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로서의 실패자, 다윗" 사무엘상 3:2-5; 에베소서 6:4 6/16/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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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로서의 실패자, 다윗" 사무엘상 3:2-5; 에베소서 6:4 6/16/2019
사무엘상 3:2 다윗이 헤브론에서 아들들을 낳았으되 맏아들은 암논이라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의 소생이요 3 둘째는 길르압이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의 소생이요 셋째는 압살롬이라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아들이요 4 넷째는 아도니야라 학깃의 아들이요 다섯째는 스바댜라 아비달의 아들이요 5 여섯째는 이드르암이라 다윗의 아내 에글라의 소생이니 이들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자들이더라
(엡 6:4) 또 아버지이신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
요즘 우리가 사무엘하를 본문으로 큐티 하면서 다윗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성경에 다윗만큼 한 사람의 생애와 사역이 그토록 자세히 기록된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사무엘상 13:14절부터 다윗이 등장 31장, 그리고 사무엘하 전체 (24장); 역대상 전체 29장, 150개의 시편 중 반 이상이 다윗의 시 아닙니까?
그래서 이 성경의 기록 속에 다윗의 삶의 여러가지 측면들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신실한 목자였으며, 어린 소년으로서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을 죽인 용감한 군사였으며, 수 많은 적들을 물리친 장군이었으며, 하프를 켜던 음악가였으며, 수 많은 시편을 지은 시인이었으며, 그리고 자신을 죽이려했던 사울을 끝까지 존경하고 사랑했던 놀라운 인격자였으며,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었으며,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그는 하나님을 사랑한 자로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충성된 예배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자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여러기지 면에서 훌륭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자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버지로서의 다윗은 실패자였습니다. 다윗은 아버지로서 따라야 할 모범이 되었다기 보다, 따르지 말아야 할 나쁜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의 잘못된 본보기를 통해서, 우리 아버지들이 어떻게 자녀들을 양육하거나 대해야할지 조금이라도 배우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30세때 왕이 되어 40년간 왕으로서 다스리다 죽었는데 처음부터 모든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40년간 왕으로서의 통치기간 중, 처음 7년은 자기가 속한 유다지파만의 왕이었고 그 기간 중 그가 머문 수도는 헤브론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다윗이 헤브론에 있는 동안 가족상황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 기간 중 가졌던 6명의 아내와 이들로부터 난 6아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결혼한 6명의 아내 중에는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가 있었습니다. 그 녀는 분명 이스라엘 여인이 아닌 이방인이었습니다. 신명기에 분명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들과 결혼하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명령 (신 7:3-4)하셨음에도, 다윗은 이방여인과 결혼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은 많은 아내를 두어서는 안된다는 하나님의 명령 (신 17:17) 도 불순종한 것입니다. 사실 다윗은 본문에 언급된 아내들 외에도, 사울의 딸인 미갈을 첫째 아내로 삼았기 때문에 최소한 7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스라엘의 모든 12지파의 왕이 되어 헤브론에서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뒤, 그 곳에서도 더 많은 여인들을 아내로 삼았습니다. 심지어, 이미 남편이 있는 밧세바를 겁탈하여 자신의 아내로 삼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숨기기 위하여 밧세바의 남편도 전쟁 중 죽게 모략을 세워 죽게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낳게된 아기는 죽습니다. 역대상 5장을 보면 그 이후에 다윗이 밧세바를 통해서 솔로몬등 4명의 아이를 낳고 그 외에도 다른 아내들을 통해 9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역대상 5:9) 그 밖에 첩들이 낳은 여러 아들들이 있었다고말합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정확하게 얼마나 많은 아내와 첩을 얻었는지 알 수 가 없고, 다윗이 얼마나 많은 아들과 딸이 있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수 많은 자녀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자녀들이 많다 보니까, 다윗의 자녀들은 아빠는 볼 수 없고 엄마만 있는 가정에서 자라야했습니다. 오늘날 미국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아버지가 없는 가정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볼써 오래 전 통계이지만 히스패닉은 3가정의 한가정만 아버지가 있습니다. 흑인들의 가정은 5가정당 한가정만 아버지가 있다고합니다.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많은 범죄를 일으키기 쉽고 사회의 많은 문제를 일으키게되는 것입니다
미국 감옥에 가면 백인들에 비해서 인구 비율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히스패닉들과 흑인이 수감 된 것이 바로 이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주보에 아버지를 위한 10계명을 실었는데, 이 10계명의 공통된 전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자녀들과 함께 살고있다는 전제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녀들과 함께 살지 못했습니다. 특별히, 아버지를 위한 여섯 번째 계명을 보시면, (제가 읽습니다) “자녀의 어머니를 사랑하라. 아버지가 자녀의 어머니인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고, 그 모습을 본 아들은 커서 결혼하면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게 되리라.”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버지가 엄마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윗의 자녀들은 아버지가 자기 엄마를 사랑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다윗의 자녀들은 아버지로부터 받아야 할 자녀에 대한 마땅한 관심울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엄마도 아버지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자란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그 마음의 상처가 있었겠습니까? 무책임한 아버지에 대해 분개하면서 자랐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상처가 자녀들 자신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모습을 본 아들들은 커서 결혼하며 아버지의 모습을 본대로 행한다는 것 아닙니까? 다윗의 뒤를 위어 이스라엘의 왕이된 솔로몬을 보십시요: 왕상 3:1 솔로몬은, 이집트 왕 바로와 혼인 관계를 맺고, 바로의 딸을 아내로 맞았다. (아버지 다윗이 이방여인을 아내로 맞았으니까, 솔로몬도 첫 아내를 이방여인을 아내로 맞은 것입니다)
열왕기상 11:1-8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2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3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4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5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6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 같이 따르지 아니하고
7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8 그가 또 그의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그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이렇게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에게서 보고 배운대로 이방여인과 결혼하였으며, 오히려 아버지 다윗보다 한 수 더 떠서, 수 많은 여인을 아내로 첩으로 둔 것입니다. 결국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통치가 함께 하는 나라가 아니라 우상숭배로 그득찬 나라로 변질되게하는 장본인이된 것입니다. 솔로몬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된 르호보암은 솔로몬과 암몬여인 나아마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서, 나아마는 남편 솔로몬에게 뿐 아니라 아들 르호보암에게 암몬의 우상을 섬기도록 하는 영향을 끼친 여인입니다 르호보앗도 “아내 열여덞 명과 첩 예순 명을 거느렸으며(대하 11:21). 28명의 아들과 60명의 딸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결국 이스라엘이 북왕국과 남왕국으로 갈라지게 되는 비극의 역사을 일으킨 장본인이 된 것입니다
다윗이나 솔로몬이나 르호보앗이나 자신의 정욕과 정치적인 목적으로 수 많은 아내를 얻었습니다 진정으로 아내를 사랑하기 위해 한 아내의 남편이 되고 자녀를 키운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녀들 양육에 실패한 자들입니다. 이들 왕들과 오늘날 아버지들은 너무 다릅니다 비교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자녀들을 올바르게 양육하려면 자녀들의 어머이요 본인의 아내인 그 여인만을 충실히 사랑해야, 가정이 행복하고 자녀를 제대로 양육할 수 있으며 우리들의 자녀들도 그런 모범을 따를 수 있다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중요한 원칙을 배웁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자녀양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칙임을 기억하십시요)
두번째로,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다윗이 헤브론에 있는 동안 낳은 6명의 아들들이 소개되는데, 이들의 어머니가 다 각 각 다릅니다. 그리고 이 자녀들 간에 화평한 관계보다는 비극적인 일이 알어났었음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 중 첫째 아들인 암논이, 어머니가 다른 아들 암살롬의 여동생 다말을 겁탈한 뒤 다말을 위로하기 보다 경멸합니다. 정욕에 사로잡혀 아버지 다윗이 한 범죄를 이복여동생에게 행한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이 분개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분개하면서도 암논에게 아무런 처벌이나 책망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자기 여동생을 겁탈하고무시한 암논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암논에 대해 아무런 처벌이나 책망을 하지 않는 아버지 다윗의 모습을 보면서 참을 수 없이 분개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압살롬은 결국 2년동안 이를 갈며 참고있다고, 결국 자기 부하들을 통해 암논을 죽입니다. 형제 간에 살인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압살롬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왕으로 섬겼던 그술 지역으로 도망갔습니다 그리고 그술에서 3년동안 살다가, 요압의 충고때문에 다윗은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허락합니다. 그러나 압살롬이 자기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 다윗의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삼하 14:24) 2년이 지나도록 아버지가 자기를 만나주지 않자, 압살롬은 자기를 그술지역에서 데려온 요압에게 분개하면서 말합니다
“내가 그술에서 돌아오지 않고 거기에 있는 것이 내게 나았으리라 이제는 네가 나로 하여금 왕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하라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옳으니라 하는지라” (삼하 14:32) 무슨 말입니까? 아버지 다윗이 그렇게 모른 척만 하지말고 덮고 있지만 말고,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으면 당당히 자신을 처벌해 달라는 이야기 아닙니까? 아버지가 자기를 모른 척 하면서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기가 죽는 것이 낫겠다고 절규하고 있습니다
결국, 요압이 다윗에게 이 말을 전했을 때야 다윗이 압살롬을 찾아봅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이미 깊게 상처를 받았고 분노가 극도에 이른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에게 완전히 돌아서서 전쟁을 일으켜 아버지 다윗에게 반역한 정도가 아니라 아버지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자기가 죽임을 당합니다. 아들이 범한 범죄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알아보거나 훈계하거나 처벌하지 않았던 다윗의 실책때문에 아들 압살롬이 적대감을 가지게 되고, 반역하고 결국 죽는 자리에까지 가게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넷째 아들은 아도니야입니다. 다윗이 죽을 때가 되었을 때에, 다윗의 첫째 아들 암논은 이미 죽었고, 아비가일에게서 태어난 두 째아들은 어렸을 때 죽은 것같습니다 그리고, 세째 아들 압살롬도 이미 죽었으므로, 네째 아들인 아도니야는 자기가 살아있는 장자이므로 왕이 되려고 음모를 꾸몄지만 솔로몬이 왕이 되었습니다. 솔로몬이 그의 목숩을 살려주었지만, 아도니야가 아버지 다윗의 몸종 시녀였던 수네미 여인을 자신의 아내로 삼으려다가 결국 솔로몬에 의해 죽게됩니다. 개념이 없는 사람처럼 처신하다가 죽게된 것입니다 열왕기상 기자는 이 아도니야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아버지가 (다시 말하면 다윗이)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왕상 1:6) 그러니까 다윗이 아도니야를 한번도 훈계나 훈련 한적이 없이 자란 것입니다 그 결과로 아도니야도 버릇없이 자랐고 결국 철없이 굴다가 결국 죽게된 것입니다
다윗이 아도니야를 훈계하지 않은 것을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다"라고 한글 성경에 표현했는데, 여러 영어성경에는 “기분나쁘게 displeased”하지 않았다로 번역했습니다 자녀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로서 자녀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싶은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착한 아빠들이 자녀들에게 쓴소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녀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고 특별히 틴에이져들은 극단적으로 튈 수도 있으므로, 훈계한다는 것이 두렵기까지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살릴려면 훈계와 훈련 해야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사시대의 마지막 제사장이었던 엘리의 아들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으로 섬기면서 주께 바쳐진 제물을 가로채고 성막에서 섬기는 여인들을 겁탈하던 못된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린 사무엘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엘리는, 자기의 아들들이 스스로 저주받을 일을 하는 줄 알면서도, 자식들을 책망하지 않았다. 그 죄를 그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집을 심판하여 영영 없애 버리겠다고, 그에게 알려 주었다.” (삼상 3:13)
하나님께서 엘리의 아들들을 직접 책망하시기 보다 엘리에 대해서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저렇게까지 타락한 것은 아비의 책임이란 말씀일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엘리도 그 아들들도 죽었습니다. 사무엘은 자식들을 책망치 않은 엘리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의 경고와 그리고 그 결과를 목격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자식들을 훈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사무엘은 하나님에게서 직접 듣고 본것입니다 그러나 사무엘 자신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사무엘상 8:1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으니 2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3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사무엘도 자녀들을 훈계하고 훈련하는데 실패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의 불평이 생겼고, 결국 이스라엘이 왕정을 요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녀들을 올바로 훈계하고 훈련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예를 든 엘리나 사무엘이나 다윗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엘리나 사무엘이나 다윗이나 다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을 섬기기에 바뻤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자녀 양육엔 실패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머니의 책임은 묻지 않고 아버지의 책임만 묻습니다 에베소서 6장에서도,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할 것을 명령하면서도 막상 자녀 양육에 관한 책임을 어머니보단 아버지에게 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책임만을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이 말은 어머니의 책임이 중요치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단지 아버지들은 가정 밖에서 직업과 사역에 시간을 많이 쏟기 때문에 가정에서 아버지로서의 책임이 중요함에도, 그 책임을 게을리하기 쉽기 때문에 아버지의 책임을 강조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오늘 주보에 실은 아버지를 위한 십계명에 보면, 첫 번째 계명이, 자녀와 시간을 보내라. 선물보다 값진 것이 시간이다. 커리어를 쌓는 일보다 (교회 사역보다) 먼저 가정에 우선순위를 두라고 말합니다 . 자녀들에게 시간을 투자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녀들은 자기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세상이 영향을 주는대로 그들 멋대로 살게될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아버지들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에베소서 6:4절에 보면, 자녀들에게 쓴소리를 하기 싫어하는 착한 아버지들에게 용기를 주는 말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버지이신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 그러니까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않으면서도 훈련과 훈계가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분이 다음의 경우가 자녀들을 노엽게 하는 것 감정을 상하게 한다고 하였는데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른 집 자녀들과 비교할 때;
자녀들의 문화를 이해해주지 않았을 때;
좋지 않은 성적 때문에 꾸지람 당했을 때 : “어떤 아버지가 항상 꼴등을 하는 아들에게 어느 날 경고를 했다고합니다. "이번 기말고사 때도 꼴등하면 부자간의 인연을 끊겠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아들이 집에 돌아오자 아버지가 "시험은 어떻게 되었냐?"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대답했다고 합니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자녀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자녀들과 놀아주지 않을 때 : “지금도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크게 분노했던 한 사건을 기억합니다 수주 동안 어디 함께 놀러가겠다가 약속하고 막상 그날이 되니까 지키지 않았을 때 - 그 떄 속으로 제가 결심했던 것이있습니다. 이 분노는 내가 평생 잊지 않겠다.”
자녀들을 차별대우할 때 (unfair) ;
압살롬에게서 처럼 (다른 형제 자매를 훈계하지 않을 때도 노여움을)
그러니까 훈계하라는 말은 무조건 야단치라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자녀들과 대화하고 자녀들의 의견을 들어주고 존중해주면서 훈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은 무조건 풀어놓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자녀들의 의견을 들어주고 존중하되 그들을 가르키고 훈련하려는 의도가 있어야한다는 말씀이겠지요.
요즘 자녀들은 세상적으로 더 관심을 갖기 때문에, 또, 부모의 권위에 순종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주 안에서 훈련하고 훈계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로서 우리가 먼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경외함을 보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가고 먼저 실천하는 삶을 산다면 성령님께서 자녀를 훈련하고 훈계하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들이 믿음의 순종과 성령님의 도움으로 자녀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잘 양육하는 믿음과 사랑의 아버지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무엘상 3:2 다윗이 헤브론에서 아들들을 낳았으되 맏아들은 암논이라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의 소생이요 3 둘째는 길르압이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의 소생이요 셋째는 압살롬이라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아들이요 4 넷째는 아도니야라 학깃의 아들이요 다섯째는 스바댜라 아비달의 아들이요 5 여섯째는 이드르암이라 다윗의 아내 에글라의 소생이니 이들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자들이더라
(엡 6:4) 또 아버지이신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
요즘 우리가 사무엘하를 본문으로 큐티 하면서 다윗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성경에 다윗만큼 한 사람의 생애와 사역이 그토록 자세히 기록된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사무엘상 13:14절부터 다윗이 등장 31장, 그리고 사무엘하 전체 (24장); 역대상 전체 29장, 150개의 시편 중 반 이상이 다윗의 시 아닙니까?
그래서 이 성경의 기록 속에 다윗의 삶의 여러가지 측면들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신실한 목자였으며, 어린 소년으로서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을 죽인 용감한 군사였으며, 수 많은 적들을 물리친 장군이었으며, 하프를 켜던 음악가였으며, 수 많은 시편을 지은 시인이었으며, 그리고 자신을 죽이려했던 사울을 끝까지 존경하고 사랑했던 놀라운 인격자였으며,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었으며,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그는 하나님을 사랑한 자로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충성된 예배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자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여러기지 면에서 훌륭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자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버지로서의 다윗은 실패자였습니다. 다윗은 아버지로서 따라야 할 모범이 되었다기 보다, 따르지 말아야 할 나쁜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의 잘못된 본보기를 통해서, 우리 아버지들이 어떻게 자녀들을 양육하거나 대해야할지 조금이라도 배우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30세때 왕이 되어 40년간 왕으로서 다스리다 죽었는데 처음부터 모든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40년간 왕으로서의 통치기간 중, 처음 7년은 자기가 속한 유다지파만의 왕이었고 그 기간 중 그가 머문 수도는 헤브론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다윗이 헤브론에 있는 동안 가족상황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 기간 중 가졌던 6명의 아내와 이들로부터 난 6아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결혼한 6명의 아내 중에는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가 있었습니다. 그 녀는 분명 이스라엘 여인이 아닌 이방인이었습니다. 신명기에 분명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들과 결혼하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명령 (신 7:3-4)하셨음에도, 다윗은 이방여인과 결혼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은 많은 아내를 두어서는 안된다는 하나님의 명령 (신 17:17) 도 불순종한 것입니다. 사실 다윗은 본문에 언급된 아내들 외에도, 사울의 딸인 미갈을 첫째 아내로 삼았기 때문에 최소한 7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스라엘의 모든 12지파의 왕이 되어 헤브론에서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뒤, 그 곳에서도 더 많은 여인들을 아내로 삼았습니다. 심지어, 이미 남편이 있는 밧세바를 겁탈하여 자신의 아내로 삼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숨기기 위하여 밧세바의 남편도 전쟁 중 죽게 모략을 세워 죽게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낳게된 아기는 죽습니다. 역대상 5장을 보면 그 이후에 다윗이 밧세바를 통해서 솔로몬등 4명의 아이를 낳고 그 외에도 다른 아내들을 통해 9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역대상 5:9) 그 밖에 첩들이 낳은 여러 아들들이 있었다고말합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정확하게 얼마나 많은 아내와 첩을 얻었는지 알 수 가 없고, 다윗이 얼마나 많은 아들과 딸이 있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수 많은 자녀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자녀들이 많다 보니까, 다윗의 자녀들은 아빠는 볼 수 없고 엄마만 있는 가정에서 자라야했습니다. 오늘날 미국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아버지가 없는 가정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볼써 오래 전 통계이지만 히스패닉은 3가정의 한가정만 아버지가 있습니다. 흑인들의 가정은 5가정당 한가정만 아버지가 있다고합니다.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많은 범죄를 일으키기 쉽고 사회의 많은 문제를 일으키게되는 것입니다
미국 감옥에 가면 백인들에 비해서 인구 비율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히스패닉들과 흑인이 수감 된 것이 바로 이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주보에 아버지를 위한 10계명을 실었는데, 이 10계명의 공통된 전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자녀들과 함께 살고있다는 전제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녀들과 함께 살지 못했습니다. 특별히, 아버지를 위한 여섯 번째 계명을 보시면, (제가 읽습니다) “자녀의 어머니를 사랑하라. 아버지가 자녀의 어머니인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고, 그 모습을 본 아들은 커서 결혼하면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게 되리라.”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버지가 엄마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윗의 자녀들은 아버지가 자기 엄마를 사랑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다윗의 자녀들은 아버지로부터 받아야 할 자녀에 대한 마땅한 관심울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엄마도 아버지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자란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그 마음의 상처가 있었겠습니까? 무책임한 아버지에 대해 분개하면서 자랐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상처가 자녀들 자신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모습을 본 아들들은 커서 결혼하며 아버지의 모습을 본대로 행한다는 것 아닙니까? 다윗의 뒤를 위어 이스라엘의 왕이된 솔로몬을 보십시요: 왕상 3:1 솔로몬은, 이집트 왕 바로와 혼인 관계를 맺고, 바로의 딸을 아내로 맞았다. (아버지 다윗이 이방여인을 아내로 맞았으니까, 솔로몬도 첫 아내를 이방여인을 아내로 맞은 것입니다)
열왕기상 11:1-8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2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3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4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5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6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 같이 따르지 아니하고
7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8 그가 또 그의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그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이렇게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에게서 보고 배운대로 이방여인과 결혼하였으며, 오히려 아버지 다윗보다 한 수 더 떠서, 수 많은 여인을 아내로 첩으로 둔 것입니다. 결국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통치가 함께 하는 나라가 아니라 우상숭배로 그득찬 나라로 변질되게하는 장본인이된 것입니다. 솔로몬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된 르호보암은 솔로몬과 암몬여인 나아마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서, 나아마는 남편 솔로몬에게 뿐 아니라 아들 르호보암에게 암몬의 우상을 섬기도록 하는 영향을 끼친 여인입니다 르호보앗도 “아내 열여덞 명과 첩 예순 명을 거느렸으며(대하 11:21). 28명의 아들과 60명의 딸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결국 이스라엘이 북왕국과 남왕국으로 갈라지게 되는 비극의 역사을 일으킨 장본인이 된 것입니다
다윗이나 솔로몬이나 르호보앗이나 자신의 정욕과 정치적인 목적으로 수 많은 아내를 얻었습니다 진정으로 아내를 사랑하기 위해 한 아내의 남편이 되고 자녀를 키운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녀들 양육에 실패한 자들입니다. 이들 왕들과 오늘날 아버지들은 너무 다릅니다 비교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자녀들을 올바르게 양육하려면 자녀들의 어머이요 본인의 아내인 그 여인만을 충실히 사랑해야, 가정이 행복하고 자녀를 제대로 양육할 수 있으며 우리들의 자녀들도 그런 모범을 따를 수 있다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중요한 원칙을 배웁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자녀양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칙임을 기억하십시요)
두번째로,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다윗이 헤브론에 있는 동안 낳은 6명의 아들들이 소개되는데, 이들의 어머니가 다 각 각 다릅니다. 그리고 이 자녀들 간에 화평한 관계보다는 비극적인 일이 알어났었음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 중 첫째 아들인 암논이, 어머니가 다른 아들 암살롬의 여동생 다말을 겁탈한 뒤 다말을 위로하기 보다 경멸합니다. 정욕에 사로잡혀 아버지 다윗이 한 범죄를 이복여동생에게 행한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이 분개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분개하면서도 암논에게 아무런 처벌이나 책망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자기 여동생을 겁탈하고무시한 암논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암논에 대해 아무런 처벌이나 책망을 하지 않는 아버지 다윗의 모습을 보면서 참을 수 없이 분개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압살롬은 결국 2년동안 이를 갈며 참고있다고, 결국 자기 부하들을 통해 암논을 죽입니다. 형제 간에 살인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압살롬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왕으로 섬겼던 그술 지역으로 도망갔습니다 그리고 그술에서 3년동안 살다가, 요압의 충고때문에 다윗은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허락합니다. 그러나 압살롬이 자기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 다윗의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삼하 14:24) 2년이 지나도록 아버지가 자기를 만나주지 않자, 압살롬은 자기를 그술지역에서 데려온 요압에게 분개하면서 말합니다
“내가 그술에서 돌아오지 않고 거기에 있는 것이 내게 나았으리라 이제는 네가 나로 하여금 왕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하라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옳으니라 하는지라” (삼하 14:32) 무슨 말입니까? 아버지 다윗이 그렇게 모른 척만 하지말고 덮고 있지만 말고,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으면 당당히 자신을 처벌해 달라는 이야기 아닙니까? 아버지가 자기를 모른 척 하면서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기가 죽는 것이 낫겠다고 절규하고 있습니다
결국, 요압이 다윗에게 이 말을 전했을 때야 다윗이 압살롬을 찾아봅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이미 깊게 상처를 받았고 분노가 극도에 이른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에게 완전히 돌아서서 전쟁을 일으켜 아버지 다윗에게 반역한 정도가 아니라 아버지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자기가 죽임을 당합니다. 아들이 범한 범죄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알아보거나 훈계하거나 처벌하지 않았던 다윗의 실책때문에 아들 압살롬이 적대감을 가지게 되고, 반역하고 결국 죽는 자리에까지 가게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넷째 아들은 아도니야입니다. 다윗이 죽을 때가 되었을 때에, 다윗의 첫째 아들 암논은 이미 죽었고, 아비가일에게서 태어난 두 째아들은 어렸을 때 죽은 것같습니다 그리고, 세째 아들 압살롬도 이미 죽었으므로, 네째 아들인 아도니야는 자기가 살아있는 장자이므로 왕이 되려고 음모를 꾸몄지만 솔로몬이 왕이 되었습니다. 솔로몬이 그의 목숩을 살려주었지만, 아도니야가 아버지 다윗의 몸종 시녀였던 수네미 여인을 자신의 아내로 삼으려다가 결국 솔로몬에 의해 죽게됩니다. 개념이 없는 사람처럼 처신하다가 죽게된 것입니다 열왕기상 기자는 이 아도니야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아버지가 (다시 말하면 다윗이)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왕상 1:6) 그러니까 다윗이 아도니야를 한번도 훈계나 훈련 한적이 없이 자란 것입니다 그 결과로 아도니야도 버릇없이 자랐고 결국 철없이 굴다가 결국 죽게된 것입니다
다윗이 아도니야를 훈계하지 않은 것을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다"라고 한글 성경에 표현했는데, 여러 영어성경에는 “기분나쁘게 displeased”하지 않았다로 번역했습니다 자녀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로서 자녀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싶은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착한 아빠들이 자녀들에게 쓴소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녀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고 특별히 틴에이져들은 극단적으로 튈 수도 있으므로, 훈계한다는 것이 두렵기까지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살릴려면 훈계와 훈련 해야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사시대의 마지막 제사장이었던 엘리의 아들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으로 섬기면서 주께 바쳐진 제물을 가로채고 성막에서 섬기는 여인들을 겁탈하던 못된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린 사무엘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엘리는, 자기의 아들들이 스스로 저주받을 일을 하는 줄 알면서도, 자식들을 책망하지 않았다. 그 죄를 그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집을 심판하여 영영 없애 버리겠다고, 그에게 알려 주었다.” (삼상 3:13)
하나님께서 엘리의 아들들을 직접 책망하시기 보다 엘리에 대해서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저렇게까지 타락한 것은 아비의 책임이란 말씀일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엘리도 그 아들들도 죽었습니다. 사무엘은 자식들을 책망치 않은 엘리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의 경고와 그리고 그 결과를 목격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자식들을 훈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사무엘은 하나님에게서 직접 듣고 본것입니다 그러나 사무엘 자신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사무엘상 8:1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으니 2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3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사무엘도 자녀들을 훈계하고 훈련하는데 실패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의 불평이 생겼고, 결국 이스라엘이 왕정을 요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녀들을 올바로 훈계하고 훈련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예를 든 엘리나 사무엘이나 다윗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엘리나 사무엘이나 다윗이나 다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을 섬기기에 바뻤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자녀 양육엔 실패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머니의 책임은 묻지 않고 아버지의 책임만 묻습니다 에베소서 6장에서도,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할 것을 명령하면서도 막상 자녀 양육에 관한 책임을 어머니보단 아버지에게 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책임만을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이 말은 어머니의 책임이 중요치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단지 아버지들은 가정 밖에서 직업과 사역에 시간을 많이 쏟기 때문에 가정에서 아버지로서의 책임이 중요함에도, 그 책임을 게을리하기 쉽기 때문에 아버지의 책임을 강조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오늘 주보에 실은 아버지를 위한 십계명에 보면, 첫 번째 계명이, 자녀와 시간을 보내라. 선물보다 값진 것이 시간이다. 커리어를 쌓는 일보다 (교회 사역보다) 먼저 가정에 우선순위를 두라고 말합니다 . 자녀들에게 시간을 투자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녀들은 자기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세상이 영향을 주는대로 그들 멋대로 살게될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아버지들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에베소서 6:4절에 보면, 자녀들에게 쓴소리를 하기 싫어하는 착한 아버지들에게 용기를 주는 말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버지이신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 그러니까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않으면서도 훈련과 훈계가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분이 다음의 경우가 자녀들을 노엽게 하는 것 감정을 상하게 한다고 하였는데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른 집 자녀들과 비교할 때;
자녀들의 문화를 이해해주지 않았을 때;
좋지 않은 성적 때문에 꾸지람 당했을 때 : “어떤 아버지가 항상 꼴등을 하는 아들에게 어느 날 경고를 했다고합니다. "이번 기말고사 때도 꼴등하면 부자간의 인연을 끊겠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아들이 집에 돌아오자 아버지가 "시험은 어떻게 되었냐?"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대답했다고 합니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자녀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자녀들과 놀아주지 않을 때 : “지금도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크게 분노했던 한 사건을 기억합니다 수주 동안 어디 함께 놀러가겠다가 약속하고 막상 그날이 되니까 지키지 않았을 때 - 그 떄 속으로 제가 결심했던 것이있습니다. 이 분노는 내가 평생 잊지 않겠다.”
자녀들을 차별대우할 때 (unfair) ;
압살롬에게서 처럼 (다른 형제 자매를 훈계하지 않을 때도 노여움을)
그러니까 훈계하라는 말은 무조건 야단치라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자녀들과 대화하고 자녀들의 의견을 들어주고 존중해주면서 훈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은 무조건 풀어놓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자녀들의 의견을 들어주고 존중하되 그들을 가르키고 훈련하려는 의도가 있어야한다는 말씀이겠지요.
요즘 자녀들은 세상적으로 더 관심을 갖기 때문에, 또, 부모의 권위에 순종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주 안에서 훈련하고 훈계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로서 우리가 먼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경외함을 보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가고 먼저 실천하는 삶을 산다면 성령님께서 자녀를 훈련하고 훈계하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들이 믿음의 순종과 성령님의 도움으로 자녀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잘 양육하는 믿음과 사랑의 아버지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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