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요 13:34) 7/28/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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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요 13:34) 7/28/2019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어제 아침에 저는 아주 짧고 싱거운 꿈을 꾸었습니다. 장소는 어떤 관공서같은 곳인데 여러개 창구가 있고 각 창구마다 줄이 있는데, 손님은 딱 두 사람밖엔 없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다는 것을 보고하기 위해서 서로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느냐에 따라 상당한 보상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게 끝입니다. 그리고 깨어났습니다. 아주간단하고 싱거운 꿈이었지만, 제겐 기억에 남는 중요한 꿈이었습니다.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심을 해도 시간을 낭비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계획을 잘 세워서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시간을 잘 관리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좀 전에 말씀드린 그 꿈속에 나타난 자매님은 제가 아는 자매인데 인생을 열심히 사는 자매입니다. 잠자는 시간을 아껴서 공부하고 자기 목적을 세운대로 하나 둘씩 성취해가는 자매입니다. 시간을 알차게 활용하는 자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녀의 삶 속에 하나님을 위한 시간은 전혀 없습니다. 그녀는 동정심도 있고 착한 성품을 가졌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때문에 너무 바빠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알기로는 그 녀는 친구가 전혀 없습니다. 시간을 잘 관리하여 아껴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위해 시간을 쓰느냐 하는 인생의 목적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나를 위해서 사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사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사람들을 위해서 시간을 사용하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 안하고 즐겁게 사용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성경의 수 많은 명령이 있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명령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라는 명령과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는 명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수 많은 메시지와 명령이 있지만 본뜻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은 여러가지 중요한 명령 중의 하나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명령이요. 모든 명령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지로, 구약 선지자들의 멧시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멧시지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들을 박해하고 죽이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삶 가운데서도 경험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저를 사랑하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제가 여러분을 사랑하기에 행복함을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릭 워렌 목사님은, 많은 사람들의 임종을 곁에서 지켜보았는데, 그 인생의 가장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졸업장이나, 재산 증명서나, 업적이나 성과를 찾는 사람은 없었고, 사랑하고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그 마지막 순간에 사람들은 그들이 맺어왔던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삶의 전부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이 세상에 오셔서 최후의 심판을 하실 때, 그 분의 심판의 기준은 나그네 된자, 병든자, 옥에 갖힌 자, 헐벗은 자, 배고픈 자를 돌보았는가가 기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어려움 가운데 있는 이웃을 돌보는 것이 예수님 자신을 돌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런 선행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임을 압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다면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가르쳤을 뿐 아니라, 그 분 자신이 사랑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이 세상에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막 10:45)
이렇게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계명을 지키는 것이요, 인생의 끝날에 가장 의미가 있는 삶이요, 주님의 심판을 준비하는 삶이요, 예수님을 본받는 삶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삶이야 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가장 잘 사용하는 삶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가 어떻게 이런 사랑의 삶을 살 수 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불과 몇시간 전에 하신 말씀인데, 서로 사랑하되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이 계명을 통해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기 전에 나의 사랑을 받으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다른 형제를 사랑하는 것 너무나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그에 앞서 내가 해야할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것이란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랑은 우리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일 4:7) 그래서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9)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서로 서로 사랑해야하는 가를 다루기 전에,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야합니다.
1. 먼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거나 경험하려며 복음을 받아들여야합니다.
먼저, 여러분들에게 질문하므로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나누기를 원합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명령을 하실때, 제자들이 예수님이 자신들을 얼마나 어떻게 사랑했는지를 알았을까요?
지금 이 명령은 이미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마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후에 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이 최후의 만찬을 마칠 무렵 제자들은 자기들중 누가 가장 큰 자인가를 놓고, 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눅 22:24) 그리고 요한복음 13:3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명령을 하시기 바로 전에,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밀고하기 위해서 그 자리를 떠난 뒤였습니다. 그러니까, 3년동안 제자들은 사랑의 예수님과 함께 삶을 같이했다지만, 전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요일 3:16 )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 것을 알아야만 예수님의 사랑을 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 것을 알지 못한다면, 예수님과 3년을 동거동락했어도 예수님의 사랑을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집안 형제들처럼 수십년을 알았어도 예수님의 사랑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사도바울이 고백했던 것처럼,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 그런 사랑을 알 때 알게되는 사랑을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 사랑을 언제 어떻게 알게되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깨달았습니까? 아닙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마음 아파하며 안타까와 하였겠지만,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죄를 위하여 죽는다고 알거나 믿고 있었던 제자들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어떻게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그 사랑을 알게되었는가? 예수님께서 13장에서 이 명령을 하신 뒤, 곧 이어 요한복음 14장과 15장과 16장에 계속적으로 어떤 분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에 대해서 말씀하셨을까요? 그 분이 보내실 성령님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 영이 나를 위하여 증언하실 것이다.” (요 15:26; 14:26 16:14) 성령님을 통해서만 예수님께서 바로 죄인인 나를 위해서 죽으신 그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신 뒤, 10일만에 오순절에 성령님께서 제자들 위에 임하셨고, 제자들은 성령님의 증언을 통해서 예수님의 죽음이 바로 자신들의 죄를 위한 죽음이었음을 깨닫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는가를 깨닫고 알려면 반드시 두가지 사실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역사적 사실과 성령님의 도우심입니다.
저는 수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음성을 듣거나 환상을 통해 하나님을 체험하겠다고 기도원에 가는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까? 특별한 축복을 받거나 체험을 했기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기적을 보거나 체험했기 때문입니까? 이런 체험들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을 수 있을까요? 고린도전서 1장에보면, 유다인들은 기적을 통해서, 그리이스인들은 지혜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려고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도록 하나님이 선택하신 방법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그리스도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지만, 성경은
이 것을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는가를 깨닫고 알려면 반드시 두가지 사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역사적 사실과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복음에는 이 두가지 사실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과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던 성령님의 해석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골로새성도들에게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고 말합니다. (골 1:6) 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구원하는 복음을 듣고서 그리스도를 믿었으므로, 약속하신 성령의 날인을 받았습니다” (엡 1:13) 그리고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성령을 받게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는 첫번째 단계는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것은 마치 결혼하는 부부와 같습니다.처음부터 상대방을 100% 다 알고 결혼할 수는 없지만 결혼생활을 하면서 배우자를 좀 더 알아가게 되듯이,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복음을 듣고 믿으므로 그 분을 받아들이면,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거하시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 알고 경험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분들은 이 과정을 겪었습니다. 이제 이미 복음을 믿고 예수님을 이미 영접한 자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 알아갈가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2. 다시 한번 주님의 말씀을 읽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번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삶에 앞서,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해야겠다는 다짐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신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만 초점을 둔다면 자칫 율법적인 신앙생활을 하기가 쉽습니다. 실지로, 우리의 목자되신 예수님께서 양들인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주신 것은 우리로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삶을 누려야 이 풍성한 삶을 다른 분들에게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큐티를 한지 비교적 오래되었고, 큐티를 통해 주님의 은혜를 경험할 때가 많이 있지만, 큐티를 할 때 즐거움보다 의무적으로 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작년 말부터 내 삶의 적용을 위한 큐티도 중요하지만, 우선 내 삶이 풍성함을 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풍성한 삶을 살도록 자신의 목숨을 주셨으니까, 주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시므로 내가 갖게된 축복들, 내게 주신 특권과 새로운 정체성과 소망과 목적 등등을 매일 우선적으로 묵상하며 주님의 풍성한 사랑을 느끼며 제 영혼이 행복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그 시간을 기다리며 복된 시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일생동안 15만명의 고아를 돌보았던 죠지뮬러도, 14년동안 항상 간구하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다가 간구하는 기도대신 자신의 영혼을 행복하게 하는 시간으로 시작했다고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첫번 째로 염려해야할 일은 내가 얼마나 주님을 섬길 수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내 영혼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가 또, 나의 속 사람이 어떻게 영의 양식을 공급받을 수 있을까 이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형제를 사랑해야하는 것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을 먼저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주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지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7:38-39절을 보겠습니다.
주님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지금 예수님께서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늘에서 영광을 받으셔야만 성령님이 오실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성령님께서 배로 상징되는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내면의 갈증을 생수의 강처럼 끊임없이 채워준다는 말씀아닙니까? 우리는 이 성령님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가? 로마서 5:5-8절까지를 보겠습니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가 가진 소망이 가짜가 아닌 이유는)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하니님의 사랑때문이다 체험적 증거가 있다) 6 (왜냐하면)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이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실 때 그냥 부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연약한 자,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해 죽으셨다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사실보다 더 놀라운 깊은 사랑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음 절에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시는지 또 하나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7 (왜냐하면)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보여주시기 때문이다.”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죄인을 위해서 죽으신 그 사건이 - 성령님을 통해서 - 오늘 지금 이 시간 죄인인 나를 위한 현재적인 사랑의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은 우리의 심령 속에서 지속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현재적인 것으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 분의 죽음으로 내가 현재적으로 누리는 자유와 확신과 소망과 목적과 정체성을 생각하게 하고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고, 그 사랑에 의해 지배받고 그 사랑이 자신의 삶을 통해 흘러넘치게 하는 것..그리하여 열매를 맺게 하는 것. 그 것이 주님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삶이요 사랑의 삶인줄 믿습니다. 메마른 광야와 같은 힘든 세상 속에 살면서도 항상 넘쳐흐르는 생수같은 성령님 때문에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성령님을 경험하기 위한 조건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그리스도께 나아간다는 것과 성령님을 찾는 것과 같은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이 주는 것으로 갈증을 채우고 배불러 있다 보니까 영적인 갈증도 영적인 배고픔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 가운데 그에게 나아가는 데 방해되는 것이 있다면 제하여 버려야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가고 체험케 하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 깨달아가려면, 성령님께 수시로 나아가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그 분앞에 될 수 있는데로 자주 나아가시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고 더욱 깨달아 아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어제 아침에 저는 아주 짧고 싱거운 꿈을 꾸었습니다. 장소는 어떤 관공서같은 곳인데 여러개 창구가 있고 각 창구마다 줄이 있는데, 손님은 딱 두 사람밖엔 없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다는 것을 보고하기 위해서 서로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느냐에 따라 상당한 보상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게 끝입니다. 그리고 깨어났습니다. 아주간단하고 싱거운 꿈이었지만, 제겐 기억에 남는 중요한 꿈이었습니다.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심을 해도 시간을 낭비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계획을 잘 세워서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시간을 잘 관리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좀 전에 말씀드린 그 꿈속에 나타난 자매님은 제가 아는 자매인데 인생을 열심히 사는 자매입니다. 잠자는 시간을 아껴서 공부하고 자기 목적을 세운대로 하나 둘씩 성취해가는 자매입니다. 시간을 알차게 활용하는 자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녀의 삶 속에 하나님을 위한 시간은 전혀 없습니다. 그녀는 동정심도 있고 착한 성품을 가졌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때문에 너무 바빠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알기로는 그 녀는 친구가 전혀 없습니다. 시간을 잘 관리하여 아껴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위해 시간을 쓰느냐 하는 인생의 목적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나를 위해서 사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사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사람들을 위해서 시간을 사용하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 안하고 즐겁게 사용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성경의 수 많은 명령이 있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명령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라는 명령과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는 명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수 많은 메시지와 명령이 있지만 본뜻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은 여러가지 중요한 명령 중의 하나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명령이요. 모든 명령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지로, 구약 선지자들의 멧시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멧시지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들을 박해하고 죽이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삶 가운데서도 경험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저를 사랑하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제가 여러분을 사랑하기에 행복함을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릭 워렌 목사님은, 많은 사람들의 임종을 곁에서 지켜보았는데, 그 인생의 가장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졸업장이나, 재산 증명서나, 업적이나 성과를 찾는 사람은 없었고, 사랑하고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그 마지막 순간에 사람들은 그들이 맺어왔던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삶의 전부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이 세상에 오셔서 최후의 심판을 하실 때, 그 분의 심판의 기준은 나그네 된자, 병든자, 옥에 갖힌 자, 헐벗은 자, 배고픈 자를 돌보았는가가 기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어려움 가운데 있는 이웃을 돌보는 것이 예수님 자신을 돌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런 선행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임을 압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다면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가르쳤을 뿐 아니라, 그 분 자신이 사랑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이 세상에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막 10:45)
이렇게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계명을 지키는 것이요, 인생의 끝날에 가장 의미가 있는 삶이요, 주님의 심판을 준비하는 삶이요, 예수님을 본받는 삶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삶이야 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가장 잘 사용하는 삶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가 어떻게 이런 사랑의 삶을 살 수 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불과 몇시간 전에 하신 말씀인데, 서로 사랑하되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이 계명을 통해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기 전에 나의 사랑을 받으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다른 형제를 사랑하는 것 너무나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그에 앞서 내가 해야할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것이란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랑은 우리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일 4:7) 그래서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9)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서로 서로 사랑해야하는 가를 다루기 전에,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야합니다.
1. 먼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거나 경험하려며 복음을 받아들여야합니다.
먼저, 여러분들에게 질문하므로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나누기를 원합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명령을 하실때, 제자들이 예수님이 자신들을 얼마나 어떻게 사랑했는지를 알았을까요?
지금 이 명령은 이미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마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후에 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이 최후의 만찬을 마칠 무렵 제자들은 자기들중 누가 가장 큰 자인가를 놓고, 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눅 22:24) 그리고 요한복음 13:3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명령을 하시기 바로 전에,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밀고하기 위해서 그 자리를 떠난 뒤였습니다. 그러니까, 3년동안 제자들은 사랑의 예수님과 함께 삶을 같이했다지만, 전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요일 3:16 )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 것을 알아야만 예수님의 사랑을 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 것을 알지 못한다면, 예수님과 3년을 동거동락했어도 예수님의 사랑을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집안 형제들처럼 수십년을 알았어도 예수님의 사랑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사도바울이 고백했던 것처럼,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 그런 사랑을 알 때 알게되는 사랑을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 사랑을 언제 어떻게 알게되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깨달았습니까? 아닙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마음 아파하며 안타까와 하였겠지만,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죄를 위하여 죽는다고 알거나 믿고 있었던 제자들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어떻게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그 사랑을 알게되었는가? 예수님께서 13장에서 이 명령을 하신 뒤, 곧 이어 요한복음 14장과 15장과 16장에 계속적으로 어떤 분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에 대해서 말씀하셨을까요? 그 분이 보내실 성령님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 영이 나를 위하여 증언하실 것이다.” (요 15:26; 14:26 16:14) 성령님을 통해서만 예수님께서 바로 죄인인 나를 위해서 죽으신 그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신 뒤, 10일만에 오순절에 성령님께서 제자들 위에 임하셨고, 제자들은 성령님의 증언을 통해서 예수님의 죽음이 바로 자신들의 죄를 위한 죽음이었음을 깨닫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는가를 깨닫고 알려면 반드시 두가지 사실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역사적 사실과 성령님의 도우심입니다.
저는 수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음성을 듣거나 환상을 통해 하나님을 체험하겠다고 기도원에 가는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까? 특별한 축복을 받거나 체험을 했기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기적을 보거나 체험했기 때문입니까? 이런 체험들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을 수 있을까요? 고린도전서 1장에보면, 유다인들은 기적을 통해서, 그리이스인들은 지혜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려고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도록 하나님이 선택하신 방법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그리스도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지만, 성경은
이 것을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는가를 깨닫고 알려면 반드시 두가지 사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역사적 사실과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복음에는 이 두가지 사실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과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던 성령님의 해석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골로새성도들에게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고 말합니다. (골 1:6) 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구원하는 복음을 듣고서 그리스도를 믿었으므로, 약속하신 성령의 날인을 받았습니다” (엡 1:13) 그리고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성령을 받게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는 첫번째 단계는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것은 마치 결혼하는 부부와 같습니다.처음부터 상대방을 100% 다 알고 결혼할 수는 없지만 결혼생활을 하면서 배우자를 좀 더 알아가게 되듯이,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복음을 듣고 믿으므로 그 분을 받아들이면,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거하시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 알고 경험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분들은 이 과정을 겪었습니다. 이제 이미 복음을 믿고 예수님을 이미 영접한 자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 알아갈가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2. 다시 한번 주님의 말씀을 읽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번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삶에 앞서,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해야겠다는 다짐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신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만 초점을 둔다면 자칫 율법적인 신앙생활을 하기가 쉽습니다. 실지로, 우리의 목자되신 예수님께서 양들인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주신 것은 우리로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삶을 누려야 이 풍성한 삶을 다른 분들에게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큐티를 한지 비교적 오래되었고, 큐티를 통해 주님의 은혜를 경험할 때가 많이 있지만, 큐티를 할 때 즐거움보다 의무적으로 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작년 말부터 내 삶의 적용을 위한 큐티도 중요하지만, 우선 내 삶이 풍성함을 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풍성한 삶을 살도록 자신의 목숨을 주셨으니까, 주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시므로 내가 갖게된 축복들, 내게 주신 특권과 새로운 정체성과 소망과 목적 등등을 매일 우선적으로 묵상하며 주님의 풍성한 사랑을 느끼며 제 영혼이 행복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그 시간을 기다리며 복된 시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일생동안 15만명의 고아를 돌보았던 죠지뮬러도, 14년동안 항상 간구하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다가 간구하는 기도대신 자신의 영혼을 행복하게 하는 시간으로 시작했다고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첫번 째로 염려해야할 일은 내가 얼마나 주님을 섬길 수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내 영혼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가 또, 나의 속 사람이 어떻게 영의 양식을 공급받을 수 있을까 이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형제를 사랑해야하는 것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을 먼저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주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지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7:38-39절을 보겠습니다.
주님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지금 예수님께서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늘에서 영광을 받으셔야만 성령님이 오실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성령님께서 배로 상징되는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내면의 갈증을 생수의 강처럼 끊임없이 채워준다는 말씀아닙니까? 우리는 이 성령님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가? 로마서 5:5-8절까지를 보겠습니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가 가진 소망이 가짜가 아닌 이유는)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하니님의 사랑때문이다 체험적 증거가 있다) 6 (왜냐하면)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이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실 때 그냥 부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연약한 자,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해 죽으셨다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사실보다 더 놀라운 깊은 사랑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음 절에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시는지 또 하나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7 (왜냐하면)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보여주시기 때문이다.”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죄인을 위해서 죽으신 그 사건이 - 성령님을 통해서 - 오늘 지금 이 시간 죄인인 나를 위한 현재적인 사랑의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은 우리의 심령 속에서 지속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현재적인 것으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 분의 죽음으로 내가 현재적으로 누리는 자유와 확신과 소망과 목적과 정체성을 생각하게 하고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고, 그 사랑에 의해 지배받고 그 사랑이 자신의 삶을 통해 흘러넘치게 하는 것..그리하여 열매를 맺게 하는 것. 그 것이 주님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삶이요 사랑의 삶인줄 믿습니다. 메마른 광야와 같은 힘든 세상 속에 살면서도 항상 넘쳐흐르는 생수같은 성령님 때문에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성령님을 경험하기 위한 조건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그리스도께 나아간다는 것과 성령님을 찾는 것과 같은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이 주는 것으로 갈증을 채우고 배불러 있다 보니까 영적인 갈증도 영적인 배고픔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 가운데 그에게 나아가는 데 방해되는 것이 있다면 제하여 버려야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가고 체험케 하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 깨달아가려면, 성령님께 수시로 나아가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그 분앞에 될 수 있는데로 자주 나아가시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고 더욱 깨달아 아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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