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새로 오실 목사님을 격려할 것인가?" 9/29/2019
페이지 정보
본문
이제 광고한대로 청빙위원회에서 어제 담임목사 후보를 선정하였습니다. 이제 오늘 우리는 교회 전체총회에서 그 목사님을 담임목사님으로 모실 것인가를 결정하게됩니다. 아직 모든 절차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최종 담임목사 후보가 결정될 때까지 지난 3월부터 반년 이상 청빙위원회에서 수고를 너무 많이 하셨습니다.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새 목사님에 대한 기대가 많이 있는 줄 압니다. 새로 오실 목사님을 모시고 교회가 새롭게 출발하는 놀라운 계기가 될 것이며 또 우리 모두가 격려를 받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할 사실은, 새로 오실 목사님도 여러분들에 대한 기대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새로 오실 목사님의 격려를 필요로 하듯이, 새로 오실 목사님도 우리의 격려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새로 오신 목사님을, 환영하고 격려하고 support 돕기보다는, 얼마나 사역을 잘하시는가 살펴보자라는 제 3자적인 자세로, 평가하고 비교하려는 자세로 새목사님을 대한다면, 새로 오실 목사님은 그런 여러분의 자세를 금방 눈치채고 힘들어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좋은 목사님을 구하기 위해 기도하고 애썼듯이, 우리도 새목사님에게 좋은 교회식구가 되도록 애써야겠습니다. 물론, 교회 사역의 가장 큰 책임은 목회자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함께 동역하는 교회성도들의 책임도 크다는 것을 인정해야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새로 오신 목사님을 어떻게 환영하고 격려할 것인가란 주제로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아직 새목사님이 최종으로 확정된 것도 아니고, 새목사님이 오셔서 사역을 시작하기 까지 적어도 한 두달 정도의 기간이 더 걸릴 수도 있어서, 제 자신이 좀 성급하다는 느낌이 있지만 그래도 성령님께서 제 마음에 이런 부담을 주므로 여러분들과 나눕니다.
이 번에 제가 어떻게 새로 부임하시는 목사님을 격려할 것인가란 주제로 쓴 글들을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면서 놀란 것이 있습니다. 한글로 검색을 해보니까, 정말 놀랍게도 이에 관한 기사나 설교가 단 한건도 없었습니다. 한국에 그렇게 교회들이 많고 성도들도 많은데도 불구하고, 새로 오실 목사님을 어떻게 격려할 것인가에 관한 글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그만큼 새로 부임하는 목사님을 격려해 드리는 일을 중요시 생각치 않거나 관심이 없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반면 영어로는 수 많은 기사들이 있었는데, 그 기사들 중에는 새로오실 목사님을 환영하는 50가지 방법에 대해서 기록한 기사도 있었습니다. 새로 부임하실 목사님을 환영하고 격려하는 방법들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지만,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랑입니다. 새로오실 목사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일반 성도님들도 사랑을 가장 필요로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섬길 영적 리더들도 무엇보다 사랑이 가장 필요한 것임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에게 세번 반복해서 물어 보신 것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였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의 사랑을 가장 필요로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가장 중요한 명령으로서 네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명령한 것도 역시 하나님 자신에게도 우리의 사랑을 가장 필요로 하신 다는 말씀 아닙니까?
그리고 제가 읽은 기사들의 첫번 째 요약은 사랑이고, 두번 째 요약은, 사랑을 표현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이란 것은 관념이 아니기 때문에 사랑은 표현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마음으로만 사랑하지 않고, 그 것을 꼭 우리의 찬양과 기도와 고백과 헌금을 통해서 그 사랑을 밖으로 표현해야만 합니까? 주님이 그런 표현을 안하더라도 우리의 마음을 모르실까요?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심정과 나의 사정을 이미 나 보다도 잘 아시는데 왜 내가 그 분에게 나의 심정과 사정을 알리며 기도합니까? 그것은 기도자체가 주님과의 교제요 주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마음만으로 사랑치 않고 찬양 기도 고백을 하는 것도 이런 표현 자체가 주님과의 교제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으로만 사랑하지 않고, 다른 성도들에게 사랑한다고 표현하지 않으면, 다른 성도가 우리의 사랑을 모를 수도 있고, 사랑을 표현하는 것자체가 교제요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 사랑의 마음만 가지고 표현을 안한다면 결국 그 사랑의 마음도 없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만약 예배와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정기적으로 고백하지 않으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식어지게되거나 결국 무신론자처럼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도간에도 마음은 있음에도 그 사랑을 표현하지 않으므로, 결국 그 관계가 무관심하게 되거나 잊혀지게 되어 결국 끊어지고 없어진 관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마음으로 사랑한다면 말이나 행동으로 그 것이 표현되어야합니다. 사랑하라는 명령은 사랑을 표현하라는 말씀입니다.
스카트 팩이란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참 사랑은 사랑으로 압도되는 느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책임감있게 심사숙고한 끝에 내리는 결정이다” 저와 여러분은 가끔 예배모임 시간에 성령님의 임재를 구하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압도되는 느낌을 구할 때가 많은데, 그리고 그런 느낌을 조금이라도 경험하면 은혜 받았다고 하는데, 실지로 좀 더 중요한 것은 깊이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까 어떻게 사랑할 가를 결단하는 것입니다. 형제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지요, 어떤 좋아하는 느낌보다는 실질적인 사랑의 결단과 실천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표현하기 않으면 감사가 아니고, 찬양도 마찬가지입니다. 찬양도 표현하지 않으면 아니듯이, 사랑도 표현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구체적으로 새로 부임하실 목사님에게 사랑을 표현할까?
제가 말씀드렸던대로 이 질문에 대한 수 많은 기사들을 읽었는데, 읽은 기사마다 공통적으로 이 것은 꼭 해야한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기사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할 것으로 해야할 것으로 제안한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 것이 무엇일까요?)
새로 오실 목사님을 위해 매일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당사자인 목사님에게 직접 사랑과 격려를 표현하기 전에, 목사님에 대한 사랑과 격려를 하나님께 표현하라는 말씀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새목사님을 정하기 전까지는 주님의 뜻에 합당한 목사님을 보내달라고 기도하고 새목사님이 임명식을 가질 때까지 열심히 기도하는데, 막상 새목사님이 취임되고 사역을 시작하게 되면, 이미 할 일을 다했다는 심정으로 기도를 소홀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왜, 새로 부임하시는 목사님을 위해 매일 기도하는가? 저는 목사로서 제가 여러분을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도인줄 압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저를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도 저를 위해 기도하시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 가운데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우리가 아니고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목사님에게 필요한 사랑과 지혜, 주님을 향한 열정과 용기가 비젼이 그리고 건강문제, 심지어 재정문제까지 오직 하나님 만이 해결해 줄 수 있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간섭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새목사님을 위해서 매일 기도해야하는 이유는, 우리가 새목사님을 사랑하고 격려하되 올바른 동기로 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찍힌다는 말이 있습니다. 불행히도 이 속담이 교회에도 적용될 때가 많습니다. 많은 경우 목사들 스스로의 잘못때문에 발등에 도끼가 찍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자기를 열심히 도와주고 섬겼던 분들이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섭섭함때문에 마음을 돌이키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새로 오실 목사님에게 사랑과 격려를 드리더라도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없이 사랑과 격려를 하고저 하면, 댓가를 바라는 사랑, 자칫 인위적이거나 자기 중심적인 잘못된 사랑을 베풀기가 쉽습니다.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할 것은 사랑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새 목사님을 사랑하시고 그 분을 향한 귀한 계획을 갖고 계신 하나님의 심정에 먼저 동의하는 것이요, 또 그리스도의 심정을 갖게됩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사랑과 격려의 표현을 하되 올바른 동기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새로 오실 목사님에게서 어떤 실망스러운 것을 발견하더라도 우리가 그 분을 위해서 기도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그 분을 지속적으로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새목사님을 위한 기도는 우리 자신이 올바른 마음 자세, 주님의 심정을 갖기 위한 기도이기도합니다.
또, 새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하면 그 분에게 어떤 필요가 있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수 있습니다. 제가 2주전에 말씀드렸던대로 제 여동생과 매제가, 로즈힐에서 묘지구입을 마치고 저희 집에 들렀습니다. 어떻게 이야기의 주제가 2주전에 자살했던 목사님과 오늘날 교회가 삶과 생각을 나누는 공동체가 되어야햔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야기를 듣던 제 여동생이 슬픈 표정으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가 미국에 들어오기 한 해 전에 그러니까 1977년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 때 교회에 같이 다니던 자신보다 한살 어린 교회동생이 “누나 나 짜장면좀 사줘"라고 했는데, 짜장면을 안사주었다고합니다. 그런데 그 동생이 바로 다음 날 자살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동생이 그 때 짜장면을 사주었다면 혹시 속사정을 듣고 자살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감으로 지금도 자주 그 때 그 일을 생각한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는 아무도 모르는 고통가운데 있는 자 힘들어 하는 자들 많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분명 그런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들의 아픔과 필요를 느끼고 볼 수 있는 사랑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랑과 관심은 기도로 시작한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면 상대방의 필요를 보게되고, 우리가 서로를 위해 깊이 기도하면 할 수록 외면적으로 드러나는 그 것 이상의 깊은 내면의 필요를 보게되지 않을까요? 저도 다시 한번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되 좀 더 진실되게 기도해야겠다는 결단을 해봅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 서로를 위해 그리고 새로 섬기실 목사님을 위해 그런 기도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새로오실 목사님 자신에게, 기도 외에 직접적으로 격려해드릴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번에 제가 읽은 기사들 중에 수 많은 아이디어가 있었는데요, 많은 기사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했고, 제게도 특별히 마음에 다가왔던 제안은, 새목사님에게 환영하는 메시지를 카드나 이메일로 보내라는 것입니다. .이 제안을 쓴 분중의 한 분은 자신이 과거에 목사님이었던 분인데, 이 분이 마지막으로 사역했던 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했을 때 100개 정도의 이런 격려하는 카드를 받았는데 그 것이 그가 사역을 감당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21세기 침례교회는 큰 배너나 광고를 해서 목사님 취임을 격려할 생각하지 마시고, 모든 식구들이 새로 부임하는 목사님을 개인적인 표현으로 격려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실 저는 새로 부임하는 목사님을 격려하기 위해서 각 성도가 환영하는 메시지를 쓰라는 기사를 읽으면서, 꼭 구태여 이런식으로 표현해야 하는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 아이디어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도 목사로서 여러분들이 그동안 보내주신 여러가지 선물을 받았고 이로 인해 격려도 받고 감사드리지만, 솔직히 어떤 물건보다는, 여러분이 저를 사랑한다는 글을 남긴 카드나 액자가 가장 귀중하게 기억되고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그 액자의 기록된 어떤 분들의 글을 보면서 “야 이분이 나를 사랑하는구나"라고 마치 미처 몰랐다가 새롭게 깨달았다는 듯한 감탄 비슷하게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늘상 얼굴을 대하고 실지로 서로를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그럼에도 구태여 사랑한다는 표현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요즘 유병희 자매님을 교회모임 속에 정기적으로 볼 수 있게되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기쁘고 격려가 되는 것을 느낍니다. 그런데, 제가 느끼는 이런 기쁨과 감사와 격려를 유병희 자매님에게 표현하면, 유병희 자매님도 기뻐하시고 격려를 느끼는 것 같아 감사했습니다.
지난 목요일에 한 친구로 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를 하면 항상 제가 먼저 했지, 한번도 먼저 제게 전화를 건적은 없는 친구입니다. 사실 저는 이 친구가 저를 미워하거나, 일부러 멀리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저를 신통치 않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가 제게 먼저 전화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막상 이렇게 전화를 받고 보니 제 마음이 많이 기뻤고 감사했습니다. 그 친구와 많이 가까와짐을 느겼습니다.
목사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설교나, 사역의 열매나, 성도들의 반응을 생각하며 때론 침울해지며 성도들이 자신을 별볼일 없이 생각한다는 시험에까지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한 때야말로, 제친구가 제게 전화했던 것처럼, 여러분들이 존경과 사랑을 표현을 한다면 다시 격려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사기꾼이 아니라면, 이 세상에는 별볼일 없는 목사도 별볼일 없는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신통하고 귀한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한 분 한 분을 위해 죽으셨으므로, 한 분 한 분이 예수님의 생명처럼 귀한 분들입니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별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 다른 사람을 별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별볼일 없는 사람으로 생각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모든 분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호의적인 메시지를 보낸다면, 그리하여 우리가 그런 분들을 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한다면 좋은 관계 좀 더 깊은 관계를 갖게될 수 있을 것입니다.
폴 E. 존슨이란 분은, “그리스도인이 사랑하는 데 가장 쉽게 실패하는 것은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일이다.”고 말했습니다. 비단 새목사님에게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부부간에 식구들 간에 그리고 교회의 성도들 간에 그리고 친구들과 동료들에게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제가 읽은 새 목사님을 환영하고 격려하는 여러가지 글들의 또 하나의 공통적인 제안은, 새목사님을 격려하려면 그 분의 아내와 자녀들을 사랑하고 격려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새로 오실 목사님이 교회의 목사님이시기 전에 한 아내의 남편이요 자녀들의 아버지란 사실입니다. 자기 가정을 다스릴 줄 모르면,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볼 수 있겠냐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 친척, 특히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믿음을 버린 사람이요,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나쁜 사람이다고까지 말씀합니다.
저는 이 사실을 생각할 때에 항상 마음 아프게 생각되는 일이 있습니다. 정말 후회됩니다. 제가 멕시코에서 사역할 때, 동역자 중에 갖난 아기를 가진 멕시코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사실 나름으로 이 분을 여러면에서 도와드린 것도 사실이지만, 자세히 말씀 드릴 수는 없지만 이 분에게 교회사역에 대한 충성을 가족 돌보는 것보다 더 강요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감사하게 그 분과 지금도 좋은 관계를 지속하고 있지만 생각할 때마다 제가 왜 그렇게 무지한 생각과 행동을 했는지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가 새목사님을 격려하려면 그 분이 가정을 잘 인도하고 돌볼 수 있도록 도와야겠습니다.
그 분은 교회의 사역을 위한 도구나, 우리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종이기 전에, 우리의 사랑의 대상이요, 그 분이 우리의 사랑의 대상이라면, 마땅히 우리는 그 분의 아내와 자녀들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목사님을 위한 기도에 그의 아내와 자녀들을 위한 기도도 포함해야겠습니다.
목사님의 아내와 자녀들에게도 사랑과 격려의 메시지를 전해야겠습니다.
특별히, 새 목사님 가정이 타지역에서 오신다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이 필요한 줄 압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가진 은사나 경험을 최대한 사용하여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야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다가 느낀 것은, 이런 새목사님에 대한 사랑과 격려의 표현이 우리 모두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서로 서로를 위해 그리고 서로의 자녀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며 격려하며 좀 더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므로 참다운 의미의 21세기 침례교회란 하나님의 가족을 이루어 나가고 풍성한 삶을 누리는 새로오실 목사님과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어떻게 새로오실 목사님을 격려할 것인가?
첫번째로, 새로 오실 목사님을 위해 매일 기도하는 것이다. 목사님에게 직접 사랑과 격려를 표현하기 전에, 목사님에 대한 사랑과 격려를 하나님께 표현하라는 말씀이다. 왜, 새로 부임하시는 목사님을 위해 매일 기도하는가? 목사님의 삶 가운데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새로 섬기실 목사님을 사랑하고 격려하되 올바른 동기로 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없이 사랑과 격려를 하고저 하면, 댓가를 바라는 사랑, 자칫 인위적이거나 자기 중심적인 잘못된 사랑을 베풀기가 쉽다.
또, 목사님을 기도할 때 그 분에게 어떤 필요가 있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수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면 상대방의 필요를 보게되고, 깊이 기도하면 할 수록 상대방의 내면의 깊은 필요를 볼 수 있다.
두번째로, 기도 외에, 새로오실 목사를 격려하는 방법은 그를 환영하는 메시지를 카드나 이메일로 보내는 것이다. 목사들도 용기를 잃고 낙망에 빠져있을 수 있다, 그런 때에 성도들의 존경과 사랑을 표현을 통해 격려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비단 새로 오실 목사님에게 뿐 아니라, 부부간에 식구들 간에 그리고 교회의 성도들 간에 그리고 친구들과 동료들에게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새로 오실 목사님을 격려하려면 그 분의 아내와 자녀들을 사랑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새로 오실 목사님은 교회의 목사님이기 전에 한 아내의 남편이요 자녀들의 아버지다. 자기 가정을 다스릴 줄 모르면,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볼 수 있겠냐고 성경은 말한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 친척, 특히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믿음을 버린 사람이요,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나쁜 사람이다고까지 말씀한다. 교회의 목회를 위해서 새 목사로 하여금 가족을 돌보지 못하거나 희생케 하는 경우는 없어야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새 목사님을 격려하려면 그 분이 가정을 잘 인도하고 돌볼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 그 분은 교회의 사역을 위한 도구나, 성도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종이기 전에, 우리의 사랑의 대상이요, 그 분이 우리의 사랑의 대상이라면, 마땅히 우리는 그 분의 아내와 자녀들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해야할 것이다.
그러므로, 새 목사를 위한 기도에 그의 아내와 자녀들을 포함해야하고, 그들에게도 사랑과 격려의 메시지가 전해저야한다. 특별히, 새로운 지역에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
새목사님에 대한 사랑과 격려의 표현이 서로 서로를 위해서 그리고 서로의 자녀들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런 사랑과 격려를 서로 간에도 실천하므로 하나님의 가족을 이루어 나가고 풍성한 삶을 누리는 21세기 침례교회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