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천하를 얻고도 네 영혼을 잃으면” (마 16:21-27) 7/21/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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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 내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 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왜냐하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영혼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영혼 (목숨)과 바꾸겠느냐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제가 최근에 알게된 침례교 목사님 중에 미국에 1972년도에 들어와서 미군에 입대하여 20년간 장교생활을 하시고 중령으로 제대한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이 1980년대에 한국에서 근무할 때, 미군부대의 카츄사들을 통해서 소개 받은 5명정도의 한국대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필름이란 말을 미국에서 “퓌음”이라고 발음한다고 하니까, 이 학생들이 분명히 필름인데 어떻게 퓌음이라고 발음하냐고 배우려고 하지 않아서 영어가르치는 것을 포기한적이 있다고 제게 경험담을 소개했습니다. 자기네들은 분명히 영어 선생님한에 퓔름으로 배웠다고, 미국 본토에서 온 그 분이 잘 못 알고 있다고 따지는 황당한 일이 생긴 것입니다.
차라리 전혀 배운적이 없다면 잘 따라 배웠을 텐데 이 대학생들이 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결국 영어를 못해우게된 것입니다. 저도 미국에서 발음을 배우면서, 한국식 발음을 전혀 안배웠었으면 차라리 발음배우기가 훨씬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을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
자신이 배우고 경험한 지식이 오히려 배움에 방해가 될 수 있는 것은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당시, 일반 국민은 예수님께 호의적인 사람이 많았는데,, 오히려 성경을 알고 열심히 연구 한다는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적대적이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요 9:41 그래서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눈이 먼 사람들이라면, 도리어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지금 본다고 말하니, 너희의 죄가 그대로 남아 있다." 자기들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의 심령에 들어갈 틈이 없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전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성경을 모르고 유대교 배경이 없는 자들은 쉽게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안다는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으려면 먼저 할례를 받아야 하고. 율법들을 잘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말씀에 보면, 지금부터 약 2000년전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도, 이와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 때부터”란 말로 시작되는데, 그 때가 어느 때입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보내신지 약 2년반이 지난 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약 6개월쯤 전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봅니다. 그러자, 베드로를 비롯해서 제자들은 예수가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고백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약 2년 반동안 함께 있으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란 분명한 확신을 갖게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21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이제까지 제자들은 예수님을 정치적으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고 다스리실 왕으로 오신 메시야로 믿고 따라다닌 것입니다. 자기들이 알고 배운 성경에 의하면 메시야는 반드시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만왕의 왕으로 오실 분인데, 메시야로 믿고 따른 예수님께서 자신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시니까 너무나도 당혹스러웠고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22절에 보니까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하면서, 예수께 항의까지합니다. (제자가 선생에게 배우려고 하지 않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의 잘못을 시정해 주고 있습니다..)
23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예수님께서 지금 베드로가 가진 생각은 사탄의 생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인간의 일만 생각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 간다고 착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실지로는 예수님의 걸림돌이 되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키 보다는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때때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하고 물어보지 않고 내 뜻대로 살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까지 제자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되면, 자기들도 높은 자리에 올라, 많은 사람들을 다스리고, 그들로부터 섬김을 받게 되리라는 기대로 예수님을 따라왔는데 날벼락을 맞은 것입니다. 자신들의 모든 계획과 야망이 수포로 돌아가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자기를) 예수님을 따르려면, 제자들이 각 각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하고,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26절 “(왜냐하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영혼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영혼 (목숨)과 바꾸겠느냐 " 원래 원문에는 “왜냐하면”이란 접속사로 26절이 시작됩니다. (영혼 -목숨 번역에 대한 설명)
그러니까, 26절의 이 말씀이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할 이유요. 또 이 말씀이 궁극적으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고난 받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유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영혼 (목숨)을 잃으면 아무 유익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이 땅에 오셨고 고난 받으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고, 또, 우리도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쫓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영혼 (목숨)을 잃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는 말은 무슨뜻입니까? 이 사실이 왜 이토록 중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알라딘이란 영화를 보신분들? 그 영화에 지니란 인물이 등장합니까? (지니란 소원을 들어주는 마술사같은 인물입니다) 만약 지니가 여러분에게 타나서 당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 한가지를 들어준다면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가? 재산입니까? 명예입니까? 건강입니까? 사업, 미모? 젊음? 실지로 성경에 보면 지니와 비슷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사탄입니다. 이 사탄이 예수님께 나타나서 마치 그의 소원을 들어 줄 수 있는 것처럼 유혹합니다. 자기 한테 절하기만 하면 이 세상 모든 것을 다주겠다고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사실, 베드로나 다른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미 사탄의 유혹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열심히 따라다녔지만, 실지로 이들이 추구했던 것은 예수님도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도 아니고, 자신의 명예, 돈, 권력 이런 것들 아니었습니까? 사탄은 이렇게 오늘날도 알게 모르게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돈, 명예, 쾌락, 건강, 외모 등의 유혹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이런 것들보다, 이런 것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목숨이 더 중요하다. 네 영혼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합니다.
실상 우리 인간들은 자신의 생명이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들 자신뿐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배우자, 자녀 혹은 부모님의 생명이 이 세상 모든 것보다 더 귀중하다고까지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수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의 자신의 수명이 다하면 없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것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세상이 전부인줄 알고 삽니다. 결국 자신의 영혼은 멸망의 길을 달려ㄷ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내 아내를 사랑하고 내 자녀를 사랑하고 내 부모를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더욱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이토록 사랑하십니다. 갈 2:20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다른 피조물보다 이렇게 특별히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제 목숨 (영혼)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말씀할 때에 목숨은 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의미합니다.
목숨 (영어성경에는) 푸슈케 - 숨이란 뜻입니다. 혹은 바람
psuché: breath, the soul Original Word: ψυχή, ῆς, ἡ
Usage: (a) the vital breath, breath of life, (b) the human soul, (c) the soul as the seat of affections and will, (d) the self, (e) a human person, an individual.
인간이 다른 짐승처럼 흙으로 지어졌음에도 하나님의 숨으로 지음받은 존재이기에 때문에 특별한 존재인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요,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지음 받은 존재요.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 받은 것입니다. 또 영원히 살도록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인간의 범죄 이후,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수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육체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고 그 것으로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마 10:28)
몸이 죽는다고 해서 영혼이 함께 죽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너희 목숨 = 영혼을 잃는다는 것은 단지 우리의 몸이 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을 잃는다는 것은, 단지 생물학적인 죽음 이상을 말합니다. 영혼은 몸이 죽더라도 지속되는 것입니다. 영혼을 잃는다는 것은 지옥을 말합니다. (우리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사모하는 맘이 있는 것은 실지로 우리의 몸은 죽을지 몰라도 우리의 영혼은 영원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영혼은 분명히 다른 피조물들이 갖지 못한 인간의 특권입니다. 그런데 이 영혼이 갖고 있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영혼이 있는 인간은 다른 짐승과는 달리 하나님께 죄를 질수 있는 존재란 것입니다. 호랑이나 사자는 사납고 힘이 세도 하나님의 마음을 근심되게 하거나 괴롭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 앞에 자유의지를 행사할 수 있는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도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거역할 수도 있고 하나님을 근심도하게 하고 괴롭힐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로 하나님께 복종하기 보다는 자기 스스로가 주인이 되기를 원하고, 그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은 악한 생각과 정죄와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질투와 거짓 증거와 훼방이런 죄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죄성이 있습니다.
또 한가지 심각한 문제는, 영혼이 죄를 지을 수 있는데, 그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하나님의 숨으로 지음받아, 몸 만이 아니라 영혼이 있어 영원토록 살 수 있도록 지음 받은 인간, 그러나,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죄를 짓는 인간입니다. 사실상 성경은 모든 인간이 다 죄를 지었다고 말합니다. 죄인이 아닌 인간이 없습니다. . 그러므로 심판 받을 수 밖에 없는 인간입니다. (죄는 누구에게 지었느냐에 따라 그심각성이 달라집니다. 졸병한테 짓는 죄와 대통령에게 짓는 죄의 형량이 차이가 있습니다. 인간의 죄는 일시적인 인간에게 지은 죄가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께 지은 죄이므로 영원한 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영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 구원이 필요한 존재란 말입니다.
성경은 이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때가차매 예수님께서 바로 이 구원주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인간의 죄의 댓가를 치루기 위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부활하셨습니다. 몸과 영혼이 지옥에서 멸할 수 밖에 없던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 구원의 사건을 고후 5:20 에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모르신 분에게, 우리 대신에 죄를 씌우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뒤집어 쓰고, 우리는 예수님의 의를 뒤집어 쓰므로, 죄인이 의롭게된 것입니다. 이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고후 6:1) 이 것을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소식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은혜를 베푸신 것은, 우리의 영혼이 온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온 천하를 더 귀하게 생각하는 분들은 예수님의 은혜를 귀하게 생각치 않습니다. 예수님을 따를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 후에 부활하셔서 나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고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신을 부인해야합니다. 예수님에게 제자들처럼 선생노릇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예수님의 뜻보다 자신의 뜻을 앞세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일시적인 이익을 위해서 거짓말을 하거나 꼼수를 부리지 말라는 말입니다. 예수를 따른다고 하면서 아들이 고 3이 되었으니까, 교회는 쉬게하고 학원에 보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자녀들의 출세를 위해 기도하지 말고, 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은, 예수를 따르기 위해 희생하는 삶, 손해 보는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말합니다. 잠시 눈에 보이는 것을 위해서 영원한 것을 포기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가졌다고 기뻐하지 말고 그 것이 없다고 슬퍼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천하를 다 잃더라도 영혼의 구원때문에 기뻐하는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환경과 여건에 상관 없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해야할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빼앗을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이 있고 영원한 복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에게 같은 말을 되풀이해서 쓰는 것이 나에게는 번거롭지 않고, 여러분에게는 안전합니다.” 바울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말씀을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이 그 성도들에게는 안전하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기뻐함을 잃으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눈이 영원한 것을 안보고 일시적인 것,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고 있는 증거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편지를 받는 성도들을 이렇게 칭찬합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 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벧전 1:8-9) 이들은 궁핍한 가운데 있었던 자들이요 믿음 때문에 핍박을 받는 가운데 있던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영혼이 구원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겠다는 믿음입니다. (하박국 3:17-18)
저와 여러분은 세상을 다 얻지 못했을 찌라도, 아니 세상의 일부를 얻지 못했을 지라도, 예수님을 주로 믿고 그 분을 따른다면 구원 받은 사람이요, 천하를 소유한 사람보다 부유한 자란 사실을 믿기 바랍니다. 온 천하보다 귀한 영혼의 구원을 받았으므로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감사하며 기뻐하며 예배자로서 사명자로서 승리의 삶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것이 구원의 기쁨의 회복이요, 첫사랑의 회복입니다.
제가 서두에, 영어를 배우는 학생이 선생노릇 하려고 했다는 예를 들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예수님보다 자신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다고 자만하는 분은 없습니까? 여러분들의 매일 매일의 삶을 통해서 자신의 지식과 경험과 판단과 내 가치관을 의존하지 말고 나를 부인하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며 영혼이 풍성해 지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가운데, 아직까지 예수를 주로 믿고 영접하지 않은 분들도, 자신의 판단과 지식을 의존하지 말고 예수님을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므로 영혼을 잃지 않고 얻게되는 귀한 축복이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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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온 천하를 얻고도 네 영혼을 잃으면” (마 16:21-27) 7/21
“제 목숨 (영혼)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말씀할 때에 목숨은 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영어성경에서 soul로 번역된 헤라말 푸슈케는 숨 (breath) 이란 뜻이다. 인간도 다른 짐승처럼 흙으로 지어졌음에도 또한 하나님의 숨으로 지음받았기에 특별한 존재인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고,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그리고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존재로 지음 받은 것이다. 몸이 죽어 흙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영혼이 함께 죽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다. (마 10:28)
영혼은 분명히 다른 피조물들이 갖지 못한 인간의 특권이나, 영혼 을 가진 인간은 다른 짐승과는 달리 자유의지를 행사하는 존재로 하나님을 거역하여 하나님을 근심도하게 하고 괴롭힐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그리고 죄에 대한 심판이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다 죄인이기에 심판 받을 수 밖에 없고, 인간의 죄는 영원 하신 하나님께 지은 죄이므로 영원한 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 요 구원이 필요한 존재이다.
예수님은 모든 인간의 죄의 댓가를 치루기 위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부활하셨다. 몸과 영혼이 지옥에서 멸할 수 밖에 없던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은혜를 베푸신 것은, 우리의 영혼이 온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 후에 부활하셔서 나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고 믿는 사람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신을 부인해야하고, 예수를 따르기 위해 희생하는 삶, 손해 보는 삶을 살라는 말씀이다. 잠시 눈에 보이는 것을 위해서 영원한 것을 포기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세상 사람들 이 추구하는 것을 가졌다고 기뻐하지 말고 그 것이 없다고 슬퍼하 지 말라는 말씀이다. 또, 천하를 다 잃더라도 주 안에서 기뻐하는 삶을 살라는 말씀이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 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 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벧전 1:8-9) 궁핍한 가운데 그리고 핍박 가운데서도 영혼이 구원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