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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을 깨끗게 하신 예수님" 마가복음 11:15-17 4/1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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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을 깨끗게 하신 예수님"  마가복음 11:15-17  4/14/2019

마가복음 11:15-17  그리고 그들은 예루살렘에 들어갔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뜰 안에서 팔고 사고 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면서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16 성전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는 것을 금하셨다. 17 예수께서는 가르치시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그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약 2000년전 바로 오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번 예루살렘을 방문하셨지만 그 동안 단 한번도 짐승을 타고 입성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마태는 그 이유가  하나님께서 예언자를 통해서 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라고합니다 (마 21:4) . 어떤 예언인가?  그 다음 절에 보면 (마 21:5) "시온의 딸에게 말하여라. 보아라, 네 임금이 네게로 오신다. 그는 온유하시어 나귀를 타셨으니, 어린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다.”
 
하나님의 선지자 스가랴가 예언한 대로,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신 분임을 의도적으로 선포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신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예수님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군중들에게 숨기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이적을 행하실 때 마다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라고 신신당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5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억지로 왕으로 모시려 할 때도 예수님은 이들을 피해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셨습다” (요 6:15)  그런데, 이제 와서는 예수님께서 더 이상 숨기지 않으시고 자신을 왕으로 선포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좀 전에 읽어드린 스가랴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스가랴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10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민족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이제 예수님께서 자신의 왕되심을 공적으로 드러내시는 것은, 이제 말과 병거와 활을 끊고 평화를 전하는 왕으로 오신 그 목적을 수행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백마를 타고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온 왕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새끼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이 것이  약 2000년 전 바로 오늘 있었던  예수님의 “승리의 예루살렘 입성”입니다.
 
예수님께서 전과는 다르게 어린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한 것도 특별한 일이었지만, 백성들의 반응도 전과는 달리 특별하였습니다.  마가복음 11:8절 이하에 보면 “큰 무리가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다 폈으며, 다른 사람들은 들에서 잎 많은 생나무 가지들을 꺾어다가 길에다 깔았다. 9  그리고 앞에 서서 가는 사람들과 뒤따르는 사람들이 외쳤다. "호산나!" "복되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10 "복되어라!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전에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호산나라고 외쳐 본 적이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윗의 후손이라고  고백을 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큰 무리가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요 라고 열광했던 적은 없습니다. 이렇게 수 많은 무리가 열광하며 환호하는 가운데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처음입니다.  유명한 성경학자인 John McArthur 목사님은 당시 세계 전역에서 유월절을 기념하기 찾아온 자를 200만정도 예상합니다. 그리고 환호에 참여한 자가 수십만은 되었으리라고 추측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요란했겠습니까?
이들이 왜 다른 유월절 때와는 달리 이번 유월절에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열광하게 되었는가? 

요한복음 12:17에 의하면. “ 무리가 예수를 (이렇게) 맞이함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표적 행하심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가끔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있지만, 나사로의 경우는 죽은지가 나흘이나 되어서 무덤에 갇혀 벌써 시체썩는 냄새가 나던 나사로가 살아난 것입니다. (11:39)  그래서 나사로의 누이들인 마리아와 마르다를 위로하러 왔던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일으킨 것을 목격하고,  이들이 다른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 놀라운 표적을 알린 것입니다.  그 결과로 (12장 11절에 보면) 대제사장들이 예수님뿐 아니라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를 해야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이 마지막 주간 동안 백성들이 무서워 예수님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이렇게 놀라운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께서 입성 하니까 사람들은 예수님을 환호하며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이스라엘의 왕이여"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다윗의 자손이요”라고 외쳤습니다.  누가가 기록한 것처럼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눅 19:11)  호산나란 말은  “우리를 구해주세요. 지금 당장”이란 뜻입니다. (Save now, save now, deliver us)  그래서 이들은 이스라엘의 왕이요 장군이었던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가 로마 정복자들을 전복시킬 반란을 이끌어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주님께서 이들의 열광적인 환호에 마음에 감동을 받거나 흥분하였을까요?  누가에 의하면 (누가복음 19:41)  예수께서 백성들의 열렬한 환호가운데 , 예루살렘 가까이에 오셔서  그 도시를 보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42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그러나 지금 너는 그 길을 보지 못하는구나. 43 그 날들이 너에게 닥칠 것이니, 너의 원수들이 흙언덕을 쌓고, 너를 에워싸고, 사면으로부터 너를 공격하여서, 44 너와 네 안에 있는 네 자녀들을 짓밟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얹혀 있지 못하게 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너를 구원하러 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백성들의 열광에 감동받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하고, 참된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는 무지한 백성들로 인해 눈물을 흘리시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형선고를 받고 골고다 형장으로 향할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눅 23:27) “많은 여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르며 예수를 생각하여, 가슴을 치며 통곡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여자들을 돌아다 보시고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동정도 원치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자기 자신들을 돌아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오늘부터  고난 주일이 시작되었는데, 이 고난주간 동안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아프시고 힘드셨을가를 생각하며 마음 아파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울기를 원하십니다. 정말 제 자신을 돌아보며 맘 껏 울어 보았으면 하는 소원이 있습니다.  주님은 수 많은 무리들의 환호와 박수나 동정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심정과 뜻을 헤아리며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심령들을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가장 첫번째로 하신 일은 “성전에 들어가셔서 거기에서 모든 것을 둘러보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2마일 떨어진 베다니로 가셔서 하룻밤 주무시고, 그 다음날 다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뜰 안에서 팔고 사고 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면서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16 성전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환호하던 자들의 기대대로 로마군대를 뒤 엎으시고 자신들을 구원해주신 것이 아니라, 대신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뜰 안에서 팔고 사고 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뒤엎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17)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그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내 집”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내가 그들 가운데 머물 수 있도록, 그들에게 내가 머물 성소를 지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출 25:5)  그러니까 성전은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왕궁이며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성전으로부터 하나님의 통치가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고 세상으로 임해야 하는데, 오히려 사람들이 주인행사를 하며, 물심에 대한 욕심이 성전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고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이토록 예수님은 분개하신 것입니다.

신약시대에 사는 우리 성도들과 교회도 우리 자신들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하나님의 소유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가 성전이요, 또 그리스도의 교회가 성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나의 삶을 그리고 교회의 삶을 하나님이 지배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다른 강도가 대신 들어와 살며 지배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난 주에 마가복음을 통해서 예수님의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침례요한이 감옥에 갇히면서 갈릴리에서 시작하였고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치고 귀신을 쫓아내신 것이라고배웠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 의하면 침례요한이 잡히기 전에,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성전을 깨끗게 하시므로 그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 때도, 예수님께서  (요 2:15-16)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호통치셨습니다”

그러니까, 성전을 청결케 하심으로 그 분의 사역을 시작하셨던 예수께서 성전을 청결케 하심으로 그 분의 사역을 마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임재가 거하시는 성전을 청결케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한 예배,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시기 위해 오신 분임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왕국 에덴 동산을 회복하시기 위해서 오신 분)

예수님이 보실 때, 이스라엘의 문제는 로마제국같은 외부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인 성전이 강도의 소굴로 변한 것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예배도 없고 하나님과의 교제도 단절된 것이 이스라엘의 문제였습니다.  여러분과 나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너무나도 문제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진짜 문제는 다른 사람이나 외부의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성전인 내 자신을 누가 지배하느냐에 있습니다.  주인이셔야 할 하나님이 지배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이 나를 지배하고 교회를 지배하고 있는가?  각 자 자신과 교회 안에 존재하는 물질주의 명예주의 쾌락주의가 하나님 대신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의 주인노릇하는 것은 없는지 항상 살펴보며 성전 청결로 우리의 삶과 사역이 시작되어야 하겠습니다.

17 그런데 너희는 그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예수님의 눈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강도의 소굴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성전을 방문한 수 많은 사람들 중에 성전 안에서 짐승을 파는 자들을 보면서도 환전상을 보면서도 그 누구도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 누구도 강도의 소굴로 변한 성전을 보면서 분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분개하셨는가?  요한복음에 의하면  '주의 집을 사모하는 열정으로 사로잡혀있었기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하나님과의 만남을 너무 귀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 하나님과 인간이 만날 수 있는 곳을 이토록 중요시 여겼고 또한 거룩한 분노가 있었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그리고 하나님과의 만남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열정이 있다면 하나님의 성전인 나 자신과 교회에 대한 열정을 갖게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 자신과 교회에 대한 분개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강도의 소굴로 변한 하나님의 집에 대한 애통함이 없고 분개가 없고  오히려 엉뚱한 것에 분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그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기도하는 집과 강도의 집을 대조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며 또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정말 성전 안에 하나님을 향한 기도가 있다면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만남이 있고 하나님과의 교통이 있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기도가 있고 없고에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차지할 수 있고 아니면 강도가 차지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믿음의 사람들로서 싸워야할 싸움은 누가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는 가의 싸움입니다. 그리고 이 영적 전쟁에 승리하려면 기도해야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회복된다면 소망이 있습니다.  그 어떤 태산같은 문제가 있을지라도 우리들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잃으면 내 심령도 가정도 교회도 강도의 소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온갖 기도와 간구로 늘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또 이것을 위하여 늘 깨어서 끝까지 참으며, 모든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라.” 엡 6:18)

우리가 무기력하든지 어떤 문제에 휩싸여있든지, 다른 사람에게서나, 내가 처한 환경에게서 문제점을 찾지 않고, 기도 가운데 주님의 손을 붙잡을 수 있다면 모든 지식을 초월한 하나님의 평강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번 고난 주간 동안,  교회의 문제나 가정의 문제나 내 자신의 문제도 외부세력이나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내 자신에게 있음을 깊이 인정하는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마음 속에 분개함이 있다면 다른 사람이나 다른 환경에서 문제점을 찾기 전에 내 자신에게 문제점을 먼저 찾은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각 자가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기도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구원을 누리고 감사하며 기도가운데 하나님과 늘 교통하고 있는지 돌아보며 무엇보다도 우리의 기도생활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항상 주님과 기도가운데 교제하여, 각 자의 삶이 강도의 소굴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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