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낙심을 극복할 것인가?” 고린도후서 4:16-18 9/22/2019
페이지 정보
본문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집니다.17 지금 우리가 겪는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을 우리에게 이루어 줍니다. 18 (왜냐하면)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죽게된다면 화장을 할 것인가 아니면 무덤에 묻힐 것인가를 생각해 보셨나요, 그리고 이미 결정하셨나요? 우리 중에 어떤 분은 병원에 연구용으로 기증을 하겠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는 줄 압니다. 저와 제 아내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의논한 적이 없다가, 몇 달 전에 화장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까지 결론을 내렸었습니다. 그랬다가, 얼마 후 제 아내가 남편이 먼저죽고 보고싶으면 그래도 찾아가 볼 무덤이 있으면 좋지 않겠는가 하여, 먼저 죽는 사람은 묘소를 나중에 죽는 사람은 화장을 하면 어떻겠는가 정도까지 생각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일날 저녁에 제 여동생이 급히 의논한 일이 있다고 그 다음 날인 월요일날 찾아가도 괜찮겠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월요일날 저녁에 만났는데.. 급히 의논할 일이란 다음 아닌 묘소구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9월말까지 Rose Hill에서 묘지자리를 싼 가격에 쎄일을 한다고합니다. 거기다가 과거와는 달리 묘지자리 하나에 두 사람이 묻힐 수 있다고합니다. 자기네들도 묘지를 하나 구입하는데, 우리가 원하면 옆자리에 하나 구입하지 않겠느냐고, 또 비용은 자기네들이 대겠다고 하여 그렇게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나이 들어가면서 갖게되는 문제, 죽음에 대한 준비문제에 대한 이야기 등 오랫동안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을지 하루 앞도 예측못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김문섭 성도님, 음식 드실 때보면 얼마나 철저히 몸관리를 잘하시는 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동안 한번도 아파본적도 병원도 다녀보신적 없고, 지난 20년 까깝게 수영장 청소 일을 꾸준히하시면서도 별 문제 없이 항상 건강해 보이셨지만 얼마전에 갑자기 몸이 쇠약해지는 것을 보고 우리 모두 놀라지 않았습니까? 연세에 비해 항상 젊어 보이시고 건강하셨던 노기용성도님께서도 몇년 전부터 계속 몸이 않 좋고 연약해 지셔서 고생을 많이하시고 지금도 하시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김종숙 성도님도 예상치 않게 50대에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그 후에도 여러번 쓰러지셔서 10년 이상 양로병원 생황을 하고 계십니다.. 지난 주 주일에는 자매님들고 몇분과 저도 함께 양로원에 계신 임종림 성도님을 오랫만에 방문하였습니다. 김순영 성도님도 신체적으로 각종 문제를 갖고 계십니다. 불과 20명 밖에 안되는 우리 교회에 이렇게 신체적으로 연약한 분들이 많고 양로원에 입원한 분들도 있다는 것은 우리 교회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우리가 모두 연약한 존재란 뜻입니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 모두가 어느날 뇌출혈로 쓰러질 수도 있고 양노원에 입원해야할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본문 말씀대로, 세월이 감에 따라 우리 모두의 육체는 점 점 쇠약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영어성경에는 Gradually dying 점 점 죽어가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육체적으로 연약해 지면 그 것으로 끝나지 않고 마음까지도 약해지기 쉽습니다. 모든 움직임이 힘들고 아프니까, 모든 것을 남들에게 의존해야하다 보니까 불편하고 삶에 어려움이 생기고 낙심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에 말씀드렸던대로 노화되는 것이 우울증의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한국에는 노인들이 심한 우울증에 걸려 자살하는 률이 2015년 통계에 의하면 20대의 자살률의 5배가 된다고합니다. 세계의 비교적 발전된 국가 37개국중 가장 높다고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나이가 들게되면 이 세사랑들과 똑같이 육체적으로 연약해지고 마음까지도 연약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겉사람은 낡아가나 낙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겉사람이 낡아감에도 낙심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겉사람은 낡아지더라도, 우리의 속사람은 오히려 날로 날로 새로워질 수 있고 이로 인해 낙심치 않을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속사람은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겉사람을 육이라고 말한다면, 속사람이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영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속사람을 새사람이라고 부르기도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인간에게는 겉사람이 있지만, 모든 인간에게 속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인들만 속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속사람이 없는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겉사람이 그들의 전부이니까 겉사람에만 신경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겉사람이 어떻게 되냐에 따라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희망을 같기도 낙망하기도합니다. 그러니까 나이가 들어 점 점 육체적으로 연약해지고, 힘들어지고 낙망하고 슬퍼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속사람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겉사람이 낡아지고 연약해지더라도,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삶을 살 수 있고 이로인해 낙심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거듭난 영, 속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자동적으로 이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월요일 제 여동생과 방문한 매제의 어머니는 90이 넘으셨는데, 지금 LA에 있는 어떤 양로원에 입원해 계십니다. 그런데, 이 매제가 어머니가 계신 양로원에서 드리는 예배에 참석을 해보았는데, 대부분의 노인들이 말씀을 듣는데는 관심이 없고 멍하게 있거나 한눈을 판다는 것입니다. 사실 예배모임에는 아무나 다 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신앙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참석하는데도 예배다운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도 제 아버님이 오랫동안 양노원 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양노원 분위기를 짐작합니다. 양노원에 오고 가면서 수 많은 환자분들을 보았지만,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풍긴다는 분을 만나본 기억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양노원은 육체적으로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디프레스되는 장소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소수가 있더라도 그 분위기가 좀 달라야할텐데, 왜 그럴까?
이 것은 저의 짐작입니다만, 이 문제가 양노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은 많을지 몰라도,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경험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는 것입니다. 이들 환자들 중에 많은 분들이 양노원에 입원하기 전부터 신앙생활을 했을지라도, 하나님과 교제하는 훈련이 안되있다면, 나이가 들고 몸이 연약해진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가 평소에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가까이 하려는 삶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나이가 들게되고 스스로 거동할 수 없게된다고 해서 하나님을 더 의존하게 되고 기적적으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하고저 하는 마음이 생기게되는 것은 아닐 것이란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주님과의 교제에 힘쓴다면, 우리의 나이가 들수록 신앙이 성숙되고 그리스도를 닮아가야할텐데,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더 사나와 지고 더 이기적이 되고 점 점 더 세상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하면서 늙어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저도 사실은 혹시 양노원에 입원하면, 어떤 목사님들처럼 양노원에서 쌍소리 하면서 다니면 얼마나 망신일까 염려가 될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육체의 건강이 있을 때 운동을 하므로, 나이가 들더라도 건강이 오래 유지되는 것처럼 속사람을 위한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겉사람을 위한) 육체의 운동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 훈련은 모든 면에 유익하다고 말합니다,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의 삶에 유익을 준다고 말합니다. 이 경건훈련이 바로 속사람을 위한 훈련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훈련을 말합니다.(엡 4:23)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기 보다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훈련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 인생의 주인으로 모실때,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 마음과 생각의 주인이시요 왕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주로 모신 삶을 살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먼저 우리들 마음과 생각의 문단속을 잘 해야합니다. 내가 갖고 있던 세상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들은 내보내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받아들이으로 내 심령을 채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그리스도를 더욱 알아감에 따라 우리 속사람은 더욱 새로워질 것입니다. (골 3:10)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낙심하지 않는 자들의 특징이, 단지 속사람이 새로워진다라고 말하지 않고, 속사람이 날마다 새로워집니다라고 말합니다. (영어 성경에는 day by day, daily) 매일 매일 새로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왜 매일 매일인가?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히 3:13) “날마다 서로 격려해서 아무도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 완고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날마다 서로 격려하지 않고 그냥 있으면,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 완고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만큼 우리의 매일의 삶 속에서, 죄의 속임수에 빠지기 쉽다는 말씀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되 매일 죽을 각오를 하고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결단은 한번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 결단하고 따르지 않으면 주님 아닌 다른 엉뚱한 것을 따라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 주님께서 사람이 밥만 먹으면서 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면서 살아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겉사람을 위한 양식이 밥이라면, 속사람을 위한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겉사람을 위하여 매일 밥을 먹어야 하듯이, 속사람을 위해서도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만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매일 매일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삶을 살므로 낙심치 않는 삶을 살려면, 우리는 매일 매일 우리의 심령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져야할 것입니다. |
제가 키타를 치기 전에 반드시 기타줄을 조율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런데, 소음이 있는 곳에서는 키타줄을 조율을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큰 소리를 내지 않더라도, 잔잔한 목소리라도 대화하는 곳에서도 기타 줄을 조율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 소리가 안들리는 곳에서만 악기를 조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음성과 다른 소음들을 동시에 들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조용한 장소 조용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큐티 Quiet Time 조용한 시간이라고 그럽니다. 주님과 나만이 갖는 조용한 시간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생각에 내 생각을 맞출 수 있다면, 조율된 악기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내듯이 우리는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속사람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죽음을 앞둔 110살이 되었어도 못하겠다 힘들다 지쳤다라고 말하지 않고 “나와 내집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겠노라”라고 모든 백성들 앞에 담대히 선포하였습니다. 그에게 낙심이란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너희 모두가 다 하나님을 버린다 하더라도, 나는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담대함, 죽을 때까지 자신은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담대함이 있었습니다 늙고 연약한 가운데서도 오히려 젊은 사람들보다도 더 확고하고 단호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
그 대답이 여호수아 1:8-9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이 율법책의 말씀을 늘 읽고 밤낮으로 그것을 공부하여, 이 율법책에 씌어진 대로, 모든 것을 성심껏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네가 가는 길이 순조로울 것이며, 네가 성공할 것이다. 9 내가 너에게 굳세고 용감하라고 명하지 않았느냐! 너는 두려워하거나 낙담하지 말아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의 주, 나 하나님이 함께 있겠다." 이 율법책의 말씀을 늘 읽고 밤낮으로 그것을 공부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의 마음과 생각을 채웠기 때문에 낙심치 않고 오히려 담대할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이 것이 하나님 자신의 약속이었습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지고 낙심치 않는 삶을 사는 비결은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할 수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듣는 훈련과 삶을 살 때, 우리가 나이 들어 비록 연약해질 때라도,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비록 우리의 몸이 쇠약하여 지더라도, 계속적으로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 점점 아름다워지고, 낙심이 아니라 소망가운데 더욱 담대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7 지금 우리가 겪는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을 우리에게 이루어 줍니다. 18 (왜냐하면)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겪는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을 우리에게 이루어 준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겉사람은 낡아지나 낙심하지 않는 이유를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잠깐있다고 없어지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있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다는 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바라보는 자는 낙심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선한 목자로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이 목숨을 내어주시므로 풍성한 삶을 허락하셨는데,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므로 우리가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주신 것은 무엇입니까? 건강입니까, 돈입니까, 명예입니까, 많은 자손들입니까. 아니면 좋은 환경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바울이나 베드로등 모든 사도들을 비롯한 순교자들은 풍성한 삶이 아니라 비참한 삶을 산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데도 가난하고 병들고 세상살면서 문제점이 많은 분들은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까? 물론 아니죠.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살도록 주신 것은 어떤 것들입니까? 영원한 생명입니다. 죄의 용서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상속입니다.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그 분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선물들의 특징은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생일선물같은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런 선물들은 잠간 좋았다가 잊게되고 버리게되는 일시적인 선물입니다. 쓰레기 장에 가보면 그런 것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은 은이나 금으로 이 세상의 모든 부로도 살 수 없는 오직 어린양처럼 순결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선물입니다. 이 선물은 영원히 들여다 보아도 영원히 새로운 것입니다. 이 선물은 풀어볼 때마다 새롭고, 놀랍고, 감사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선물들입니다. 영원히 풀어보다도 다 풀어볼 수 없는 영원한 복이요 영원한 특권입니다.
이 보이지 않는 영원한 복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에겐 소망이 있습니다. 기쁨과 감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보이지 않고 영원한 복을 바라보는 성도들은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근심 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벧전 1:5-6) 그리고 극심한 가난과 큰 환난 가운데서 기쁨이 넘쳐흘렀고 오히려 다른 성도들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이런 성도들은, 무화과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서 딸 것이 없고 밭에서 거두어들일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들을 돌아볼 때, 눈에 보이는 것, 일시적인 것들 소유치 못해서 낙심에 빠지기가 너무 쉽습니다. 자녀들이 있는 분들은 더욱 그리할 것입니다. 반대로 눈에 보이는 것 일시적인 것이 넉넉하기 때문에게 만족하며 하나님을 찾지 않기도 쉽습니다. 두 경우 다 회개해야합니다. 왜 회개해야합니까? 두 경우 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댓가로 우리에게 주신 놀랍고 귀한 영원한 선물들을 소홀히 여기거나 과소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희생을 헛되이 여기는 것이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여기지 말라.”고 호소합니다. 눈에 보이는 일시적인 것들에 빠져서, 그리스도의 생명의 댓가로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선물들과, 복과, 특권을 헛되이 여기지 말고 귀하게 여기라는 호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여기지 말고, 그 반대로,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 굳건히 서라"고 권고합니다. 아무리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겉사람은 낡아지더라도, 영원하신 분과 그 분이 주신 영원한 선물과 복과 특권을 바라보고 누리고 즐기며 일어서라는 말씀입니다. 쓰러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심을 받았으니,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2 여러분은 땅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지 말고,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십시오.” (골 3:1-2)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사람들은 위에 있는 것들을, 하늘에 속한 것들을 추구하라는 명령입니다. Set your hearts on things above. 일시적인 것들, 세상에 속한 것들을 생각치 말고 위에 있는 하나님께 속한 것 영원한 것들을 마음에 두고 생각하고 추구하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이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것, 영원한 것, 위에 속한 것을 추구하지 않으면서도, 편안히 즐겁게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삶에 어려움과 위기가 닥쳐올 때,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몸이 약해져 스스로 거동할 수 없을 때, 양노원에 들어가 제한된 환경 속에 갖히게 될 때 진짜 무엇에 무엇에 소망을 두고 사는지, 무엇을 바라보고 사는 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순간과 시간과 세월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에게 허락하신 영원한 구원과 복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재산도 잃고 건강도 잃고, 세상에서 믿던 모든 것이 끊어질 그 날이 될 때에도 흔들리지 않고 낙망치 않고 참소망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찬양과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제 정리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육신이 낡아지더라도 낙심치 않고 소망 가운데 살 수 있는지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첫째로는, 주님과 만의 조용한 시간을 통해 주님의 말씀을 들으므로 우리의 속사람이 매일 새로워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두번째로는 눈에 보이는 것과 일시적인 것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에게 허락하신 영원한 선물들을 바라보며 소망과 감사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런 삶을 살므로, 비록 환경이 어렵더라도, 비록 우리의 육체는 연약해 지더라도 기쁨과 감사와 소망으로 충만한 승리의 삶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댓글목록
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어떻게 낙심을 극복할 것인가?” 9/22/2019
세월이 감에 따라 우리의 육체는 점 점 쇠약해질 수 밖에 없고, 마음도 약해지기 쉽다. 그래서 노화가 우울증의 요인이 되기도 하고, 심한 우울증에 걸려 자살하는 노인들이 많이있다. 그러나, 비록 겉사람은 낡아지더라도, 우리의 속사람은 오히려 날로 날로 새로워질 수 있고 이로 인해 낙심치 않을 수 있다. 물론, 예수를 믿고 거듭난 영, 속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자동적으로 이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아직 육체의 건강이 있을 때 운동을 하므로, 건강을 오래 유지하는 것처럼 속사람을 위한 운동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바울은 (겉사람을 위한) 육체의 운동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속사람을 위한 경건 훈련은 모든 면에 유익하여, 현재와 미래의 삶에 유익을 준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새롭게되는 훈련,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기 보다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훈련이다. (엡 4:23; 롬 12:2) 세상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들은 내보내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내 심령을 채우는 것이다. (골 3:10)
그런데, 낙심하지 않는 자들은, 속사람이 새로워지되 날마다 새로워지는 삶을 의미한다.. 겉사람을 위하여 매일 밥을 먹어야 하듯이, 속사람을 위해서도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 소음이 없는 곳에서 악기를 조율할 수 있듯이, 주님과 나만이 갖는 조용한 시간을 통해 주님의 생각에 내 생각을 맞출 수 있다면, 우리의 속사람이 새로워질 것이다.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므로, 비록 나이 들어 얀약해질 때라도 소망가운데 더욱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다.
낙심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눈에 보이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바라보기때문이다. 주님께서 선한 목자로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므로 우리가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주신 것은 영원한 것들이다: 죄의 용서, 영생, 하나님의 자녀됨, 하늘나라의 상속, 사랑의 관계, 그 분의 소유됨. 영원히 풀어보아도 다 풀어볼 수 없는, 풀어볼 때마다 새롭고, 놀랍고, 감사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선물들이다. 이 영원한 복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에겐 소망과 기쁨과 감사가 있다.
눈에 보이는 것, 일시적인 것에 우리의 관심이 집중되면, 그리스도의 생명을 댓가로 우리에게 주신 놀랍고 귀한 영원한 선물들을 소홀히 여기거나 과소평가하기 쉽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여기지 말고,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 굳건히 서라"고 권고한다. 아무리 현실적인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겉사람은 낡아지더라도, 영원하신 분과 그 분이 주신 영원한 선물과 복과 특권을 바라보고 누리고 즐기며 일어서라는 말씀이다.
육신이 낡아지더라도 주님과 만의 조용한 시간을 통해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우리의 속사람이 매일 새로워지며, 눈에 보이는 것과 일시적인 것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에게 허락하신 영원한 선물들을 바라보며 산다면, 비록 환경이 어렵더라도, 비록 우리의 육체는 연약해 지더라도 기쁨과 감사와 소망으로 충만한 승리의 삶을 살게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