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성장을 방해하는 4가지 요인 로마서 8:29; 베드로전서 1:22-2:2 6/30/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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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사람들을 택하셔서, 당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으니, 이것은 그 아들이 대가족 안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22 여러분은 진리에 복종함으로써, 영혼을 정결하게 해서, 꾸밈없이 서로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순결한 마음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23 여러분은 거듭났습니다. 그것은 썩을 씨가 아니라, 썩지 않을 씨, 곧 살아 계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24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선포된 복음입니다.
1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악의와 모든 기만과 위선과 시기와 온갖 비방하는 말을 버리십시오. 2 갓난 아기와 같이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그리워하십시오. 여러분이 그것을 먹고 자라서, 구원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오늘 영적성장에 방해가 되는 4가지 요인들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저합니다. 먼저 우리는 영적성장을 방해하는 요인인들을 생각하기 전에 영적성장이란 무엇인가를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육적인 성장하면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있지요. 또, 정신적인 성장 사회적인 성장도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부모들은 어린 자녀들이 잘먹고 잘 뛰어놀면서 몸이 튼튼하게 자라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리고 가정생활과 학교생활등을 통해서 공부도하고 좋은 친구들도 사귀면서 자녀들이 육신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성장하기를 소원합니다. 이와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자녀들인 우리들이 영적으로 성장하시기를 간절히 소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인들을 미리 아시고 택하신 이유를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라고 말씀합니다.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것, 즉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받는 것이 바로 영적성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닮도록 미리 아시고 정했다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닮는 것을 목적으로 살도록 정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과는 달리 우리들이 그리스도를 닮는 삶, 영적인 성장의 삶을 살고 있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우리들의 영적인 성장을 방해하는 4가지 요인들을 함께 배우면서, 우리 삶 가운데, 그리스도를 좀 더 닮고저하는, 영적인 성장에 대한 소원과 결단이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번째로, 우리의 영적인 성장을 방해하는 요인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남이 없이 신앙생활하는 것입니다. 아기가 육적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육적으로 성장할 수 없는 것처럼, 영적으로 거듭태어나지 없으면 영적인 성장이 있을 수 없습니다. 물론, 거듭나지 못했으면서도, 예배도 참여하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기도하고 헌금도 하고, 교제도하고 성경공부도하고 자선행위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생명이 없기 때문에,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교회 생활을 오랫동안 했음에도 영적 성장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제일 먼저 자신이 진짜 거듭난 생명이 있나를 확인해보셔야합니다. 오늘 본문말씀 베드로전서 1: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진짜꽃과 조화가 겉으로는 같아 보이지만, 그 본질적인 차이는 생화는 씨로부터 자라고, 조화는 씨가 없는 것입니다. 겉모습만 있는 조화 같은 죽은 신앙이냐, 아니면 생화같은 생명이 있는 신앙이냐의 차이도 역시 이 씨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씁니다. 이 씨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벧전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인위적으로 시작한 신앙이 아니라), 썩지 않을 씨로 갖게되는 생명의 신앙을 말하고 있습니다. “24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꽃은 진짜 꽃이라도 그 꽃에게 생명을 주는 씨는 썩어 없어지고, 꽃은 금방 말라서 떨어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이 씨는 항상 살아있고 항상 있는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우리에게 영원히 계속 성장할 수 있는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25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이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복음인데, 이 복음은 예수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복음은 항상 살아있고 세세토록 있는영생의 말씀으로, 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한 분들은, 새생명,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자들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여 거듭난 생명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영적 성장을 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적인 성장을 방해하는 두번째 요인은 시기와 분쟁이 있는 인간관계입니다.
여러분들이 거듭났다고 해서 꼭 신앙이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도 잘알고 은사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열정이 있었던 교회입니다. 그럼에도,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어린아이와 같다고 아댠칩니다. 이들이 거듭난 성도들이지만, 영적으로 성숙치 못한 어린이로 취급당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고전 3:1-3]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지식과 열심과 은사가 있음에도, 그들이 성숙치 못한 것은, 그들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영적으로 얼마나 성숙한가는, 다른 성도와의 관계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 지라도, 성경을 다 꿰뚫는 지식이 있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꽝입니다. 영적인 성장의 진정한 척도는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적인 성장이란 결국 예수님을 닮는 것인데, 예수님을 닮는 것은 사랑의 예수님을 닮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므로 거듭난 사람이 우선적으로 해야할 일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악의와 모든 기만 (속임)과 위선과 시기와 온갖 비방하는 말을 버리십시오..” (벧전 2:1) 여기 버려야할 것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성 속에 드러나는 자기중심적 삶의 증상들입니다. 이다. 이런 증상 때문에 고린도 교회에서처럼 “시기와 분쟁”을 일으키고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기중심적인 성향에 지배받는 삶을 산다면, 우리들은 영적으로 미성숙한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악독과 모든 속임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사랑의 공동체를 세우고 유지하며 그리스도를 닮아 성장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적인 성장에 방해되는 세번째 요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2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영적인) 젖을 (pure spiritual milk)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벧전 2:1-2)라고 말씀합니다.
어린아이가 친구와 잘 지내더라도 먹어야만 자랄 수 있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고, 다른 성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육적인 양식은 갖난 아이던 어린이던, 청소년이든 어른이던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배고픔을 느끼고, 음식을 찾고 먹게되는데, 영적인 음식은 사정이 다릅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자동적으로 영적인 배고픔을 느끼게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날 굶어도 배고픔을 못느낄 수있습니다. 오히려 안먹으면 안먹을 수록 더 먹고싶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신체 구조상 우리는 먹을 것을 찾고 좋아합니다. 그래서, 음식은 항상 우리들의 주관심사 입니다. 거의 모든 대화에서 음식 이야기를 하게됩니다. 그러나,우리는 본성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음식을 먹는 것처럼 좋아하는 경우가 흔치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제 일생동안 식사하면서 조는 분은 딱 한번 본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설교시간에는 거의 매번 조는 분들을 발견합니다. 찬송가를 부를때나 광고시간에도 조는 분들은 한 분도 없는데, 그런데 설교시간이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조는 분들이 여럿 있습니다. 지금 이 말씀도 졸면서 듣는 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본성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증과 배고픔을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신령한 (순전한 영적인 젖) 젖을 사모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일반음식은 “사모하라” 그러지 않았도 사모하기때문에, “사모하라"고 명령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절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사모하라고 명령합니다. 의지적으로라도 억지로라도 좋아하고 먹으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려면 순전하고 신령한 젖, 하나님의 말씀을 반드시 먹어야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 받고, 거듭나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지만, 그 자리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지로 의롭게 되어가는 삶,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려면, 그런 삶을 살도록 인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운전하다가 방향이 헷갈릴 때 여자들은 보통 차를 가까운 곳에 세우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는데, 남자들은 보통 물어보지 않고 알아서 갈려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보면, 부부 싸움을 하는 경우가 종 종 있습니다.. 그러나, 네비게이션이 나온 이후, 운전하다가 부부싸움 하는 경우가 많이 줄어들었다고합니다. 전에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느냐로 옥신각신 할 때가 많았지만, 이제는 네비게이션이 지시하는 대로 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인생이란 운전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의 안목과 판단력은 근시적이고 일시적이기 때문에 인생의 방향 감각을 잃기 쉽습니다. 그래서 방향 감각을 잃은 사람들끼리 서로 충돌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인생의 네비게이션으로 삼고 사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는 인생의 방향이 틀릴 때마다 성경을 통해서 어디로 어떤 길로 가야할지 지시를 받으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죄를 멀리하게 한다" 인생의 네비게이션인 성경을 멀리하고 각기 제길로 가는 삶이 죄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네비게이션인 성경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자기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때문에 생명의 길로 진리의 길로 살게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매일 하늘로부터 내려주시는 만나를 먹고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출애굽할 당시 장년이었던 자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이 40년간의 광야생활의 교훈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것이니라”란 말씀입니다. 육의 양식만 찾다가 멸망한 이스라엘처럼 되지 말고, 영의 양식을 사모하며 약속된 땅까지 들어가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는 것은 죽음의 길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사모하는 것은 생명의 길이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장의 길임을 믿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영적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잊고 순종치 않는 것입니다.
22 “여러분은 진리에 복종함으로써, 영혼을 정결하게 해서, 꾸밈없이 서로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순결한 마음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진리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영혼이 정결케 되고 꾸밈 없이 사랑하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면모를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6-8에 보면 예수님이 성전의 모통이 돌이 될 수도 있고, 걸리고 넘어지게 하는 돌이 될 수도 있다고 말씀합니다. 어떻게 그런가? (8절) “그들이 걸려서 넘어지는 것은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요” 축복이신 예수님이 말씀을 순총치 아니하는 자에게는 걸림돌이 되고 넘어지게 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거나 읽는 것만으로 부족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분부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가르치라고만 말씀하지 않고 지키게하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듣기만 하고 실천이 없는 것은 모래위에 집을 짓는 신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바울도 빌립보 성도들에게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라고 당부합니다. (빌 4:9) 야고보도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약 1:22) 또 이어서 말합니다.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없는 우리의 본성도 문제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금방 잊어버리고 마는 우리의 본성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기지도 못합니다. 또, 실천에 옮기지 않으니까 영적성장을 경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말세의 성도들의 특징을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디모데후서 3:7) “평생 새로운 가르침을 따르지만, 진리를 깨달을 능력이 없다 NLT) 이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지 돌아보아야하겠습니다.
여러분 이번에 교회합병을 위해서 청빙위원회에서 많이 수고를 하시다가, 결국 새로운 목사님을 청빙하기로 하였는데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은혜롭게 전하는 목사님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목사로서 제 자신을 돌아볼 때, 설교에 관해서 좀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생각합니다. 얼마나 은혜롭게 말씀을 전하는가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설교를 기억하고 자신의 삶에 한가지라도 적용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가 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도 자꾸 은혜로운 설교만 들으려고 하는 자세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한가지라도 기억하려고 애쓰며 실천하려고 하는 성도들이 되어야할 줄압니다. 히브리서의 편지를 받은 성도들은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였기때문에, 어린 성도들을 인도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갔어야 하는데, 아직도 믿음의 기초를 배워야할 단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믿음의 진보가 없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들의 특징을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자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배우지만, 경험적으로 주님을 닮아가는 삶의 변화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항상 설교말씀과 성경공부 심지어 큐티까지 하지만, 계속적으로 습관적으로 잊고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면 영적으로 정체된 삶을 살게될 것입니다.
이제 마무리 짓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인들을 미리 아시고 택하신 이유를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닮는 것을 목적으로 살도록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구원하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영적성장을 살지 못하게 하는 4가지 것들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영적성장을 방해하는 첫번째 요인는, 영적인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먼저 거듭나지 않으면 영적 성장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므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 영적인 생명을 소유하여야합니다.
두번째로, 성도간의 시기와 분쟁이 영적성장을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성장을 하려면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그리스도의 용서와 관용과 사랑을 실천하는 관계를 가져야합니다.
세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면서 영적성장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영적성장을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듣고 배워야합니다.
네번쨰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더라도 순종이 없다면 영적성장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듣고 배운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않도록 노력하고 실천에 옮기므로 영적성장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박천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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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성장을 위한 4가지 요인 (벧전 1:22-2:2)
첫번째로, 우리의 영적인 성장을 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한다. 아기가 육적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육적으로 성장할 수 없는 것처럼, 영적으로 거듭태어나지 없으면 영적인 성장이 있을 수 없다. 거듭나지 못했으면서도, 예배도 참여하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기도하고 헌금도 하고, 교제도하고 성경공부도하고 자선행위도 할 수 있지만, 영적생명이 없으므로 영적 성장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여 거듭난 생명을 가져야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영적 성장을 할 수 있다.
두번째로, 거듭났다고 해서 반드시 신앙이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거듭나서 하나님의 말씀도 잘 알고 은사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열정이 있었지만, 사도바울은 그들을 영적으로 성숙치 못한 어린이로 취급했다. 그들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적인 성장이란 예수님을 닮는 것을 의미하는데, 사랑의 실천 없이는 예수님을 닮을 수 없고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랑의 관계를 갖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자기 중심적 악독과 속임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사랑하여야 영적인 성장을 경험할 수 있다.
세번째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거듭났고 다른 성도와 사랑의 관계성 속에 있다고 해서, 반드시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베드로는,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영적인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라고 권고힌다. 어린아이가 먹지 않으면 자랄 수 없듯이, 그리스도들이 하나님의 말씀 (영적 양식)을 먹지 않으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생각과 성품을 드러내는 책이므로,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적 성장을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뿐 아니라 순종해야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분부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라고 명령하셨다. 듣기만 하고 실천이 없는 것은 모래위에 집을 짓는 신앙이라고 말씀하셨다. 사도바울도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라고 당부하였다. 야고보도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권고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더라도 실천에 옮기므로 삶의 변화가 없다면, 결코 그리스도를 닮을 수 없을 것이고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