들을 채근하며, “여보, 당신 손들어, 빨리 손들어” 했다나요.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땅 중심의 삶인가? 천국에 소망을 두는 삶인가?를 말씀하시고 선택을 요구하셨습니다.
이 땅에 중심을 두는 삶은 이 땅과 함께 결국 없어질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 재림하실 때에 다 엎어질 것이란 말입니다. 또 주님 재림하시기 전에라도 우리가 죽어 이 세상을 떠날 때 다 놓고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결코 내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지난 주간에 남명선생님의 사업처에 방문했다가 들은 이야기가 마음에 남아 떠나지 않습니다. 남선생님 말씀이 돈은 아무리 벌어도 내 것이 아니다. 내가 죽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남선생님이 잘 아시는 분이 교통사고로 갑작스런 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시고 느끼시는 바를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을 중심으로 사는 삶은 장차 거기에 가서 하나님과 심을 볼 것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비록 이 세상이 없어진다 해도, 또 우리가 다 놓고 떠난다 해도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히 기억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지향적인 삶은 이 세상에서도 보람과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산 우리 인생의 성적표를 가지고 가는 것이니까요.
본문에 지혜로운 처녀 5명과 미련한 처녀 5명이 등장합니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 신랑이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 신랑을 기다립니다.
- 신랑이 더디 오자 모두 잠에 빠졌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약점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지혜로운 처녀 5명은 등을 위해서 기름을 준비했고, 미련한 처녀 5명은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기름을 준비 했는가? 아닌가?에 따라서 신랑을 향한 그들의 자세가 나타납니다.
1. 지혜로운 처녀들은 신랑이 올 것이라는 믿음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름을 준비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신랑이 올 것이라는 믿음에 확신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인생을 걸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2. 지혜로운 처녀들은 신랑이 오는것이 그들에게 정말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름을 준비하고 신랑 맞을 준비를 철저히 했습니다.
반면에 미련한 처녀들은 신랑이 오는 것이 그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
습니다. 그래서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에게 신랑은 그들의 인생을 걸만큼 중요한 존재가 아닙니다.
오늘날 지혜로운 처녀들은 누구를 뜻합니까?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 재림, 혹은 천국을 준비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미련한 처녀들은 믿음이 있다고는 하나 그것이 그들의 인생에 영향을 줄만큼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형식적인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창세기 4장에 등장하는 가인과 같은 사람들이지요. 영어로는 Church people, Church goer or nominal Christian....라고 하지요.
그런데 우리는 준비하는 자세 이전에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 예수님은 과연 내게 얼마나 귀중한 분이신가?
- 그는 내 인생을 걸고 기다릴 만큼 그렇게 귀중한 분이신가?
- 과연 주님의 재림을 지금 기다립니까?
- 아니면, 지금 주님을 만나러 천국에 가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까?
이 질문에 얼마나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지혜로운 처녀인가, 미련한 처녀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 별 미련이 없는 고로, 일찌감치 보따리 다 싸 놓고, 유서 써 놓고 그리고 내 장례식 순서까지 다 마련해 놨습니다. 내가 주님께 부르심 받은 다음에 장례예배 순서지를 보면 여러분 재미있을 것입니다.
누가 사회보고, 설교는 누가 하고, 부를 찬송, 특별찬송은 누구누구, Eulogy는 또 누구누구,,,,,지금도 늘 새롭게 update를 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의 환영을 받으며 천국에 개선하여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만나 뵈옵는 것이 저의 인생의 최대과제입니다. 인생을 걸고 준비하고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어서 거기에 내 인생을 통째로 걸었습니다.
마약을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기분이 최고로 좋답니다. 말할 수 없이 좋아서 마치 하늘을 나는 듯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마약에 취한 상태를 “getting high" 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1) 몸을 망가뜨립니다.
(2) 그 환각이 극히 일시적입니다.
그러므로 몸이 망가지지 않고, 영원히 계속되는 마약이 있으면 나는 주저 없이 취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뭐 그런 것이 있겠습니까?
사랑하시는 주님께 가는 것 영원한 기쁨, 환각, 영광, ....
상상할 수 없는 환희... 여러분, 과연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혼인이란 정말 excited 한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준비하는 과정이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 Isaac과 Jane도 아마 그랬을 것입니다. 저희 가족들도 그랬고, 우리 사돈댁에서도 그러하셨을 것입니다. 지난 5월 이후에 Isaac과 Jane의 결혼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내색은 별로 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Jane, 결혼식을 얼마나 excited 하게 기다렸나?
Isaac, 너는 얼마나 결혼식을 기다렸나?
그때 기분이 어땠나?
여러분,
혼인이란 본인이나 주위사람들에게 이토록 간절하고, 가슴 두근거리는 일입니다.
저는 지난 정초에 몸이 많이 아팠을 때 그 고통을 견디다 못해서 끝내 눈물이 마구 났습니다. 결국 응급실로 갔는데요. 고통이 심하다 보니 차라리 이럴 바에는 죽는 것이 낫겠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그리고 이 고통의 밤이 지난 후에 만나 뵈올 영광의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 저를 좀 어떻게 해 주십시오. 지금 만나주시든지 ... 아니면 이 고통을 면케 하시든지...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죄의 어둠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의 신랑 되신 주님이 오실 것입니다. 그 때와 그 시는 아무도 모릅니다. 아니면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서 주님께 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우리는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만나야합니다. 그 때 예수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는 다 주님을 언젠가는 만날 것이라고 믿고 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간절히 고대하고 있습니까?
성경에 대한 자세를 돌아봐야합니다.
우리는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면서 울고 웃고 ... 화내고 슬퍼하고... 감정에 몰입됩니다. 왜 그렇습니다.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의 심정이 되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필요한 부분만 골라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성경을 어떤 자세로 대합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심정이 되기도 하고 예수님의 심정이 되기도 하고, 또 문둥병자나 혈기 마른 자 혹은 중풍병자나 소경이 되어서 예수님의 은혜를 구하는 그 주인공이 되어 보기도 합니까?
아니면, 성경에서 여러분이 필요한 구절만 쏙쏙 뽑아서 잘 짜깁기해서 그럴 듯하게 품고 다니고 있습니까?
전자라면 여러분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것이요.
후자라면 여러분은 자기욕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확신하게 된 상태를 성령의 역사라고 착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좀 더 솔직해야 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 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라디아 6:7-8)
우리가 짓는 모든 죄는 다 사하심을 받을 진대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결코 용서 받지 못합니다. 죄인이 성령의 역사를 나름대로 이용하는 것은 곧 성령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혹자는 본문에 있는 기름을 성령이라고 합니다만 저는 달리 생각합니다.
기름이 떨어져 꾸러 갔다고 합니다. 성령이 어떻게 떨어질 수 있으며 꿀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러면 무엇입니까?
여기에 기름은 주님을 환영하며 맞이하기를 고대하며 준비하는 우리의 헌신 즉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뜻합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들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추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추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16-17)
때로 우리의 헌신이 충만할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등불은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영광을 상징합니다. 이런 행실은 꾸어올 수도 꾸어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영광의 주님,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를 버리신 예수님,
나는 여러 번 예수님을 배반하였으되 한 번도 나를 거절하지 않으신 예수님, 그 주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뵈옵는 것이 그 얼마나 영광인가?
영광일세, 영광일세, 내가누릴 영광일세 은혜로 주얼굴 뵈옵니니 지극한 영광 내 영광일세.
삶과 죽음에 대한 우리의 정의가 새로워져야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죽음이란 곧 영원한 영광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다시 말하면 천국으로의 개선의 날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삶이란 천국 개선을 위한 준비이며 예고편일 뿐입니다. 어디에 더 비중을 두어야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것을 모범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런 단어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예수님을 믿으려니 세상에 한발 천국에 한발 우왕좌왕 할 수밖에 없지요.
우리는 지난 1월 3일에 시작하여 2월 11일까지 전 교회적으로 40일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영적, 정신적, 육체적, 관계성에 있어서 치유되어야할 부분들을 놓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반이 지났습니다.
오늘 이 말씀으로 더불어 저는 저 자신과 여러분 식구들에게 기도하기를 요청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있는가? 마치 본문에 등장하는 미련한 처녀와 같이 무딘 감각으로 주님의 나라를 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영적 감수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치유 받아야하지 않을까?
“보라, 남편이로다.“ 소리가 들릴 때 벌떡 일어나서 기쁨으로 신랑을 맞는 지혜로운 처녀들과 같이, 주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서 강림하실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착한 행실을 가지고 주님을 뵈올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면, 영적인 감수성을 치유 받고 새로운 믿음의 여정을 준비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13)
여러분도 뉴스 보도를 통해서 잘 알고 있겠지만 지금 Haiti는 대지진으로 인하여 큰 괴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인국 900만 중에서 20만명이 죽고 부상자가 몇 십만.. 그 외에 집을 잃은 난민을 합하며 그 피해규모가 전 국민의 1/3 정도라고 합니다. 계속적인 여진의 공포, 굶주림, 약탈, 살인, 강간 등등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우리도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무엇인가 헌신해야하겠습니다.
진도 7.3의 수직 운동으로 약 20초 정도 흔들렸는데 인간이 세워 놓았던 모든 것이 다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대통령궁, 의사당, 기타 권력기관의 건물들을 비롯하여 땅위에 있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런 지경에서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계획과 꿈과 울고 웃는 인간사가 모두 허무할 뿐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을 지나는 San Andreas 단층이 현재 매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답니다. 그래서 30년 내에 7도 이상의 지진이 올 확률이 거의 100%라고 하지요? 우리는 지진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 마지막 때 즉 말세에 일어날 일을 말씀하신 것인데, 제자들이 잘 깨닫지 못하니까 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해 주신 여러 가지 예화 중 하나입니다. 성경에는 주님의 재림과 천국에 대해서 혼인잔치에 대한 비유가 여러 번 나옵니다. 당시 사회에서 가장 기쁘고 복된 일이 혼인잔치이었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에 유행하던 joke가 있습니다.
교회 예배 중에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물었답니다.
“천국가고 싶은 사람 손드십시오.” 모든 교인들이 다 손을 들었답니다.
“그러면 지금 당장 가고 싶은 분 손 드십시오.” 했더니 아무도 없더랍니다.
여러분들도 다 아시는 이야기이지요.
최근의 joke는 조금 다릅니다. 시대와 문화의 변화를 말해주는 듯합니다.
교회예배 중에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물었답니다.
“천국 가고 싶은 사람 손드십시오.” 그랬더니 대부분의 남편들이 아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다가 아내들이 손을 들자 남편들이 다 따라 들더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다시 물었답니다.
“그러면 지금 당장 천국가고 싶은 분 손드십시오.” 했더니 대부분의 부인들이 자기들은 손을 들지 않으면서 남편들을 채근하며, “여보, 당신 손들어, 빨리 손들어” 했다나요.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땅 중심의 삶인가? 천국에 소망을 두는 삶인가?를 말씀하시고 선택을 요구하셨습니다.
이 땅에 중심을 두는 삶은 이 땅과 함께 결국 없어질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 재림하실 때에 다 엎어질 것이란 말입니다. 또 주님 재림하시기 전에라도 우리가 죽어 이 세상을 떠날 때 다 놓고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결코 내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지난 주간에 남명선생님의 사업처에 방문했다가 들은 이야기가 마음에 남아 떠나지 않습니다. 남선생님 말씀이 돈은 아무리 벌어도 내 것이 아니다. 내가 죽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남선생님이 잘 아시는 분이 교통사고로 갑작스런 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시고 느끼시는 바를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을 중심으로 사는 삶은 장차 거기에 가서 하나님과 심을 볼 것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비록 이 세상이 없어진다 해도, 또 우리가 다 놓고 떠난다 해도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히 기억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지향적인 삶은 이 세상에서도 보람과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산 우리 인생의 성적표를 가지고 가는 것이니까요.
본문에 지혜로운 처녀 5명과 미련한 처녀 5명이 등장합니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 신랑이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 신랑을 기다립니다.
- 신랑이 더디 오자 모두 잠에 빠졌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약점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지혜로운 처녀 5명은 등을 위해서 기름을 준비했고, 미련한 처녀 5명은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기름을 준비 했는가? 아닌가?에 따라서 신랑을 향한 그들의 자세가 나타납니다.
1. 지혜로운 처녀들은 신랑이 올 것이라는 믿음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름을 준비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신랑이 올 것이라는 믿음에 확신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인생을 걸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2. 지혜로운 처녀들은 신랑이 오는것이 그들에게 정말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름을 준비하고 신랑 맞을 준비를 철저히 했습니다.
반면에 미련한 처녀들은 신랑이 오는 것이 그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
습니다. 그래서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에게 신랑은 그들의 인생을 걸만큼 중요한 존재가 아닙니다.
오늘날 지혜로운 처녀들은 누구를 뜻합니까?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 재림, 혹은 천국을 준비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미련한 처녀들은 믿음이 있다고는 하나 그것이 그들의 인생에 영향을 줄만큼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형식적인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창세기 4장에 등장하는 가인과 같은 사람들이지요. 영어로는 Church people, Church goer or nominal Christian....라고 하지요.
그런데 우리는 준비하는 자세 이전에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 예수님은 과연 내게 얼마나 귀중한 분이신가?
- 그는 내 인생을 걸고 기다릴 만큼 그렇게 귀중한 분이신가?
- 과연 주님의 재림을 지금 기다립니까?
- 아니면, 지금 주님을 만나러 천국에 가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까?
이 질문에 얼마나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지혜로운 처녀인가, 미련한 처녀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 별 미련이 없는 고로, 일찌감치 보따리 다 싸 놓고, 유서 써 놓고 그리고 내 장례식 순서까지 다 마련해 놨습니다. 내가 주님께 부르심 받은 다음에 장례예배 순서지를 보면 여러분 재미있을 것입니다.
누가 사회보고, 설교는 누가 하고, 부를 찬송, 특별찬송은 누구누구, Eulogy는 또 누구누구,,,,,지금도 늘 새롭게 update를 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의 환영을 받으며 천국에 개선하여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만나 뵈옵는 것이 저의 인생의 최대과제입니다. 인생을 걸고 준비하고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어서 거기에 내 인생을 통째로 걸었습니다.
마약을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기분이 최고로 좋답니다. 말할 수 없이 좋아서 마치 하늘을 나는 듯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마약에 취한 상태를 “getting high" 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1) 몸을 망가뜨립니다.
(2) 그 환각이 극히 일시적입니다.
그러므로 몸이 망가지지 않고, 영원히 계속되는 마약이 있으면 나는 주저 없이 취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뭐 그런 것이 있겠습니까?
사랑하시는 주님께 가는 것 영원한 기쁨, 환각, 영광, ....
상상할 수 없는 환희... 여러분, 과연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혼인이란 정말 excited 한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준비하는 과정이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 Isaac과 Jane도 아마 그랬을 것입니다. 저희 가족들도 그랬고, 우리 사돈댁에서도 그러하셨을 것입니다. 지난 5월 이후에 Isaac과 Jane의 결혼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내색은 별로 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Jane, 결혼식을 얼마나 excited 하게 기다렸나?
Isaac, 너는 얼마나 결혼식을 기다렸나?
그때 기분이 어땠나?
여러분,
혼인이란 본인이나 주위사람들에게 이토록 간절하고, 가슴 두근거리는 일입니다.
저는 지난 정초에 몸이 많이 아팠을 때 그 고통을 견디다 못해서 끝내 눈물이 마구 났습니다. 결국 응급실로 갔는데요. 고통이 심하다 보니 차라리 이럴 바에는 죽는 것이 낫겠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그리고 이 고통의 밤이 지난 후에 만나 뵈올 영광의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 저를 좀 어떻게 해 주십시오. 지금 만나주시든지 ... 아니면 이 고통을 면케 하시든지...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죄의 어둠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의 신랑 되신 주님이 오실 것입니다. 그 때와 그 시는 아무도 모릅니다. 아니면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서 주님께 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우리는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만나야합니다. 그 때 예수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는 다 주님을 언젠가는 만날 것이라고 믿고 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간절히 고대하고 있습니까?
성경에 대한 자세를 돌아봐야합니다.
우리는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면서 울고 웃고 ... 화내고 슬퍼하고... 감정에 몰입됩니다. 왜 그렇습니다.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의 심정이 되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필요한 부분만 골라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성경을 어떤 자세로 대합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심정이 되기도 하고 예수님의 심정이 되기도 하고, 또 문둥병자나 혈기 마른 자 혹은 중풍병자나 소경이 되어서 예수님의 은혜를 구하는 그 주인공이 되어 보기도 합니까?
아니면, 성경에서 여러분이 필요한 구절만 쏙쏙 뽑아서 잘 짜깁기해서 그럴 듯하게 품고 다니고 있습니까?
전자라면 여러분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것이요.
후자라면 여러분은 자기욕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확신하게 된 상태를 성령의 역사라고 착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좀 더 솔직해야 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 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라디아 6:7-8)
우리가 짓는 모든 죄는 다 사하심을 받을 진대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결코 용서 받지 못합니다. 죄인이 성령의 역사를 나름대로 이용하는 것은 곧 성령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혹자는 본문에 있는 기름을 성령이라고 합니다만 저는 달리 생각합니다.
기름이 떨어져 꾸러 갔다고 합니다. 성령이 어떻게 떨어질 수 있으며 꿀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러면 무엇입니까?
여기에 기름은 주님을 환영하며 맞이하기를 고대하며 준비하는 우리의 헌신 즉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뜻합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들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추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추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16-17)
때로 우리의 헌신이 충만할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등불은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영광을 상징합니다. 이런 행실은 꾸어올 수도 꾸어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영광의 주님,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를 버리신 예수님,
나는 여러 번 예수님을 배반하였으되 한 번도 나를 거절하지 않으신 예수님, 그 주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뵈옵는 것이 그 얼마나 영광인가?
영광일세, 영광일세, 내가누릴 영광일세 은혜로 주얼굴 뵈옵니니 지극한 영광 내 영광일세.
삶과 죽음에 대한 우리의 정의가 새로워져야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죽음이란 곧 영원한 영광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다시 말하면 천국으로의 개선의 날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삶이란 천국 개선을 위한 준비이며 예고편일 뿐입니다. 어디에 더 비중을 두어야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것을 모범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런 단어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예수님을 믿으려니 세상에 한발 천국에 한발 우왕좌왕 할 수밖에 없지요.
우리는 지난 1월 3일에 시작하여 2월 11일까지 전 교회적으로 40일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영적, 정신적, 육체적, 관계성에 있어서 치유되어야할 부분들을 놓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반이 지났습니다.
오늘 이 말씀으로 더불어 저는 저 자신과 여러분 식구들에게 기도하기를 요청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있는가? 마치 본문에 등장하는 미련한 처녀와 같이 무딘 감각으로 주님의 나라를 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영적 감수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치유 받아야하지 않을까?
“보라, 남편이로다.“ 소리가 들릴 때 벌떡 일어나서 기쁨으로 신랑을 맞는 지혜로운 처녀들과 같이, 주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서 강림하실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착한 행실을 가지고 주님을 뵈올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면, 영적인 감수성을 치유 받고 새로운 믿음의 여정을 준비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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