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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만족하라” (디모데전서 6:6-10) 9/1/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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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만족하라” (9/1/19)  디모데전서 6:6-10

“자족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경건이 큰 이득을 줍니다. 7 우리는 아무것도 세상에 가지고 오지 않았으니, 아무것도 가지고 떠나갈 수 없습니다. 8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9 그러나 부하려 하는 자들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도 해로운 욕심에 떨어집니다. 이런 것들은 사람을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합니다. 10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좇다가, 믿음에서 떠나 헤매기도 하고, 많은 고통을 겪기도 한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지난 주에 저는 제가 꾼 꿈 이야기로 설교를 시작했고, 또 그 전 설교도 제가 꾼 꿈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전 꿈 이야기로 설교를 시작하려고합니다. 저는 개꿈도 많이 꾸지만 때론 꿈 속에서 나 자신의 감추어진 모습 혹은 나의 참된 모습을 보게될 때가 있습니다.  제가 지금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꿈은 지금부터 6년쯤 전에 꾸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미 나누었던 것입니다.  그 꿈속에서 저는 빌게이츠와 같은 아주 돈이 엄청 많은 갑부를 만났는데요.  이 분이 제 조카에게 갖다 주라고  5억불인지 50억원인지에 해당하는 체크를 주었습니다.  저는 이 체크를 제 조카에게 갖다 주면서, 이제는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흥분과 감격에 휩싸여서 너무나도 좋아하는 자신을 경험하었습니다.

꿈에 불과 했지만, 돈때문에 그토록 감격하고 기뻐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내가 돈을 사모하고 좋아하고 의존하는지를 보게되었습니다.  (6년전 꿈이니까, 요즘은 제가 복음을 계속 묵상하면서 좀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꿈을 통해서, 말로는 믿음 믿음 하면서도, 실지로 제가 갖고 있던 수 많은 갈증과 열망과 소위 풍성한 삶에 대한 갈망은 실지로 돈만 있으면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을 내 자신이 갖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말씀을 묵상하며 설교하고 가르치는 목사도, 돈에 눈이 뒤집혀서 도박에 중독된 사람과 같이 그 내심에는 뭐니 뭐니 해도 돈이 최고다란 생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지로, 지금 한국뿐 아니라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로 섬겼던 목사님이 돈문제로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명성교회도 세습의 문제로 교계 뿐 아니라 한국 사회를 시끄럽게 하고있지만, 세습문제는 결국 돈문제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만약, 이 목사님들에 대한 비난이 사실이라면,  그 분들이 했던 수 많은 설교와 수 많은 기도는 가짜였는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꾸었던 꿈을 생각해볼 때, 저 역시 현실과 믿음 사이에서 돈 문제때문에 현실을 택하기 쉽겠다란 생각을 해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도 조심하면서 오늘 설교제목대로 우선 제 자신이 “주안에서 만족하는”목사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주 안에서 만족하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플로리다주에, 구세군에서 운영하는 상담기관이 있습니다. 특별히 도박으로 인해서 가정과 인생이 파탄에 이른  사람들을 상담하고 돕고있는 기관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 기관에  800만불을 기증하겠다는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구세군에서는 그 헌금을 거절하였습니다.  이 800만불을 기증하기를 원했던 사람은 N. Carolina에 사는 Jack Whittaker란 크리스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2002년도에 314.9 million dollar 그 당시까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액수의 복권을 타게되었습니다.  그 당첨된 금액중 일부를 구세군에 기증하겠다고 제안한 것입니다.

그러나, 구세군에서 800만불의 헌금을 안받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이 도박으로 인해 피해 본 사람들을 상담하면서,  복권으로 얻은 수입을 기금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복권도 도박과 같은 것으로 간주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복권도 도박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우리들 중에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로또를 샀던 분들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당첨되면 반드시 십일조를 교회에 바치겠다고, 그리고 목사님과 가난한 성도들을 돕겠다고  하나님께 서원하며 당첨되게 해달라고 기도까지 했을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하나님께서 그런 기도를 안들어주셨습니다. 
그 기도를 들어주셨다면, 교회식구들이 모두 복권을 사기 시작했을 것이요. 우리 교회는 믿음과 사랑으로 소문이 난 것이 아니라, 복권교회로 소문이 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은 서원한대로 그 십일조를 바치겠다고 하면 21세기 침례 교회가 그 것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고, 자신이 정성스럽게 드린 십일조를 받지 않는다고 그 분은 시험에 들어 교회를 떠났을 수도 있습니다.  자칫 21세기 침례교회가 복권으로 망한 교회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로또를 선전하기 위한 광고의 표어가 ‘인생역전’이었습니다.  (이 것이 한번 사용했던것인지 계속적으로 사용하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이 광고의 요지는, 로또가 당선만 되면 새로운 인생,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나 과연 그렇습니까? 좀 전에 말씀드린  Jack Whittaker란 분은  3억불의 재산을 소유하게 되면서, 그의 돈을 노리는 여러가지 법적 소송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술에 빠지기 시작해서 그 다음 해에 음주운전으로 걸렸고, 그의 유일한 손녀는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결국 2년 후에 살해당했고, 7년 후에 그의 유일한 딸까지 죽었습니다. 그의 딸이 죽었을 때에 그는 신문기자들 앞에서 흐느끼며 그 복권이 당첨되었을 때에, 차라리 그 티켓을 다 찢어버렸으면 좋았을 것을 이라고 절규했다고합니다.  그는 크리스챤이라고 하면서도, 술과 스트립클럽과 도박에 중독이 되었고 결국  42년간 함께 살았던 아내하고도 이혼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인생은 로또때문에 완전히 비극적으로 역전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로또를 구입한다는 것은 한탕주의, 많은 돈만 있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물질주의, 요행주의등 이 세대의 잘못된 풍조와 사상에 동조하고 동참하는 것이므로 멀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에 의하면, “부하려 하는 자들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도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게 하고, 사람을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인생의 목적을 부하게 되는데 두는 자는 타락하게 되어 있고 파멸하게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요, 돈을 좇다가, 믿음에서 떠나 헤매기도 하고, 많은 고통을 겪을 수도 있다고 말씀합니다. (딤전 6:9-10)

물론 이말은 부하게되면 안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문제이지 돈 자체가 악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실지로,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부유함으로 많은 사람들을 돕고 복음전파를 위해 자신들의 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진 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부하게 되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히 부하게 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사는 삶은 파멸의 길로 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삶을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삶이라고 평가하셨습니다. (눅 12:21)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하여가 아니라 자신을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부자가 되려는 것에 대해서 경고하실까요?  부자가 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보다 돈을 의존하는 삶을 살겠다는 소원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지상에서는 부자로 살지 모르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점 점 궁핍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눅 16:13)  재물을 위해 사는 삶은 우상숭배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병행될 수 없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오히려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돈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백성이 멸망한 이유가 우상숭배 때문이란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과 선지자와 제사장등 종교지도자들까지도 하나님 보다는 돈을 사랑하고 탐욕에 빠졌기 때문에 멸망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탐욕은 우상숭배라고 말했던 것처럼, 저들은 돈을 숭배하였기 때문에 멸망한 것입니다. 렘 6:13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힘 있는 자든 힘 없는 자든, 모두가 자기 잇속만을 채우며, 사기를 쳐서 재산을 모았다. 예언자와 제사장까지도 모두 한결같이 백성을 속였다.” (8:10) 결국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도 탐욕때문에 돈을 사랑했기 때문에 멸망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부요케 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삶으로부터, 돈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자유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8절에 보니까,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라고 말씀합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 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니까 부요케 되고저 하고,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바울이 살던 시대보다는 훨씬 더 복잡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경제문제가 옛날처럼 단순하지 않기떄문에 이 말씀을 적용하는데 있어서 지혜와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우리가 부요케 되는 것에 집착하고 돈에 빠지게 되는 것은 만족하지 못하는데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70대 분들은 집에 라디오가 한대 있었으면 참 행복하겠다고 느끼던 시대를 경험하였습니다. 저는 60대로서, 어렸을 때 집에 TV set 한대만 있다면 너무 행복할 것 같은 시대를 경험하였습니다. 50대와 40대는 아마도 차 한대 있으면 행복할 것 같은 시대를 살지 않았나 상상해봅니다.  지금은 옛날에는 상상도 못했을 차를 두대씩이나 소유했으니까 대만족을 하고 있어야할텐데… 과연 그렇습니까?
여러분들은 현재 살고 있는 그 환경과 여건 속에서 감사하고 계십니까, 만족하고 계십니까?
저는 중남미 분들이 한집에서 여러가구가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국 사람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열악한 분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 사람들에 비해 좀 더 만족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해봅니다.  지금 바로 이 시간에도 이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밥 새끼만 제대로 먹을 수 있다면 만족하겠다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들이 현재 소유한 것으로 만족할 줄 모르면 새로운 것을 가진다고 해서 만족하게될까요?  우리들은 부자들을 부러워하며, 재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부러워할지 모르지만, 실지로 재벌들에게 만족과 행복이 있습니까? 그들이 일반사람들보다 더 편하고 안락한 환경 가운데서 사는 것은 분명하겠지만, 이들이야말로 항상 돈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아까 Whittaker란 사람도, 실지로 복권을 타기 전에도 이미 백만장자였다고합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만족이 없었고 결국 복권까지 사게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돈 좋아하는 사람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리 많이 벌어도 만족하지 못하니, 돈을 많이 버는 것도 헛되다.”고 말합니다. (전 5:10)

그러나, 오늘 본문 6절에 보니까, 자족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경건이 큰 이득을 준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NLT 성경은,  “만족할 줄 아는 경건 자체가 큰 재산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경건한 자는 비록 가난하더라도, 마치 큰 재산을 소유한 것처럼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경건이란 부를 추구하거나 돈을 사랑하기 보다는하나님을 추구하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만족을 구하는 삶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돈의 여부와 상관 없이 만족할 줄 아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히브리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히브리서 13: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십시오. (왜냐하면) 주께서는 "내가 너를 떠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 다.”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심을 믿으니까, 지금 가진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4:13-14  주님께서 만이 영원한 만족을 주시는 분이심을 선언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갈릴리 사람들에게는 “내가 생명의 떡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요 6:35) 

또, 유대사람들에게는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로 와서 마셔라. 38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이 말한 바와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인간의 배고픔과 갈증을 채워주시고 참 만족을 주시는 분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이런 참된 갈증의 해결, 만족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이 대답이 우리가 복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들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기 위해서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 10:10-11)  예수님이 오신 것은 양으로 경제적으로 부하게 살도록 오신 것이 아닙니다. 양들이 생명을 얻도록 풍성한 삶을 살도록, 만족한 삶을 살도록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서  오셔서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 것입니다.  돈이 있던 없던, 부유하던 가난하던 상관 없이 양들이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이런 풍성한 생명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만족스런 삶을 살고 계십니까? 저는 이 질문이 너무나도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금 이제것 말씀드린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며,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는 예수님의 약속은 단지 희망사항이 아니라, 바로 이것을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고, 이 것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풍성한 삶을 살도록, 만족의 삶을 살도록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고 죽으셨다면, 풍성한 삶, 주 안에서 만족한 삶을 사는 것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요 우리가 반드시 누려야할 특권이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특권적인 삶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풍성한 삶,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12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13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11-13)

지금 사도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만족하면서 살고 있다는 고백입니다.  아무 것도 없을 때, 굶주릴 때, 궁핍 할 때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기 때문에 만족한 것을 배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무 것도 없을 때든, 굶주릴 때든, 궁핍 할 때든 어떤 상황속에서도 자신에게 능력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환경에 상관 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정말 바울은 굉장한 수준의 신앙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보면, 사도바울이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한다”라고 말하지 않고,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또,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바울도 전에는 자족하는 법을 몰랐고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몰랐다는 뜻입니다.  주 안에서 자족하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도 자신이 앓던 병 때문에 만족하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3번이나 낫게 해달라고 간절히 간구하였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응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괴롭혔던 병에서 고침을 받지 못했지만 주님의 은혜가 족하다는 것을 듣고 받아들였 습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신 그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 은혜가 자신에게 필요한 전부라는 것을 배우고, 받아들인 사람은 주 안에서 자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 안에서 자족 한다는 것을 배운다는 것은 주의 은혜가 내가 필요한 전부다라는 것을 배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것은 바울과 같은 위대한 사도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8장에 보면, 마케도니아에 있는 교회들은, 그러니까 빌립보교회와 데살로니가 교회는 큰 환난의 시련과 극심한 가난에 쪼들렸음에도 그들에겐 기쁨이 넘쳤고, 넉넉한 마음으로 다른 성도들을 도왔습니다.  다른 성도들을 돕되 힘에 지나도록 자원해서 베풀었고, 다른 성도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특권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기회를 달라고 오히려 간절히 요청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박해와 극심한 가난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안에 만족을 누렸기 때문입니다.

또 베드로는 여러 가지 시련을 겪고있는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그들이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으로 넘쳐 있다고 그들을 칭찬하였습니다.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을 누리는 것” 이 것이 풍성한 삶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만족한 삶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어려움 가운데서 궁핍가운데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만족을 누리는 자들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빌립보교회와 데살로니가 교회등 마케도니야에 있는 교회들에 대해서는 (고후 8: 5)  “그들이,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가 기대한 이상으로, 먼저 자신들을 주님께 드렸다.”고 설명합니다. 주님께 헌신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들이 “예수를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였고, 또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설명합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고 만족했던 그들의 초점은. 주님 자신과 주님께서 베푸신 구원에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도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물과 주리지 않을 양식을 아무에게나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내게로 오는 사람은 주리지 않을 것이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로 와서 마셔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 안에서 만족하려면 그에게 나아가야합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물을 마시려면 그에게 나아가야합니다.  주님은, 자신만이 영원한 만족을 주시는 분이심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시므로, 그 분은 우리가 항상 그 분에게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분이 되셨습니다.  (살전 5:10) 그러나, 우리가 해야할 일은 한가지입니다. 그가 주는 양식을 먹고 그가 주는 물을 마시기 위해 그 분에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 예수님께 나아가고 있습니까? 예수님께 우리 자신을 드렸습니까? 예수님을 눈으로 뵙지 못하나 그를 사랑합니까?

성경이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어려운 때가 오는데  그 때의 특징이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한다”라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사랑치 않으며, 하나님과는 상관 없는 것에서 만족을 구하는 시대가 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때를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시대라고 말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즉  겉으로 볼 때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 같으나 그 속 내용을 살펴보면 예수님이 전혀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삶을 말합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세상사람들이 추구하는 갈증으로 욕망으로 가득차 있어서, 주안에서의 만족을 모르고, 주 밖에서, 즉 세상에게서 만족을 찾는 시대가 올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그런 시대가 아닐까요? 이 것이 혹시 이미 우리 자신들의 모습은 아닙니까?

저와 여러분은 지금 격렬한 영적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적 싸움은 주 안에서 만족을 구하는가 아니면 주님 밖에서 만족을 구하는가의 싸움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 말씀은 “내 사랑이 네가 필요한 전부이다”란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 분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만족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그의 생명을 주시고 그와의 영원한 관계성을 주셨습니다. 이 것이 구원입니다. 지식을 초월한 사랑을 주셔서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그에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의 의로움으로 우리를 입혀 주셨고, 영원한 생명과 함께 하늘나라의 상속을 주시고, 절대적인 목적과 소망과 하나님의 자녀란 정체성을 주시고, 우리를 그의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은이나 금으로가 아니라, 흠이 없고 티가 없는, 어린 양의 피와 같은 그리스도의 귀한 피로,  우리에게 주신 이런 귀한 것들로 우리가 만족을 못하고  주님 밖에서 만족을 구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은혜와 희생을 헛되이 여기는 것입니다.

날마다 그 분 앞에 나아가서 그 분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당신의 사랑이 내게 필요한 전부입니다란 고백으로 예배하는 삶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부해지려는 유혹과 돈을 사랑하려는 탐심으로부터의 자유를 배우고 경험하며 주안에서 자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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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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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만족하라” (9/1/19)  디모데전서 6:6-10

부자가 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부하게 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사는 삶은, 돈을 의존하는 삶을 살겠다는 뜻으로 하나님과 멀어질 수 밖에 없다.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대로 돈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병행될 수 없다. 부요케 되고저 하는 것은,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데서 온다.  전쟁 중에는 식사만 제대로 할 수 있어도 만족할 수 있었고,  지금 바로 이 시간에도 이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밥 새끼만 제대로 먹을 수 있다면 만족하겠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들이 현재 소유한 것으로 만족할 줄 모른다면 추구하는 부를 가진다고 해서 만족하게될까?  전도서 기자는 “돈 좋아하는 사람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리 많이 벌어도 만족하지 못하니, 돈을 많이 버는 것도 헛되다.”고 고백한다. (전 5:10)

반면, “자족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경건이 큰 이득을 준다” 만족할 줄 아는 경건 자체가 큰 재산이라는 뜻이다. 부대신 하나님을 추구하는 자들은 부자처럼 만족할 줄 안다는 뜻이다.  주님께서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라고 선포하셨다. (요 6:35)  주님께서 친히 인간의 배고픔과 갈증을 채워주시고 참 만족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님을 보내주시고 그의 백성들과 항상 함께 거하게 하셨다.

바울은 이 예수님때문에 아무 것도 없을 때, 굶주릴 때, 궁핍 할 때도 만족하는 것을 배웠다. 물론, 바울도 자신이 앓던 병 때문에 만족하지 못하고, 주님께 3번이나 낫게 해달라고 간절히 간구하였을 때, 고침을 받지 못했지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 안에서 자족한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주의 은혜가 그가 필요한 전부다라는 것을 배운 것이다.

주님께서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로 와서 마셔라”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만족할 물을 주시는 분은 주님이시지만, 물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그에게 나아가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 분에 대한 갈증이 있는가?  마지막 어려운 때에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게된다. 하나님보다는 하나님과는 상관 없는 것에서 만족을 구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세상사람들이 추구하는 갈증으로 욕망으로 가득차 있어서, 주안에서가 아니라, 주 밖에서 만족을 찾는 시대를 말한다. 이 것이 혹시 이미 우리 자신들의 모습은 아닐까?

우리는 지금 격렬한 영적 싸움을 하고 있다. 이 싸움은 주 안에서 만족을 구하는가 아니면 주님 밖에서 만족을 구하는가의 싸움이다.  은이나 금으로가 아니라, 흠이 없고 티가 없는, 어린 양의 피와 같은 그리스도의 귀한 피로 주신 주님의 은혜 안에서 만족 못하고  주님 밖에서 만족을 구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은혜와 희생을 헛되이 여기는 것이다.  날마다 그 분 앞에 나아가서 그 분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그 분의 사랑이 내게 필요한 전부입니다란 고백으로 예배하는 삶이 있기를 소원한다.  그리하여, 부해지려는 유혹과 돈을 사랑하려는 탐심으로부터의 자유를 배우고 경험하며 주안에서 자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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