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야고보서 4:7 -10) 1/13/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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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야고보서 4:7 -10)
5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심어 주신 영혼을 질투하실 만큼 사랑하신다" 는 성서 말씀이 공연한 말씀으로 생각하느냐?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오늘 우리가 이 기도원에 올라와서 주님과의 시간을 통해서 주님께 가깝게 나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라고 명령하신 뒤에 계속 회개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손을 깨끗이 하라,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라, 주 앞에서 낮추라” 다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우리는 항상 회개하는 마음 자세를 갖추어야합니다.
여러분 중에 몇분은 아시지만, 저는 기타를 치기 전에 매번 기타줄을 조율합니다. 줄을 조율하지 않으면 불협화음이 나옵니다. 악기를 아무리 잘 연주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조율되지 않은 악기로 연주하면 아름다운 음을 낼 수 없습니다. 기도를할 때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이 주님과 먼저 조율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시편 66편18절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귀를 막고 하나님의 법을 듣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그의 기도마저 역겨워하신다.” 잠 28:9;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약 4:3 다 기도하면서 먼저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을 맞추는 조율, 즉 회개가 필요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막 11:25) 그러므로, 용서함이 없는 기도도 용서함이 없는 예배와 마찬가지로 주님은 받으실 수 없으십니다.
30년이란 오랜 세월동안 새벽기도를 열심히 하였음에도, 그 마음 속에 용서하지 못하겠고 용서할 필요성조차 못느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다른 사람을 용서하면 자기가 손해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용서하는 것을 마치 자신보다는 하나님을 위해서 억지로 해 주어야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용서하는 우리 자신에게 복이 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도 모르고 기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기때문입니다.
벌 써 약 30년이 넘은 일이지만, "켈리포니아에서 어떤 도둑이 복스와겐 차를 훔쳤습니다. 이 도둑을 차주인은 물론 경찰들이 많이 동원되어 차도둑을 찾았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라디오 방송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도둑 맞은 차 앞자리에 차주인이 야생토끼들을 잡으려고 독약을 바른 과자박스를 놓아두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들이 도둑을 찾은 것은 도둑을 잡으려고가 아니라 도둑을 살리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도 7절 말씀이 그런즉으로 시작됩니다. 즉 7절 이후에 언급된 하나님께 복종하고 가까이 하고 회개해야할 이유를 그 구절들 속에서 찾을 수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기 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으시며 회개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해치 않고, 오히려 우리에게 복주시려고 생명을 주시기 원해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음성에 응답하지 않고 회개치 않고 우리 것을 고집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하여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도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사 59:2)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약 4:8-10)
스가랴 1:3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오늘 저와 여러분이 기도할 때에 온전한 회개로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두번 째로, 하나님께 가까이 하려면 우선적으로 주님과 사귀는 시간을 만들고 가져야합니다.
지금 현재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부흥사 중의 한 분이 중국계 Francis Chan 목사님이란 분입니다. 이분이 자신이 주례를 섰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신부는 30살이 다 되가는 정신 박약아 딸을 혼자 키우는 single mother 이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 그 홀모에게 결혼하자고 propose를 한 것입니다. 이 홀모가 생각할 때에 자신의 모습과 처지를 생각할 때 너무 차이가 나는 남자가 자신에게 결혼해 달라고 propose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감격하였습니다. 그리고 결혼식 때 그 남자가 그 홀모였던 그 여인에 게 결혼서약으로 반지를 끼워주었습니다. 결혼을 하던 날, flower girl은 정신 박약아인 30살이 다 되가는 딸을 세웠다고합니다. 그런데 이 신랑이 또 하나의 반지를 준비하였다고 합니다. 이 그리고 그 반지를 flower girl인 그 딸에게 자신의 딸로 삼겠다는 표시로 끼워주었다고합니다. 그러자, 이 정신 박약아 딸이 너무 너무 감동되어 새로 아빠될 사람을 끼어 앉으면서 울면서 새 아빠를 사랑한다는 고백을 연발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Francis Chan목사님이 이처럼 감동적으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을 본적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자격 없는 홀어머니가 신실한 남편을 얻게된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고; 정신 박약아 딸이 아버지를 얻게된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보시고 살도록 구원받았고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또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입니다.” (요일 1:3) 하나님과의 사귐은 놀라운 특권이요 우리의 존재이유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저절로 사귐을 갖게되고 저절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우리가 오랜 동안 신앙생활했다고 해서 저절로 하나님과 가까와 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오랜동안 서로 알았다고 해서 저절로 서로 가까와지는 것이 아닌 것과 똑같습니다.
저는 이번에 집공사를 중고등학교 동창친구가 하게되었는데 이번 기간에 많이 친해지고 가까와 졌습니다. 물론 전에보단 자주보게되어서 친해지긴 했지만, 그러나 진짜 친근감을 느끼게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친구가 일이 끝났는데도 집에 가지 않고 저와 계속 남아서 대화하는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일하는 중간 중간에도 먼저 일을 끝낼 생각을 하지 않고 제게 와서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저와 대화하기 위해서 일부러 시간을 낸 것입니다.
주님께 가까이 하려면 우리는 의도적으로 주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바쁘기도 하고, 시간이 있다해도 우리들의 관심을 끌게하는 수 많은 다른 음성들을 듣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겠다는 선택이 있어야합니다.
바로 1년전 바로 이 기도원에서 ” 나와 우리 집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겠노라”고 설교하면서 제가 선포했던 것이 있습니다. 설교 준비를 끝내기 전에는 유튜브를 안보겠다고 선포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지 못할 때는 성도님들에게 알리겠다고 선포했었습니다. 혹시 기억하시는 분 있으세요?) 그런데 제 일기를 보니까 한달 정도는 결단을 지키다가 2월 초부터 찔끔 찔끔 보기 시작했습니다. 제목이나 댓글만보다가 화면 전체를 안보고 중간 중간 끊어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4월 10일 참패 대패했습니다.
“마약보다 강력한 스마트폰”이란 제목의 중앙일보 기사 (2017년 3월) 미국 마약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2016년도 8학년 10학년 12학년 학생들의 마리화나 외 마약 복용은 이 조사가 실시된 지난 40년 이래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고 합니다. 또, NYT는 '10대들에게 스마트폰이 마약을 대신하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청소년들이 컴퓨터 게임 스마트폰에 쏟은 시간이 급증한 지난 10여 년 동안 음주와 흡연은 물론 마약 복용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면서 이는 청소년들이 스마트폰과 게임에 빠져든 결과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마약까지도 멀리하게할 수 있을만큼 스마트폰과 게임의 영향력이 강력하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중에는 인터넷 중독이 마약중독과 같다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스마트폰과 인터넷때문에 하나님도 멀리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합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21세기 초반부에 사는 우리들 의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스마트 폰이던 인터넷이던 연속극이든 스포츠던 애완동물처럼 흥미있고 매력있는 것들이지만 때로는 유익하고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런 것들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그득차 있기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배고픔과 갈증을 잃게되고 하나님에 대한 갈증을 잃게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5:15-16에 보면 “예수의 소문이 더욱더 퍼지니, 큰 무리가 그의 말씀도 듣고, 또 자기들의 병도 고치고자 하여 모여들었다”고 말합니다. . “그러나 예수께서는 외딴 곳으로 물러가셔서 기도하셨다.” 그 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병도 고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음에도 예수님은 외딴 곳으로 물러가셔서 기도하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에 대한 분명한 우선권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의도적으로 삶의 중요한 것들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대화하는 교제의 시간을 매일 가지므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하려면 하나님께 복종하여야 합니다. 복종이란 말을 영어 성경에 보니까 submit혹은 surrender이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항복한다는 말씀입니다. 마귀에게는 대적해야하지만 하나님께는 항복한다는 말씀입니다. 무조건 순종하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따르겠다는 심정이 있어야합니다.
기도하기 시작하면서 회개하기 위하여 우리의 심정을 주님의 마음에 조율시킬 뿐 아니라, 기도를 마치고도 지속적으로 우리를 주님의 마음에 조율시키는 삶이 순종의 삶인줄 믿습니다.
예수님을 목자로 모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은 “그 분의 음성을 들을 뿐 아니라, 그 분을 따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요 10:27)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은 순종의 사람이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관계가 어렸을 때는 그토록 가까운 사이임에도 나이가 들 수록 소원해질 수 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변치 않습니다. 자식들이 머리가 컷다고 해서 자기의 것을 고집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겸손치 못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소원해지기 쉽습니다.
지금 바로 이 시간에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중 최바울목사님이 아프리카 케냐에 가 계시고
몇 주전 우리 예배 모임에 오셔서 설교해 주셨던 안상희 목사님도 아프리카 가나 바로 왼쪽에 위치한 코트디 부아르라는 2주 선교를 나가 계십니다. 그리고 아는 홍목사님은 연세가 70이 곧 되시는데 아프리카 우간다로 선교사로 가시기 위해서 내일 2주 동안의 답사차 우간다로 떠나십니다. 그리고 이아브라함 목사님도 곧 이디오피아로 단기 선교여행을 가십니다.
이 분들의 특징은 기도와 말씀의 사람들이란 사실입니다.. 주님을 가까이 하는 분들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마6:9-10)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기도하고 순종으로 그 기도의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오래 전에 간절히 낫게해 달라고 간구했는데 주님께서 간구를 들어주시지 않아서 마음 아파하며 이렇게 간절히 간구했는데 주님께서 들어 주시지 않았냐고 따지듯이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제게 “너는?”이라는 질문으로 대답해주셨습니다.“ 너는 왜 너를 향한 나의 간절한 뜻에는 신경도 안쓰고 순종도 안하느냐?” 그렇습니다. 좀 더 중요한 질문은 “왜 하나님께서 나의 간구를 들어 주시지 않는가?”가 아니라, “왜 나는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복종하려고 하지도 않는가?”란 질문일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는 자들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소원을 앞세우기 전에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순종하는 해야합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 회개가 있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선권을 갖고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갖겠다는 결단과 또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겠다는 결단이 있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주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는 복된 삶을 살게 하옵소서.
5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심어 주신 영혼을 질투하실 만큼 사랑하신다" 는 성서 말씀이 공연한 말씀으로 생각하느냐?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오늘 우리가 이 기도원에 올라와서 주님과의 시간을 통해서 주님께 가깝게 나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라고 명령하신 뒤에 계속 회개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손을 깨끗이 하라,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라, 주 앞에서 낮추라” 다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우리는 항상 회개하는 마음 자세를 갖추어야합니다.
여러분 중에 몇분은 아시지만, 저는 기타를 치기 전에 매번 기타줄을 조율합니다. 줄을 조율하지 않으면 불협화음이 나옵니다. 악기를 아무리 잘 연주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조율되지 않은 악기로 연주하면 아름다운 음을 낼 수 없습니다. 기도를할 때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이 주님과 먼저 조율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시편 66편18절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귀를 막고 하나님의 법을 듣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그의 기도마저 역겨워하신다.” 잠 28:9;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약 4:3 다 기도하면서 먼저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을 맞추는 조율, 즉 회개가 필요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막 11:25) 그러므로, 용서함이 없는 기도도 용서함이 없는 예배와 마찬가지로 주님은 받으실 수 없으십니다.
30년이란 오랜 세월동안 새벽기도를 열심히 하였음에도, 그 마음 속에 용서하지 못하겠고 용서할 필요성조차 못느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다른 사람을 용서하면 자기가 손해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용서하는 것을 마치 자신보다는 하나님을 위해서 억지로 해 주어야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용서하는 우리 자신에게 복이 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도 모르고 기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기때문입니다.
벌 써 약 30년이 넘은 일이지만, "켈리포니아에서 어떤 도둑이 복스와겐 차를 훔쳤습니다. 이 도둑을 차주인은 물론 경찰들이 많이 동원되어 차도둑을 찾았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라디오 방송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도둑 맞은 차 앞자리에 차주인이 야생토끼들을 잡으려고 독약을 바른 과자박스를 놓아두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들이 도둑을 찾은 것은 도둑을 잡으려고가 아니라 도둑을 살리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도 7절 말씀이 그런즉으로 시작됩니다. 즉 7절 이후에 언급된 하나님께 복종하고 가까이 하고 회개해야할 이유를 그 구절들 속에서 찾을 수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기 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으시며 회개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해치 않고, 오히려 우리에게 복주시려고 생명을 주시기 원해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음성에 응답하지 않고 회개치 않고 우리 것을 고집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하여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도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사 59:2)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약 4:8-10)
스가랴 1:3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오늘 저와 여러분이 기도할 때에 온전한 회개로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두번 째로, 하나님께 가까이 하려면 우선적으로 주님과 사귀는 시간을 만들고 가져야합니다.
지금 현재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부흥사 중의 한 분이 중국계 Francis Chan 목사님이란 분입니다. 이분이 자신이 주례를 섰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신부는 30살이 다 되가는 정신 박약아 딸을 혼자 키우는 single mother 이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 그 홀모에게 결혼하자고 propose를 한 것입니다. 이 홀모가 생각할 때에 자신의 모습과 처지를 생각할 때 너무 차이가 나는 남자가 자신에게 결혼해 달라고 propose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감격하였습니다. 그리고 결혼식 때 그 남자가 그 홀모였던 그 여인에 게 결혼서약으로 반지를 끼워주었습니다. 결혼을 하던 날, flower girl은 정신 박약아인 30살이 다 되가는 딸을 세웠다고합니다. 그런데 이 신랑이 또 하나의 반지를 준비하였다고 합니다. 이 그리고 그 반지를 flower girl인 그 딸에게 자신의 딸로 삼겠다는 표시로 끼워주었다고합니다. 그러자, 이 정신 박약아 딸이 너무 너무 감동되어 새로 아빠될 사람을 끼어 앉으면서 울면서 새 아빠를 사랑한다는 고백을 연발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Francis Chan목사님이 이처럼 감동적으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을 본적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자격 없는 홀어머니가 신실한 남편을 얻게된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고; 정신 박약아 딸이 아버지를 얻게된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보시고 살도록 구원받았고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또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입니다.” (요일 1:3) 하나님과의 사귐은 놀라운 특권이요 우리의 존재이유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저절로 사귐을 갖게되고 저절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우리가 오랜 동안 신앙생활했다고 해서 저절로 하나님과 가까와 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오랜동안 서로 알았다고 해서 저절로 서로 가까와지는 것이 아닌 것과 똑같습니다.
저는 이번에 집공사를 중고등학교 동창친구가 하게되었는데 이번 기간에 많이 친해지고 가까와 졌습니다. 물론 전에보단 자주보게되어서 친해지긴 했지만, 그러나 진짜 친근감을 느끼게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친구가 일이 끝났는데도 집에 가지 않고 저와 계속 남아서 대화하는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일하는 중간 중간에도 먼저 일을 끝낼 생각을 하지 않고 제게 와서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저와 대화하기 위해서 일부러 시간을 낸 것입니다.
주님께 가까이 하려면 우리는 의도적으로 주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바쁘기도 하고, 시간이 있다해도 우리들의 관심을 끌게하는 수 많은 다른 음성들을 듣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겠다는 선택이 있어야합니다.
바로 1년전 바로 이 기도원에서 ” 나와 우리 집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겠노라”고 설교하면서 제가 선포했던 것이 있습니다. 설교 준비를 끝내기 전에는 유튜브를 안보겠다고 선포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지 못할 때는 성도님들에게 알리겠다고 선포했었습니다. 혹시 기억하시는 분 있으세요?) 그런데 제 일기를 보니까 한달 정도는 결단을 지키다가 2월 초부터 찔끔 찔끔 보기 시작했습니다. 제목이나 댓글만보다가 화면 전체를 안보고 중간 중간 끊어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4월 10일 참패 대패했습니다.
“마약보다 강력한 스마트폰”이란 제목의 중앙일보 기사 (2017년 3월) 미국 마약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2016년도 8학년 10학년 12학년 학생들의 마리화나 외 마약 복용은 이 조사가 실시된 지난 40년 이래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고 합니다. 또, NYT는 '10대들에게 스마트폰이 마약을 대신하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청소년들이 컴퓨터 게임 스마트폰에 쏟은 시간이 급증한 지난 10여 년 동안 음주와 흡연은 물론 마약 복용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면서 이는 청소년들이 스마트폰과 게임에 빠져든 결과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마약까지도 멀리하게할 수 있을만큼 스마트폰과 게임의 영향력이 강력하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중에는 인터넷 중독이 마약중독과 같다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스마트폰과 인터넷때문에 하나님도 멀리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합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21세기 초반부에 사는 우리들 의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스마트 폰이던 인터넷이던 연속극이든 스포츠던 애완동물처럼 흥미있고 매력있는 것들이지만 때로는 유익하고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런 것들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그득차 있기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배고픔과 갈증을 잃게되고 하나님에 대한 갈증을 잃게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5:15-16에 보면 “예수의 소문이 더욱더 퍼지니, 큰 무리가 그의 말씀도 듣고, 또 자기들의 병도 고치고자 하여 모여들었다”고 말합니다. . “그러나 예수께서는 외딴 곳으로 물러가셔서 기도하셨다.” 그 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병도 고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음에도 예수님은 외딴 곳으로 물러가셔서 기도하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에 대한 분명한 우선권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의도적으로 삶의 중요한 것들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대화하는 교제의 시간을 매일 가지므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하려면 하나님께 복종하여야 합니다. 복종이란 말을 영어 성경에 보니까 submit혹은 surrender이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항복한다는 말씀입니다. 마귀에게는 대적해야하지만 하나님께는 항복한다는 말씀입니다. 무조건 순종하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따르겠다는 심정이 있어야합니다.
기도하기 시작하면서 회개하기 위하여 우리의 심정을 주님의 마음에 조율시킬 뿐 아니라, 기도를 마치고도 지속적으로 우리를 주님의 마음에 조율시키는 삶이 순종의 삶인줄 믿습니다.
예수님을 목자로 모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은 “그 분의 음성을 들을 뿐 아니라, 그 분을 따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요 10:27)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은 순종의 사람이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관계가 어렸을 때는 그토록 가까운 사이임에도 나이가 들 수록 소원해질 수 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변치 않습니다. 자식들이 머리가 컷다고 해서 자기의 것을 고집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겸손치 못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소원해지기 쉽습니다.
지금 바로 이 시간에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중 최바울목사님이 아프리카 케냐에 가 계시고
몇 주전 우리 예배 모임에 오셔서 설교해 주셨던 안상희 목사님도 아프리카 가나 바로 왼쪽에 위치한 코트디 부아르라는 2주 선교를 나가 계십니다. 그리고 아는 홍목사님은 연세가 70이 곧 되시는데 아프리카 우간다로 선교사로 가시기 위해서 내일 2주 동안의 답사차 우간다로 떠나십니다. 그리고 이아브라함 목사님도 곧 이디오피아로 단기 선교여행을 가십니다.
이 분들의 특징은 기도와 말씀의 사람들이란 사실입니다.. 주님을 가까이 하는 분들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마6:9-10)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기도하고 순종으로 그 기도의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오래 전에 간절히 낫게해 달라고 간구했는데 주님께서 간구를 들어주시지 않아서 마음 아파하며 이렇게 간절히 간구했는데 주님께서 들어 주시지 않았냐고 따지듯이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제게 “너는?”이라는 질문으로 대답해주셨습니다.“ 너는 왜 너를 향한 나의 간절한 뜻에는 신경도 안쓰고 순종도 안하느냐?” 그렇습니다. 좀 더 중요한 질문은 “왜 하나님께서 나의 간구를 들어 주시지 않는가?”가 아니라, “왜 나는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복종하려고 하지도 않는가?”란 질문일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는 자들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소원을 앞세우기 전에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순종하는 해야합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 회개가 있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선권을 갖고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갖겠다는 결단과 또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겠다는 결단이 있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주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는 복된 삶을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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