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야고보서 4:1-10 1/6/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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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야고보서 4:1-10 1/6/2019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5.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질투하며 사랑하신다" 는 성서 말씀이 공연한 말씀으로 생각하느냐?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저는 지난 12월 27일과 28일 이틀에 걸쳐서, 제가 지난 한해 동안 기도노트에 기록했던 회개와, 감사와, 간구와 결단 그리고 깨달았던 것을 기록한 내용들을 읽으면서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왜, 제가 내 인생을 돌아보면서 다른 것보다 주님에게 고백했던 회개, 감사, 간구와 결단 등을 돌아보았는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복된 삶이요 모든 복된 삶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감사하고 간구하고 결단하는 그 대화가 그토록 중요한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말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도 “하나님을 가까이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는 예배 모임도 빠지지 않고, 주님의 일도 하기를 원 하는데도 하나님이 너무 멀리 떨어져계신 것처럼 느껴지는 분은 없습니까? 이사야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사 59:2) 그러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는 죄때문에 하님과 거리를 느끼게되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것들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가까이 할 수 있는가를 깨닫는 은혜로운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성도들 간에 싸움과 분쟁이 있었습니다. 11절에 보니까 성도들 간에 서로 정죄하고 비방하는 관계였습니다. 2절에도 서로 탐내어 다투고 싸웠다고 반복해서 묘사합니다. 심지어 야고보는 이들을 가리켜 살인자들이라고 야단치고 있습니다. 물론 실지로 다른 형제를 죽였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사도요한은 분명히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요일 3:15) “주님께서도 형제 자매에게 성내는 사람이나 바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살인죄와 같은 재판과 형벌을 받게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3 그러므로 (형제 자매에게 성내거나 모욕하거나 어리석다고 욕하는 자는 살인과 같고, 살인자는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으므로)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24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 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
형제에게 원한을 품게 하거나 싸우고 다투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가까이 가겠다고 하셔도 하나님께서는 No thank you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용서를 빌고 화해하고 오라는 것입니다
왜 우리에게 싸움과 다툼이 있습니까?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우리 안에 역사하는 정욕때문에 그렇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다른 형제나 다른 자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자기를 앞세우고 높이려는 죄성과 정욕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겸손과 낮춤 복종에 대한 말씀을 강조합니다. 6절에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말씀합니다. 7절에도 하나님께 복종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10절에도 주 앞에서 낮추라고 말씀합니다. 주님께서도 누구든지 자신을 따라오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부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자만이 형제 자매와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고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있습니다.
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간음한 여인들아”라고 하니까 자칫 교회 내의 불륜을 범한 자매들을 말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는데, 형제건 자매건 세상과 벗하는 모든 성도들을 간음한 여인들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예수님의 신부인데 다른 남자인 세상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1:27에서도야고보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자기를 지켜 세상에 물들지 않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눈을 뜨자 마자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의 것들을 보고 들으며 사는데 세상에 물들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요?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또, 그래야한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5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꼐서 질투하실 만큼 사모한다" 는 성서 말씀이 공연한 말씀으로 생각하느냐?” (Or do you think it's without reason the Scripture says that the Spirit who lives in us yearns jealously? HCSB) 성령님께서 우리를 질투할 정도로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가 세상에 빠지지 않기를 그토록 원하시는 것은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사랑을 독점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의 유혹을 이기는 삶을 살도록 더욱 큰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사도바울도 성도들에게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명령합니다. (롬 12:1-2) 그런데, 그런 명령의 근거를 그 전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1-2)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때문에 우리는 우리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예배자가 될 수 있고, 또한 이 세상을 본받지 않고 변화된 새로운 마음으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나를 부인하여야 하고, 하나님의 자비에 힘입어 세상과 짝하면 안되고, 또 마귀를 대적하라고 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영적전쟁터의 삶이고 우리를 쓰러 뜨리려는 사탄의 세력들과 싸움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인 악마가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아 돌아 다닙니다.”라고 말합니다. (벧전 5:8)
우리는 어떻게 이 마귀를 대적할 것인가? 마귀가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유혹할 때 “네가 이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라는 말로 유혹하였습니다. 마귀는 지금도 우리에게 네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네가 주인공이 되고 네가 왕이되고 네가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유혹으로 우리 자신들을 높이려는 죄성을 자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말합니다. (6) 마귀를 대적하려면 하나님께 복종하라고 말씀합니다. 10절에도 주 앞에서 낮추라라고 말씀합니다. 마귀를 대적하는 길은 우리가 각 자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여인이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유혹을 받고 선악과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여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었습니다.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눈을 돌릴 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눈을 주님께 돌려 그 놀라운 얼굴 보라는 찬양대로 우리는 깨어있어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고 살라는 것입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이 편지를 받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는 죄인들이요 두마음을 품은 자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자신을 부인치 않고, 형제와 싸우고 다투면서 자신을 형제 위에 높이려는 살인자였습니다. 그리스도이라고 하면서 세상을 사랑하는 간음하는 자였습니다. 두마음을 품은 자들입니다.
손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성결하게 하고, 웃기보다는 슬퍼하고 애통하며 즐거워하기 보다는 근심하라고 도전합니다. 스스로 낮추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내 마음이 주님을 향하고 있지 않다면 나는 두 마음을 품은 자입니다. 주님을 부인하지 못하면서 그렇다고 주님을 전적으로 향하고 있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 발은 하나님에게 다른 한 발은 세상에 두고, 하나님도 섬기고 나자신도 섬기기를 원하는 자입니다. 회개하라고 말합니다. 겸손히 자기를 낮추라고 말합니다. 성령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이렇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라고 우리를 초청하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만 만찬을듭니다. 우리가 주님의 만찬을 들때에 하나님의 놀랍고 풍성한 자비를 항상 기억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란 고백으로 들기를 원합니다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5.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질투하며 사랑하신다" 는 성서 말씀이 공연한 말씀으로 생각하느냐?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저는 지난 12월 27일과 28일 이틀에 걸쳐서, 제가 지난 한해 동안 기도노트에 기록했던 회개와, 감사와, 간구와 결단 그리고 깨달았던 것을 기록한 내용들을 읽으면서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왜, 제가 내 인생을 돌아보면서 다른 것보다 주님에게 고백했던 회개, 감사, 간구와 결단 등을 돌아보았는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복된 삶이요 모든 복된 삶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감사하고 간구하고 결단하는 그 대화가 그토록 중요한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말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도 “하나님을 가까이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는 예배 모임도 빠지지 않고, 주님의 일도 하기를 원 하는데도 하나님이 너무 멀리 떨어져계신 것처럼 느껴지는 분은 없습니까? 이사야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사 59:2) 그러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는 죄때문에 하님과 거리를 느끼게되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것들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가까이 할 수 있는가를 깨닫는 은혜로운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성도들 간에 싸움과 분쟁이 있었습니다. 11절에 보니까 성도들 간에 서로 정죄하고 비방하는 관계였습니다. 2절에도 서로 탐내어 다투고 싸웠다고 반복해서 묘사합니다. 심지어 야고보는 이들을 가리켜 살인자들이라고 야단치고 있습니다. 물론 실지로 다른 형제를 죽였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사도요한은 분명히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요일 3:15) “주님께서도 형제 자매에게 성내는 사람이나 바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살인죄와 같은 재판과 형벌을 받게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3 그러므로 (형제 자매에게 성내거나 모욕하거나 어리석다고 욕하는 자는 살인과 같고, 살인자는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으므로)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24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 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
형제에게 원한을 품게 하거나 싸우고 다투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가까이 가겠다고 하셔도 하나님께서는 No thank you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용서를 빌고 화해하고 오라는 것입니다
왜 우리에게 싸움과 다툼이 있습니까?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우리 안에 역사하는 정욕때문에 그렇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다른 형제나 다른 자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자기를 앞세우고 높이려는 죄성과 정욕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겸손과 낮춤 복종에 대한 말씀을 강조합니다. 6절에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말씀합니다. 7절에도 하나님께 복종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10절에도 주 앞에서 낮추라고 말씀합니다. 주님께서도 누구든지 자신을 따라오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부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자만이 형제 자매와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고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있습니다.
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간음한 여인들아”라고 하니까 자칫 교회 내의 불륜을 범한 자매들을 말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는데, 형제건 자매건 세상과 벗하는 모든 성도들을 간음한 여인들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예수님의 신부인데 다른 남자인 세상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1:27에서도야고보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자기를 지켜 세상에 물들지 않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눈을 뜨자 마자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의 것들을 보고 들으며 사는데 세상에 물들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요?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또, 그래야한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5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꼐서 질투하실 만큼 사모한다" 는 성서 말씀이 공연한 말씀으로 생각하느냐?” (Or do you think it's without reason the Scripture says that the Spirit who lives in us yearns jealously? HCSB) 성령님께서 우리를 질투할 정도로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가 세상에 빠지지 않기를 그토록 원하시는 것은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사랑을 독점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의 유혹을 이기는 삶을 살도록 더욱 큰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사도바울도 성도들에게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명령합니다. (롬 12:1-2) 그런데, 그런 명령의 근거를 그 전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1-2)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때문에 우리는 우리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예배자가 될 수 있고, 또한 이 세상을 본받지 않고 변화된 새로운 마음으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나를 부인하여야 하고, 하나님의 자비에 힘입어 세상과 짝하면 안되고, 또 마귀를 대적하라고 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영적전쟁터의 삶이고 우리를 쓰러 뜨리려는 사탄의 세력들과 싸움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인 악마가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아 돌아 다닙니다.”라고 말합니다. (벧전 5:8)
우리는 어떻게 이 마귀를 대적할 것인가? 마귀가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유혹할 때 “네가 이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라는 말로 유혹하였습니다. 마귀는 지금도 우리에게 네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네가 주인공이 되고 네가 왕이되고 네가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유혹으로 우리 자신들을 높이려는 죄성을 자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말합니다. (6) 마귀를 대적하려면 하나님께 복종하라고 말씀합니다. 10절에도 주 앞에서 낮추라라고 말씀합니다. 마귀를 대적하는 길은 우리가 각 자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여인이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유혹을 받고 선악과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여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었습니다.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눈을 돌릴 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눈을 주님께 돌려 그 놀라운 얼굴 보라는 찬양대로 우리는 깨어있어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고 살라는 것입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이 편지를 받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는 죄인들이요 두마음을 품은 자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자신을 부인치 않고, 형제와 싸우고 다투면서 자신을 형제 위에 높이려는 살인자였습니다. 그리스도이라고 하면서 세상을 사랑하는 간음하는 자였습니다. 두마음을 품은 자들입니다.
손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성결하게 하고, 웃기보다는 슬퍼하고 애통하며 즐거워하기 보다는 근심하라고 도전합니다. 스스로 낮추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내 마음이 주님을 향하고 있지 않다면 나는 두 마음을 품은 자입니다. 주님을 부인하지 못하면서 그렇다고 주님을 전적으로 향하고 있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 발은 하나님에게 다른 한 발은 세상에 두고, 하나님도 섬기고 나자신도 섬기기를 원하는 자입니다. 회개하라고 말합니다. 겸손히 자기를 낮추라고 말합니다. 성령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이렇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라고 우리를 초청하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만 만찬을듭니다. 우리가 주님의 만찬을 들때에 하나님의 놀랍고 풍성한 자비를 항상 기억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란 고백으로 들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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