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능력가운데 살라" (어떻게 복음의 능력 가운데 살 수 있을까?) 고린도전서 1:18 7/1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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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 교회모임에 오셔서 여러번 말씀을 전해주셨던 김광선 목사님은 해병대 출신인데. 그 분이 해병대에 입대해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들은 말은 “너는 개다"란 말이었다고 합니다. “너는 개다"란 말을 계속 들으니까, 자신이 “개다"라는 믿음이 생기게 되고 개처럼 행동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해병대를 개병대라고 불렀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무슨 말을 듣고 사는가는 너무나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누나에게 “너는 왜 이렇게 못 생겼냐"란 말을 한번 딱 들었는데, 10년 이상을 열등감을 느끼며 살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렇게, 놀림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열등감을 배우며 자란다고 합니다. 칭찬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자신감을 배우고요, 꾸지람을 들으며 자라면 자신감도 잃고 비난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고합니다. 격려를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고마워하는 것을 배우게 되고요, 인정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자존감을 배우고 목표를 세우는 것을 배운다고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들은 말들로 우리의 인격이 형성되고 우리의 운명이 결정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다른 사람의 말 때문에 맘이 괴롭고, 잠을 못 이루고, 소화가 안 되고, 자신감을 잃었던 경험이 있습니까? 심한 경우 남의 말때문에 자살하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반면 가장 어렵고 힘든 순간에 격려의 말을 듣고 평안과 격려와 감사와 기쁨을 경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토록 이만큼 인간의 말은 능력이 있습니다.
인간의 말도 이토록 능력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능력이 있겠습니까? 성경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그 분의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했고, 예수님께서 자신의 능력의 말씀으로 이 만들어진 모든 피조세계를 붙드시며, 보존하신다고 말씀합니다, (히 1:3) “그러니까 이 우주가 운행하는 것, 이 지구가 존재하고 움직이는 것,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 살고 있는 것 우리의 세포 하나 하나가 존재하고 작동하는 모든 것이 예수님의 말씀때문이란 말씀입니다.
또, 오늘 본문 말씀에도,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고린도전서 1:18) 우리 그리스도인을 “구원을 받는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미 과거에 구원 받았을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현재적으로 구원이 필요한 존재들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를 계속적으로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말씀, 즉 복음이 오늘 우리로 구원을 경험하게 하며 살게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이미 죄의 용서를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가 되었고, 하늘 나라의 상속을 받았음을 압니다. 그러나, 또한 중요한 것은, 우리 매일의 삶에서 현재적으로 구원을 누리고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세상과 죄를 이기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승리하며, 감사와 기쁨과 사랑의 삶을 살고 있느냐란 질문입니다. 이 지상에서 살고 있지만 하늘나라의 삶을 경험하고 있느냐란 질문입니다. 그러나 실지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고 살면서도, 세상에 빠져 살거나, 패배하면서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은 분명히, 이 복음이 오늘의 삶 속에서 필요한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너는 개다”란 말을 계속 들으면 개처럼 살게되지만, 복음을 계속 들으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게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어떻게 복음으로 우리가 매일 구원을 경험하며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을까를 세가지 측면에서 나누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며 살 수 있는가? 어떻게 매일 구원을 경험하며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을까? 첫째로, 저는 이미 우리가 이미 과거에 받아들인 “복음과 구원을 기억하라"고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십계명 중에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이 있습니다. 심지어, 안식일을 안지키는 사람을 죽이라고 할 정도로 강조하셨습니다. 이토록 안식일을 강조하면서 지키라고 명령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백성들이, 첫 6일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7일 째 쉬신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안식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안식하며 하나님이 창조주요 인생의 주관자이심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또 안식일을 지키게 하신 또 한가지의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신 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이들로 안식일을 지키게 한 이유는 출애굽의 구원역사를 평생 기억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환경과 처지에 살게되든지, 하나님께서 애굽으로부터 저들을 구원하신 역사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찬양하라는 뜻이 아닙니까?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모든 사사들이나 모든 왕들이 애굽으로부터 저희들을 구원하신 역사를 잊고 살았습니다. 어떻게 아는가? 하나님께서 출애굽의 역사를 기억하도록 유월절을 철저히 지키라고 명령했습니다. 사무엘이나 히스기야와 요시야를 제외하고는,출애굽을 기억하기 위한 유월절 지키는 것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출애굽하게 하신 역사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출애굽의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소홀히 여겼고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소홀히 여기거나, 아예 잊고 불평하면서 살았던 이스라엘을 보면 한심하다고 생각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스라엘이 경험한 구원의 역사보다 더 위대하고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알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세상의 일시적인 노예생활에서 구원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지만, 우리는 사탄과 죄의 노예됨에서 그리고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모세를 통해 기적을 행하시고 어린양들을 잡아 구원하셨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상상할 수 없이 엄청난 과정과 희생을 통해서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가운데 “지금 나의 꼴이, 우리 가정, 교회, 혹은 사업의 꼴이 뭡니까?” 내가 겪고 있는 현실이 뭡니까?”라고 불평하거나 원망 하는 분이 계신다면, 출애굽 후 불평하고 원망하던 이스라엘 보다 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들의 원망과 불평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처한 환경때문 이라기 보다는 좀 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엄청나고 놀라운 은혜를 잊고 때문임을 인정하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속적으로 출애굽의 구원역사를 기억해야만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우리가 이미 받아들인 복음을 기억하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그 구원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마음 자세를 갖고 산다면 현재적인 구원을 경험하며 승리하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두번째로, 어떻게 복음으로 우리가 매일 구원을 경험하며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을까? 첫쨰로는 우리가 이미 과거에 받아들인 “복음과 구원을 기억하여야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받아들인 복음과 구원을 기억할 뿐 아니라, 현재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구원의 놀라운 복들과 선물들을 인정하고 감사하며 누려야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는 과거에 있었던 출애굽의 구원을 기억못하고 산 것만 문제가 아니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셔서 “자신들이 건설하지 않은 성과 집, 자신들이 파지 않은 우물, 자신들이 심지 않은 포도밭과 감람나무 숲, 허다한 과목을 차지하여 배불리 먹어 살찌고 큰 복을 즐기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들을 당연시 여기고 감사하기를 잊었으며 하나님을 거역하였던 것입니다. (느 9:25-26) 그러니까, 과거에 구원하신 역사를 잊었을 뿐 아니라, 현재적으로 받는 축복에 대해서도 인정치 않고 감사치 않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인간은 현재 누리는 복을 깨닫지 못하고 잊고 살기가 쉽습니다. 뉴질랜드의 사진기자 올라프 위그라는 분이 레바논에서 극단 이슬람주의자들에 의해 납치되어 13일 동안 인질로 잡혀 있다가 풀려난 후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내 생애에 지금처럼 확실하게 살아있음을 느껴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인질 생활을 하면서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은 것입니다. 저희 어머니도 북한에서 범선을 타고 탈출하였는데, 서울 마포에 도착해서 첫 소감은 굶어 죽더라도 자유가 좋다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자유를 빼앗겨 보기 전까지는, 일상의 삶 속에서 누리는 자유가 얼마나 큰 축복 인지 잊고 감사하지 못하면서 살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금요일 알곡장막 모임에서 각 자 하나님의 첫사랑을 경험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하나님의 첫사랑의 경험은 특별한 경험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똑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첫사랑을 버린 것은 하나님 아니라 우리의 책임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죄 용서함 받음의 확신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도 그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임을 잊기 쉽습니다. 구원의 확신과 하늘나라에 대한 분명한 소망을 갖고 살면서도 감사함을 잊기 쉽습니다. 죽음에 대한 불안함 없이 살수 있다는 것, 인생의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이요 축복이란 것을 잊고 감사치 못하며 살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도 그 때처럼 얼마나 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고 있는지 생각하고 감사한다면 첫사랑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을 생각하며 끊임없이 감사하며 이렇게 간구합니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 (엡 1:18-19) 지금 사도바울이 간구하는 것은 에베소 성도들이 새로운 소망을 갖게해달라거나,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해달라거나, 새로운 능력을 갖게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들이 갖고 있는 놀라운 소망과 저들이 하나님의 기업이라는 놀라운 정체성과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 가운데 놀랍게 역사한다는 사실을 알게해달라고 간구하는 것 아닙니까? 왜냐하면, 성도들이 이 중요한 선물을 받고서도 그 사실을 모르면서 살기 쉽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이 우리를 개인적으로 안다면, 우리들을 위해서도 같은 간구를 하지 않을까요?
그만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이미 갖고 있는 소망에 대해서 모르거나 깨닫지 못해서 진정한 감사와 기쁨과 찬양과 감격을 잃고 사는 것 아닙니까? 또, 그리스도 안에 이미 갖고 있는 우리의 놀라운 정체성을 잘 모르거나 생각치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세상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안에 이미 놀랍게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과소 평가하고 있기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우리의 얄팍한 지식과 지혜와 능력을 의존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 우리는 이 예수님 안에 있는 복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귀한 것들,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들을 소유하게되었습니다. 죄의 용서 하나님의 자녀된 특권,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 하늘나라의 소망, 인생의 목적. 이런 것들은 금이나 은으로도 살 수 없는 너뮈 귀한 선물이요 영원히 변치 않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인생의 고통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 귀한 선물들을 기억하며 산다면,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으로 우리가 매일 구원을 경험하며 승리의 삶을 살려면, 현재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구원의 놀라운 복들을 선물들을 인정하고 감사하며 누려야겠습니다. 현재적인 복음의 축복을 기억하며 사는 사람들은 힘들고 타락한 세상 가운데 살면서도 승리의 삶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복음으로 우리가 매일 구원을 경험하며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을까?
과거에 받아들인 “복음과 구원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고, 현재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복음과 구원의 놀라운 복들과 선물들을 감사하는 삶도 중요하지만, 막상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수 많은 종류의 음성들을 들으며 우리의 관심을 복음과 구원에만 집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깥 세상에서 들어오는 말뿐 아니라, 내 마음 안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말도 보통 좋은 말들이 아닌데 그 말도 우리가 듣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야말로 우리를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실지로, 내가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은 근심과 걱정과 패배와 열등감과 후회와 죄책과 절망과 거짓과 욕심과 질투 이런 부정적이요 어두운 것들이요, 이런 말들을 내 스스로에게 하고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자신에게 고백합니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그렇게도 낙심하며, 어찌하여 그렇게도 괴로워하느냐?” 그리고 자신에게 명령합니다. “하나님을 기다려라. 이제 내가,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을, 또다시 찬양하련다.” (시 43:5) 그러므로, 우리는 시시 때때로 일부러 하나님의 말씀을 내 자신에게 선포해야합니다. 또 내 자신이 내게 말하려고 할 때 shut up 입닥치라고 말해야합니다. 대신, 내게 나쁜 소식이 아니라 기쁜 소식, 복음을 선포해야합니다. 다윗이 “찬양하라 내 영혼아!" 혹은 “내 영혼아, 주님이 베푸신 모든 은혜를 잊지 말아라.”라고 자기 자신에게 선포했던 것처럼 (시편 103:2) 내 속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내 자아에게 믿음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내 자아야 들어라, 너는 용서 받은 자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혹은 딸이다. 너는 구원받은 자다. 너는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맏는 자다. 너는 하늘나라의 소망이 있는 자다. 너는 사명자다. 기뻐하라 내 영혼아, 감사하라 내 영혼아.
성경의 진리의 말씀도 우리 자신에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John Piper목사님은 롬 8:31-35을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선포한다고 합니다.
내 자아야 들어라 하나님이 너를 위하신다면 누가 너를 대적할 수 있겠는가? 내 자아야 들어라,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너를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너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너를 의롭다 하신 이가 하나님이신데, 너를 택하신이가 하나님이신데 누가 너를 고발하겠느냐, 누가 너를 정죄하겠느냐.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 우편에서 너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가 예수님이신데 누가 감히 너를 정죄하겠느냐.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그 누가 너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겠느냐?
사도바울이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갈 2:20) 고백한 것은, 지속적으로 이 복음을 기억하며 자신에게 선포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던 중, 에베소 장로들과의 마지막 만남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행 20:32) 이 장로들을 주님의 은혜의 말씀 - 즉 복음에게 부탁을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 복음이 그들을 세우고 하늘나라의 기업을 얻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우리가 예수를 처음 믿을 때에 죽음과 죄의 형벌에서 구원해 주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해 줄 뿐 아니라, 처음 구원 받은 후에 계속적으로 오늘이란 삶 속에서 나를 세워주시며 생명력 있는 삶, 천국의 삶을 이 땅에서 살고 누리게 할 능력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의지적으로 복음을 선택하고 기억하고 감사하고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선포한다면, 우리는 승리의 삶,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이 복음이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강조했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가 믿어야 할 가장 중요한 메시지일 뿐 아니라, 이미 복음을 듣고 믿고 예수님을 영접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메시지란, 우리의 매일의 삶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메시지란 말입니다. “너는 개다”라는 말을 계속 들으면서 개같이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우리가 날마다 복음을 기억하고 감사하고 끊임없이 우리 자신에게 선포하므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 승리의 삶 풍성한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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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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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능력가운데 살라" (어떻게 복음의 능력 가운데 살 수 있을까?)
18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이미 죄의 용서를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늘 나라의 상속을 받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세상에 빠져 살거나, 패배하면서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면, 어떻게 복음의 능력으로 매일 구원을 경험하며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을까?
첫째로, 과거에 받아들인 “복음과 구원을 기억하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하셔서 애굽에서 저들을 구원하신 구세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도록 하였으나,(신 5:15) 이스라엘은 출애굽의 구원역사를 철저히 잊고 멸망하였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의 구원역사를 기억해야만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이미 받아들인 복음과 구원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마음 자세를 갖고 산다면 현재적인 구원을 경험하며 승리하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로, 현재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복음과 구원의 복들 인정하고 누리라. 이스라엘은 출애굽의 구원을 망각했을 뿐 아니라, 가나안으로 인도하셔서 “자신들이 건설하지 않은 성과 집, 자신들이 파지 않은 우물, 자신들이 심지 않은 포도밭과 감람나무 숲, 허다한 과목을 차지하여 배불리 먹어 살찌고 큰 복을 즐기게 하신 것들을 당연시 여기고 감사하기를 잊었으며 하나님을 거역하였다. 과거에 구원하신 역사 뿐 아니라, 현재적으로 받는 축복에 대해서도 인정치 않고 감사치 않았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과거에 받은 구원의 복뿐 아니라, 현재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구원의 놀라운 복들을 선물들을 인정하고 감사하며 누린다면, 힘들고 타락한 세상 가운데 살면서도 승리의 삶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야말로 우리를 더럽게 한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나오는 부정적이요 어두운 말을 차단하고 복음과 진리의 말씀을 내 자신에게 선포하므로 이 복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우고 지배하도록 하여 복음을 굳게 붙들 때 매일의 삶 속에서 구원을 경험하는 능력의 삶, 승리의 삶을 살게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