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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우울증을 극복할 것인가? 9/15/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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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우울증을 극복할 것인가?

지난 월요일 오전에 Riverside에 있는 Harvest 교회의 Jarried Wilson 목사님이 장례식을 주례했습니다.  안타깝게 이 장례식은 예수님을 믿고 사랑했지만, 자살한 자매를 위한 장례식이었습니다.

이제 제가 짧은 비데오를 보여드리겠는데, 이 비디오는 장례식을 추례했던 그날 저녁 7:30 pm 쯤에 , Jarrid 목사님이 아들과 함께 노는 장면을 그 아내가 찍은 것입니다. (at our son’s baseball practice.)  https://www.instagram.com/p/B2QdHx1gtYQ/?utm_source=ig_web_button_share_sheet

그리고 아들과 이렇게 논 후 불과 4시간 후 그 날 자정이 되기 바로 전에 이 목사님이 자살을 했습니다. 너무나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이해가 되십니까? 그리스도인이 자살한다는 것이 이해가됩니까? 더 더욱 목사가 자살한다는 것이 이해가 됩니까?  저는 자살하기 불과 4시간 전에 찍은 이 비데오를 보면서, 조금 두려운 생각이 떠 올랐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태연해 보이지만, 우리들 가운데 속으로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시는 분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쳐갔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살한다 그러면 우리는 믿음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거나, 심지어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살한 사람은 지옥에 간다고까지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만약 제가 예수를 믿는다고 잡혀서 고문을 받게 되었는데, 그 고문을 견딜 수 없어서 스스로 자살하였다면 제가 지옥에 갈까요?  당연히 천국에 갈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만, 정신적인 고통이 너무 커서 참을 수 없어 자살했다면 당연히 주님 곁으로 가게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우울증때문에 자살하는 분들이 주님을 덜 사랑하거나 믿음이 약해서 그런 것일까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떤 목사님 사모님은 밤낮 없이 기도를 그렇게 많이 하시는 분인데도 불구하고 우울증이 걸려 방안 한쪽 구석에서 울기만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경험을 하면서, 그 분의 남편인 목사님은 “신앙도 우울증은 이길 수 없다”라고 교회식구들에게 말했다고합니다.  실지로, 우울증때문에 자살하는 목사님이 이 번이 처음이 아니고, 이미 여러 목사님들이 자살을 했습니다. 작년 8월에도 치노에 있는 Inland Hills Church교회란 mega church라 그랬으니까 상당히 큰 교회의 30세의 Andrew Stoecklein란 목사가 “자신이 얼마나 우울증과 싸우고 있는지 설교한 후 몇 일 후에 자살했습니다. 지난 월요일에 자살한 목사님이나 이분이나 아내도 있고 어린 아들들이 있는 목사들이었는네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자살을 했겠습니까?  이 것이 우리 인간의 한계입니다.

여러분, 모세나 엘리야도 죽게해달라고 간청했던 것을 기억하시지요? 우리가 잘 아는 마틴 루터나 칼빈같은 위대한 종교개혁자들도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루터는  “고통은 내 도서관의 최고의 책이다 (affliction is the best book in my library)” 그리고 “그 고통의 책 중의 최고의 페이지는 가장 어둡고 우리의 영혼이 침몰할 때를 기록한 그 페이지인데 그 이름은 우울증이라는 페이지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우울증처럼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침례교 목사로서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설교자로 알려진 챨스 스펄젼 목사님도 1년에 두세 달씩 강단을 비워야 할 정도로 깊은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한번은 설교 도중 회중을 향해 “저는 아주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 어느 누구도 이런 극도의 비참한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랍니다”라며 우울증으로 인한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고합니다.

그는 자신이 겪고 있는 우울증의 고통을 묘사할 때 마치 자욱한 안개와 같이 형체도 없고 도저히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현상과 싸우는 절망의 상태라고 표현했습니다.  또, (스펄전은) 우울증의 고통이 대단히 사적이고 비밀스러워서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울증은 깊은 고독과의 싸움이라고 표현합니다. 영혼 깊숙이 전해오는 이 고통이므로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알 수도 없을 정도로 힘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한마디로, 견딜 수 없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이런 우울증을 앓게 되는가?  (인터넷에 보니까 다음과 같은 도표가 있어서 나눕니다)


http://www.samsunghospital.com/dept/medical/healthSub02View.do?content_id=862&cPage=1&DP_CODE=DEP&MENU_ID=004025&ds_code=D0001673&main_content_id=863

크게는 신체적인 원인: 노화, 유전적인 소인, 내분비 이상, 뇌 내 신경전달물질을 관리하는 체계에 이상
심리적인 원인: 스트레스, 성격적 특성, 대인관계의 문제, 아동기의 갈등

그러면, 우울증에서 어떻게 치료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병이 걸리거나 몸이 아플 때 의사를 찾아가는 것처럼, 만약 우리의 우울증이 노화, 유전적인 소인, 내분비 이상, 뇌 내 신경전달물질체계의 이상등 신체적인 원인과 관련이 있다면 정신과의사와의  상담이나 처방된 약을 통해서 치료될 수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자살을 한번이라도 심각하게 생각했다면 심각한 증세로서 정신과 의사를 만나서 도움을 받아야할 것입니다.

또, 일반적으로는 마음에 안정을 주는 음악이나, 휴식과 운동,  스트레스를 푸는 활동, 수면 잠자는 동안 치유되는 상처, 적당한 영양과 음식물 섭취, 영양소등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울증에 걸렸을 때, 의사의 도움이나 일반적으로 할 수 있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저는 두가지만 말씀 드리기를 원합니다.

첫번째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자신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권합니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절망과 낙심이라고 합니다. 앞길이 보이지 않고 막막하다고 생각이 들 때, 또는 산더미 같은 문제가 내가 가는 앞길을 막고 있다고 생각될 때, 큰 위험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고 느낄 때에 불안이 엄습해 요며 절망과 낙심으로 우리의 심령이 채워지게 되고, 이런 절망과 낙심이 최악의 경우 자살로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절망과 낙심이 우리 하나님의 백성에게도 찾아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을 읽어보면, 낙담과 우울과 절망의 감정과 싸우는 시편기자의 모습을 자주 읽을 수 있습니다. 시편 42: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편 43:5)

엘리야는 어떻습니까? 갈멜산에서 혼자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싸워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기도를 올리고, 3년 동안 비가 오지 않던 강산에 축복의 비를 몰고 오는 기도를 드렸던 믿음의 용사요 믿음의 거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세벨이 "내가 너를 반드시 죽이겠다."라는 이 한마디에 두려움에 사로잡혀, 유다의 브엘세바광야까지 도망쳐서, 이제 죽기를 원하는 절망의 사람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신 이세벨의 말이 자신을 지배하도록 허락한 것입니다.

결국, 누구의 말이 나를 지배하는 가의 문제입니다. 나를 죽이겠다는 말, 나를 절망과 낙망에 빠지게 하는 말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시편기자처럼  절망과 낙망의 감정이 몰려올 때도 하나님을,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고 선포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내가 내 자신에게 절망과 낙망의 말을 하려고 할 때 입닥치라고 말해야합니다.  대신, 내게 나쁜 소식이 아니라 기쁜 소식, 복음을 선포해야합니다.  다윗이  “찬양하라 내 영혼아!" 혹은 “내 영혼아, 주님이 베푸신 모든 은혜를 잊지 말아라.”라고 자기 자신에게 선포했던 것처럼  (시편 103:2)  환경이나 내 속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 명령하는 것입니다. 내 자신에게 믿음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내 자아야 너는 들어라, 너는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는 자다, 너는 용서 받은 자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혹은 딸이다.  너는 이 세상에서 잠간 고생하지만 영원한 하늘나라의 상속을 받은 자다. 너는 소망이 있는 자다. 너는 구원받은 자다.. 너는 사명자다.  기뻐하라 내 영혼아, 감사하라 내 영혼아.

성경의 진리의 말씀을 복음을 우리 자신에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John Piper) 롬 8:31-35
천민아 너는 들어라 하나님이 너를 위하신다면 누가 너를 대적할 수 있겠는가?  천민아 들어라,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너를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너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천민아  너를 의롭다 하신 이가 하나님이신데, 너를 택하신이가 하나님이신데 누가  너를 고발하겠느냐, 누가 너를 정죄하겠느냐.  천민아 너는 들어라,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 우편에서 너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가 예수님이신데 누가 감히 너를 정죄하겠느냐.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그 누가 너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마귀를 이기는 성령의 검이라고 하였습니다. 사탄이 우리에게 절망과 낙심을 가져다 줄 때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해야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축복과 위치에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큰 사랑과 소망 가운데 사는지. 우리 자신에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두운 생각, 걱정, 낙심, 절망의 생각이 우리를 엄습할 때마다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므로 마귀를 이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번째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는 우울증에 대한 극복으로 성도간의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고싶습니다.

저는 이번에 우울증에 관한 유튜브를 보면서 이런 댓글을 보았습니다. “저는 어렸을때부터 우울증 조율증 때문에 많이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가정환경 친구들의 따돌림 등등 고등학교때는 증상이 너무 심해서 병원에 입원까지 햇습니다 정말 우울증 안 걸린사람들은 정말 모릅니다 정말 우울증 걸린사람들한테 많은 위로와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의 마음을 먼저 알아주고 조금만 옆에서 케어 잘해주시면 우울증 나아질 겁니다”

“내가 우울할때.. 교회 친구들은 저에게 그후론 연락하지 않았네요..  교인의 우울증은 성도 간의 무관심도 기인합니다..  성도 간의 무관심은 목회자의 교회건물에 대한 집착 때문인것 같습니다”

사랑이 없는 인간간의 잘못된 관계가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 댓글을 보면 특별히 가정과 교회에서의 관계성이 언급됩니다. 가정이나 교회나 하나님이 직접 장조하신 기관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넘쳐야할 기관입니다. 그런데, 이 가정이나 교회에서 사랑을 경험하지 못할 때 우울증에 걸리거나 악화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반면 가정이나 교회에서의 진정한 사랑의 관계가 우울증을 치료할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서두에 말씀드렸지만, 왜 의외로 목사님들이나 목사 사모들 가운데도 우울증을 앓는 분들이 많은가? 스펄젼 목사는 교회 지도자의 고립이 우울증의 원인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교회에서 주님이 지도자의 위치로 높이신 사람은 높은 위치에 있는 만큼 외로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가 고립이 되어 연약한 순간이 올 때에 성도들의 동정을 받지 못하고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칫 목사님들이나 목사 사모님들은 성도들을 목회대상으로 생각하지, 삶을 나눌 친구로 생각치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외로움을 느끼고 우울증에까지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참목자이신 예수님도 우리를 친구로 여기셨다면 목사들도 당연히 성도들과 함께 친구로서 삶을 나눌 수 있어야합니다.  다행히 저는 어떤 목사님들처럼 일주일에 7번이상 설교해야하고 항상 교인들에게 가르치고 인도해야만 하는 상황이 아닌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교회 장막 모임과 남전도회 모임을 즐깁니다.  목사로서 그냥 참석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사랑을 느끼고 격려를 받습니다.  여러분이 새로운 목사님이 오시면 가능하면 가끔이라도 장막 모임에 참석할 수 있는 분 그리고 남전도회도 함께 참여하는 분이었으면 좋겠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요 친구로 대할 수 있는 분이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월요일에 Jarrid란 목사님이 바로 그날 오후 2시에 인터넷 트윗을 통해 다음과 같이 글을 올렸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자살하기전 마지막으로 올린 트윗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자살 충동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Loving Jesus doesn’t always cure suicidal thoughts.)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항상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항상 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후 오는 스트레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항상 염려를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친구로서의 감정과 위로를 주시지 않는 분이란 의미는 아니다. 그는 항상 친구로서의 감정과 위로를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면서 그는 항상이란 말을 대문자로 (ALWAYS) 강조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우울증을 앓을 떄도 심지어는 그가 자살하면서도 주님과 교통할 수 있었다는 말로 저는 해석합니다)

이 글에 대해서 수 많은 반응 댓글이 있었는데요, 제일 처음 댓글을 쓴 분이 단호하게 이렇게 글을 남겼습니다. “진정으로 신뢰하다면 예수님을 신뢰한다며 우울증도 고쳐주실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이다”  (TRUSTING Jesus cures us.  He came that we may have life.  John 10:10” 그 바로 뒤의 댓글이 이렇게 답합니다.  “천국이 아닌 이 땅에서는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더라도 병이 안날 수 있다”라고 답합니다.  여러분들은 이 두사람중 누구의 생각에 동의하십니까?

저는 어떤 견해가 옳은가를 생각하기 전에,  과연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뜻이 무언이가를 살펴보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내 계명을 받아서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분의 계명이 무엇이지요?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입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15장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안에 거하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사랑안에 거하려면 해야할 일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나의 계명을 지키면, 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10, 12 나의 계명은 이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1 내가 너희에게 이러한 말을 한 것은, 나의 기쁨이 너희 안에 있게 하고, 또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내가 다른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며, 형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주님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다는 말씀 아닙니까?  이 것이 우울증을 극복하는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과 완전한 사랑의 관계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아니하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남자란 인간이란 말로도 번역되는 말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과 완전한 사랑의 관계를 가지더라도 우리는 또한 다른 인간과의 사랑의 관계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Jarrid목사님이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해도 때론 고칠 수 없는 것 중에 하나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뒤에 오게되는 스트레스를 말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들이 큰 충격을 받고 정신적으로 계속 어려움을 겪는 것입니다.  그런데, 월남전에 참여했던 군인들이 아프가니스탄 전에 참여했던 군인들에 비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덜 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까, 월남전 후에 군인들을 미국으로 후송할 때에는 배를 타고 돌아오면서 병사들은 자신의 아픔에 대해서 서로 마음껏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그 반면에 오랜 세월이 흘러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본국으로 후송되는 미군들은 비행기로 하루만에 돌아오느라 서로 나누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들어주는 것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울증에 관한 책을 쓴 강선영이란 분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누군가 상대와의 사이에 따뜻한 사랑이 느껴지면 소통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곧 우울한 느낌도 사라지게될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또한 형제자매와의 사랑과 격려가 필요합니다.  Jason 홍 목사님이, 말씀과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왜 내게 기쁨이 없는지 모르겠다고 제게 나눈 적이 있다고 말씀드렸지요. “분명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빌립보서 4:4절에 말씀했는데 홍목사님에게는 기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빌립보서 4:1절에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러므로 사랑하고 사모하는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나의 기쁨이요 나의 면류관인 사랑하는 여러분”이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에게도 기쁨이 되는 형제가 있었고 필요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이렇게 편지합니다."우리가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주께서 여러분끼리 서로 나누는 사랑과 모든 사람에게 베푸는 여러분의 사랑을 풍성하게 하고, 넘치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그래서 주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굳세게 하셔서, 우리 주 예수께서 그분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잡힐 데가 없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살전 3:12-13)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굳세게 해주시만, 어떻게 굳세게 해주십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사랑과 서로간에 사랑이 풍성할 때…
 
야고보서 5:14  “여러분 가운데 앓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십시오. 그리고 그 장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15  믿음으로 간절히 드리는 기도는 앓는 사람을 낫게 할 것이니, 주께서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죄를 지은 것이 있으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여러분은 서로 죄를 자백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이 나음을 받게 하십시오. 의인이 간절히 비는 기도는, 큰 효력을 냅니다.”

이 앓는 사람 가운데는 우울증도 포함되어야합니다.  도움을 구하라고 말합니다.  장로들이 기도할 때 낫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로를 위해 기도하기 전에 서로의 죄를 자백할 수 있을 정도로 스스럼 없는 관계가 되어야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요일 4:1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분의 약속과 소망의 말씀을 우리 자신에게 선포하며, 하나님이 우리의 복과 기쁨이 되고, 우리가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므로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이 되어, 우울증까지라도 극복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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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no_profile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우울증은 찾아오고 때로는 이로 인해 자살까지 하는 경우가 있다. 왜 이런 우울증을 앓게 되는가? 크게는 신체적인 원인 (노화, 유전적인 소인, 내분비 이상, 뇌 내 신경전달물질을 관리하는 체계에 이상)과 심리적인 원인 (스트레스, 성격적 특성, 대인관계의 문제, 아동기의 갈등)이 있다고한다. 병이 걸리거나 몸이 아플 때 의사를 찾는 것처럼, 우리의 우울증이 신체적인 원인과 관련이 있다면 정신과 의사의  처방을 통해서 치료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일반적으로 마음에 안정을 주는 음악이나, 휴식과 운동,  스트레스를 푸는 활동, 수면, 적당한 음식물과 영양소등도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의사의 도움이나 일반적인 방법외에 그리스도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첫번째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에게 복음을 선포해야한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절망과 낙심이이요, 이 절망과 낙심이 자살충동까지 일으킨다. 시편에서 낙담과 우울과 절망의 감정과 싸우는 시편기자의 모습을 자주 읽을 수 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그러나 시편기자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라고 자신에게 선포한다. (시편 42:11) 반면, 갈멜산에서 혼자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싸워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기도를 올리고, 3년 동안 비가 오지 않던 강산에 축복의 비를 몰고 오는 기도를 드렸던 믿음의 용사인 엘리아는, 이세벨이"네가 너를 반드시 죽이겠다"라는 한마디에 두려움에 사로잡혀, 브엘세바광야까지 도망쳐서, 죽기를 원하는 절망의 사람으로 전락해 버렸다.

결국, 누구의 말이 나를 지배하는 가의 문제이다. 엘리야처럼 자신을 죽이겠다는 이세벨의 말이, 지배하게 하는가 아니면, 시편기자처럼 절망과 낙망의 감정이 몰려올 때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고 선포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절망과 낙망의 감정이 나를 사로 잡으려고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검인 복음을 선포하므로 물리쳐야하는 것이다.

두번째로 우울증에 대한 극복으로 성도간의 사랑을 실천해야한다. 가정이나 교회에서 사랑의 결핍때문에 우울증에 걸리거나 악화될 수 있다.  반면 가정이나 교회에서 진정한 사랑을 경험한다면 우울증을 극복할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요 15:9-11)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듯 다른 형제를 사랑하며, 형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주님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이 것이 우울증을 극복하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아담이 하나님과 완전한 사랑의 관계를 누릴 때에, 하나님께서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뿐 아니라, 다른 인간과의 사랑의 관계가 필요하다는 말씀이다.

어두움에 속한 생각이 찾아올 때, 하나님의 약속과 소망의 말씀을 우리 자신에게 선포하며, 우리가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므로 서로에게 기쁨이 되어, 우울증까지라도 극복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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