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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따르며 다스림 받자” 빌립보서 3:12-21 12/16/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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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따르며 다스림 받자”  빌립보서 3:12-21
 
12  내가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요, 또 이미 목표점에 이른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13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단 한 가지입니다. 곧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만을 바라보고, 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숙한 사람은 이와 같이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도 여러분에게 드러내실 것입니다. 16  어찌했든지, 우리가 어느 단계에 이르렀든지, 같은 길로 계속 나아갑시다.
17. 형제자매 여러분, 다 함께 나를 본받으십시오. 여러분이 우리를 본보기로 삼은 것과 같이, 우리를 본받아 사는 사람들을 눈여겨 보십시오. 18. (왜냐하면) 내가 여러분에게 여러 번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19. 그들의 마지막은 멸망입니다. 그들은 배를 자기네의 하나님으로 삼고, 자기네의 수치를 영광으로 삼고, 땅의 것만을 생각합니다.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니, 우리는 그 곳으로부터 구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21. 그분은 만물을 복종시킬 수 있는 능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변화시키셔서,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를 향하여 작정하고 달려나가는 삶으로 묘사합니다.  바울이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던 이유를 적어도 세가지 관찰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로는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를 향해 달려가는 삶은 먼저,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사로 잡으셨다는 사실을 알고 인정하는데서 시작합니다.  두번째로, 바울은 “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힌 자임을 고백하면서도,  그에게는 좀 더 주님을 붙들기 원하는 주님에 대한 필요와 배고픔과 갈증때문에 그리스도를 잡으려고 계속 달려 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만을 바라보고”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후회스러운 과거에 대해 주님의 용서를 받아들였고 발목잡히지 않았으며, 또한 “무엇이든지 자신이 (과거에는) 유익하게 여기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겼고…  그리스도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배설물로 여기므로 그리스도를 향해 달려나갈 수 있었습니다.. (3장7-8) 

15절을 보니까, 바울은 자신의 간증을 한 뒤에 “누구든지 성숙한 사람은 이와 같이 생각하십시오.“라고 명합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성도는 바울과 같은 생각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혔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사람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이미 자신이 그리스도의 것인 줄 알지만 지속적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필요와 갈증을 느끼는 자입니다. 그리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죄용서의 확신과 함께 옛사람에 속한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잊는 분들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도 여러분에게 드러내실 것입니다. “
모든 사람이 이와같이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 성숙한 사람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것이다란 사실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주님의 필요와 주님에 대한 갈증이 별로 없습니다. 아직도 죄의식과 옛사람에 속한 자랑과 정욕에 사로잡혀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잡으려고 달려나가는 삶이 풍성한 삶이요 기쁨의 삶인 것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16  어찌했든지, 우리가 어느 단계에 이르렀든지, 같은 길로 계속 나아갑시다.  이 말씀을 NLT 성경은 “우리가 이미 이룬 단계에서 계속 진행하라” (But we must hold on to the progress we have already made.) 라고 번역했습니다.  우리가 성숙한 단계든지, 아직도 초보단계든지 계속 성장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다시 분명하게, 모두가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7 절 “형제자매 여러분, 다 함께 나를 본받으십시오.”  (고전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라고 당부합니다.  자기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이기 때문에 자기를 본받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는데 있어서 우리에게는 실질적인 모범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가르치고 설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삶의 본보기를 통해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7절
후반부에, “여러분이 우리를 본보기로 삼은 것과 같이, 우리를 본받아 사는 사람들을 눈여겨 보십시오.”라고 말합니다.  바울과 디모데가 빌립보 성도들의 본보기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바울과 데모데를 본받아 사는 분들을 눈여겨 보라고 말합니다. (바울과 디모데의 본을 따르는 자들에게 배우라고 말합니다.  learn from those who follow our example. NLT)

사람들은 본보기를 통해서 배웁니다. 무엇을 해야한다고 가르치고 명령하는 것만으로는 배울 수 없습니다.  저는 몇년 전에 주기환 형제님이 제게 어떻게 새로운 방법으로 넥타이를 맨다는 것을 직접 시범으로 보여 준대로 지금도 그렇게 메고 있습니다. 강의나 말로된 설명으로 배운 것이 아닙니다. 군인들이 사단장이나 대대장에게서 이론으로 군대생활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시범을 보여주는 조교나 고참들에게서 배웁니다.
부모들 자신들이 책을 많이 읽는 부모의 자녀들이 책을 많이 읽습니다.  자신은  TV program이나 신문만 보면서 자녀들에게 책 읽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한국에 헌법재판관까지 오른 어떤 판사님은, 본인이 8번이나  위장전입했음에도 위장전입을 한 3명에 징역형을 구형했다는 보도를 읽었습니다.  국민들이 법을 지켰는지 판단하는 분들이 법을 무시한다면, 어떻게 국민들이 법을 제대로 지켜야되겠다는 경각심을 갖겠습니까?

이와 반대되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처칠이 어쩌다 운전사에게 차를 급히 몰게 했습니다. 그런데 교통 경찰관이 수상을 태운 자동차가 과속으로 달리는 것을 보고 재빨리 차를 세우도록 했습니다.  "수상께서 타셨소." 면허증 제시를 요구하는 경찰관에게 운전사가 말했습니다. "알고 있소. 그러나 과속은 과속이오. 딱지를 떼겠으니 벌금을 물도록 하시오."  경찰관이 끄떡도 하지 않자 이번에는 처칠이 직접 나섰습니다.  "이봐! 내가 누군 줄 알아?"  처칠이 그 특유의 여송연을 입에 문 채 언성을 높였습니다.  "예, 얼굴은 우리 수상 각하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법을 지키는 것은 비슷하질 않습니다."
그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습니다. 결국 처칠은 딱지를 떼였습니다.
처칠은 의회에서 업무를 마치고 올라와 경시총감을 불렀습니다. 그 딱지뗀 경찰관을 격려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 그 경찰을 찾아 특진시킬 것을 명했습니다. 그러나 경시총감은 과속차를 적발했다고 특진시키라는 규정은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당연히 해야할 것을 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상관 밑에서 그 경찰은 규정을 준수하는 본을 배웠을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목사로 부르시고 또 지도자로 부르신 것은 단지 말로뿐 아니라 삶으로 모법이 되기를 원하심인 줄 압니다.  어떤 아버지가 중학생인 아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알게되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걱정스런 눈길만 보낼 뿐 아들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아버지는 아들을 불러 담배를 끊으라고 타일렀습니다.  그 아버지는 담배를 즐겨 피웠지만 먼저 담배를 끊으므로 본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한 달 사이에 완전히 담배를 끊었던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말을 안듣는다고 불평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의 잘못을 지적하기에 앞서 부모들이 먼저 영적인 아버지인 하나님을 따르는 모범을 보여야할 줄 압니다.

제가 원하던 원치 않고, 하고싶던 하고싶지 않던  본보기가 되기 위해서, 의무감을 가지고 해야할 것은 하고 하지 말아야할 것은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그 다음 절 18절과 19절을 보면, 원래 “왜냐하면"이란 말로 시작합니다.  왜 우리가 올바른 본을 본받아야 하고 또 본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8 (왜냐하면) 내가 여러분에게 여러 번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19 그들의 마지막은 멸망입니다. 그들은 배를 자기네의 하나님으로 삼고, 자기네의 수치를 영광으로 삼고, 땅의 것만을 생각합니다.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이미 여러 번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면서 애타는 심정으로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할 본을 따르지 않고, 따르지 말아야 할 본보기를 따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배를 자기네의 하나님으로 삼고, 자기네의 수치를 영광으로 삼고, 땅의 것만을 생각합니다.  배를 하나님으로 삼는 다는 말을 현대인의 성경은 “육체의 욕망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고”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인간의 욕망에 의해 지배 받는 삶을 말합니다.  수치스럽게 생각하여야할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 당연히 수치를 느껴야할 방종한 삶을 살면서도 그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어떤 교단에서는 동성애자들도 교역자가 되고 교회감독까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땅의 것만을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란 자들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가?  이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켜야만 구원얻는 다는 할례파 유대인들과는 정반대로 은혜의 절대성만 주장하는 율법폐기론자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죄가 믾은 곳에 은혜가 넘쳤으니까,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러 있겠다는 주장입니다. 이제 은혜로 구원 받았으니 우리 마음대로 살자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지므로 원수되었을 때에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므로 하나님과 화해되었는데, 또 그 죄를 짓겠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모욕하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는 우리가 죄를 지어도 좋다는 면허증이 아닙니다.  그들의 마지막은 멸망입니다라고 분명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을 본받지 말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내년을 위한 주님의 말씀을 위해 기도하고 생각하던 중, 야고보서 4장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란 말씀이 우리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서 4장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간음하는 사람들이여, 세상과 벗함이 하나님과 등지는 일임을 알지 못합니까?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도 세상과 짝하면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원수가 된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도 섬기고 이방신도 섬기면 우상숭배자가 되는 것처럼,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세상과 벗할 때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도전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는 자들을 죄인들과 두 마음을 품은 자들로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한 발은 하나님에게 다른 한 발은 세상에 둔 마음을 말합니다. . 사도바울은 눈물을 흘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하나님의 원수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두 마음을 품은 삶을 살고 있다고 안타까와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도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구라고 회개를 호소합니다. 야고보서 4장9)

그러면, 십자가의 원수의 삶대신, 두마음을 품은 삶 대신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니, 우리는 그 곳으로부터 구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육체의 욕망과 수치스러운 것을 영광 스럽게 여기며, 땅엣 것만을 생각하며 사는 삶대신
하늘나라의 시민권자란 정체성을 가지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빌립보는 로마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로마의 직할도시입니다. 그러므로 빌립보는 로마의 식민지가 아니라 로마로부터 직접 통치를 받는 로마시민들로 이루어진 도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 땅에 살고 있지만  하늘나라에 속한 백성으로, 하늘나라의 왕이신 예수님의 통치 가운데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법을 따라 사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법대로 산다는 것은 물론 육체의 욕망대로 사는 삶이나, 세상의 사상이나 가치관에 따라사는 삶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금욕주의나 율법주의의 삶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왕으로 모시며 예수에 의해 지배받는 삶을 말합니다.  예수님과 교제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법이라고 하니까 의무적인 면을 생각하기 쉬운데,  실상은 이 땅에 살면서 천국의 특권을 미리 맛보는 삶을 말합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는 삶이요, 예수님과 함께하는 풍성한 삶을 말합니다.

제가 이미 여러번 죠지뮬러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그의 일생동안 15만명 정도의 고아를 돌보느라 얼마나 바빳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자신이  매일 매일 제일 먼저 감당해야 할 가장 크고 중요한 일은 자신의 영혼이 주님 안에서 만족함을 갖게는 하것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전 이 이야기에 도전을 받게되었습니다.  저도 먼저 제가 해야할 일들을 생각하기 전에 내 영혼이 주안에서 만족하는데 우선권을 두어야되겠다는 생각과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어떻게 내 영혼을 만족하게할가에 대한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의 선한 목자로서 양인 내가 생명을 얻고 풍성한 생명을 누리도록 나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말씀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죽으시므로 내게 주신 새로운 정체성과 특권이 바로 내가 생명을 얻고 풍성한 삶을 살 이유요 근거임을 다시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매일 기도하기 전에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시므로 내게 주신 새로운 정체성과 특권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되었습니다. 내가 죄의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자나 깨나 주님과 함께 살게 하신 것, 주님을 위해 살게 하신 것,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영원한 처소를 마련하신 것, 영원한 상속과 영원한 목적을 주신 것, 사랑을 알게 하시고 진정한 사랑을 하게 하신 것 등등의 사실을 매일 읽고 생각하고 소리내어 선포하고 나누므로 그 말씀이 나를 지배하므로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도 꼭 권하고싶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지배되는 삶이 이 땅에서 천국백성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사탄과 세상이 마음대로 우리 마음 속에 활개치고, 휘젓게 하고, 또 우리 마음을 지배하도록 한다면 어떻게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신 백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땅에서 예수님의 통치 가운데 살고싶지 않다면, 왜 주님이 통치하시는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는지 생각해 봐야합니다.  이 땅에서 주님의 임재를 구하고 주님과의 교제를 사모하지 않는다면 구태여 천국에 들어가야할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입니다.  만약, 이 땅에서 우리의 온통 관심이 우리의 욕망을 채우고 이 땅의 것들을 추구한다면, 구태여 천국에 들어가야할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봐야합니다.  왜 이런 자들을 하나님께서 천국에 보내시겠습니까?


21. 그분은 만물을 복종시킬 수 있는 능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변화시키셔서,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크레센트교회 성도들의 기도제목을 보면 옛날이나 오늘이나 기도제목중에 가의 대부분이 몸이 아픈 분들에 기도가 많아집니다.  우리도 아픈분들을 위한 기도가 늘어갑니다.  주님께서 치료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우리의 몸을 병들지 않고 썩지 않고 죽지 않고 고장나지 않을 몸으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도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와 같이 될 것임을 압니다. 그 때에 우리가 그를 참 모습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단지 우리의 몸의 건강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눈으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게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물론, 우리의 귀도 주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고, 우리의 입으로도 주님과 참대화할 수 있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분의 영광스러운 몸을 입는다는 것은 세상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욕심을 초월한 몸을 말합니다 그리하여 죄가 없는 천국에 합당한 삶을 살게될 것입니다.  그날을 소망합니다.

이제 우리가 “구주를 생각만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예수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을까"라는 친송을 부르겠는데요,  그 찬송가 가사대로, 우리가 그 날이 있기까지 구주를 생각하며 이 땅에서 천국의 축복을 누리며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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