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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로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라” 에베소서 6:18 12/1/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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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로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라”  에베소서 6:18 12/1/2019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모든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제가 지난 번 설교할 때 인용했던 로마서 8:3-4을 함께 읽겠습니다. “육신이 연약하므로, 율법이 할 수 없던 것을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죄를 속하여 주시려고, 자기의 아들을 죄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보내셔서, 육신에다 죄를 정하셨습니다. 4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에게서, 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이루어지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를 두가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는, 우리가 죄의 용서를 받고 정죄를 받지 않도록, 두번째는,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아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는 삶을 살도록 - 그리스도를 닮는 삶을 살도록  그래서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또, 제가 인용했던 갈라디아서 3:13-14절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된 성령님을 받게 하려 함이라”  (갈 3:13-14) 이 말씀 속에서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신 이유를 두가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을 이방인도 받도록,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복을 받도록.  그리고 두번째로는 약속된 성령님을 받도록.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단지 죄의 용서뿐 아니라, 우리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롭다 칭함을 받을 뿐 아니라, 실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은 의로운 자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고 살도록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죄인의 삶을 사느냐 아니면 의로운 삶을 사느냐의 기준은 누구의 인도함을 받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사는 자들은 의인이요,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지 않는 자들은 죄인입니다.  물론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성령님과 상관 없이 살면서도, 착하고 온순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회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우리는 다 양 같아서”라고 표현합니다. 인간의 속성을 양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양은 순하고 온순한 동물로 알려져있습니다.  그러나, 양을 키워본 분들에 의하면 양처럼 고집스러운 동물이 없다고 합니다.

추운 겨울이 되면 일부러 양의 털을 깎는 다고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키 털을 믿고 혼자 있다가 얼어죽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합니다. 순해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철저하게 어리석고, 고집스럽고 자기 중심적인 양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6)

이 말씀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켰다고 말씀하시는데, 우리 모두의 죄악은 양처럼 그릇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간 것입니다. 목자의 음성을 듣기보다는 자기가 보기에 좋은대로 각기 제 길로 가는 것이 죄악입니다.  반면, 주님께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0:27-28) 영생의 길을 가는 자들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자들을 말합니다. 내길로 가면 죄인,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로 가면 의인입니다.
 
그런데 내양은 내 음성을 따르며라고 말씀하셨던  목자되신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바로 전에 제자들에게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성령님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난 주에도 양목사님을 통해서 들었는데,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아시아에 있던 7교회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하신 말씀 기억하십니까?  “귀있는 자는 성령님께서 교회들에게 하는 말씀을 들으라". ‘귀 있는 자는” 우리 각 각 개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교회적으로 개인적으로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살라는 명령입니다.

왜 성령님의 음성을 들으라고 명령하시는가?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지혜와 지식과 능력을 소유한 예수님의 것을 성령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16:15)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해 주시고 (15:26)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분이시기때문에 그렇습니다. ( 요한복음 16:13)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수 있는가?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는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기도에 대해서 몇가지 사실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함께 읽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모든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기도하되 무시로 (at all times 모든 시간에)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제가 멕시코 티화나에서 선교사역할 때, 남침례교단에서 파송된 알렌이란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LA 침례교회 선교부팀이 티화나에 있는 알렌 선교사님댁을 방문했는데, 이 분들이 집에 들어오자 마자, 하나같이 다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미국인 선교사님은 이렇게 집에 들어오자 마자 기도하는 모습을 한번도 본적이 없었기에, 이 모습을 보고 놀라울 정도로 좋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어딜가나 먼저 기도부터 하는  한국교회 성도들의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한국 성도들은 사과반쪽을 들고도 감사기도를 드리고 먹는다고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은 한국을 기도하는 민족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수 많은 한국 교회가 새벽기도시간을 갖습니다. 이렇게 한국교회는 기도하는 민족이기에 세계 선교를 위해 귀하게 쓰임받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저도 기도에 적지 않은 시간을 기도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열정적으로 기도하는 면에 약하고,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 하는 면에는 너무 약합니다. 기도를 철저히 하는 성도님들 중에는 운전하기 전에도 운전대를 붙들고 기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기도 안해도 목적지까지 무사히 잘 도착하는데, 꼭 기도를 해야하는가란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목적지 까지 무사하게 도착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번 경험하고 최근에 운전하기 전에도 반드시 기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차사고가 나지 않더라도, 앞에서 운전하는 사람에 대해서 원망하거나 욕까지 한다면 영적으로는 큰 사고가 난것입니다.  사실 앞의 운전자에게 화내고 욕하지 않더라도, 예배자로서의 마음자세를 잃고 운전한다면 사고가 난 것입니다.  예배자로서의 마음 자세를 잃으면, 앞의 운전자 때문에 쉽게 화를 내거나 욕까지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참모습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최근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운전하는 동안 주님을 더욱 닮아가게 하소서.”  그러나,, 아직 습관이 되어서 기도를 잊고 운전을 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운전하기 전에 기도한다고 해도 운전중 예배자로서의 마음 자세를 잊을 때가 많습니다. 운전 시작하기 전 뿐 아니라, 운전하면서도 기도하는 마음 자세로 운전해야합니다.

식사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 안하고 식사해도 음식은 맛있고 소화도 잘됩니다. 그러나, 식사기도는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겠다는 결단입니다.  식사기도도 운전 때와 마찬가지로 기도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고 나서도 음식을 보면 이성을 잃고 과식할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조그만 일들을 포함한 매사에서 우리들의 영적인 상태가 드러납니다.  계속 기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지금 무시로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라는 사도바울의 권고는 영적싸움에 승리하기 위한 방법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적싸움은 권투시합처럼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 싸움이 아닙니다.  식사하거나 운전할 떄 뿐 아니라, 직장 생활, 가사를 돌보면서, 일상 생활을 하면서도 심지어 주님을 예배하는 이 시간에도 우리의 의식이 있는 동안은 지속되는 싸움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까지 지속되는 싸움입니다. 언제 어떻게 사탄과 어두운 세력들이 우리를 공격할지 모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인 민감성이 둔해져 우리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도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세상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우리도 추구하는 삶을 살게됩니다.  세상사람들이 염려하는 것을 나도 염려하게됩니다. 영적축복보다는 세상적 축복을, 하나님의 평가보다는 사람들의 평가에,  자녀들의 영혼의 문제보다는 현세적인 문제에 더욱 신경쓰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배자로서 사명자로서의 정체성을 잃게됩니다.

그래서, 디모데 켈리라는 목사님은 기도하는데 실패하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모시는데 실패하는 것이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도가 항상 깨어 있어 기도한다는 것은, 매 순간 순간  주님을 의식하며 성령님께 인도함 받겠다는 결단이며,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게될 것입니다.


두번째,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무시로 기도하되,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단지 항상 기도할 뿐 아니라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라는 말씀은 성령님의 인도함을 따라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는 것, 성령님의 인도함을 따라서 기도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함을 따라서 드리는 기도를 이해하려면, 그 반대의 기도를 생각하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성령님 안에서와  반대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갈라디어서 5:16-17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  성령님을 따름과 육체의 욕심을 따르는 것이 대조적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또, 로마서 8:13 -14도 읽겠습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육신대로 사는 것과 하나님의 영, 즉 성령님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이 대조적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의 인도함을 따라 기도하는 것의 반대개념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 기도하는 것입니다. . 우리가 성령을 따라 살 수 있고 반면 육체대로 살 수 있는 것처럼, 기도도 역시 성령을 따라하는 기도가 있고 육체를 따라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육체를 따라 기도하는 것과 성령님을 따라 기도하는 것은 어떻게 구분될 수 있을까요?  저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 그 대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서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 옵시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란 기도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이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요 성령님이 원하시는 기도압니다.  그렇다면, 육체를 따라하는 기도는 어떤 것일까요?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나의 이름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통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나라, 나의 통치를 위하여 구하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이런 자기 중심적인 기도는 많이 하면 많이 할 수록 오히려 자신과 남에게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반면, 성령님을 따라 기도하는 사람,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돌릴 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 성령님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성령님 안에서 기도할 수 있는가?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에게 하는 말씀을 들으라"란 주님의 명령대로,  오늘도 지금도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는 분이심을 믿고, 내 생각과 소원을 말 하기 전에 먼저 성령님의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보내실 것을 제자들에게 약속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요 14:16)  하나님께서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라고 하지 않으시고, 또 다른 보혜사를 너의에게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도 보혜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육신으로 함께 하셨을 때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고, 상당하시고, 위로하시고 변호하셨던 것처럼, 성령님께서도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고, 상당하시고, 위로하시고 변호하시는 분이란 것입니다.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성경에는 성령님을 보혜사로 번역되어 있지만, 현대인의 성경에는 ‘보호자’로, 공동번역에는 ‘협조자’로  번역되었습니다.  또, 대언자, 변호자, 위로자, 상담자로 번역되기도합니다. (14:16, 요14:26, 요15:26, 요16:17)  성령님은 이런 역할들이 다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분의 말을 들을 생각은 안하고 내 말만 하려고 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위로를 받고 변호를 받고, 상담을 받고 보호를 받고 인도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데 실패하면, 기도한다 하더라도 결국 자기 육체의 욕심을 따라 기도할 수 밖에 없으며 결국 그리스도를 닮는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성령님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가?  삶이 너무 바쁘다 보니까, 성령님께 귀를 기울일 여유를 갖지 못합니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우선권을 따라 살면서도, 주님을 위해서는 시간을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 기도하더라도, 자기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미 다 알고 있다고 과신하니까 성령님께 물어보지도 않습니다. 성령님이 말씀하셔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기도하더라도 자기 말 하기에만 바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찌어다” (잠언 3:5-7)   

솔로몬이 자신의 아버지 다윗이 죽고 자신이 왕이 되어 통치 초기에 기브온 산당에 가서 1천마리의 번제를 드립니다. 그날밤 꿈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기를 바라느냐? 나에게 구하여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솔로몬은 하나님께 다른 것보다 무엇을 구했지요? 지혜를 구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개역개정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왕상 3:9 )  지혜란 표현대신에 듣는 마음을 구했다고 번역하였습니다:  실지로 지혜란 말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듣는 마음”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지혜인줄 믿습니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겨 자기 명철을 의지하고 각기 자기 길로 갔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주님의 양이 되었으므로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실질적으로 성령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지 몇가지 나눕니다.

기도 중에 질문을 많이 하라 많이 물어보십시요?  주님이 즉시 대답해 주시지 않더라도, 대답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 중에 떠오르는 생각 역시 성령님이 말씀하시는 것일 수 있습니다. (노트와 필기도구를 갖고 기록하라)
너무 신비하고 오묘한 음성을 들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말씀인 성경이나 설교말씀 성경공부 큐티를 통해서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라  (기록해 두는 것이 중요)
그리고, 새롭게 성령의 말씀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성령님께서 말씀하신 것에도 귀기울이라. (기록해 두는 것이 중요)
성령님께서 하신 말씀을 서로 나누라 (좀 더 책임있게 기억하고 실천하도록)

여러분, 지난 12개월 동안 성령님께서 얼마나 많이 말씀하셨을까요? 몇가지나 기억하고 계십니까?  거의 기억 못합니다.  아예 한가지도 기억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성령님께서 그렇게 많이 말씀하심에도, 자신에게는 말씀 안한다고 착각하며 사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께서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에 하는 말씀을 들으라고 말씀합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록하는 습관을 갖지 않으면, 성령님이 말씀하실 때도 소홀히 듣고, 듣고 깨달은 것 조차도 잘 기억할 수도 없고 따를 수도 없습니다. 기록하는 습 관을 가지십시요.

이제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므로, 우리의 용서하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셔서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아 의인의 삶을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닮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그리스도를 닮는 삶을 살려면, 우리는 먼저 항상 매사에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리고, 항상 기도하되 성령님 안에서 기도해야합니다.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려면, 먼저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항상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므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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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no_profile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무시로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라”  에베소서 6:18  (12/1)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단지 죄의 용서뿐 아니라,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성령님의 인도 함을 받아 그리스도를 닮는 삶을 살도록 하셨다 (롬 8:3,4; 갈 3:13,14)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시고 인도하시지만, 오늘 본문은 특별히 기도에 대해서 언급한다.
기도하되 무시로 기도하라고 권고한다. 

무시로 기도하라는 권고는 영적싸움에 승리하기 위한 방법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주님을 예배하는 이 시간까지도 영적싸움은 지속된다.  언제 어떻게 사탄과 어두운 세력들이 우리를 공격할지 모른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인 민감성이 둔해지고 영적 싸움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보다는 세상사람들을 닮아가고 예배자로서 사명자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살게되기 쉬운 것이다.

그러므로, 무시로 기도한다는 것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의 신앙고백이며, 매 순간 순간 주님을 의식하며 예배자로서 성령님께 인도함 받겠다는 결단이으로서, 우리가 무시로 기도할 때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아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게될 것이다.

두번째,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무시로 기도하되, 성령님 안에서, 즉 성령님의 인도함을 따라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성령님을 따르지 않고 육체의 소욕대로 살 수 있는 것처럼,  기도 역시 성령님을 따르기 보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기도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기도 할 때에,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과, 그의 나라와 그의 뜻을 구하라고 명령하셨다. 나의 이름이나, 나라나, 뜻을 구하는 자기 중심적인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도록 드리는 기도가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다.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데 실패하면, 기도를 해도 자기 육체의 욕심을 따라 기도할 수 밖에 없으며 결국 그리스도를 닮는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성령님을 보내신 것은, 우리로 죄의 용서뿐 아니라, 성령의 음성을 들도 인도함을 받아 그리스도를 닮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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