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2009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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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창세기 28:10-22
“Craving for love, 나는 사랑 받고 싶다.“라는 책을 봤습니다. 어떻게 동생애를 치유할 수 있는가 하는 내용을 다루 책입니다. 이 책을 소개한 사람이 분석하기를 지금 미국 백인남성의 4%가 동생애자라고 하며, 동성애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합니다.
지금 세상은 점점 더 각박해지고 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이 친밀한 관계를 경험하지 못한 채 외롭고 고립된 삶을 살고 있다. 문명의 발달이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가깝게 하는 한편,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을 서로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만들기도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반마일이상 떨어져 사는 이웃들간에도 서로의 삶을 훤히 꿰뚫고 있었는데, 지금은 불과 몇 인치 밖에 되지 않은 벽하나 사이의 이웃과도 단절된 채 서로 모르고 살고 있다. 이뿐 아니라, 함께 사는 사람들끼리도 마음의 벽이 있어 서로 단절된 경우도 있다. 이러한 관계성의 단절로 인해서 현대인의 인생에 결핍이 생겼고 이 결핍을 대체할 것을 찾다가 동성애라는 이상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지금 동성애자들은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언론, 교회 등등 이 미국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 자생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인 오바마도 그들을 적극적으로 옹호 내지는 지원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들이 우리 자녀들에게 암암리에 여러모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소름이 일기도 하며 정말 우리들은 영적 전쟁터에 있다는 긴박감이 듭니다.
전 세계에서 그래도 가장 풍요로운 가운데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 미국인들이 도리어 결핍을 느끼고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인류의 조상이 아담과 하와를 떠올리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기들에게 주어진 그 많은 것들을 누리기보다 한 가지 금지된 과일에 대한 결핍을 느끼는 순간 하나님도 안중에 없이 그것을 따먹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결핍에 대한 욕망은 그것을 채우려는 또 다른 시도로 나타나는데 거기로부터 고민과 싸움과 죄가 시작이 됩니다.
오늘 말씀의 야곱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이삭과 리브가 부부의 쌍둥이 아들로서 에서의 동생입니다. 언제나 자기가 불과 몇 분 사이에 동생이으로 태어나는 바람에 그 가정의 모든 권리를 빼앗겼다는 운명적 결핍 속에서 몸부림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왜 이토록 형과 다투고 몸부림치다시피 자기의 인생을 달려간 이유는 “하나님이 과연 거기 계신 사실”(Surey the Lord is in this place.)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담과 하와가 그들과 동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망각했을 때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었던 것과 같습니다.
야곱이 속했던 가정은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내려오는 믿음의 가정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영광스러운 가문이지요. 즉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바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즉, 온 인류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이며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거룩한 그릇이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그들과 동행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모두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인도하심에 순종함으로 축복 가운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서 오해가 있었던 듯합니다. 그 축복이 곧 이 세상에서 자기가 누리고 싶은 그런 것들로서 자기의 능력으로 쟁취해야하는 것이라고 생각 했던 것입니다. 야곱의 그다음의 행적을 보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양치기 즉 당시에 부를 축적하는 일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눈코 뜰 새 없이, 온갖 지혜와 노력을 기울입니다. 우리가 지난 주일에 오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바와 같이 한번 오해로 시작된 것은 계속적해서 그 방향으로 확대, 진전되다가 끝내는 부정적인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순간, 야곱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잊고 지극히 인간적인 삶에 몰두하게 됩니다. 야곱 뿐 아니라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그렇습니다.
저 자신도 1974년에 그야말로 빈손으로 미국에 이민온 이래 물질적 결핍을 피부로 느끼면서 1978년까지 만 4년 동안 하나님이 과연 나와 함께 하신 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지극히 인간적인 삶을 산 적이 있습니다. 78년 4월 9일에 내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를 깨우시기까지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삶이 형식적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구체적인 증거도 열매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다시 빈손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야곱이 자신이 느끼는 결핍을 인위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은 결국 비참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가장 가까워야할 쌍둥이 형제사이에 다툼이 되고 급기야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도망자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정처 없는 도망자의 길에서 밤을 맞았고 이름 모를 광야에서 돌을 베개하고 잠을 자고 있습니다. 이것의 야곱의 진짜모습이요, 그리고 우리 인생의 실존입니다.
사실 인간은 가장 중차대한 결정적, 운명적 상황에서는 언제나 혼자입니다. 모세, 다윗, 예수님, 그리고 우리들 자신이 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인생의 마지막에 죽음과 맞닥드려야 할 그 때 우리는 결국 혼자일 것입니다.
- 지금 이 광야에서 야곱은 혼자입니다.
- 그가 불철주야 노력하면 돈벌이를 할 때도 그는 혼자 이었습니다.
- 그가 외삼촌에게 쫓겨 다시 도망자신세가 되었을 때 그는 역시 혼자이었습니다.
- 그가 애굽에서 그 인생을 마치고 죽음의 문턱을 넘을 때도 역시 그는 혼자이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야곱은 하나님을 잊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하신 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한번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를 놓지 않으신다는 약속 말입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않니할 터이오,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0:28)고 주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야곱과 함께 계셨습니다.
야곱이 잠을 자는 중에 꿈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자기 있는 곳에 사닥다리가 있고 그 위에 하나님께서 계시며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딸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5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 28:13-15)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Surely the Lord is in this place....)
그렇습니다.
야곱은 처음부터 혼자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그와 함께 계셨는데, 단지 그가 이를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 문제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망각할 때 그는 자연히 자기 마음대로, 지극히 인간적인 판단과 방법으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그래서 내가 형과 싸우고 다투고 시기질투하고... 그래서 온갖 편법과 죄를 저지르고...
여호와께서 과연 거기 계신줄 알았더라면 않그랬을 터인데..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믿음으로 기다렸을 터인데...
내가 왜 그렇게 살았나....
여러분도 잘 아는 joke입니다. 교통을 단속하는 경찰이 숨어 있다가 과속으로 달리는 운전자를 잡고 “왜 과속을 했는가?”고 물었더니, "당신이 거기 있는 줄 몰랐기 때문이라"고 했답니다. 그렇지요. 단속하는 경찰이 과연 거기 있는 줄을 알았더라면 그는 결코 과속을 하지 않았겠지요.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순간 죄인 야곱은 두려웠습니다.
- 그뿐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소망과 능력과 용기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는 순간 그의 인생이 달라졌던 것입니다.
여러분,
야곱과 함께 하셨던 여호와 하나님은 과연 우리의 삶의 모든 현장에 계십니다.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성령님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때를 봅니다. 그의 나이 75세 되기까지 늘상 살아오던 인생길을 가는 중에 어느날 여호와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는 것이었습니다. 전혀 상상조차하지 않았던 일입니다. 아브라함의 인생길에서 하나님은 때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 동안 양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불타는 떨기나무가 보였습니다. 이상한 광경을 구경하려고 가까이 다가갔을 때 음성이 들렸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네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땅은 거룩한 곳이니라. 하나님은 모세가 가는 곳마다 침묵하시면서 함께 계셨습니다. 때가 되매 그를 부르신 것이지요.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모두 그렇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 모든 구약의 선지자들, 그리고 예수님의 열두제자를 비롯한 예수님 시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 예수님께서 그들의 인생의 현장에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매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사마리아여인의 이야기를 아시지요. 그녀가 우물물을 길러오기 전에 실은 예수님은 이미 그 곳에 만자와 계셨습니다. 인생의 문제를 안고 비참한 심정으로 살아 가던 사마리아여인을 만나려고 그 인생을 길목을 지키고 계셨던 것이지요.
우리 교회에서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 받은 식구들이 여럿 있지요? 그 모든 식구들의 인생길에서 예수님은 그들을 기다리고 계셨던 사실을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는 그 역사의 증인들입니다.
우리를 만나시려고 우리의 인생의 길목을 지키시던 예수님께서 그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를 붙들어 주셔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러 간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는 인생길 도중 그 어느 지점에 예수님께서 거기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를 만나시려고 그 길목을 지키고 계섰던 것을 생각하면 마음에 깊은 감동이 밀려오며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뿐입니까?
예수님은 내가 죽어야할 자리 바로 거기에서 내 모든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던 것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내 인생길 구석구석, 골목마다 그 길목을 지키시고 나를 기다리셨던 것을 비로소 알았을 때, 나의 인생은 예수님 앞에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끝 날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야할 그 거룩하고 떨리는 순간에 예수님은 바로 거기 계시며 우리를 맞이하실 것을 믿습니다.
요한복음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여러분,
지금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성령 하나님께서 과연 여기 계십니다.”
우리의 지나간 삶과 현재의 모습을 정직하게 돌아볼 때 성령하나님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라는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음을 깨닫습니다.
야곱은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했노라. 고 고백한 후에
그곳에 돌을 세우고 기름을 붓고 그 지점을 벧엘이라고 개명하고, 여기가 곧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라고 결단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과연 여기 계십니다.
우리의 찬양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것입니까?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것입니까?,
우리의 삶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증거가 있습니까?
우리의 입은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시간, 물질, 육체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Surely the Lord is in this place.)
- 무엇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것입니까?
-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헌신의 결단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과연 여기, 이 현장에 나와 우리와 함께 계시거늘..........
지금은 여러가지로 어려울 때입니다. 지구가 깊이 병들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경제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침체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습니다. 어떤 경제학자는 미국 경제가 1,000 개의 상처로 인하여 서서히 죽어갈 것이라는 매우 비관적인 예측을 했다고 합니다.
정말 어렵고 힘든 말 못할 일들이 여러분 가운데 있을 줄 압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과연 거기 그 모든 현장에 함께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어두운 밤 광야에서 야곱과 함께 계셨던 여호와 하나님.
- 갈보리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의 자리를 대신하셨던 예수님.
-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신 께서 성령님을 찬양합니다.
- 그는 과연 우리와 현재적으로 함께 계십니다.
힘들고 어려운 결핍을 바라보면 주님의 피값으로 사신바 된 자신의 가치를 오해하게 됩니다. 점점 불신과 회의의 늪에 빠져버릴 수 있습니다.
이 고난의 밤에도 주님께서 과연 여기에 나와 함께 계심을 믿고 주님과 함께 영광스런 아침을 맞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임마누엘 하나님, 그는 과연 여기 계십니다.
“Craving for love, 나는 사랑 받고 싶다.“라는 책을 봤습니다. 어떻게 동생애를 치유할 수 있는가 하는 내용을 다루 책입니다. 이 책을 소개한 사람이 분석하기를 지금 미국 백인남성의 4%가 동생애자라고 하며, 동성애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합니다.
지금 세상은 점점 더 각박해지고 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이 친밀한 관계를 경험하지 못한 채 외롭고 고립된 삶을 살고 있다. 문명의 발달이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가깝게 하는 한편,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을 서로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만들기도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반마일이상 떨어져 사는 이웃들간에도 서로의 삶을 훤히 꿰뚫고 있었는데, 지금은 불과 몇 인치 밖에 되지 않은 벽하나 사이의 이웃과도 단절된 채 서로 모르고 살고 있다. 이뿐 아니라, 함께 사는 사람들끼리도 마음의 벽이 있어 서로 단절된 경우도 있다. 이러한 관계성의 단절로 인해서 현대인의 인생에 결핍이 생겼고 이 결핍을 대체할 것을 찾다가 동성애라는 이상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지금 동성애자들은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언론, 교회 등등 이 미국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 자생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인 오바마도 그들을 적극적으로 옹호 내지는 지원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들이 우리 자녀들에게 암암리에 여러모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소름이 일기도 하며 정말 우리들은 영적 전쟁터에 있다는 긴박감이 듭니다.
전 세계에서 그래도 가장 풍요로운 가운데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 미국인들이 도리어 결핍을 느끼고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인류의 조상이 아담과 하와를 떠올리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기들에게 주어진 그 많은 것들을 누리기보다 한 가지 금지된 과일에 대한 결핍을 느끼는 순간 하나님도 안중에 없이 그것을 따먹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결핍에 대한 욕망은 그것을 채우려는 또 다른 시도로 나타나는데 거기로부터 고민과 싸움과 죄가 시작이 됩니다.
오늘 말씀의 야곱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이삭과 리브가 부부의 쌍둥이 아들로서 에서의 동생입니다. 언제나 자기가 불과 몇 분 사이에 동생이으로 태어나는 바람에 그 가정의 모든 권리를 빼앗겼다는 운명적 결핍 속에서 몸부림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왜 이토록 형과 다투고 몸부림치다시피 자기의 인생을 달려간 이유는 “하나님이 과연 거기 계신 사실”(Surey the Lord is in this place.)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담과 하와가 그들과 동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망각했을 때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었던 것과 같습니다.
야곱이 속했던 가정은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내려오는 믿음의 가정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영광스러운 가문이지요. 즉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바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즉, 온 인류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이며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거룩한 그릇이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그들과 동행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모두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인도하심에 순종함으로 축복 가운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서 오해가 있었던 듯합니다. 그 축복이 곧 이 세상에서 자기가 누리고 싶은 그런 것들로서 자기의 능력으로 쟁취해야하는 것이라고 생각 했던 것입니다. 야곱의 그다음의 행적을 보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양치기 즉 당시에 부를 축적하는 일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눈코 뜰 새 없이, 온갖 지혜와 노력을 기울입니다. 우리가 지난 주일에 오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바와 같이 한번 오해로 시작된 것은 계속적해서 그 방향으로 확대, 진전되다가 끝내는 부정적인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순간, 야곱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잊고 지극히 인간적인 삶에 몰두하게 됩니다. 야곱 뿐 아니라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그렇습니다.
저 자신도 1974년에 그야말로 빈손으로 미국에 이민온 이래 물질적 결핍을 피부로 느끼면서 1978년까지 만 4년 동안 하나님이 과연 나와 함께 하신 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지극히 인간적인 삶을 산 적이 있습니다. 78년 4월 9일에 내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를 깨우시기까지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삶이 형식적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구체적인 증거도 열매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다시 빈손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야곱이 자신이 느끼는 결핍을 인위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은 결국 비참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가장 가까워야할 쌍둥이 형제사이에 다툼이 되고 급기야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도망자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정처 없는 도망자의 길에서 밤을 맞았고 이름 모를 광야에서 돌을 베개하고 잠을 자고 있습니다. 이것의 야곱의 진짜모습이요, 그리고 우리 인생의 실존입니다.
사실 인간은 가장 중차대한 결정적, 운명적 상황에서는 언제나 혼자입니다. 모세, 다윗, 예수님, 그리고 우리들 자신이 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인생의 마지막에 죽음과 맞닥드려야 할 그 때 우리는 결국 혼자일 것입니다.
- 지금 이 광야에서 야곱은 혼자입니다.
- 그가 불철주야 노력하면 돈벌이를 할 때도 그는 혼자 이었습니다.
- 그가 외삼촌에게 쫓겨 다시 도망자신세가 되었을 때 그는 역시 혼자이었습니다.
- 그가 애굽에서 그 인생을 마치고 죽음의 문턱을 넘을 때도 역시 그는 혼자이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야곱은 하나님을 잊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하신 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한번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를 놓지 않으신다는 약속 말입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않니할 터이오,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0:28)고 주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야곱과 함께 계셨습니다.
야곱이 잠을 자는 중에 꿈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자기 있는 곳에 사닥다리가 있고 그 위에 하나님께서 계시며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딸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5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 28:13-15)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Surely the Lord is in this place....)
그렇습니다.
야곱은 처음부터 혼자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그와 함께 계셨는데, 단지 그가 이를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 문제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망각할 때 그는 자연히 자기 마음대로, 지극히 인간적인 판단과 방법으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그래서 내가 형과 싸우고 다투고 시기질투하고... 그래서 온갖 편법과 죄를 저지르고...
여호와께서 과연 거기 계신줄 알았더라면 않그랬을 터인데..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믿음으로 기다렸을 터인데...
내가 왜 그렇게 살았나....
여러분도 잘 아는 joke입니다. 교통을 단속하는 경찰이 숨어 있다가 과속으로 달리는 운전자를 잡고 “왜 과속을 했는가?”고 물었더니, "당신이 거기 있는 줄 몰랐기 때문이라"고 했답니다. 그렇지요. 단속하는 경찰이 과연 거기 있는 줄을 알았더라면 그는 결코 과속을 하지 않았겠지요.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순간 죄인 야곱은 두려웠습니다.
- 그뿐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소망과 능력과 용기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는 순간 그의 인생이 달라졌던 것입니다.
여러분,
야곱과 함께 하셨던 여호와 하나님은 과연 우리의 삶의 모든 현장에 계십니다.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성령님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때를 봅니다. 그의 나이 75세 되기까지 늘상 살아오던 인생길을 가는 중에 어느날 여호와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는 것이었습니다. 전혀 상상조차하지 않았던 일입니다. 아브라함의 인생길에서 하나님은 때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 동안 양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불타는 떨기나무가 보였습니다. 이상한 광경을 구경하려고 가까이 다가갔을 때 음성이 들렸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네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땅은 거룩한 곳이니라. 하나님은 모세가 가는 곳마다 침묵하시면서 함께 계셨습니다. 때가 되매 그를 부르신 것이지요.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모두 그렇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 모든 구약의 선지자들, 그리고 예수님의 열두제자를 비롯한 예수님 시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 예수님께서 그들의 인생의 현장에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매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사마리아여인의 이야기를 아시지요. 그녀가 우물물을 길러오기 전에 실은 예수님은 이미 그 곳에 만자와 계셨습니다. 인생의 문제를 안고 비참한 심정으로 살아 가던 사마리아여인을 만나려고 그 인생을 길목을 지키고 계셨던 것이지요.
우리 교회에서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 받은 식구들이 여럿 있지요? 그 모든 식구들의 인생길에서 예수님은 그들을 기다리고 계셨던 사실을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는 그 역사의 증인들입니다.
우리를 만나시려고 우리의 인생의 길목을 지키시던 예수님께서 그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를 붙들어 주셔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러 간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는 인생길 도중 그 어느 지점에 예수님께서 거기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를 만나시려고 그 길목을 지키고 계섰던 것을 생각하면 마음에 깊은 감동이 밀려오며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뿐입니까?
예수님은 내가 죽어야할 자리 바로 거기에서 내 모든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던 것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내 인생길 구석구석, 골목마다 그 길목을 지키시고 나를 기다리셨던 것을 비로소 알았을 때, 나의 인생은 예수님 앞에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끝 날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야할 그 거룩하고 떨리는 순간에 예수님은 바로 거기 계시며 우리를 맞이하실 것을 믿습니다.
요한복음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여러분,
지금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성령 하나님께서 과연 여기 계십니다.”
우리의 지나간 삶과 현재의 모습을 정직하게 돌아볼 때 성령하나님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라는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음을 깨닫습니다.
야곱은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했노라. 고 고백한 후에
그곳에 돌을 세우고 기름을 붓고 그 지점을 벧엘이라고 개명하고, 여기가 곧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라고 결단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과연 여기 계십니다.
우리의 찬양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것입니까?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것입니까?,
우리의 삶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증거가 있습니까?
우리의 입은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시간, 물질, 육체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Surely the Lord is in this place.)
- 무엇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것입니까?
-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헌신의 결단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과연 여기, 이 현장에 나와 우리와 함께 계시거늘..........
지금은 여러가지로 어려울 때입니다. 지구가 깊이 병들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경제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침체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습니다. 어떤 경제학자는 미국 경제가 1,000 개의 상처로 인하여 서서히 죽어갈 것이라는 매우 비관적인 예측을 했다고 합니다.
정말 어렵고 힘든 말 못할 일들이 여러분 가운데 있을 줄 압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과연 거기 그 모든 현장에 함께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어두운 밤 광야에서 야곱과 함께 계셨던 여호와 하나님.
- 갈보리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의 자리를 대신하셨던 예수님.
-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신 께서 성령님을 찬양합니다.
- 그는 과연 우리와 현재적으로 함께 계십니다.
힘들고 어려운 결핍을 바라보면 주님의 피값으로 사신바 된 자신의 가치를 오해하게 됩니다. 점점 불신과 회의의 늪에 빠져버릴 수 있습니다.
이 고난의 밤에도 주님께서 과연 여기에 나와 함께 계심을 믿고 주님과 함께 영광스런 아침을 맞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임마누엘 하나님, 그는 과연 여기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